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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교관 1(2화)
Chapter 1 과거(2)
친구 녀석의 이름은 설유한. 한인이지만 동이족인 나를 무시하지 않는 놈이었다. 약해 보이는 이름에 어울리는 유약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모습만 보고 얕보다가는 그의 매서운 검에 크게 당한다.
유한이 미안하다는 듯 물었다.
“괜찮은 거냐? 나 때문에 의뢰 참여해도.”
“친구 좋다는 게 뭐냐? 게다가 나도 의뢰가 없기도 하고.”
“고맙다.”
“뭘.”
나와 유한은 모이기로 되어 있는 장소로 향했다.
가는 길의 한쪽에 돗자리를 깔고 앉은 노인이 있었다. 점을 치는 척하며 사람들의 돈을 뜯어먹는 자 같았다. 나는 무시하고 지나가려고 했다.
“어이. 젊은이. 그냥 가면 죽어.”
노인의 재수 없는 말만 아니었으면 말이다.
의뢰를 떠나는 길이었다. 미신이나 징크스를 믿지는 않았지만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살기를 담아 으르렁거렸다.
“영감. 사람 보고 사기 치쇼. 한 번만 더 헛소리했다간 그 혀를 다시는 못쓰게 해 줄 거요.”
10년간의 중원 생활은 나의 말투를 유창하게, 그리고 거칠게 만들어 놓았다. 나는 다시 걸어가려고 했다.
“그냥 가면 죽는다니까.”
나는 노인의 말을 무시했다. 사기꾼들의 수작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하지만 노인의 다음 말에 나는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삶도 그리 허망하게 날려 보낼 셈인가?”
나는 노인을 향해 돌아왔다.
스르릉.
도를 꺼내어 노인의 목에 대었다. 노인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이오?”
“나야 점괘 나오는 대로 말할 뿐이지 그게 무슨 뜻인지 어찌 알겠나? 아는 건 자네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비밀이었다. 그걸 아는 자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는 건 나뿐이고 내가 말한 적이 없으니 노인의 말은 사실일 확률이 높았다. 그럼 내가 죽는다는 노인의 말도 사실이란 말인가?
내가 고민하는데 노인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이것만 있으면 자네의 생은 끝나지 않을 걸세.”
노인이 손에 든 것은 크기가 엄지손가락만 한 금속 재질의 목걸이였다.
“그, 그거 얼마요?”
“은자 300냥.”
은자 300냥이면 나의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이다. 하지만 나는 망설이지 않고 옷 깊숙한 곳에 감추어 두었던 전표를 노인에게 넘겼다. 노인은 전표를 받은 후 자신의 오늘 장사는 끝났다며 자리를 떴다. 나는 멍하니 선 채 노인이 가는 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귀신에 홀린 것만 같았다.
“명기! 이봐. 명기!”
옆에서 들리는 유한의 외침을 듣고서야 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유한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자네 왜 그런 건가? 도대체 그게 뭐길래 300냥이나 주고 사?”
흐릿하던 머리가 맑아졌다. 나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나는 전 재산을 날린 것이었다.
이 망할 영감탱이가!
나는 서둘러 노인이 사라진 방향으로 쫓아갔다. 하지만 노인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으으으으악!”
나는 홧김에 손에 든 목걸이를 던지려고 했다. 하지만 차마 던질 수는 없었다. 무려 300냥이나 주고 산 물건이었다.
나는 우울한 기분으로 목에 목걸이를 걸었다.
유한이 다가와 나에게 말했다.
“괜찮은가?”
“사기당했는데 괜찮기는? 그래도 이번에 의뢰라도 받아 놔서 천만다행이야.”
유한이 갑자기 헛바람을 들이 쉬었다.
“허억. 자, 자네 괜찮은가? 갑자기 10년은 늙은 것 같은데?”
10년 모은 걸 날렸으니 비슷하긴 하지.
“어서 가세. 돈 벌러.”
나의 말에 유한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 그러세.”
무림맹 청룡단 고수 36명과 낭인 무사 52명. 복호산 산적을 토벌하기 위해 나선 인원이었다.
무림맹 고수들은 명문정파라는 이름을 자랑하듯 유려하고 깔끔한 검법을 선보이며 산적들을 베어 나갔다. 거칠게 싸우던 낭인 무사들이 그런 무림맹 고수들의 움직임을 보곤 감탄했다.
“비싼 밥 먹던 놈들이라 싸우는 데도 귀티가 넘쳐흐르네.”
“영약을 밥 먹듯 먹으며 자란 놈들인데 못 싸우면 접시 물에 코 박고 죽어야지.”
“확실히 비싼 게 좋긴 좋아. 어디 눈먼 영약 하나 없나?”
무림맹 청룡단 36명이 죽인 산적이 낭인 52명이 죽인 산적보다 배는 더 많았다.
“우리가 싸구려긴 해도 비싼 놈들보다 잘 죽이는 놈이 있긴 있어.”
“혼자서 도대체 몇 명을 죽인 거야? 청룡단 도련님들도 저놈보단 못할 것 같은데?”
“못하다마다. 두 배는 더 죽였을걸. 괜히 독랑이 아니라니까.”
낭인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 그곳에 내가 있었다. 나는 수수깡 베듯이 산적들을 베어 넘기고 있었다.
여기도 돈. 저기도 돈. 돈이다!
나는 날려 버린 300냥을 잊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다. 그리고 한 시진 정도 후 마지막 산적의 목숨이 끊어졌다.
이제 복귀하려는데 재앙이 들이닥쳤다.
“으하하하. 무림맹 애송이들아. 오늘이 너희의 마지막이다.”
소리친 것은 검붉은 옷을 입은 텁석부리 장한이었다.
누구지? 아직 죽지 않은 산적이 있었나? 생긴 거만 보면 산적 두목은 되겠는데?
누군가 나의 의문을 풀어 주었다.
“철석패도 기영환……. 파위대 부대주……. 으으…… 마교다!”
모르는 게 나을 뻔했다. 제길.
마교는 현 무림에서 단일 문파로는 가장 거대한 세력을 가진 곳이었다. 파위대는 정파의 위선을 깨부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 곳이었다.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그만큼 강했다.
무림맹의 청룡대도 강했지만 파위대에 비하면 한 수 아래였다. 하지만 청룡대는 용감하게 파위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정의의 이름으로 네놈들을 처단하겠다!”
그리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정의 따위 알 게 뭐냐? 게다가 너네도 정의 내세울 만큼 깨끗한 건 아니잖아. 나한테 중요한 건 살아남아서 잘 먹고 잘사는 거다.
기영환은 초절정에 올랐다는 고수. 나 같은 건 한 방에 죽을 거야.
개죽음은 사양이다.
나는 죽어라 뛰었다. 옆에 유한이 놈도 죽어라 뛰고 있었다.
“명옥…… 헉헉…… 객잔에서…… 헉헉…… 한잔 해야지?”
나의 숨찬 물음에 유한 역시 힘겹게 대답해 주었다.
“좋지…… 헉헉…… 내가…… 헉헉…… 쏜다.”
“잊지…… 헉헉…… 마라!”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내서 달렸다.
어느새 유한이 놈은 어디로 간 건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검붉은 옷을 입은 험악한 인상의 무사가 보였다.
질긴 새끼. 다른 사람이나 쫓아가지 왜 날 쫓아와. 콱 자빠져 버려라!
덜컥.
내가 마음속으로 저주의 말을 내뱉는 순간, 나의 발이 튀어나온 나뭇등걸에 걸리고 말았다. 씨바.
철푸덕.
당황한 나머지 낙법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는 대(大)자로 앞으로 엎어졌다. 손바닥과 얼굴에서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얼른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실전으로 단련된 나의 감각이 위험을 감지했다. 나는 재빨리 몸을 굴렸다. 무림인들이 뇌려타곤이라고 비웃는 기술이었다.
폼생폼사하다가 사(死)하면 자기만 손해지.
나는 거리낄 게 없었다.
몸을 재빨리 굴리는데 옆구리에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일어서려 했다면 척추가 그대로 잘려 나갔을지도 몰랐다.
나는 한 번 더 몸을 굴리며 손으로 흙을 집어 파위대 무사가 있는 곳을 향해 집어 던졌다. 파위대 무사는 가볍게 피했다. 하지만 그 잠깐의 시간은 내가 일어설 수 있게 해 주었다.
“어이. 내가 독랑이야. 독랑. 그쪽이 센 건 알겠는데 내가 그냥 죽지는 않아. 당신 팔 하나 자를 자신은 있어. 어차피 나도 마교와는 별 감정 없으니 그만 헤어지는 게 어때?”
어차피 나는 낭인이다. 나를 죽인다고 해서 이익은 없다. 하지만 재수 없으면 네놈은 크게 다칠 수도 있다. 이익은 없고 손해는 크니 나를 공격할 이유는 없다.
나는 재빨리 상대에게 이러한 사실을 인지시켰다. 이것이 내가 10년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너도 생각이 있다면 그냥 가겠지. 어차피 사람이란 이익을 따라 움직이니까.
파위대 무사는 말없이 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검에는 살기가 넘실거렸다. 나는 황급히 나의 도로 검을 막으며 뒤로 물러섰다.
왜 이렇게 꽉 막혔어? 신병이냐? 신병이구나. 망했다.
나와 파위대 무사는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과연 마교였다. 나는 사람들이 마교를 두려워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속성으로 익힌 내공심법을 통해 만들어진 막강한 내공을 이용한 패도적인 공격.
나는 무수한 실전 경험을 통해 다져진 변칙적인 방법으로 파위대 무사의 공격을 막거나 피하고 간간이 반격을 가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나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내가 하는 공격은 작은 생채기 정도의 상처만을 만들었다. 하지만 파위대 무사의 공격은 막기만 해도 나에게 피해를 주었다.
내공의 차이가 너무나 컸다. 상처는 별로 없었지만 내상은 점점 심해졌다.
결국 나는 한 모금의 피를 토했다. 그 순간 파위대 무사가 최후의 공격을 가했다. 나는 황급히 도를 휘둘러 그 검을 막았다. 하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였다.
막대한 내공을 머금은 검에 도가 반 토막 났다. 하지만 효과가 아예 없지는 않은지 심장을 향했던 공격이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이 쓸데없이 매뉴얼대로 하는 신병 새끼야! 내가 혼자 죽을 줄 아냐!
나는 손에 든 반 토막 난 도를 힘껏 던졌다. 얼굴에 상처 하나라도 남겨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도가 파위대 무사의 목을 가르고 지나갔다.
하필 또 그게 동맥을 건드렸는지 상처에선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파위대 무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뜨곤 뒤로 넘어갔다.
그러게 세상을 두루뭉술하게 살았어야지. 내가 조용히 넘어가자고 그랬잖아, 이 자식아!
나는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입으로 낼 힘은 없었다. 비록 심장을 뚫리지는 않았지만 겨우 즉사만 면했을 뿐이다. 상처는 심각했다. 몇 분 안에 죽을 거라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갑자기 억울해졌다.
겨우 이 따위로 살다 죽을 인생이라면 뭐 하러 두 번이나 살게 만들었냐? 이 망할 하늘아!
나는 하늘을 향해 마음속으로 욕설을 퍼부으며 겉으로는 비틀거렸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피가 점점 몸에서 빠져나갔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한참을 그렇게 비틀거리는데 갑자기 바닥이 꺼졌다.
나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니, 내 앞에는 웬 제단 같은 것이 놓여 있고 그 위에는 한 노인이 정좌한 채 죽어 있었다.
죽기 직전에 기연이냐!
그래 기연을 만났다면 나도 주인공이란 말이고 주인공이란 쉽게 죽지 않는 게 진리. 역시 이 따위로 죽을 운명은 아니었던 거야.
만세!
아직 조금의 시간은 남아 있으니까 그때 저 노인이 남긴 심득을 습득하면…… 어라?
나는 보고야 말았다. 저 멀리 나뒹굴고 있는 검을. 파위대 무사가 쓰던 검이었다. 좀 전까지 나의 가슴에 박혀 있던 그 검이었다.
저게 왜 저기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아래로 향했다.
검이 뽑힌 자리에는 거대한 구멍이 나 있었다. 그 구멍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나오고 있었다.
죽기 직전이잖아!
나는 황급히 시선을 제단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고풍스런 글씨체의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연자여, 노부의 이름은…….
영감탱이가 누군지 내가 알 게 뭐냐!
심득 따윈 때려치우고 영약! 영약 어디 있어?
나의 눈이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흐릿한 시선 속에서 네모난 상자가 보였다. 꽤 비싸 보이는 상자였다.
나는 피에 젖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열었다. 검은 환약이 눈에 들어왔다.
영약이다. 당장 먹어야…….
나는 황급히 손을 뻗어 영약을 쥐었다. 하지만 너무 서둘렀는지 손에서 떨어뜨리고 말았다.
시야는 더욱 흐려지고 몸에는 힘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억지로 손을 뻗어 영약을 쥐려 했다. 하지만 손은 번번이 영약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시야는 좁아지고 세상이 흑백이 되었다. 선의 경계가 없어지고 모든 것이 하얗게 변해 갔다.
그 와중에도 영약의 모습은 놓치지 않았다.
나는 아예 바닥에 엎드렸다. 그 상태로 영약을 향해 입을 내리꽂았다. 입술과 코가 바닥에 뭉개졌다. 그래도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입안으로 흙이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나는 망설이지 않고 입을 닫았다.
혀끝에 영약의 감촉이 느껴졌다.
영약은 침과 닫는 순간 물처럼 녹았다. 그러고는 그대로 나의 식도를 타고 뱃속으로 넘어갔다.
드디어 영약을 섭취한 것이다. 잘하면 살 수도 있다.
나는 후회했다.
차라리 죽여 줘!
배 속에 태양이 들어온 것 같았다. 오장육부가 타들어 가는 느낌이 세포 하나하나에서 전해져 왔다.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독한 것이었다.
온몸이 열기로 녹아 버릴 것만 같았다. 아니, 녹아 버리면 차라리 좋다. 녹지도 않은 채 영원한 고통을 받을 것 같았다. 나는 유일한 돌파구를 찾아 움직였다.
노인의 심득.
나는 바닥을 기어 노인의 시신이 있는 제단으로 움직였다. 바로 옆이었지만 세상의 끝에서 다른 끝까지 가는 것만 같았다.
영약 상자가 있던 곳 바로 옆에 두 권의 책이 있었다.
나는 서둘러 책을 들었다.
천마검법
나는 책을 던졌다. 그리고 바로 다른 책을 들었다.
천마심법
찾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책을 펼쳤다.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나의 모든 정신은 책과 함께했다.
고통도 없고 현실감도 없었다. 나는 멍하니 있을 뿐인데 또 다른 나는 책에 적힌 심법을 배우고 실제로 내공을 운기하고 있었다.
심법의 운기는 하루 동안 계속되었다. 운기가 끝나는 순간 나와 또 다른 나는 합일되었다.
그 순간 나는 심법을 이해했다.
“기연이다. 내게도 기연이 찾아왔다. 으하하하.”
몸이 가벼웠다. 정신도 말짱했다. 상처가 난 곳을 보았다. 어느새 아물어 있었다.
“나를 오랑캐라고 무시했던 놈들아! 조금만 기다려라. 니들 이제 나한테 다 죽었다. 으하하하.”
천마라면 탈마의 경지에 올랐다는 마교 최강자였던 자. 그런 자의 무공이라 그런지 뭔가 달라도 다르구나.
내공은 천마심법으로 닦고 검법이야 적당한 거 하나 구해서 쓰면 정파의 속 시꺼먼 놈들이 뭘 알겠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 천마검법도 일단 익혀는 놔야겠지.
세상이 조금 붉어진 거 같긴 한데 그건 내 착각이겠지.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
나는 천마검법이라 써진 책도 펼쳤다.
심법을 펼쳤을 때와 똑같았다.
나는 순식간에 검법을 배웠다. 물론 제대로 쓰려면 수많은 연습을 해야겠지만 머릿속에는 확실하게 기억되었다.
나는 검법은 놔두고 심법부터 운용했다. 초고수가 되어 세상을 호령하는 나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1년의 세월이 지났다.
단 1년 만에 나는 극마의 경지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누군가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다면 눈에 불을 켜고 천마심법을 노릴 것이었다.
나는 강해졌지만 무림에는 나보다 강한 자들도 수두룩했다. 그래서 나는 천마심법과 검법의 책을 불태웠다.
나는 언제나처럼 천마심법의 연공에 들어갔다. 그런 나의 귓가에 이상한 말이 들려왔다.
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
얼마 전부터 들려오기 시작한 목소리였다. 심마나 주화입마. 뭐 그런 종류 같았다. 당장 운기를 멈추어야 했지만 나는 운기를 계속했다.
극마가 코앞이었다. 조금만 더 하면 초고수가 될 것 같았다. 그 유혹은 너무나 달콤해 나는 벗어날 수 없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
조급함은 나의 평정심을 잃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천마심법의 운용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천마심법에 의해 이끌어진 기운이 벽을 두드렸다.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금은 조금씩 커져 갔다.
이제 한 번만 더 두드리면 벽은 뚫릴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아직 극마의 경지에 도달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아니. 극마는커녕 초절정에 겨우 다다랐을 뿐이다.
그럼 저 벽은 뭐지?
그렇구나. 저 벽은…….
깨어져선 안 돼!
그 순간.
쩌저적쩍!
벽이 깨어졌다.
나는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