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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무문 1권(13화)
第七章 가자, 기루로!(2)


잠시 후 장소팔은 언제나 이용하던 천도무문의 뒷문을 통해 창고로 들어갔다.
장소팔은 여전히 콧노래를 부르면서 가져온 음식을 식탁 위에 차리고, 술병도 가지런히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차분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에서도 소무린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중얼거렸다.
“일단 인사부터 올릴까?”
언제나 무문을 찾을 때면 그랬듯이 사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당에서 위폐를 향해 예를 갖추고 난 이후에 장소팔은 다시 두리번거리면서 소무린을 찾았다.
하지만 여전히 소무린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장소팔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면서 미친 사람처럼 허공에 대고 말했다.
“야야, 그만 좀 해라. 이제 지겹지도 않냐, 숨바꼭질. 시간 없으니까 빨리 나와라. 서두르자.”
장소팔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답도,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이런, 설마 어디 갔나?”
장소팔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지금까지 이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가 오는 날이면 소무린은 언제나 창고 아니면 사당에 숨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곳은 청소를 하지 않아 먼지가 자욱한 상태였기 때문에 소무린 스스로도 좀처럼 이용하는 경우가 없었다.
문득 불안한 생각이 장소팔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이 자식이 나를 버리고 혼자서 그곳에 간 것은 아니겠지?’
이내 장소팔은 이를 강하게 부정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십 년을 훌쩍 넘긴 두 사람의 우정이었다.
돈이 조금 생겼다고 혼자서 그 좋은 곳을 갈 리는 없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솔직히 확신할 수는 없었다.
‘설마.’
장소팔은 불안한 마음으로 재빨리 사당 밖으로 달려 나갔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본관의 건물을 쥐 잡듯이 뒤졌지만 먼지만 자욱할 뿐 그 어디에서도 소무린의 흔적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본관의 문을 열자 비로소 검을 들고 마당에 우뚝 선 소무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와.”
찾았다는 안도감보다 먼저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곳에는 지금까지 장소팔이 알지 못했던 또 하나의 소무린이 서 있었다.
지난 십 년, 장소팔이 이곳을 찾는 날이면 언제나 소무린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소팔이 소무린의 유일한 친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그의 사부들은 적어도 장소팔이 찾아오는 그날 하루만은 소무린이 친구인 장소팔과 함께 모든 것을 잊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사부들이 죽은 이후에도 그날만은 변함이 없었다.
소무린 스스로도 그날 하루만은 평범한 여느 아이들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장소팔은 지금까지 소무린이 진지한 모습으로 수련에 임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땅을 딛고 서 있는 양발에서 천지가 무너져도 꿈쩍하지 않을 것 같은 무게감이 느껴졌다.
하늘로 내뻗고 있는 검은 마치 하늘이라도 베어 버릴 듯 무서운 기백을 토해 내고 있었다.
무공이라고는 전혀 알지 못하는 장소팔조차도 그렇게 하늘을 향해 검을 움켜쥔 소무린의 모습에 한순간 매료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것이 무인의 모습인가?”
장소팔이 부지중에 이렇게 중얼거렸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장소팔의 눈에는 지금 소무린의 모습이 소무린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인간백정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사이비 무림인으로는 더더욱 보이지 않았다.
순간 검을 든 소무린이 힐끔 그를 쳐다보면서 한쪽 눈을 깜빡였다.
“왔냐? 어떠냐? 제법 본새가 나지 않냐?”
입을 여는 순간 그곳에는 이미 무인이 아닌 자신의 익숙한 친구 소무린이 서 있었다.
“야, 너 제법이다.”
소무린이 검을 검집에 넣으면서 실망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뭐냐? 반응이 겨우 그 모양이냐? 이래 봬도 나름 십팔 년 동안 칼밥을 먹은 사람인데.”
장소팔이 살짝 얼굴을 붉혔다.
솔직히 멋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좀처럼 소무린에게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야야,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준비나 해라. 시간 됐다. 꼭 내가 먼저 너를 찾아와서 이렇게 재촉해야겠냐?”
어느새 장소팔의 옆으로 다가온 소무린이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미안하다. 잠시만 기다려라. 일단 좀 씻고 가자.”
씻는다는 말에 장소팔이 짓궂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하긴, 씻기는 씻어야겠지.”
두 사람은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우물 쪽으로 나란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장소팔이 계속해서 히죽히죽 실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런 장소팔의 웃음을 의식한 소무린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뭐가 그렇게 웃기냐?”
소무린의 말에 장소팔이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특히 아랫도리는 빡빡 깨끗하게 씻어라. 안 그럼 냄새 난다.”
소무린이 살짝 얼굴을 붉혔다.
“헛소리하지 말고 이거나 좀 창고에 걸어 놔라. 어딘 줄 알지.”
소무린이 자신에게 검을 건네자 장소팔이 검을 받아 들면서 말했다.
“왜, 검도 좀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아서 들고 가지 그러냐. 기녀들은 검 든 무인을 보면 환장을 한다던데.”
소무린이 혹하는 표정으로 장소팔을 바라보았다.
“정말이냐? 그럼 그럴까?”
“하하하하하하.”
장소팔이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리면서 먼저 검을 들고 창고로 움직였다. 소무린이 그런 장소팔의 뒷모습을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한참 뒤에야 소무린이 창고로 들어왔다.
“진짜 오래도 걸리네. 대체 얼마 만에 씻은 거냐?”
장소팔이 말에 소무린이 정곡을 찔린 듯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런데 너는 안 씻나?”
장소팔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지저분한 너랑 똑같은 줄 아냐? 명색이 요식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청결이야말로 생명이지. 집구석도 하나 제대로 청소하지 않는 누구와는 다르다고나 할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낮에 몇 번이고 그곳을 박박 밀었던 장소팔이었다. 이를 알 리가 없는 소무린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헛소리하지 말고 그럼 가자.”
이렇게 말하면서 소무린이 창고 한쪽에 걸린 검을 손에 쥐자 장소팔이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야야, 너 진짜 술 마시는 데 검을 들고 갈 생각이냐?”
소무린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녀들은 검을 든 무인을 좋아한다면서?”
장소팔이 계속해서 비웃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하여간에 순진하기는.”
소무린은 그제야 장소팔이 자신을 놀렸다는 사실을 알고 잔뜩 인상을 찌푸리면서 검을 원위치 시켰다. 그리고 조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장난은 이제 그만. 앞장서라. 가자.”
그러나 장소팔은 앞장서기는커녕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탁자 옆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준비해 왔던 술병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래도 술은 한잔 하고 가야 하지 않겠냐?”
소무린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장소팔을 바라보았다.
“거기 술 마시러 가는 것 아니었냐?”
장소팔이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그래도 전작으로 조금은 하고 가는 것이 좋지 않겠냐? 긴장도 풀 겸.”
다소 경직된, 그리고 어색한 장소팔의 모습에 소무린이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오라, 너도 이번이 처음이구나. 잔뜩 긴장하는 것을 보니.”
정곡을 찔린 듯 장소팔이 움찔 몸을 떨었다.
하지만 이내 신색을 바로 하면서 짐짓 태연한 표정으로 힘주어 말했다.
“무슨 소리, 나는 단지 네가 걱정돼서 이러는 것뿐이야. 그리고 기루에 갈 때는 보통 전작을 하고 가는 것이 상식이야. 상식.”
소무린이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비웃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과연 그럴까?”
장소팔은 보란 듯이 먼저 술을 병째로 들이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자자, 너도 후딱 마시고 가자. 시간 없다.”
소무린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장소팔이 내미는 술병을 받아 들었다.
장소팔의 행동으로 보아 분명 그 역시도 오늘 처음 기루에 가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굳이 자신이 기죽을 까닭은 하나도 없었다. 하긴 돈 내고 술 마시러 가면서 기죽을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두 사람은 그렇게 앉은 자리에서 장소팔이 가지고 온 독한 죽엽청주 세 병을 후딱 해치웠다. 그렇게 얼큰하게 술이 오르자 장소팔이 용기백배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앞장서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 가자.”
소무린이 흥겨운 표정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실제로 소무린이 도심으로 향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 그야말로 소무린에게는 첫 나들이가 아닐 수 없었다.
장사의 중심가로 들어서자 주변의 경관이 변두리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시골 촌놈처럼 주변의 생소한 광경에 연방 두리번거리면서 정신없이 고개를 돌리는 소무린을 향해 장소팔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아휴, 촌놈. 그만 좀 두리번거려라.”
장소팔의 말에도 불구하고 소무린은 도심의 밤거리를 계속해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이미 집들 대부분은 불이 꺼진 상황, 하지만 이렇게 줄지어 늘어선 집들만 하더라도 소무린에게는 그야말로 진기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늦은 시각이지만 지나가는 행인들의 모습 역시 신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참 사람이 많이도 사는구나.’
소무린이 이런 생각으로 두리번거리는 사이 어느새 두 사람은 그들의 목적지인 홍등가에 도착했다.
줄지어 늘어선 기루와 주루의 불빛이 대낮처럼 환하게 길을 밝히고 있었다.
늦은 밤 유일하게 어둠을 밝히는 길, 그렇게 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길을 밝히는 불빛에 매료된 듯 소무린이 어리둥절한 시선으로 홍등가를 주시했다.
“오빠, 놀다 가요.”
옆에서 자신을 붙잡는 한 기녀의 손길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똑같이 처음임에도 장소팔은 달랐다.
이미 목적지를 정한 듯 다른 곳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묵묵히 전진하고 있었다.
언젠가 홍등가를 지나면서 보았던 아리따운 기녀 수련이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는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경쾌하게 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수련아, 오빠가 간다.’

장소팔은 복잡한 홍등가를 지나 제법 그럴싸한 기루 앞에서 발을 멈췄다.
그야말로 흐뭇한 표정으로 기루의 간판을 확인하는 장소팔, 한눈에 그의 목적지가 바로 이곳이라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수련아. 오빠가 왔다.’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서 있는 장소팔, 그런 그의 뒤로 소무린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야야, 같이 가야지, 그렇게 혼자서만 앞서 가면 어떻게 하냐.”
무인인 소무린이 어찌 일반인인 장소팔을 놓칠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도처에서 그의 시선을 어지럽히는 뭇 여인들과, 그의 후각을 자극하는 분 냄새에 취해 소무린은 하마터면 정말로 장소팔을 놓칠 뻔했다.
소무린은 그렇게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장소팔의 표정을 보아하니 이곳이 바로 그들의 목적지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뭐 하냐? 여기면 어서 들어가지.”
멍청히 서 있는 장소팔을 지나쳐 소무린이 앞장서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장정 두 사람이 그들을 막아섰다.
소무린이 의아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기분 나쁜 시선으로 두 사람을 아래위로 훑어보는 장정들, 그들은 이내 고개를 까딱거리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애들은 가라.”
예상치 못한 복병의 등장에 소무린이 당황스런 표정으로 두 장정과 장소팔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거 연령제한이라도 있는 건가?’
순간 장소팔이 그렇게 당황하는 소무린의 앞으로 나서면서 보란 듯이 수중에서 은자를 꺼내 두 장정의 손에 하나씩 쥐어 주면서 말했다.
“돈은 있으니 염려하지들 마시게.”
잠시 망설이는 두 사람, 장소팔의 약발이 어느 정도 먹혀들어 가는 분위기였다.
은자를 받아 든 장정들이 다시 한 번 두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허름한 옷차림에 돈이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소무린이나 장소팔의 옷은 말 그대로 가난한 젊은이의 복장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러나 서슴없이 은자를 내미는 것을 보면 어디선가 돈을 좀 마련해 온 듯도 했다.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기루를 찾는다.
이곳 취선각은 여러 기루들 중에서도 최고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굳이 등급을 나누자면 중급 이상은 되는 곳이었다.
가격 역시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가난한 가정의 몇 달 생활비인 최소 금자 한 냥은 있어야 술이라도 한잔 걸칠 수 있는, 일반 서민들로서는 쉽게 꿈도 꾸지 못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간혹 이런 곳을 분수도 모르는 서민들이 어렵게 모은 쌈짓돈을 털어 찾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지금 장정들의 눈에는 소무린과 장소팔이 딱 그런 부류 정도로 보였다.
척 보니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철모르는 아이들, 어디를 살펴보아도 부티라고는 찾을 수 없는 평범한 외모, 사실 평소라면 이런 아이들은 잘 타일러서 돌려보내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워낙 불경기라 손님이 없는 탓에 잠시 망설일 수밖에는 없었다.
이런 결정은 빠를수록 좋았다.
본새를 보아하니 어디서 한잔 걸치고 온 듯했다.
이런 아이들과 오랫동안 문 앞에서 승강이라도 벌어지는 날에는 괜히 기루의 평판만 나빠질 뿐이었다. 일단 결정을 내리자 한 장정의 허리가 재빨리 아래로 꺾였다.
“안으로 드시지요.”
흡족한 결과에 장소팔이 소무린을 향해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이런 사람이야.’
그렇게 두 사람은 정말 간신히 장정의 안내를 받으면서 안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