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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전설 1권(24화)
제8장 그림자 무공(2)


무명 스승은 다시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곤 잠시 후, 웃음을 거두고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나와 화 대가주님의 결정적인 차이. 그리고 동시에 지금부터 내가 너에게 가르쳐 줄 것은 바로 이것, 아이가 일시적으로 성인을 뛰어넘는 힘과 내공을 갖도록 하는 무공이다!”
“……!”
그 말을 들은 휘영은 일순 말문이 막혔다. 상대의 말에 수긍하거나, 혹은 상대의 말에 감탄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만약 그런 수법이 실재한다면 어째서 사람들이 그토록 어렵게 무공을 배우겠는가? 이건 말도 안 된다!’
휘영은 지금 스승이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지만, 스승은 절대 농담을 하거나 제자를 놀리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 더 묻겠다. 너도 이런 이야기는 한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시장의 어느 평범한 아낙이 마차에 아이가 깔리자 무의식중에 그 마차를 번쩍 들어 올렸다든지…… 혹은 갑자기 극한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얼떨결에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든지…… 그렇다면 넌 사람이 평소에 본연의 능력을 얼마나 사용한다고 생각하느냐?”
오히려 더욱 진지한 모습.
휘영은 머뭇거리며 고개를 갸웃하다가 대답했다.
“글쎄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사람의 능력은 무궁무진하다고 막연하게 추측할 뿐.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는 그저 막연할 따름입니다.”
“그렇다. 본래 사람의 능력은 무궁무진하다. 그저 우리가 평소에 그 무궁한 능력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학자마다 차이가 있다만, 우리는 평소에 본연의 능력 중 일할도 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게 정설이다.”
무명 스승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러한 잠재력의 활용은 신체의 부위마다 편차가 클 것이다. 또한 무공을 열심히 수련한 사람은 일반인보다 이러한 잠재력을 보다 많이 활용할 것이다. 그러나 천하의 모든 무공에 절대적인 끝이 없듯, 사람 또한 잠재력은 끝이 없다는 게 일반적인 정설이었다.
“혹시 스승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일종의 최면술입니까?”
휘영이 조심스럽게 되물었지만, 무명은 간단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저급하고 일시적인 최면술 따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려는 것은 보다 근본적인 것. 즉, 본인의 자유의사에 따라 언제든 자유로이 숨은 잠재력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필요한 순간에만 찰나적으로 잠재력을 활용하며, 따라서 최면술처럼 자신이 잠재력에 지배당하는 부작용 따위도 없다.”
“……!”
순간, 휘영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쩌면 사람이 무공을 익히는 근본적인 목적은 바로 잠재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함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외공이라는 것도 육체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방법들의 집합이었고, 내공도 자연의 힘을 빌려 내면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것에 불과했다.
‘언제든 자유의사에 따라 잠재력을 사용한다? 그것이야말로 모든 무사들이 바라는 궁극의 경지가 아닌가?’
휘영은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림을 느꼈다.
처음 무공이라는 것을 접했을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아니,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던 때여서 그저 막연히 두근거리기만 했다. 그런데 지금은 무공에 대해 나름대로의 어쭙잖은 철학을 정립하는 시기였고, 따라서 그 본질에 대한 접근은 그야말로 신세계로의 진입을 의미했다.
무명도 그 느낌이 어떤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도 과거에 처음 ‘그림자 무공’을 접했을 때는 지금의 휘영보다 더한 충격을 받았으니까.
무명이 차로 목을 축인 뒤 말했다.
“이것은 무공이면서 동시에 무공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저 주인의 잠재력을 폭발적으로 표출시키는 일종의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할 뿐이지. 그러나 그것이 다른 무공과 함께하는 순간, 다른 무공은 아무리 평범한 무공이라도 절세의 무공으로 변한다. 마치 어린아이가 화진 님의 힘과 내공을 지니게 되는 것처럼.”
“즉, 시전자의 힘과 내공을 증폭시키고, 이를 통해 다른 무공의 위력 또한 증폭시킨다는 뜻입니까?”
“그렇다.”
“허면 그것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휘영이 겨우 격앙된 감정을 억누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명은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휘영의 눈을 지그시 응시하다가, 이윽고 한자 한자 힘주어 대답했다.
“그림자 무공!”
“……!”
“본래 이것은 섬, 환, 패, 정, 천, 무의 여섯 수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정식 명칭은 육룡공(六龍功)이라 한지. 그러나 혼자서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그저 뒤에서 사용자의 힘과 내공을 증폭시킨다 하여…… 정식 명칭보다는 일명 ‘그림자 무공’으로 불린다.”
운명!
그 말을 들은 휘영은 ‘운명적’이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화무휘의 그림자인 자신과 주인의 뒤에서 그림자 역할을 하는 무공. 이 둘이 운명이 아니면 과연 무엇이 운명이란 말인가.
그런데 잠시 스승의 말을 되새기던 휘영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하나 선뜻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습니다.”
휘영이 스승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냐? 이런 대단한 무공이 왜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느냐고 묻고 싶은 게냐?”
스승은 대수롭지 않게 툭 내뱉었지만, 사실 그것은 휘영의 의문을 정확히 짚은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어째서 그토록 대단한 무공이 이름조차 생소한 것입니까?”
그러자 무명은 대답 대신 히죽 웃었다. 물론 언제나처럼 붕대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에 보인 것이라곤 약간은 누런 이빨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 웃음은 분명 회한과 자조, 한탄이 섞인 후회의 것이었다.
약간의 침묵이 흐른 뒤.
휘영의 호기심이 더욱 고조될 즈음에야 무명은 느릿하게 대답했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다만, 그림자 무공만큼 장점과 단점이 극명한 것도 드물다. 우선 익히는 과정이 너무도 힘들다. 그림자 무공은 일반적인 무공처럼 육신이나 내공을 단련하는 무공이 아니라,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깨달음을 얻는 무공이다. 따라서 운명적으로 타고난 소수만이 익힐 수 있을 뿐. 인연이 닿지 않은 자는 평생을 가도 깨닫지 못한다.”
“수도자가 득도하는 것처럼 일종의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란 말씀이십니까?”
휘영의 되물음에, 무명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익힌 다음이다. 사실 수련하는 동안의 문제점은 기껏해야 시간을 낭비한다는 게 전부다. 하지만 일단 그것을 익힌 다음에는 더 큰 문제점을 평생 짊어져야만 한다.”
휘영은 더더욱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과정상의 어려움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성취의 결과물이 클수록 과정은 당연히 힘든 법이니까. 그런데 성취를 한 다음에 더 큰 문제가 나타난다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무명은 알 수 없는 기묘한 미소만 머금었다. 그러다가 잠시 후, 휘영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 다음에야 말을 이었다.
“그림자 무공은 분명 사람의 잠재력을 평소에 견딜 수 있는 한계치 이상으로 폭발시킨다. 그러나 그것은 잠재된 능력을 일시적으로 폭발시키는 것일 뿐, 사람의 한계치, 그 자체를 바꾸는 것은 아니다.”
“제자, 우매하여 정확히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휘영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무명은 그것이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어쩌면 사람이 잠재력을 전부 사용하지 못하는 건 아직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마다 일종의 한계치가 있어 잠재력을 전부 사용할 수 없도록 막고 있는 것이지. 그런데 그 한계치는 그대로 둔 채, 억지로 잠재력을 전부 사용하면 어찌 되겠느냐? 당연히 심신에 한계치 이상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고, 이에 따라 결국 심신이 서서히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려운 설명이면서도 동시에 쉬운 설명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모든 일에는 반드시 그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며, 이것은 절세의 무공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절세의 무공일수록 그 대가는 더욱 크고 어려웠다. 다만 대부분의 무공들은 수련의 과정에서 그 대가를 지불하는 반면, 그림자 무공은 성취한 다음에도 계속해서 그 대가를 지불한다는 것이 차이였다. 물론 이 경우 그림자 무공이 요구하는 대가는 주인의 생명력이었다.
휘영은 말이 없었다. 아니, 뭐라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림자 무공의 대표적인 단점이 바로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스승님인가? 스승님의 육신은 이미 한계를 넘어서서 안팎으로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즉, 그림자 무공을 익힌다는 건 언제 터져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일종의 폭탄을 평생 안고 사는 셈인가?’
절로 긴 한숨이 나왔다. 그림자 무공을 통해 아무리 천하제일의 고수가 된다고 한들, 죽으면 결국 그뿐이다.
“이제 알겠느냐? 그림자 무공. 분명 그것은 모든 무사들이 꿈에 그리는 이상과 가장 가까운 무공이다. 하지만 그만큼 익히기도 힘들고, 또한 익힌다고 하더라도 단점이 너무 극명하다.”
그런 휘영을 지그시 바라보며, 무명 스승은 짧은 한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
“만약 네가 평생 무휘의 그림자로서 살아가겠다면, 그림자 무공은 필요가 없다. 지금까지 익힌 무공을 가다듬고 정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네가 장차 그림자의 운명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역설적이게도 이 그림자 무공이 필수적이다.”
이 말과 함께 무명 스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모든 선택은 휘영의 몫. 그는 그저 방향만 제시해 줄 뿐이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정자에서 나가기 전, 그는 끝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문득 생각난 말처럼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화씨의 검법을 너무 믿지 마라. 화씨 검법에 의지하면 의지할수록…… 넌 장차 더욱더 쓰라린 패배를 맛볼 것이다.”
혼잣말에 가까운 나직한 중얼거림이었다. 너무도 작은 음성이었기 때문에 사실 그것이 누구에게 말한 것인지도 불분명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순간, 휘영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