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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전설 1권(20화)
제6장 환골탈태(4)
분위기가 바뀌었다.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비장함마저 깃든 분위기였다.
우선 화무휘와 휘영은 길게 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곤 왼발은 가볍게 굽혀 앞으로 내밀고, 무게중심을 앞에 실은 공격적인 자세를 취했다.
거울에 비친 듯 완전히 똑같은 모습.
사라락 하고 낮은 소리를 내며, 둘은 화진을 에워싸듯 각각 좌우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공으로는 화진의 옷깃조차 건들 수 없다! 방법을 바꿔 초식 위주의 접근전을 펼쳐야 한다!’
휘영은 화진을 응시하며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그리고 화무휘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눈빛으로 상대를 응시했다.
사실 지금까지 둘이 사용한 천무십이검의 수법들은 엄격히 말해 초식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내공이 위주가 된 검공에 가까웠다. 그러나 내공 위주의 공격은 무용지물이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초식이 주가 되는 접근전으로 방법을 바꿔야만 했다.
―천무십이검 제일식, 천류검(天流劍)!
천무십이검의 총론이자, 천무십이검에서 유일한 초식에 가까운 수법이다.
그렇다고 천류검이 다른 일반적인 검법들의 초식처럼 특정한 검로들의 집합체는 아니었다. 오히려 천류검은 초식이면서 동시에 초식이 아니었다. 하나의 초식이지만 수천 가지의 검의(劍意)와 검로를 담고 있으며, 실전에서는 그 안에 담긴 다양한 검의와 검로를 응용하여 자유롭게 사용하였다.
즉, 하나이되 하나가 아니며, 수많은 초식들의 집합체이며 동시에 하나의 초식인 모순 덩어리가 바로 천류검이었다.
‘녀석들! 이제야 진지하게 해 보려나 보군.’
화진도 여유를 거두고 길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곤 검을 가슴 앞까지 수직으로 곧게 치켜든 뒤, 천무심결의 원리에 따라 천천히 내공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시간의 감각이 서서히 마비될 무렵, 마침내 화무휘와 휘영이 행동을 개시했다.
“갑니다!”
화무휘의 외침과 함께, 둘의 신형이 잠시 멈칫했다. 그러나 그 주저함도 찰나, 이내 둘은 동시에 바람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극성의 무영신법.
마침내 둘도 전력을 다해 신법을 펼친 것이다.
‘이놈들! 설마 감히 날 상대하면서 여력을 남겼던 건가?’
화진은 일순 기가 막혔지만, 진짜는 그다음부터였다.
먼저 화무휘가 화진의 좌측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몸을 웅크려 화진의 품으로 파고든 뒤, 연달아 검을 수평으로 휘둘러 공격을 퍼부었다.
파파파팟!
화무휘의 검이 경쾌한 파공음을 만들며 날카롭게 쏟아졌다.
반면 휘영은 화진의 머리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단, 그는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서 화진을 내려다보며, 찌르기 위주의 수법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내공을 실은 검공 위주의 대결에서는 상대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검을 맞대는 초식 위주의 대결에서는 싫어도 상대와 검을 맞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지금 화진은 상대에게 계속해서 선수를 양보했기 때문에, 더더욱 상대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화진은 잔영신법을 펼쳐 상대의 직접적인 검세에서 반걸음 정도 물러섰다. 그리곤 팔과 검이 수백 개로 불어난 것 같은 환상을 만들더니, 둘의 검들을 모조리 받아쳤다.
따따따따딱!
목검과 목검이 부딪히는 경쾌한 타격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이어진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화무휘와 휘영은 무영신법의 신법으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전광석화 같은 솜씨로 공격을 퍼부었다.
파파파팟!
둘의 검이 흡사 태풍처럼 난폭하게 화진의 주위를 에워쌌다. 특히 둘은 모습이나 수법이 한 사람처럼 똑같았기 때문에, 그 어지럽고 신묘함이 더욱 배가되었다.
‘아직 내공은 부족하지만 초식만큼은 제법 정묘한 맛이 있구나. 천하의 화진을 저 정도로 몰아붙이다니…… 아무리 화진이 한 수 접어주고 있다고 해도 그렇지. 저 두 아이의 성취는 그 나이의 다른 또래에 비해 월등히 높다!’
그 모습을 본 무명 스승도 내심 감탄했다.
그러나 화진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잔영신법의 수법으로 수많은 그림자를 만들며, 그들의 공격을 모조리 받아쳤다. 수비의 도중에는 틈틈이 날카로운 반격마저 했으며, 오히려 둘에게 몇 차례 위협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그런데 셋이 추는 검무가 절정에 달했을 무렵.
“장난은 여기까지다!”
화진은 돌연 무영신법의 수법을 펼쳐 둘의 공세에서 벗어났다.
‘어디지?’
순간적으로 목표물을 시야에서 놓치고 당황한 화무휘와 휘영.
화진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둘의 머리 위, 무려 이 장 높이에 달하는 허공이었다.
―천무십이검 제이식, 은하횡천! 제팔식, 신룡입해!
화진의 검에서 무수히 많은 검기의 가닥이 뿜어져 나오더니, 성난 용처럼 그대로 아래에 있는 둘을 향해 쏟아졌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가공할 검세!
그러나 화진이 간격을 둔 그 순간이 바로 둘이 노리던 기회였다. 먼저 화무휘가 가볍게 무릎을 굽혔다가 위로 솟구치며 검을 머리 위로 곧게 뻗었다.
―천무십이검 제육식, 암천수월! 제칠식, 맹호비약!
화무휘의 검끝에서 커다란 검은색의 막이 생겼다. 그리곤 유성우처럼 강하하는 상대의 검기를 흡수하는 한편, 그 뒤에서 강맹한 검기가 솟아나와 오히려 공격을 한 화진을 향해 날아갔다.
이와 동시에 휘영도 화무휘의 검막 아래에 몸을 숨긴 뒤, 머리 위로 크게 검을 휘둘렀다.
―천무십이검 제오식, 등룡구주! 제삼식, 검기충천!
휘영의 목검에서도 이내 강맹한 검기가 솟구쳤다. 다만 그것은 직선으로 솟구친 것이 아닌, 뱀처럼 꿈틀거리며 크게 선회하더니 화진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허공에 떠오른 화진을 향한 상하의 동시 공격!
그동안 둘이 감춰 왔던 비장의 한 수, 천무십이검의 조합을 마침내 선보인 것이다. 게다가 둘은 내공마저 숨겼었기 때문에, 그 속도나 위력이 그동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강맹했다.
‘이 녀석들! 벌써 수법 간의 조합까지 가능하다니…… 역시 뭔가 믿는 구석이 있었구나!’
그제야 화진은 둘의 의도를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둘이 어째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했었는지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화진이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당황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둘의 성취가 대견했다.
‘어디 그렇다면 나도 잠시 진짜를 한번 보여 줄까?’
마침내 화진의 눈빛이 진지하게 변했다. 이어서 바람을 만난 듯 옷이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고, 동시에 무형의 검기가 푸른빛을 띤 유형으로 변했다.
―천무십이검 제삼식, 검기충천! 제사식, 쌍룡쟁주! 제오식, 등룡구주!
그 성격이 전혀 다른 세 가지 수법의 조합!
찰나적으로 그의 목검이 푸른빛이 감도는 두 마리의 용으로 변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두 마리의 살아 있는 것처럼 크게 꿈틀거리더니, 각각 화진의 위와 아래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콰콰쾅!!
요란한 폭음과 함께, 먼저 휘영이 발출한 위쪽의 검기가 막혔다. 아니, 정확히는 화진의 용에게 흔적도 없이 먹혀 버렸다. 오히려 화진의 푸른 검기는 가볍게 휘영의 검기를 무력화시킨 후, 그 기세를 잃지 않고 휘영을 향해 크게 우회했다.
“뭐, 뭐야?”
당황한 휘영이 급히 무영신법을 펼쳐 빠져나가려 했지만, 화진의 검기는 그야말로 빛살 같은 속도로 그를 향해 쏘아졌다.
아래쪽을 공격한 화무휘도 다를 바가 없었다.
콰콰쾅!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화무휘의 검기 또한 요란한 폭발을 일으키며 화진의 검기에 막혔다.
“이런 젠장!”
화무휘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욕설이 터져 나왔다.
―천무십이검 제육식, 암천수월!
다시 화무휘가 급히 검막을 만들어 방어했지만, 살아 있는 듯 선회하는 등룡구주의 수법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화진의 푸른 검기는 교묘히 우회하여 암천수월을 빗겨 간 후, 오히려 더욱 빠르고 강맹하게 화무휘를 향해 쏘아졌다.
화무휘와 휘영에게는 방법이 없었다. 아무리 무영신법과 잔영신법을 펼쳐도 화진의 시야를 벗어나거나 속일 수 없었다. 암천수월을 비롯한 다양한 방어 수법으로도 살아 있는 듯 우회하는 화진의 검기를 막을 수 없었으며, 그렇다고 상대와 압도적인 내공의 차이로 인해 정면으로 막아 낼 수도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두 청년의 얼굴에 낭패의 기색이 역력한 그 찰나였다.
번쩍!
어디선가 돌연 검은 섬광이 번쩍였다. 아니, 정확히는 사람의 모양을 한 검은색 그림자였다. 다만 그 움직임이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기 때문에, 화무휘와 휘영의 눈에는 그저 섬광이 번쩍이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엔 상대의 검기를 떨치기 위해 공중에 솟구쳐 있던 화무휘였다. 검은 바람이 스친 것 같은 착각이 든 순간, 놀랍게도 그는 방금 전까지 있던 자리에서 사라졌다.
휘영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잔영신법을 어지럽게 펼치며 따라오는 검기를 떨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는데, 검은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순간 거짓말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검은 바람은 대체 무엇인가?
그러나 공터의 중앙에 서 있던 화진은 별로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그는 빙그레 엷은 미소마저 머금으며 검과 검기를 거두었다.
검은 바람.
그것은 다름 아닌, 지금까지 팔짱만 낀 채 구경하고 있던 무명 스승이었다. 그는 여전히 세심정 근처에 팔짱을 끼고 서 있었는데, 다만 달라진 점은 그의 발아래에 두 청년이 주저앉아 있다는 것이었다. 넋이 나간 듯 약간은 멍한 표정으로.
화진이 다시 빙그레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희의 실력은 잘 보았다. 아직 보완할 점이 많다만, 그 정도면 충분히 합격이다.”
매우 만족한 표정과 어투.
이어서 무명 스승이 각각 두 청년을 일으켜 세우며 말을 이었다.
“아직 너희가 얼마나 부족한지 알겠느냐? 만약 화진 님께서 손에 여유를 두지 않으셨다면, 너흰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비굴하게 쓰러졌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칭찬엔 인색했지만, 그 또한 둘의 성취에 매우 만족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두 청년은 얼떨떨한 모습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에도 멍한 표정이었고, 물론 자신들을 상대해 준 화진에게 예를 갖춰 인사할 여력도 없었다.
“하하핫! 많이 놀란 모양이구나!”
재차 화진이 크게 웃었지만, 둘은 여전히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특히 휘영은 수중의 목검과 화진을 번갈아 바라보며,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세상에 천무십이검의 수법을 셋이나 조합할 수 있다니……. 이건 반칙이다! 아마도 수법의 조합이 세 개가 한계는 아닐 터! 대체 화진의 진짜 실력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화진이 보여 준 세 가지 수법의 조합!
그것은 지금까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와의 조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