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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무문 1권(23화)
第十章 무당으로 향하는 군웅들(3)


그 시각 그 무식한 놈들은 이런 대화가 오가는 것도 모른 채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주변의 경치를 음미하면서 흥겨운 표정으로 계속해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렇게 사흘여의 행복한 시간이 지나갔다.
너무나 친절한 남궁현은 그들이 지나가는 곳곳의 설명을 빠뜨리지 않았고, 그렇게 그들은 사흘 만에 장강 연안의 항구도시인 의창(宜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의창에서 무당이 있는 무당산까지는 육로로 사흘거리였다.
마음속으로는 꺼림칙한 생각을 하면서도 남궁현은 마지못해 그들에게 계속해서 동행을 권했고, 아쉽게도 두 사람은 이를 사양할 만큼의 눈치를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동안 들인 공을 생각하자면 무작정 떼어 놓고 가기에는 너무나 억울했다. 그래서 결국 남궁현은 어떻게 하면 이들을 자연스럽게 떼어 놓고 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게 육로로 이동하기 시작하자 남궁현이 점차 이동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소무린이야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장소팔의 경우에는 그 속도를 따르기가 다소 버거운 상황이었다.
지쳐서 숨을 헐떡이는 장소팔을 향해 남궁현이 짐짓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힘들어 보이는군. 무당에서의 무림대회는 앞으로 열흘이나 남았지만 아무래도 나는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어 좀 일찍 무당으로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정 힘들면 자네들은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오는 것이 어떻겠는가?”
어느새 조금이나마 연배가 높은 남궁현은 말을 낮추고 있었다.
사흘여를 함께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되었고, 장소팔과 소무린 역시도 그다지 큰 거부감은 느끼지 않았다.
솔직히 소무린은 계속해서 동행하고 싶었다.
물론 남궁현 딴에는 너무나 잘 대해 주고 있었지만 그의 자기자랑은 결코 들어 줄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계속된 가식적인 행동을 어찌 두 사람이 눈치채지 못했겠는가?
하지만 그것도 그나마 참을 만은 했다.
이 정도로 호의호식하면서 땡전 한 푼 안 든다는 것이 이 모든 것을 감내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앞으로 언제까지 그들이 대륙을 떠돌지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수중에는 달랑 과거 취선각에서 쓰지 못했던 금자가 전부였다.
물론 아껴 쓰기만 한다면 일 년은 너끈히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이었지만 지금 남궁현과 함께 있는 것과 같은 생활은 하기 힘들었다.
때문에 가능하면 남궁현에게 빌붙자는 것이 두 사람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육로로 반나절, 의도적으로 속도를 올린 남궁세가의 행보에 지금까지 발을 맞춘 것만으로도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장소팔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남궁현의 말은 그 속도를 더욱더 높이겠다는 뜻이었다.
물론 소무린이 장소팔을 업고 그들을 따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는 동행을 하고 싶지 않았다.
“친구가 힘들어 하니 어쩔 수가 없군요. 그럼 다음에 무당에서 뵙도록 하지요.”
소무린의 말에 남궁현이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
눈치 없는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행동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남궁현은 비로소 절실하게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남궁현의 한숨에 세가의 무인들이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물론 남궁현이 자신들의 표정을 확인할 수 없도록 뒤돌아선 상태였다.
이미 세가의 무인들 역시 남궁현이 왜 저들과 동행을 선택했는지를 알고 있었다.
풍도가 이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 모두에게 사정을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에 내심 그동안 남궁현의 한심한 작태를 구경하면서 고소하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눈치 없는 두 사람의 행동에 어느 정도 대리만족까지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였다.
그렇게 남궁현과 남궁세가의 사람들이 떠나자 소무린이 장소팔을 향해 피식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거 참 더럽게 말 많은 놈일세.”
장소팔 역시 이에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하지만 덕분에 수월하게 여기까지 왔잖냐.”
소무린이 이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저런 놈만 있으면 세상 참 편하게 살 텐데. 흐흐흐.”
그렇게 남궁세가의 사람들을 떠나보낸 두 사람은 다시 천천히 산천유람을 시작했다. 그리고 밤이 늦어서야 흥산의 초입에 위치한 객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흥산루는 흥산의 초입에 위치한, 그리고 흥산에 있는 유일한 객점이었다.
소무린과 장소팔 두 사람이 겨우 발견한 객점의 이름이기도 했다.
반가운 마음에 흥산루를 향해 빠르게 움직이던 장소팔이 갑자기 객점의 입구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흥산루에서 느껴지는 찌릿찌릿 팽팽한 긴장감이 그의 전신을 자극하고 있었다.
‘무언가 위험하다.’
장소팔의 본능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무인이 아닌 내가 이런 느낌을 받을 정도라면.’
이런 생각으로 장소팔이 뒤따르는 소무린을 바라보았다.
다소 차갑게 가라앉은 소무린의 얼굴은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 다소 상기된 표정마저 짓고 있었다.
아직 객점에는 들어가지도 않은 상황, 장소팔이 이렇게 안으로 들어가기를 망설이자 소무린이 먼저 앞으로 나서서 객점의 문을 열었다.
“음.”
마치 무언가를 감상하듯 소무린이 가벼운 탄성을 터트렸다.
그리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순간 객점의 구석에 앉아 있던 중년인이 힐끔 소무린을 쳐다보았다.
“제법이군. 고작 가벼운 탄식이 전부인가?”
그런 소무린의 뒤를 이어 장소팔이 다소 불안한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왔다.
때마침 소무린은 식사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 인을 발견했다. 지금 객점은 일어나는 그들의 자리를 제외하고는 그 어디에서도 빈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소무린은 곧장 그곳으로 몸을 움직였다.
재빨리 그런 소무린을 뒤따르는 장소팔, 하지만 너무 서두른 나머지 밖으로 나가던 일행 중 한 사람의 어깨와 살짝 부딪혔다.
순간 장소팔과 어깨를 부딪친 인물이 빠르게 수중의 검을 움직였다.
찰나의 순간 장소팔이 갑자기 몸을 비틀거렸다.
그 비틀거림 덕분에 상대의 검은 장소팔을 스치듯 지나갔다.
검을 든 상대의 눈빛은 자신이 검을 뽑았다는 사실에 대해서 스스로가 놀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그것도 잠시뿐 어차피 검을 뽑은 이상 물러날 수 없다는 듯 곧장 장소팔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검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눈과 소무린의 눈이 교차했고, 무언가 알 수 없는 위협이 그를 엄습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있던 동료들이 그를 향해 그만두라는 시선을 보냈다.
“운이 좋은 녀석이군.”
그는 장소팔을 향해 이렇게 말하면서 재빨리 검을 거두고 서둘러 밖으로 몸을 움직였다. 이를 지켜보던 중년인이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곧 죽어도 허세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중년인이 자신의 일행들의 표정을 살폈다. 일행들의 표정에는 그다지 큰 변화를 찾을 수 없었다.
‘역시, 아무도 보지 못했는가?’
이런 생각으로 중년인은 다소 놀란 시선으로 소무린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비단 중년인뿐만 아니라 중년인의 반대편 구석에 앉아 있는 험상궂은 노인 역시 흥미로운 표정으로 소무린을 지켜보고 있었다.
소무린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중년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란 표정으로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장소팔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저쪽으로 가자.”
그들의 뒤쪽으로 다가온 점소이가 꿀꺽 마른침을 삼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휴.”
아마도 오늘은 흥산루의 개업 이래 최대의 호황일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점소이의 일기에는 아마도 태어난 이래 가장 긴장된 하루로 기록될 것이다.
무림첩을 받고 무당으로 향하는 정사의 고수들, 비록 마교의 출현을 알리는 무림첩에 무당으로 향하기는 했지만 정사가 완전히 하나는 될 수가 없었다.
오랜 세월 대립으로 일관해 왔던 그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게 되자 으레 살기가 발출되고 있었다.
은연중에 무인들이 내뿜는 살기, 그것은 일개 점소이가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구나 조금 전 이곳을 빠져나가던 무인들은 이곳의 살기조차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이곳에서 가장 약한 인물들이었다. 때문에 중년인이 조금 전 검을 뽑았던 인물을 향해 그런 조소를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결코 조금 전 그들이 약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들 역시 나름대로 무림에서 칼밥깨나 먹은 그나마 변두리 지역에서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인물들이었다.
단지 오늘, 그것도 지금 이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적어도 그들보다는 강했기에 상대적으로 그들이 약해 보일 따름이었다.
사실 오늘 초저녁을 기점으로 흥산에 들어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객점에 들렀다.
하지만 이곳에 숙박을 결정한 사람은 아직 한 명도 없었다.
이곳의 방은 고작 십여 개, 많아야 서른 명을 수용할 수 있었고, 이미 이곳을 지나친 무림인의 숫자는 족히 삼백을 넘기고 있었다.
그 삼백 중 음식을 주문한 사람이 이백오십, 그리고 음식을 입에 댄 사람이 이백이요, 식사를 끝마치고 나간 인물은 채 백오십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조금 전 사 인이 나가고 소무린과 장소팔이 들어오면서 도합 열두 개의 탁자에 정확히 삼십 명의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근처에 다른 객점은 없는가?”
자리에 앉으면서 소무린이 점소이에게 묻자 점소이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이곳 흥산 일대에서는 저희 객점이 유일한 객점입지요.”
점소이는 다소 걱정스런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이곳에서 무기를 휴대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무림인이 아닌 일반인일지도 모를 두 사람, 만약의 불민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아마도 가장 위험에 처할 확률이 높은 사람들이었다.
자신도 느끼는 이 엄청난 살기를 이들이 느끼지 못할 까닭이 없었다.
오늘 일반인의 경우 대부분이 문만 열어 보고 그냥 지나친 반면에 이 자리에 앉았다는 것만 하더라도 점소이는 두 사람이 충분히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그야말로 세상 물정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들이던가.
하지만 점소이는 이들이 결국 얼마 버티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무린의 행동은 그런 점소이의 예상을 벗어났다. 동시에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예상마저 비켜나고 있었다.
“그럼 어쩔 수 없이 이곳에 하룻밤 머물러야겠군. 방은 있는가?”
한순간 객점 안 대부분의 사람들의 시선이 소무린을 향했다.
아직까지 객점의 방을 예약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 나름대로의 서열 가리기라고 해야 할까?
초저녁부터 묵시적인 약속처럼 이곳에서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가 덜컥 방을 예약하려고 하자 울컥 자존심이 상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의 시선에 장소팔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소무린을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그냥 나가자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비록 초가을이라고 하지만 밖에서 자기에는 제법 쌀쌀한 날씨, 이곳을 나간다면 결국 노숙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이인실로 방 하나만 부탁하네. 따뜻한 물도 준비해 주시게. 그리고 간단한 요깃거리와 독한 술로 두 병 부탁하네.”
소무린이 주문을 마치자 주변 사람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소무린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장소팔을 향해 말했다.
“어제까지는 그 떠버리 덕분에 정말 편했는데 말이야. 오늘은 왠지 분위기가 썰렁하다, 그치. 무슨 객점에 여자도 한 명 안 보이냐. 젠장.”
친구의 긴장을 풀어 주려는 소무린의 농담에 장소팔이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소무린의 농을 제대로 받아들일 만큼의 여유를 찾을 수는 없었다.
주문을 받아 적은 점소이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저, 죄송하지만 선불입니다.”
지금 점소이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평소라면 이렇게 선불을 요구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주문만 하고 나가는 손님이 너무나 많았기에 지금 이 자리의 모든 사람들에게 선불을 받았고, 모두가 오늘의 분위기를 알고 있기에 이런 점소이를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소무린 역시 점소이를 탓할 생각이 없었다.
일단 선불로 품 안의 금쪽같은 금자 한 냥을 점소이에게 내밀었다.
점소이가 금자 한 냥을 받아 들고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솔직히 아직까지도 이들이 오늘 이곳에 머물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일단 돈을 받은 이상 준비는 해야 했다.
“두 사람분의 뜨거운 물이라.”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점소이가 주방으로 향했다.
사실 소무린도 웬만하면 다른 객점을 이용하고 싶었다.
자신 때문이 아니라 친구인 장소팔을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객점이 여기뿐이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방을 잡을 수밖에는 없었다.
더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식당에 버티고 있었기에 빨리 잡지 않으면 빈방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서둘러 방을 잡았던 것이다.
다행히도 방은 있었다.
소무린이 알지 못했지만 실제로 그가 최초의 예약자였다.
항상 모든 것이 시작이 중요한 법이었다.
일단 소무린이 방을 예약하자 점소이의 움직임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곳에 남아 있는 소무린과 장소팔을 제외한 이십팔 인이 앞 다투어 방을 예약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혹시나 방이 나가지 않을까 염려했던 객점 주인이 계산대에서 비로소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소무린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자신을 유심히 관찰하는 두 사람을 향해 한 번씩 미소를 지었다. 그들 역시도 소무린의 미소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살포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 명은 조금 전 소무린을 관찰하던 바로 그 중년인이었고, 한 명은 역시 반대편 구석에 홀로 앉아 있는 인상이라면 누구에게도 안 질 것 같은 노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