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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교관 1(3화)
Chapter 1 과거(3)


오대세가의 하나인 제갈세가. 그 일족은 대대로 머리가 좋은 사람이 많이 태어났다. 그 때문에 무림맹의 군사 자리는 대부분 제갈세가에서 맡고 있었다.
제갈세가의 무공은 결코 약하지 않았지만 다른 오대세가에 비하면 한 수 쳐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사대세가는 그것을 이유로 보이지 않게 제갈세가를 무시했고, 제갈세가는 항상 그것이 불만이었다.
현재 무림맹의 군사를 맡고 있는 제갈현은 야심가였다. 그는 제갈세가의 무력이 결코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세상에 입증하려 했다. 그렇게 된다면 무림맹에서 자신의 입지는 한층 강해질 터였다.
제갈현은 벽을 보고 말했다.
“계획 을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아무도 없는 벽. 하지만 그 벽에서 사람의 음성이 들려왔다.
“원 후보 대신 다른 자가 먹이를 취득했습니다. 다행인지 그자의 자질이 나쁘지 않아 마공의 성취에는 별 이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조만간 미끼가 활동을 시작할 것 같습니다.”
“폭혼환을 만드는 데 제법 많은 돈이 들었다. 먹은 사람에게 무려 2갑자의 내공을 가져다주고 괴물 같은 재생 능력을 가져다주는 약이니까. 비록 2년밖에 못 산다고 해도 말이지. 계획이 틀어지지 않게 잘 감시하도록.”
“존명.”
“참. 원 후보는 어떻게 되었나?”
“그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 그냥 놔두었습니다.”
“원 후보와 미끼가 친구라고 했던가? 미끼에게 거액의 현상금을 걸면 재밌는 일이 생기겠군.”
“낭인이란 버러지 같은 놈들. 돈에 눈이 멀어 부나방처럼 달려들 것입니다.”
“세상이란 참 재미없어. 그러니 내가 조금이라도 재미있게 만들어야지 않겠나? 후후.”

***

무림에 마인이 출현했다. 마인은 무인 양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학살했다. 그 잔인함과 피를 보는 성격 때문에 마인에게는 혈마귀라는 이름이 붙었다.
몇몇 무인들이 혈마귀를 막기 위해 나섰지만 희생자의 숫자만 늘릴 뿐이었다. 그중에는 화경의 경지에 든 남궁가의 검성 남궁무혁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무림맹은 혈마귀를 무림공적으로 지정하고 척살령을 발동시켰다.
천라지망이 발동되고 수백 명의 희생 끝에 혈마귀는 포위당한 채 마지막을 남겨 두고 있었다.
혈마귀를 상대하고 있는 것은 세 명의 초고수였다.
소림의 신승 무하.
무당의 검선 소요자.
두 초고수는 모든 무인들이 예상한 강자였다. 하지만 마지막 한 명은 혈마귀의 사태가 있기 전까지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인물이었다.
그 인물은 문은 강하나 무는 떨어진다고 평가되는 제갈세가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제갈기.
제갈현의 아들로 겨우 30세였지만 제갈세가 최고의 고수로 평가되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최고수 중 한 명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그는 이번의 일로 척마검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

나는 정신이 들었다. 동시에 그간의 기억을 되찾았다.
피! 피! 피! 피! 피!
오로지 피로만 가득한 기억이었다.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모든 끔찍한 일이 나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꿈이 아니라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내가 깬 것은 초절정과 극마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벽이 아니었다.
내가 깬 것은 인간으로서의 마음이었다.
나는 절망했다. 하지만 감상에 잠길 틈은 없었다.
살아서 무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죽고 싶지 않았다. 풀지 못한 어떤 찜찜함이 자꾸만 나에게 속삭였다. 이렇게 바보같이 살다 갈 거냐고. 그래서 나는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콰아아!
노승의 주먹은 성스러운 기운을 담고 있었다. 그 바른 기운이 나를 압박했다. 신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크윽!”
늙은이가 뭘 먹었기에 이리 힘이 좋아? 나이 먹었으면 한적한 시골에서 자식들 등이나 처먹고 살란 말이다!
부담을 줄이기 위해 속으로 투덜거려 보았지만 효과는 없었다. 나를 공격하는 건 노승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후하지만 패도적인 기운을 머금고 있는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타핫!”
점잖게 늙은 도사가 나를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쩌엉!
“크흑!”
가까스로 검을 휘둘러 막아 냈지만 도사의 검에는 천 근의 거력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그 무거운 기운이 나를 내리눌렀다.
하지만 가장 부담이 되는 것은 30세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의 검이었다. 별로 강하지 않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 나의 방어를 뚫고 공격을 가해 왔다. 검에 실린 미묘한 기의 떨림. 그것이 나의 호신강기를 중화시키고 있었다.
“헉……! 헉……!”
나는 지쳤다. 몸은 느려졌다. 살고자 하는 의지도 약해졌다. 그에 따라 상처가 늘어 갔다.
스님의 주먹이 나의 갈비뼈를 부수고 도사의 검은 나의 어깨를 망가뜨렸다.
가장 치명적인 공격은 30대 남자의 검이 가했다. 그의 검은 나의 배를 완전히 갈라 버렸다. 갈라진 틈으로 내장이 흘러 내렸다.
죽음의 순간이 임박한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이상한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상해. 아무리 생각해도. 어째서 제일 약한 놈의 공격이 제일 매섭지?
나의 신경을 자극하던 찜찜함이 의문이란 명확한 형태로 진화했다.
정신이 맑아지고 시야가 넓어졌다. 그러자 나를 압박하던 3명의 정체를 눈치챌 수 있었다.
스님은 소림. 도사는 무당파의 인물로 보였다. 중요한 건 그 둘이 아니었다. 30대 정도의 남자. 그의 옷을 본 후 나는 그가 제갈세가의 인물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제갈세가는 나의 핏빛 기억에 유독 강하게 남아 있었다. 무수한 자들이 나를 해치기 위해 모여들었지만 제갈세가만큼 위협적인 자들은 없었다.
지금 이렇게 포위당해 죽을 위험에 처한 것도 따지고 보면 제갈세가에 발이 묶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공격은 지독하게 아팠고, 그들의 방어는 지독하게 단단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갈세가의 인물들이 다른 자들보다 강했던 건 아니다. 그럼에도 기이하게 나에게 위협적이었다. 그건 너무나 이상한 일이었다.
의문을 느끼는 순간 나의 두뇌는 맹렬히 연산에 들어갔다.
뭘까? 뭘까? 뭘까?
상념과 기억들이 하나로 뒤섞여 맹렬히 돌아갔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제갈세가였다.
번쩍!
결국 퍼즐은 맞추어졌다. 의문은 풀렸다. 그렇게 된 일이었군.
“크하하하!”
내가 얼마나 독한 놈인데. 감히 날 가지고 놀다니. 제갈세가.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
나는 소리쳤다. 없는 힘을 억지로 짜내어 목소리에 내공을 실었다.
“나를 이렇게 만든 게 제갈세가 네놈들이구나!”
“무슨 헛소리냐? 그 요망한 입을 닥쳐라.”
제갈세가의 남자가 나를 향해 검을 날렸다. 하지만 소림과 무당의 인물은 머뭇거렸다. 그걸로 충분했다.
세 사람의 합공은 무섭지만 혼자 덤비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나는 제갈세가 남자의 공세를 차단하며 다시 외쳤다.
“그게 아니라면 어찌하여 네가 내 무공의 파훼법을 알고 있는 것이냐?”
“개소리다. 신승. 검선. 혈마귀의 말에 현혹되지 말고 어서 공격하십시오.”
소림과 무당의 인물이 신승과 검선인가 보다. 그 둘이 다시 나에게 공격을 가해 왔다. 하지만 이전에 비해 위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나의 말이 효과를 본 것이겠지.
나는 신승과 검선은 무시하고 제갈세가의 인물을 향해 살수를 날렸다. 그러면서 외쳤다.
“나는 무공을 익히다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방금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정신을 잃었을 동안의 기억은 남아 있다. 나는 죽어 마땅한 일을 저질렀다. 더 이상 살고 싶은 맘도 없다. 하지만 제갈세가 네놈들만은 용서할 수 없다.”
“헛소리다. 어서 공격하십시오.”
제갈세가의 남자가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신승과 검선은 어느덧 공격을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소리쳤다.
“신승과 검선에 비해 실력이 떨어지는 네가 나에겐 가장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너의 공격은 모두 나의 빈틈만을 노리고 날아온다. 네 공격에 나의 호신강기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너뿐 아니라 나를 쫓던 제갈세가의 추적대 모두가 그러했다. 그건 파훼법을 알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제갈세가. 네놈들은 나를 이용해 혈란을 일으키고 자신의 손으로 해결하는 척해서 무엇을 얻으려 했느냐? 그렇게 얻은 것이 죽어 버린 수천 명의 생명보다 가치가 있는 것이냐!”
“닥쳐라!”
제갈세가의 남자는 나를 향해 검기가 넘실거리는 검을 찔러 왔다. 나는 그 검을 막지 않고 나도 공격을 감행했다.
동귀어진.
제갈세가 남자의 검은 나의 오른쪽 어깨를 한 뼘이나 베었다. 그리고 나의 검은 제갈세가 남자의 심장에 작은 상처를 남겨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