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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무문 1권(15화)
第八章 원수를 기루에서 만나고…….(1)
취선각의 이층에서 대결을 벌이는 두 사람, 우선 두 사람은 외모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한 명은 마흔에 가까운 중년인, 바로 조금 전 소무린과 장소팔의 주흥을 방해했던 사람이었고 다른 한 명은 이제 갓 약관을 넘긴 것처럼 보이는 청년이었다.
그러나 이런 두 사람의 연령 차이와는 상관없이 그야말로 두 사람의 실력은 박빙이었고, 대결은 좀처럼 쉽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먼저 대결을 회피한 것은 청년 쪽이었다.
청년은 한순간 중년인의 공격을 재빨리 피하더니 민첩하게 뒤로 물러나면서 중년인을 향해 다급하게 말했다.
“노선배, 무언가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일단 검을 거두시지요.”
청년의 말에 중년인이 잠시 공격을 멈추고 코웃음을 쳤다.
“흥, 오해?”
청년이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설사 오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대체 무슨 연유로 노선배께서 이렇게 저를 핍박하시는지 저도 그 이유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중년인이 비릿한 미소와 함께 얼굴에 살기마저 내비치며 말했다.
“설마 오늘 오전에 있었던 일을 그새 잊어버렸단 말인가?”
중년인의 말에 청년이 흠칫 놀라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오늘 오전에 있었던 일?”
중년인이 놀라는 청년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비꼬듯 말했다.
“하긴 잊어버렸을 수도 있겠지. 네놈이 우리 웅천보를 얕잡아 보지 않았다면 어디 감히 웅천보의 대공자에게 그런 짓을 하고도 장사 땅에서 버젓이 기녀를 끼고 술을 마실 수 있겠는가? 아무튼 네놈의 그 배포 하나는 인정해 주도록 하지. 그러나 과연 그 두둑한 배포만큼이나 출중한 실력을 가졌는지는 이 자리에서 증명해 주어야겠군.”
중년인의 말에 청년이 당황스런 표정으로 중년인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웅천보의 대공자, 설마 그가?”
청년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실제로 웅천보는 중년인의 말처럼 청년이 무시할 만한 방파가 아니었다.
한마디로 웅천보는 이곳 장사 땅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방파였다.
어디 비단 장사에서뿐이겠는가?
웅천보 하면 호남 땅 전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거대 방파이기도 했다.
또한 웅천보는 정도(正道)를 표방하는 문파로서 청년의 사문인 무당파와도 어느 정도의 교분을 맺고 있을 정도였다.
“노선배, 일단 잠시 진정하시지요. 저는 무당의 속가제자 서조헌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그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자 기녀 소청이 흠칫 놀란 표정으로 소무린을 바라보았다. 순간 소무린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시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젠장, 하필 이런 자리에서.’
두 사람이 잠깐 대결을 멈춘 사이 비로소 소무린도 주변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맞은편 방에서 가냘픈 기녀의 등 뒤로 어설프게 몸을 숨기려고 열심히 노력 중인 거대한 덩치의 중년인 장봉상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로소 장소팔이 그토록 불안해하고 있는 이유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소무린에게도 장봉상은 친구의 아버지이자 사문과 적지 않은 유대를 가지고 있는 웃어른이었기에 그 역시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순간 무당제자 서조헌의 앞에 선 중년인이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무당의 제자라니 그야말로 잘되었군. 나는 웅천보의 총관 왕경지라고 하네. 자네 말대로 자네가 진정 무당의 속가제자라면 웅천보와 무당의 관계 정도는 알고 있을 터, 더 이상 무의미한 저항 따위는 하지 말고 그만 나를 따르게. 지금 보주께서 그대를 손꼽아 기다리고 계시니 그곳에서 제대로 잘잘못을 가려야 하지 않겠는가?”
왕경지의 말에 서조헌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오전에 있었던 일은 그야말로 우연한 사고였다.
오늘 오전 서조헌은 우연히 여염집 아낙을 찝쩍거리는 시정의 잡배를 목격했고, 서조헌은 의협심을 발휘해 그를 제지하기에 이르렀다.
웅천보라면 장사의 명문 중에 명문, 서조헌이 어찌 그 같은 무뢰배를 웅천보의 대공자라고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실제로 장사에서 아는 사람은 모두 알 정도로 웅천보 보주 금천상의 아들 금인봉은 이곳 장사 땅에서 소문난 파락호였다.
모두가 그런 그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감히 그를 제지할 수 없었던 이유도 바로 그의 뒤에 웅천보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한 서조헌은 금인봉을 그저 따끔하게 혼내 줄 심산이었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그저 단순한 시정의 잡배로만 생각했던 상대의 무공이 만만치 않았고, 결국 서조헌 역시 검을 뽑는 지경에 이르러 급기야는 피를 보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그때까지도 시정의 잡배치고는 무공이 대단하다고는 생각했으나 그가 웅천보주의 장남인 금인봉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지금 왕경지의 말을 통해서야 비로소 그가 금인봉인 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웅천보주 금천상은 분명 일문을 이룰 만큼 뛰어난 무공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 가진바 무공에 비해서는 다소 편협한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때문에 서조헌은 만약 이대로 왕경지에게 끌려간다면 필경 큰 낭패를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서조헌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아니었다.
단지 지금 서조헌은 모종의 임무를 띠고 이곳에 온 상황이었다.
잠시 후 이곳에서 누군가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기에 더더욱 순순히 이들에게 끌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서조헌이 난감한 표정으로 왕경지를 향해 공손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오늘 일에 대해서는 차후에 제가 직접 웅천보를 찾아가 보주님께 자세한 정황을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부득의한 사정이 있으니 부디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고 이쯤에서 양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서조헌의 정중한 부탁에도 왕경지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서조헌을 바라보았다.
“도저히 말로 해서는 안 될 놈이로구나. 얘들아, 쳐라.”
지금까지의 대결을 통해서 왕경지는 홀로 서조헌을 제압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비로소 함께 온 수하들을 투입했다.
이렇게 왕경지의 명이 떨어지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주변을 에워싸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이십여 명의 무인들이 비로소 검을 뽑아 들었다. 왕경지 역시 그런 수하들과 함께 재차 서조헌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일대일로도 박빙의 승부를 보였던 두 사람, 하지만 왕경지는 수하들과 합공을 펼치면서도 그런 서조헌을 쉽게 제압할 수 없었다.
물론 이층의 복도가 좁아 합공이 여의치 않은 까닭도 있었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왕경지는 조금 전 서조헌이 자신과의 대결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고작 스무 살 안팎의 애송이를 홀로 제압하지 못한 것만으로도 왕경지에게는 부끄러운 일이거늘 오히려 상대가 지금까지 자신을 얕잡아 보고 본연의 실력을 발휘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분한 마음에 왕경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웅천보 무인들의 합공에도 불구하고 서조헌은 좁은 이층의 통로를 적절히 활용하며 왕경지 등 웅천보 무인들의 공격에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가급적 상대가 다치지 않도록 배려하는 여유까지 잃지 않고 있었다.
때문에 점차 대결이 거듭될수록 왕경지의 얼굴은 더더욱 붉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승부와는 별개로 계속되는 대결의 여파로 기루의 기물들이 훼손당하기 시작했다. 또한 대결의 여파는 무공을 익히지 않는 기루의 손님들에게는 적지 않은 위협마저 되고 있었다.
“오호, 저것이 무당이 자랑하는 태극혜검이라는 것인가?”
그런 상황하에서 소무린은 서조헌이 펼치는 태극혜검의 검로를 감상하면서 감탄하듯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소무린은 장소팔과 장봉상의 안전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다.
순간 서조헌의 일격에 적중당해 쓰러지는 웅천보 무인이 수중의 검을 놓쳤고, 그의 수중에서 벗어난 검이 장봉상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를 확인한 소무린이 재빨리 탁자 위의 젓가락을 던졌다.
슈∼우∼웅∼
젓가락이 호쾌한 파공음을 내며 장봉상을 향해 날아가던 검을 벽면으로 쳐 냈다.
‘아무래도 이거 더 이상은 안 되겠는걸.’
사실 소무린은 이대로 서조헌의 무당검을 좀 더 감상하고 싶었다.
만약 장봉상이 이 자리에 자신과 합석하고 있었다면 좀 더 지켜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과 장봉상이 제법 멀찍이 떨어진 상황에서 만약의 사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쯤에서 저들의 대결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소무린이 조금 아쉬운 마음으로 마지막 술 한 잔을 들이켜고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였다.
그 순간 그의 귀에 일층에서 누군가가 빠르게 이층으로 뛰어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가볍고 경쾌한 발걸음, 소무린은 그의 발걸음 소리만으로도 이곳에서 싸우는 그 누구보다도 훨씬 뛰어난 고수라는 것을 단번에 감지할 수 있었다.
‘어라, 일단 조금 더 지켜보도록 할까?’
소무린은 이런 생각으로 반쯤 들린 엉덩이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다수가 소수를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조금 전 자신의 주흥을 방해한 왕경지의 무례함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무로써 도를 추구하는 천도무문 역시도 도가라고 생각하는 소무린이었기에 도가의 본산이라는 무당에 대한 막연한 친근감 때문이었을까?
이런저런 복합적인 이유로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는 소무린은 내심 서조헌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만약 지금 이층으로 올라오는 사람이 웅천보의 인물이라면, 그래서 서조헌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면 자신이 나서서 서조헌을 도와줄 생각까지도 하고 있었다.
물론 그 언젠가와 마찬가지로 극적인 순간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층으로 올라온 인물을 확인하는 순간 소무린은 불쾌한 기색으로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어째서 저놈이 지금 이 자리에 등장하는 것일까? 정말 저놈과 나는 피할 수 없는 악연이란 말인가?’
그렇게 소무린을 불쾌하게 만든 인물은 바로 얼마 전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자신의 멋진 등장을 방해했던 소무린의 유일한 원수이자 연적인 유소혜의 사형이라는 인물이었다.
“그만들 두시오.”
그가 도착하기가 무섭게 그의 외침이 이층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거기에는 적지 않은 내력마저 담겨 있어 이층에서 싸우던 모든 사람들이 흠칫 놀라면서 잠시 대결을 멈추고 긴장하는 표정으로 그를 확인했다.
기다렸다는 듯 서조헌이 반가운 기색으로 그를 향해 재빨리 포권을 취했다.
“류 형, 이제야 오셨군요.”
서조헌의 인사에 유소혜의 사형 역시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는 모습에 왕경지가 당황스런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말했다.
“한패가 있었는가?”
당황스럽기는 소무린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잠시나마 호감을 가졌던 서조헌이 하필이면 유소혜의 사형과 한패였던 것이다.
재빨리 소무린은 왕경지의 안색을 살폈다. 하지만 소무린이 보기에 왕경지는 그다지 기대할 것이 없는 인물이었다.
지금 왕경지의 얼굴에는 그야말로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찌 왕경지가 당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왕경지는 지금 서조헌 하나로도 힘에 부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층에 등장한 인물의 본새와 조금 전 일갈(一喝)로 보아 서조헌에 못지않은 고수임이 거의 확실해 보였다. 그런 그가 서조헌과 합류한다면 자신들이 낭패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유소혜의 사형이 왕경지를 향해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검각의 류한청이라고 합니다.”
천하제일검문이라는 검각의 이름 앞에 왕경지가 움찔 몸을 떨면서 류한청을 향해 공손히 포권을 취했다.
“검각의 류 대협이시군요. 저는 웅천보의 총관 왕경지라고 합니다.”
기세가 한풀 꺾인 왕경지를 향해 류한청이 정중하게 말했다.
“왕 대협께서 무슨 오해가 있는지는 모르나 이쯤에서 양보해 주시지요. 서 소협에 관한 일은 이 류 모가 보증하겠습니다.”
분명히 말은 공손했다.
그러나 류한청은 다른 사람들은 쉽게 느낄 수 없는 무형의 기운을 위협하듯 왕경지를 향해 내뿜고 있었다.
가뜩이나 기세가 한풀 꺾인 상황에서 한순간 왕경지는 류한청의 기세에 눌려 잠시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