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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무문 1권(22화)
第十章 무당으로 향하는 군웅들(2)


풍도는 다소 걱정스런 표정으로 남궁현을 향해 말했다.
“대공자, 천한 것들과 겸상을 하심은 아랫사람들의 눈에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풍도가 이끌고 온 삼십삼 인의 고수들, 그들은 내당과 외성을 망라한 남궁세가 최고의 후기지수들이었다.
단순히 호위를 위해서라면 남궁세가에는 분명 이들보다 뛰어난 인물도 많았다.
하지만 남궁진이 굳이 이들을 남궁현의 호위로 대동시킨 것은 이들이 바로 남궁현과 함께 다음 대의 남궁세가를 이끌어 갈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궁현은 그런 수하들과는 단 한 번도 겸상을 한 적이 없었다.
때문에 지금 우연히 만난 두 사람과 겸상을 한다는 것은 이들이 자칫 남궁현에게 반감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지금 풍도가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풍도의 말에 소무린과 장소팔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바보가 아닌 한 풍도의 입에서 나온 천한 것들이 바로 자신들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젠장.’
이렇게 불만스런 표정을 짓는 두 사람의 안색을 확인한 남궁현이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로 하여금 두 번 말하게 할 셈인가?”
풍도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선실로 들어갔다.
그렇게 풍도가 선실로 들어가자 남궁현이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천도무문과 풍운각이라? 본 공자가 견문이 짧아서 그런지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인데 두 분은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남궁현의 친절한 말에 마음이 풀린 소무린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천도무문은 호남성 장사의 변두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군요. 그럼 혹시 무림첩을 받고 무당으로 가시는 길인가 봅니다.”
남궁현의 말에 소무린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본문은 불행히도 세상에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탓에 무림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일단 무당으로 가는 것은 맞습니다.”
겉으로 확연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남궁현의 입가로 살짝 조소가 스치듯 지나갔다.
‘무림첩조차 받지 못한 문파를 문파라고 할 수 있는가? 쯧쯧쯧.’
실제로 무당은 이번 기회에 정사를 막론하고 일천이백에 달하는 대륙 전역의 군소방파들에게 무림첩을 보냈다.
이것은 단순히 무림맹의 소집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마교의 등장을 알리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었기에 이렇게 무림첩을 남발했던 것이다. 그런 무림첩조차 받지 못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 인지도가 일천이백 위에도 들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남궁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소무린을 향해 위로하듯 말했다.
“그렇군요. 아마도 무당에서 무언가 착오가 있었겠지요. 어찌 되었건 목적지가 같다니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로군요. 허면 이대로 저와 함께 무당으로 가는 것이 어떻습니까?”
소무린이 장소팔을 바라보자 장소팔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무림인이 아니라고 하지만 어찌 장소팔이 남궁세가를 모르겠는가?
이 기회에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인정하는 소위 명문가라는 곳의 사람과 함께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궁현이 그런 장소팔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허면 귀하는?”
장소팔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저는 천도무문의 옆에 위치한 작은 객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남궁현은 ‘이런 빌어먹을 객점 주인이라니 천해도 너무 천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면서도 애써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그런 남궁현을 향해 소무린이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친구는 비록 무림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능히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룰 만한 인물이지요.”
남궁현은 ‘그래 두 놈이서 각각 일가를 이룰 인물이라고 서로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천한 것들이란 항상 꿈이 큰 법이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얼굴에는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저 역시도 부디 두 분이 그 뜻을 크게 펼치기를 기원하도록 하지요.”
그렇게 인사를 주고받는 와중에 풍도가 두 시비를 앞세워 그들의 앞에 술상을 대령했다.
남궁현이 자연스레 두 사람과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자 풍도는 내심 못마땅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주변의 경관을 감상하며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기울이는 삼 인, 그런 와중에 마침 남궁현이 악양루를 발견하고 감탄하듯 말했다.
“오, 저곳이 소문으로 듣던 악양루(岳陽樓)로군요.”
남궁현의 말에 두 사람이 동시에 그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고 했던가? 하지만 소무린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중얼거렸다.
“악양루라? 무슨 기루 이름인가?”
소무린이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장소팔을 바라보자 장소팔이 난감한 표정으로 살짝 얼굴을 붉혔다.
‘야, 어떻게 너 악양루를 모를 수 있냐?’
이런 표정으로 소무린에게 눈짓을 보내면서 소무린의 옆구리를 살짝 찔렀다.
하지만 눈치 없는 소무린이 의아한 표정으로 장소팔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왜, 저기 기녀들이 그렇게 이쁘냐?”
장소팔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소무린을 바라보자 남궁현이 ‘어쩜 이렇게 무식할 수가?’라고 생각하면서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악양루는 원래 그 옛날 수군들이 군사 훈련을 할 때 사용되던 열병루였습니다. 그리고 역사상 많은 문인들이 악양루와 관련된 많은 시를 남길 만큼 악양루에서 바라보는 동정호는 더없이 아름답다고 하더군요. 시선(詩仙)이라 불리는 이백이나 시성(詩聖)이라 불렸던 두보가 그에 관한 시를 남긴 것으로 더더욱 유명하지요. 그중에서도 두보가 말년에 지었다는 등악양루라는 시는 동정호를 불후의 명승지로 만들었다고들 합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읊조릴 터이니 어디 한번 들어들 보시겠습니까?”
솔직히 소무린이나 장소팔은 시에 대해서 문외한이었다.
때문에 시선이니 시성이니 하는 사람들을 들어 본 적도 없거니와 그들이 남겼다는 그 시도 그다지 듣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남궁현의 애절한 눈빛은 절대 거절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남궁현이 지그시 눈을 감으면서 시를 읊기 시작했다.

杜甫(두보) 登岳陽樓(등악양루)

昔聞洞庭水(석문동정수) 옛날에 동정호의 절경을 말로만 듣다가
今上岳陽樓(금상악양루) 오늘에야 비로소 악양루에 오르는구나
吳楚東南瞬(오초동남순) 오나라와 초나라가 동쪽과 남쪽으로 갈라져 있고
乾伸日夜浮(건신일야부) 하늘과 땅이 밤낮으로 물 위에 떠 있네
親朋無一字(친붕무일자) 친한 벗에게 한 자의 글월도 없으니
老去有孤舟(로거유고주) 늙어가는 몸에 외로운 배 한 척 뿐이로다.
戎馬關山北(융마관산북) 고향에선 아직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으니
憑軒涕泗流(빙헌체사류) 난간에 기대어 눈물만 흘리는구나

남궁현은 어렵게 시를 떠올리며 가까스로 은은한 목소리를 유지하면서 시를 낭송했다.
하지만 낭송을 끝내고 눈을 떴을 때 두 사람을 확인한 남궁현은 은근한 분노마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연방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주변의 경관에 심취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비로소 그들을 바라보자 가식적인 모습으로 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
“좋은 시로군요.”
“과연 명문가의 자제분이라 무언가 달라도 다르시군요.”
남궁현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저는 잠시 소피 좀 보고 오도록 하지요.”
이에 소무린과 장소팔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아, 네.”
그렇게 남궁현은 두 사람을 남겨 두고 조용히 그들이 보이지 않는 위치로 발걸음을 옮겼다. 풍도가 조용히 그런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 다다르자 풍도가 남궁현을 향해 말했다.
“대공자, 대체 무슨 생각이십니까?”
남궁현이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참새가 어찌 봉황의 깊은 뜻을 알겠는가?”
남궁현이 서슴없이 자신을 참새에 비교하자 풍도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지금 대공자를 바라보는 수하들의 시선이 그다지 곱지 않습니다. 천한 것들과 어울리는 것만으로도 탐탁지 않은 일이거늘 앞으로 계속해서 그들과 동행을 하신다면 수하들의 사기는 물론 움직임에도 제약이 있지 않겠습니까?”
남궁현 역시 이를 알고 있다는 듯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더 큰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제약은 감수해야겠지.”
“더 큰 것?”
풍도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남궁현을 바라보았다. 남궁현이 그런 풍도를 향해 담담히 말했다.
“무림인들이 일룡이니 뭐니 나를 떠받드는 듯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무공에 관한 것일 뿐 그 어디에도 나의 인품이나 학식에 관한 것은 없다네. 허나 무릇 세상에 제대로 그 이름을 알리려면 인품이나 학식이 무공에 못지않게 중요한 법이라네. 소문이란 과시 작은 곳에서 시작해서 부풀려지는 법, 지금 내가 저 무지렁이들을 따뜻하게 대해 줌으로써 훗날 저들의 입을 통해서 그 몇 배의 대가가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자네는 어찌 모르는가?”
풍도가 씁쓸한 표정으로 남궁현을 바라보았다.
‘그런 것이 어디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줄 아는가? 그럴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수하들에게나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제대로 건네던지.’
풍도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생각이 꿀떡 같았으나 감히 입 밖으로 이를 내뱉을 수는 없었다.
풍도가 아는 남궁현은 지나친 완벽주의자였다.
실제로 남궁현은 남궁세가의 수하들에게 일체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단 한 번도 수하들에게 인간적인 따뜻한 면을 보여 준 적이 없었다.
그리고 오로지 수하들에게는 자신의 권위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었다.
풍도 역시 무공 면에서 남궁현의 재능은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나친 권위의식이야말로, 그리고 지나치게 명리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남궁현의 가장 큰 약점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참, 소피를 보신다더니?”
풍도의 말에 남궁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소피는 무슨, 저런 무식한 놈들과 대화를 섞는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로군. 잠시 마음을 가라앉힐 겸 그 자리를 피한 것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