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천도무문 1권(16화)
第八章 원수를 기루에서 만나고…….(2)


그사이 서조헌은 간략하게 전음으로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서조헌의 전음을 듣고 있던 류한청의 표정이 다소 심각해졌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이를 지켜보던 소무린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좌중을 제압하는 일신의 무공뿐만 아니라 류한청의 준수한 외모에 이층의 기녀들이 흠모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기녀들의 눈빛이 소무린에게 과거 류한청을 바라보던 유소혜의 모습을 다시금 떠오르게 만들고 있었다.
더구나 자신과 장소팔의 옆에 앉아 있는 기녀 소청과 수련 역시도 다른 기녀들과 마찬가지로 류한청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이로써 벌써 두 번째인가?’
이런 생각으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류한청을 힐끔 쳐다본 소무린이 순간 장난기가 발동한 듯 짓궂은 미소를 머금었다.
이내 소무린이 왕경지를 향해 비웃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이제 보니 웅천보인지 뭔지도 별것 아니로군, 검각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저렇게 물러나 달라는 말에 찍소리도 못하는 것을 보면.”
갑작스런 류한청의 등장으로 사위가 일순간 긴장으로 조용해진 상황이었다.
때문에 비록 소무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고는 하지만 왕경지 정도 되는 무인이 그런 소무린의 말을 듣지 못할 까닭이 없었다.
왕경지가 힐끔 소무린을 노려보았다.
그런 왕경지의 시선에 소무린이 짐짓 두려운 표정으로 기녀 소청의 뒤로 몸을 감추었다.
‘하긴, 저따위 애송이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저 사실을 말한 것일 뿐이거늘.’
왕경지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수치스러움에 잔뜩 얼굴을 붉혔다.
이에 류한청이 곤혹스런 표정으로 소무린을 쳐다보았다.
비록 위협이라는 탐탁지 않은 방법을 사용했지만 일단 조용히 사태를 마무리 짓는 분위기였다. 그런 와중에 철없는 청년의 방자한 입놀림 때문에 자칫 사태가 커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형제, 말을 삼가게.”
류한청은 소무린의 입을 막음으로써 재빨리 사태를 수습하려 했으나 이미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소무린의 말에 자극을 받은 왕경지가 마음을 추스르면서 류한청을 지그시 노려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맞네, 분명 소형제의 말이 틀림이 없네. 천하제일검문이라는 검각의 이름은 충분히 우리를 위협하고도 남음이 있네. 허나 소형제, 자네의 말처럼 우리 웅천보는 결코 그렇게 나약한 문파는 아니라네. 설사 오늘 우리 모두가 이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결코 물러설 생각이 없네. 류 대협, 오늘 우리는 검각과 척을 지는 한이 있더라도 저자를 반드시 본보로 데려가야겠소.”
이렇게 말하는 왕경지의 모습에는 비장감마저 흐르고 있었다.
류한청이 그야말로 난감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왕경지의 수하들 역시도 왕경지와 마찬가지로 결연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과 서조헌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서조헌이 좌중을 향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서 모가 차후에 웅천보를 찾아 모든 것을 해명하겠다고 이 자리에서 맹세하겠소이다. 단지 지금은 급한 용무가 있으니 부디 왕 대협께서 양해해 주십시오.”
그러나 서조헌의 말은 그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이미 결심을 굳힌 듯 왕경지는 내력을 끌어올리며 검을 지그시 움켜쥐었다.
“쳐라.”
왕경지의 신호와 함께 웅천보의 무인들이 기다렸다는 듯 서조헌과 류한청을 향해 결연한 표정으로 돌격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소무린은 어느새 기녀 소청의 뒤에서 나와 여유로운 모습으로 다시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로써 소무린은 류한청이 조금은 곤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소무린의 예상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류한청은 같은 정도의 일원으로서 웅천보의 무인들을 해할 수 없었다. 자칫 이들이 상처라도 입는다면 더욱더 심각한 사태를 야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류한청이 재빠른 결단과 함께 몸을 움직이자 사태는 너무나 조용하게, 그리고 너무도 쉽게 해결되었다.
물론 류한청이 이런 난처한 상황에 너무나 냉철하게 대처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류한청을 괴롭히기에는 왕경지를 비롯한 웅천보 무인들의 실력이 너무 형편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검을 움켜쥔 채로 망부석처럼 서 있는 웅천보 무인들, 이렇게 류한청이 그들의 몸에 상처조차 남기지 않고 그들의 혈도를 제압하는 데는 채 일각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유유히 웅천보 무인들을 제압하는 류한청의 현란한 움직임은 실로 이를 지켜보는 모든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고 있었다.
사실 소무린이 보기에 류한청의 이런 움직임은 지나치게 쓸데없는 동작이 많아 보였다.
그러나 그 쓸데없는 동작들이 오히려 사람들의 눈에는 더없이 화려하게 보이는 것이 또한 사실이었다.
기녀들의 쩍 벌어진 입, 주변 사람들의 환호성,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소무린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죽마고우인 장소팔마저도 입을 쩍 벌리고 류한청의 모습에 감탄하고 있는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류한청은 한차례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소무린의 옆으로 다가와 마지막 일침을 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소형제, 모든 화는 입에서 비롯되는 법일세.”
따끔한 충고를 잊지 않는 그의 모습에 소무린은 적지 않게 분노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서 분노를 터트릴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만약 괜히 지금 나서서 그를 제압한다면 그야말로 소무린은 최후의 순간에 등장하는 악당 같은 분위기였는지라 꾹꾹 화를 누르며 참아야만 했다.
그렇게 화를 억누르던 소무린이 돌연 류한청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피식 미소를 던졌다.
일층에서 느껴지는 류한청에 비견할 만한 강렬한 기운, 이 기운을 느낀 소무린은 아직 이곳의 상황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소무린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저놈이 맞느냐?”
일층에서 들려오는 유쾌한 시비 소리, 소무린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재빨리 일층이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일층으로 내려가던 류한청과 서조헌이 난감한 표정으로 멈춰 서 있었다.
“아버지, 저 뒤에 서 있는 저놈이 틀림없습니다.”
류한청을 비롯한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사건이 일단락된 줄 알았지만 이렇게 청년의 목소리는 다가올 이차전의 서막을 알리고 있었다.
아비의 뒤에 숨어 서조헌을 향해 적의를 불태우는, 그래서 한눈에 척 보아도 아비의 후광으로 먹고사는 철없는 청년처럼 보이는, 그가 바로 지금까지 이곳에서 거론되었던 웅천보 보주 금천상의 아들인 금인봉인 듯했다.
그렇다면 그가 아버지라 칭한 인물, 그의 방패막이가 되어 주고 있는 인물이 바로 웅천보주 금천상이라는 뜻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다는 싸움 구경, 그것도 무림의 절정고수들 간의 일전은 사람들이 좀처럼 보기 힘든 구경거리였기에 장봉상, 장소팔 부자를 포함 이층의 기녀들과 손님들이 앞 다투어 일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장봉상과 장소팔이 서로를 향해 어색한 시선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사이 일층의 상황은 류한청과 서조헌을 중심으로 웅천보의 무인들이 그들을 빙 둘러 에워싸고 있었다.
뒤늦게 목발을 짚고 있는 금인봉의 모습을 확인한 사람들은 지금의 이 사태가 결코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목발을 짚고 있는 금인봉의 오른쪽 다리가 아예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피를 보았다는 것이 단순히 상처를 입힌 것이 아니라 오른쪽 다리를 완전히 절단했던 것이다.
류한청 역시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느낀 듯 얼굴에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금천상이 대동한 수하들은 그야말로 웅천보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삼십육 인, 세인들에게 삼십육 웅비대라고 알려진 인물들이었다.
“검각의 류한청이 웅천보주님을 뵙습니다.”
“무당의 속가제자 서조헌이 웅천보주님을 뵙습니다.”
두 사람의 인사에 금천상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왕경지와 마찬가지로 검각과 무당이라면 금천상 역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검각과 무당이라. 서조헌이라고 했는가?”
서조헌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금천상은 비교적 차분한 어조로 서조헌을 향해 말했다.
“내 자식이 못난 탓에 벌어진 일임을 내 보지 않아도 알고 있다네.”
그리고 지그시 자신의 뒤에 있는 금인봉의 잘려 나간 다리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허나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는가?”
이런 금천상의 말과 행동에 서조헌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아버지 금천상이 자신을 못난 아들로 칭하며 마치 모든 잘못이 자신에게 있는 듯 말하자 금인봉이 금천상에게 따지듯 말했다.
“아버지, 지금 대체 무슨 말씀을…….”
금인봉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금천상이 아들의 뺨을 후려쳤다.
“닥쳐라. 못난 놈.”
그러고는 지그시 서조헌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보다시피 못난 아들일세. 허나 못난 아들이지만 어쩌겠는가? 자식은 아비를 버릴 수 있어도 아비는 자식을 버릴 수 없음을. 아들의 이런 몰골을 보고 참아 넘길 부모가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부디 이 금 모를 원망은 하지 마시게.”
말과 동시에 금천상이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류한청이 나서며 말했다.
“금 선배.”
금천상이 류한청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검각의 류한청이라고 했던가? 이쯤에서 제삼자는 빠져 주는 것이 어떻겠는가?”
류한청이 그럴 수 없다는 듯 검을 뽑아 들면서 말했다.
“서 소협은 저와 함께 모종의 임무를 띠고 이곳에 왔습니다. 또한 저는 그 임무의 책임자로 이곳에 왔습니다. 그 책임자인 저도 의당 이곳의 일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으니 어찌 서 소협의 일을 제가 모른 척 방관할 수 있겠소이까?”
금천상이 위협적인 어조로 말했다.
“내 분명 제삼자는 빠지라고 했느니.”
류한청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최 말이 통할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류한청이 물러날 기색이 없자 금천상의 얼굴에 분노가 스치듯 지나갔다. 그리고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건방진 놈, 세상 사람들이 모두 검각을 두려워하는 줄 아느냐? 단지 검각의 이름만으로 이 금천상을 물러나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느냐? 좋다, 내 오늘 천하제일검문이라 불리는 검각의 무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방자한 너에게 하늘 밖에 하늘이 있음을 똑똑히 알려 주리라.”
류한청이 난감한 표정으로 금천상을 향해 말했다.
“금 선배, 일단 자중하시오. 모든 일이 아녀자를 희롱한 당신의 아들에게서 비롯된 일임을 진정 모르신단 말이오.”
금천상은 대답 대신 검을 휘둘렀다.
오늘날의 웅천보가 있도록 한 그의 성명절기 웅천십이검을 차례로 펼치기 시작했다.
류한청 역시 금천상의 입에서 검각의 이름까지 언급된 마당에 더 이상 참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류한청은 즉시 승룡검결을 펼치면서 금천상의 검에 대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