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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무문 1권(14화)
第七章 가자, 기루로!(3)


사방이 탁 트인 일층에는 대략 십여 명의 사람들이 술 마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기대했던 기녀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일순간 장소팔이 당황스런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 이게 아닌데.’
척하면 착, 착하면 척이 아니겠는가?
장소팔의 눈치를 살피던 장정이 재빨리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이층으로 가시겠습니까?”
장소팔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장정은 곧장 두 사람을 이층으로 안내했다.
이층의 분위기는 아래층과는 사뭇 달랐다.
일층이 탁 트인 공간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라면 이층은 그야말로 한 칸 한 칸이 밀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장정은 그들을 제법 널찍한 방으로 안내했다.
무심코 방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일단 자리에 앉았다.
가능한 처음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두 사람 나름대로 어색함을 감추면서 얼굴에 억지로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밤거리에서 제법 오랜 세월 살아온 장정의 눈에는 그들의 어수룩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취선각이 바가지 따위나 씌우는 하류 술집은 아니었다.
일단 처음 온 손님들인 만큼 그래도 제대로 된 가격은 설명해 주어야만 했다.
“선불은 금자 한 냥입니다.”
우선 선불을 제시하는 것은 손님의 역량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손님의 반응이 왔다.
이내 장소팔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사실 오늘은 장소팔이 계산할 요량이었다.
소무린의 수중에 금자가 있는 한 앞으로 기회는 충분했다. 그래서 얼마 전 받은 금자 한 냥이면 계산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고작 선불이 금자 한 냥이라면 이미 이곳은 자신의 영역을 벗어났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감히 금자를 꺼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렇게 장소팔의 표정을 확인한 장정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장소팔의 태도를 살피건대 기껏해야 금자 한 냥 이상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일단 취선각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손님, 그리고 금자 한 냥이라면 아래층에서는 충분히 먹고 마실 수 있는 돈이었기에 두 사람을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이면서 말했다.
“그럼 아래층에서 한잔 하시겠습니까?”
순간 그런 장정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소무린이 품 안에서 떡하니 금자 한 냥을 꺼내 들었다.
“이거면 되는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장정이 다소 놀란 표정으로 소무린을 힐끔 쳐다보더니 두 손으로 공손히 금자 한 냥을 받아 들면서 머리가 땅에 닿을 듯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장정이 단순히 금자 한 냥에 이런 자세를 취하는 것은 아니었다.
금자를 꺼내면서 들려오는 미묘한 마찰음, 그 작은 마찰음마저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분명 금자를 꺼낸 주머니에 또 다른 아름다운 금자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 주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쯤 되면 이야기는 모두 끝난 상황이었다.
“혹시 따로 찾으시는 아이라도 있으십니까?”
그제야 장소팔이 안도하는 표정과 함께 고대하던 수련이를 떠올렸다.
“수련이 있는가?”
장정이 공손히 다시 허리를 숙였다.
“물론 있습죠.”
장정의 목소리마저 점점 더 공손하게 바뀌고 있었다.
“앞에 계신 공자님께서는?”
바로 이 대목이 문제였다.
소무린이 장소팔을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장소팔은 소무린에게 아무런 답변도 해 줄 수 없었다.
오로지 그의 마음속의 연인인 수련이를 제외하고는 그 역시 아는 기녀가 한 명도 없기 때문이었다.
당황하는 장소팔, 하지만 어느새 냉정을 되찾은 소무린이 담담한 표정으로 장정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자네가 알아서 들여보내 주게.”
장소팔이 감탄스런 표정으로 소무린을 바라보았다.
‘오, 자네가 알아서. 그거 괜찮은 표현인걸. 왠지 있어 보이고.’
다시 장정이 공손히 허리를 숙이면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술은 어떤 것으로 하시겠습니까?”
기다렸다는 듯 장소팔이 나서며 말했다.
“그것도 자네가 알아서 해 주시게.”
장정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그렇게 장정이 밖으로 나가자 장소팔이 소무린을 바라보면서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야, 너 제법이다.”
소무린이 조금 전 입구에서 어깨를 으쓱하던 장소팔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이 정도야, 보통이지. 흐흐흐.”
작은 늑대들의 음흉한 웃음소리가 한동안 텅 빈 방을 울리고 있었다.

잠시 후 방문이 열리고 두 여인이 거한 음식상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두 여인이 결코 못생겼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두 순박한 청년의 얼굴에는 실망하는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상을 내려놓은 두 여인은 다소곳이 허리를 숙이고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비로소 소무린이 먼저 한숨을 내쉬었다.
“휴, 아니네.”
소무린의 말에 당연하다는 듯 장소팔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실상은 장소팔도 긴가민가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장소팔이 수련이를 본 것은 그야말로 우연한 기회였고, 더욱이 낮에 멀찍한 곳에 떨어져서 보았기 때문에 단순히 아름답다는 것을 제외하고, 우연히 주워들은 이름을 제외하고는 수련이의 얼굴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어찌 되었건 그렇게 두 여인이 나가자 또 한동안 소식이 없었다.
잠시 잊었던 긴장감이 막연한 기대와 함께 두 사람을 엄습하기 시작했다.
일단 긴장도 풀 겸 두 사람은 상 위에 준비된 술을 각자의 잔에 채우고 번갈아 주고받으면서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반각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비로소 다시 방문이 열렸다.
휘둥그레진 두 순박한 청년의 눈동자, 그런 두 사람을 향해 요염한 미소를 지으면서 두 기녀가 공손히 절을 올렸다.
“수련이라 합니다.”
“소청이라고 하옵니다.”
여인이라고는 제대로 접한 적이 없는 두 순박한 청년에게 두 기녀의 아름다움은 분명 그들의 기대를 상회하는 것이었다.
두 기녀를 대하는 그 순간부터 두 사람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미 상대에게 압도될 대로 압도되어 버린 두 청년은 그저 기녀들에게 단순한 먹잇감에 지나지 않았다.
이미 그곳에 늑대는 온데간데없었고, 사냥당하는 토끼 두 마리와 먹음직한 토끼 사냥을 시작하는 능숙한 사냥꾼 여우 두 마리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능숙한 사냥꾼들답게 기녀들은 자연스레 몸을 밀착하며 두 사람의 빈 잔에 술을 채우며 두 마리 토끼들을 격려하기 시작했고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청년이 얼굴을 붉히면서 곧장 한 잔 술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이에 두 기녀들이 확인하듯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며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었다.
‘애송이들.’
두 기녀의 공통된 결론이었다.
그리고 두 기녀의 예상대로 방 안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여우에게 홀린 듯 두 토끼들은 삽시간에 상 위에 준비한 술병을 비웠다.
계속해서 점소이들이 분주하게 술병을 나르기 시작했고, 무엇이 그리도 기분이 좋은지 두 애송이들은 두 기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것은 두 기녀의 뜻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뜻밖의 변수가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소청이라는 기녀는 계속해서 살며시 소무린의 품에 안기면서 특유의 비음과 함께 소무린을 독려했다.
“공자님, 어서 한잔 하시와요.”
듣기에 따라서는 다소 느끼할 듯한 그녀의 말투에도 소무린은 환한 미소를 잊지 않으며 용기백배하여 술잔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순간 밖에서 뚜벅뚜벅 큰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직감적으로 무언가 심상치 않는 분위기를 느낀 기녀들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가 그들의 방문을 확 열어젖혔다.
한참 열기가 달아오르며 후끈후끈하던 방 안의 공기가 일순간 차갑게 가라앉았다.
“여기는 아니군.”
이렇게 말하면서 검을 움켜쥔 중년인이 확인하듯 다시 한 번 방 안을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두 애송이를 향해 비웃음을 흘리면서 한마디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대가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것들이, 정말 잘하는 짓들이로군.”
그러고는 문을 그대로 열어 둔 채로 다음 방으로 몸을 움직였다.
차갑게 가라앉은 방 안의 분위기, 두 기녀들이 조심스레 두 애송이들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그것은 기녀들의 실수였다. 두 기녀들의 그런 눈짓을 두 혈기왕성한 청년들은 자신을 비웃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례하게 자신들의 방문을 열어젖히고 자신들에게 비아냥거리면서 모욕을 안겨 준 상대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무력한 자신들에 대한 비웃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조금 전에는 처음 당하는 그야말로 난감한 상황인지라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지만 두 기녀의 이런 반응에 마침내 소무린이 분노한 표정으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에 질세라 장소팔 역시 분노한 표정으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순간 기녀 소청이 능숙하게 소무린의 가슴으로 자신의 섬섬옥수를 살짝 집어넣으면서 그를 달래듯 말했다.
“공자님, 소첩을 보아서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가슴으로 느껴지는 기녀 소청의 부드러운 손길에 한순간 일었던 분노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있었다.
장소팔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련이 그의 품에 안기면서 그를 제지하자 이미 얼굴에 환한 미소가 돌아오고 있었다.
이렇게 일단의 사태가 진정되자 소청이 먼저 조심스레 방문을 닫았다.
하지만 이미 분위기가 한풀 꺾인 상황, 이전과 같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물론 이런 분위기를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런 경우 기녀들에게 나름대로 비장의 무기가 있는 법이었다.
기녀 소청이 구석에 준비된 금을 들고 와 다소곳한 모습으로 소무린의 옆에 앉아 금(琴)을 타기 시작했다.
이내 청아한 금음이 방 안을 울리기 시작하자 두 애송이들이 마치 이를 음미하는 듯 금음에 맞춰 지그시 눈을 감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띵∼띠∼딩∼
일순간 회복되는 듯한 분위기, 그러나 그런 분위기도 그다지 오래가지는 못했다.
쨍, 쨍, 쨍.
마침내 기녀들이 우려하던 사단이 밖에서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검이 부딪히는 요란한 소리가 기녀 소청의 금음을 계속해서 방해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내 교전하는 두 사람의 검기에 방문마저 부서져 버렸다.
덕분에 밖에서 벌어지는 광경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밖에서도 안이 훤하게 보이게 됨으로써 더 이상 그곳은 은밀한 그들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다소 난감한 경우이기는 했지만 두 기녀들에게는 처음 접하는 경우는 아니었다.
간간이 벌어지는 무림인들의 싸움, 결국 이렇게 되면 오늘 더 이상 술자리를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일단 무엇보다도 손님의 안전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그녀들은 가만히 손님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유사시에는 그녀들의 호신무공으로 손님을 보호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밖에서 싸우는 두 사람의 무공을 어찌 그녀들이 감당할 수 있겠는가?
단지 그 대결의 여파에서 손님을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그녀들이 걱정하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듯했다.
이미 어느 한쪽의 일행으로 보이는 이십여 명의 무인들이 그런 사태를 예방하려는 듯 복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무당검법인가?”
갑작스레 자신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기녀 소청이 깜짝 놀라며 뒤를 확인했다.
물론 그녀의 뒤에는 소무린이 앉아 있었다.
지금까지 기녀 소청은 소무린을 그저 단순한 한량 정도로밖에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장소팔은 기껏해야 그의 친구이자 어디서 일하는 주방보조 정도일까?
기녀 소청은 지금 밖에서 검을 휘두르는 두 사람의 검법을 알아볼 정도의 식견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때문에 마치 이를 음미하듯 말하는 소무린이 조금 달라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소무린은 두 사람의 대결을 감상하는 듯 시종일관 차분한 시선을 잃지 않고 있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는 여유까지 잊지 않았다.
소무린의 술잔이 비자 소청은 조심스럽게 그의 잔에 술을 채웠다.
반면에 장소팔의 표정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마치 못 볼 것이라도 본 사람처럼 재빨리 기녀 수련의 뒤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밖에서 펼쳐지는 대결 때문은 아니었다.
비록 자신은 무공을 익히지 않았지만 친구의 실력을 어느 정도 믿고 있었기에 굳이 그렇게 몸을 숨길 이유는 없었다.
단지 친구조차도 막을 수 없는 인물이 그의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들과 맞은편에 위치한 방의 경우에도 그들과 상황은 비슷했다.
떨어진 문짝을 통해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한 아버지와 아들, 장소팔과 장봉상.
‘아니 저놈이 어떻게 여길.’
‘아니 아버지가 어떻게 여길.’
묘한 장소에서 이렇게 서로를 확인한 두 사람은 동시에 난감한 표정으로 황급히 기녀들의 등 뒤로 몸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기녀들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두 부자의 숨바꼭질, 누가 술래인지 모를 난감한 상황 속에서 두 부자 모두가 난감한 표정으로 향후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