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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교관 1(5화)
Chapter 2 조슈아 헤밀라스(2)
사내는 조슈아의 말에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그놈의 귀족법. 어쩔 수 없지.”
사내는 마치 포기할 것처럼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내 사내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강제로 할 수밖에. 원래 목적대로 다리를 부러뜨려라. 단 여의치 않으면 죽여도 좋다.”
사내가 명령권자인 듯 다른 남자들이 사내의 말에 조슈아에게 달려들었다.
조슈아는 자신의 목검을 힘껏 쥐었다. 비록 연습용이지만 그 단단함을 무시할 수는 없다. 제대로 맞으면 뼈가 부러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남자들이 들고 있는 것은 철봉이었다. 무기의 강도에서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조슈아는 이를 악물고 가장 먼저 달려온 사내를 향해 목검을 휘둘렀다.
부우웅.
탁.
조슈아의 목검은 단번에 막혔다. 조슈아의 공격을 막은 사내는 검을 흘리는 것 같은 고급 기술은 없었다. 대신 무지막지한 힘으로 조슈아의 목검을 밀어내고는 조슈아의 몸을 향해 철봉을 휘둘렀다.
조슈아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사내의 공격에 담긴 힘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포위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사내들의 동작은 비록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함께 해 온 듯 그들의 공격은 제법 호흡이 맞았다.
조슈아는 연신 뒤로 물러나며 포위되는 것만은 피하고 있었다.
4명은 조슈아를 공격하고, 조슈아와 말을 나누었던 사내는 즐거운 표정으로 조슈아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조슈아는 피하는 와중에 사내의 그러한 표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당장 4명을 막기도 어려운데 저 사내가 추가되면 더욱 가망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자신은 헤밀라스 남작가의 유일한 후손이었다. 헤밀라스 남작가를 다시 일으키는 것은 자신의 아버지뿐 아니라 조슈아 스스로의 꿈이기도 했다.
남자의 말을 믿는다면 다리가 부러지는 정도로 끝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 조슈아의 경제 사정으로는 신전에서 치료를 받기란 요원하다. 부러진 다리가 잘못 붙으면 평생 절름발이로 살아야 한다. 기사로서의 꿈은 물 건너가는 것이다.
그리고 다리만 부러뜨린다는 남자의 말을 믿을 수도 없었다. 아무리 조슈아가 세상 경험이 부족하다고 해도 남자의 말을 덥석 믿어 버릴 정도는 아니었다.
조슈아는 상황을 살폈다.
정면은 사내들에 의해 막혀 있었다. 하지만 뒤쪽은 비어 있는 상태다.
사내들은 뒤쪽을 그리 염려하지 않았다. 그쪽은 벽이 있었고, 벽은 제법 높았다.
조슈아는 사내들과 대치하는 것을 그만두고 벽을 향해 달렸다. 뛰어넘을 생각은 당연히 하지 못했다. 하지만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벽에 다다른 조슈아는 멈추지 않고 몸으로 벽에 부딪혔다. 사내들은 어이없는 표정이로 조슈아의 행동을 바라보았다.
인간의 몸으로 벽을 들이받아 봤자 뒤로 튕겨 나오고 말 것이다.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르지 않은 이상 그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익스퍼트에 올랐다면 애초에 도망갈 필요도 없었다. 사내들은 당연히 조슈아가 튕겨 나올 것이라 예상하고 그에 따른 대비를 했다.
퍼석.
하지만 조슈아는 벽을 뚫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사내들은 기가 차서 동작을 멈추었다. 몸통 박치기로 벽을 부술 정도면 그 몸이 얼마나 단단할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때 가만히 지켜만 보던 사내가 황급히 소리쳤다.
“뭐 해, 이 새끼들아! 당장 쫓아가!”
그 사내는 그렇게 외치며 자신도 달려갔다. 다른 사내들도 일제히 조슈아를 쫓기 시작했다.
사실 조슈아가 벽을 뚫을 정도로 튼튼한 몸을 가진 게 아니었다. 그 벽은 상당히 낡아서 무너지기 직전의 상태였다. 고쳐야지 하면서도 귀찮아서 차일피일 미뤄 오고 있던 상태였다. 조슈아는 급박한 와중에 무너지기 직전의 벽인 것을 생각해 내고는 달려가 몸으로 받은 것이었다.
조슈아는 죽어라 달렸다. 사내들이 놀라 멈칫하며 거리가 제법 벌어졌지만 안심할 정도는 아니었다. 한참을 달리던 조슈아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시가지 쪽으로 가야 하는데 외진 방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방향을 바꿀 수는 없었다. 방향을 바꾸려다가는 뒤에 쫓아오는 사내들에게 잡힐지도 몰랐다.
달리는 조슈아에게는 수도 근처라 몬스터가 거의 없다는 사실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
나는 대륙의 여기저기를 떠돌았다. 지구와 전혀 다른 색다른 풍경은 여행의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현재 내가 위치한 곳은 페일라스 왕국의 수도 마그란. 그 근방의 숲이었다.
밤이라 잠잘 준비를 마치곤 육포를 씹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마그란에 들어갈 수 있지만 귀찮았다. 어차피 내일이 되면 편안하게 들어갈 수 있고, 시간은 넘쳐 나니 굳이 바쁘게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무엇보다 마그란에는 처음 오는 것이었다. 잘 정비된 마그란의 도시 전경은 아름답기로 유명했다. 그런 아름다운 곳을 어두운 곳에서 대충 보고 넘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낮에 제대로 도시의 모습을 구경하고 싶었다.
수도 인근이라 그런지 귀찮게 하는 몬스터도 없었다. 불을 피워 놓아 다가오는 짐승도 없었다. 조금 전까지는.
타다다다닥.
급박한 발소리였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러 개였다.
제발 다른 쪽으로 가라. 훠이.
나의 이런 바람과는 무관하게 발소리는 내 쪽을 향하고 있었다.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더니 결국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였다. 자세히 보니 아직 다 자라지 않은 17, 8살 정도 되어 보이는 놈이었다. 지저분한 옷차림에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얼굴은 제법 단정하게 생긴 놈이었다.
딱 봐도 샌님 타입이네. 저런 놈들이 재수가 없었지. 항상.
나는 소년에게서 신경을 끄고 뒤에 나타난 다섯의 사내들을 주시했다.
저놈들. 나랑 같은 과인데?
나는 사내들을 보며 동질감을 느꼈다.
나는 전장에서 20년을 구른 용병이다. 주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용병이었고 그들의 인상은 앞의 사내들보다 심하면 심하지 못하지는 않았다.
내가 느긋하게 감상하고 있는데 소년이 나를 향해 다급히 소리쳤다.
“도망치세요!”
빈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 같았다.
그럴 거면 이쪽으로 오지를 말던가. 얄밉네. 저거.
나는 굳이 입 밖으로 내 생각을 말하지는 않았다. 그냥 가만히 상황을 주시했다. 나에게 피해만 없다면 굳이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사내 중 한 명이 나를 향해 말했다.
“이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너의 실수다. 얌전히 죽어라.”
역시 조용히 넘어갈 리가 없지. 딱 봐도 나쁜 짓 하는 놈들인데 뭐 잘났다고 얼굴을 드러내고 다닐까?
그런 일 할 때는 얼굴 좀 가리고 다녀라. 그럼 서로 못 본 척하고 조용히 넘어갈 수 있잖아. 이 자식들 기본이 안 되어 있어.
귀찮은 일에 휘말린 것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사내는 나를 향해 다가오며 철봉을 들었다. 철봉은 한월의 빛을 받아 섬뜩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어이. 설마 그걸로 할 생각이야? 너 이 자식 그렇게 아프게 죽이려 하다니. 너무 잔인하잖아. 하다못해 단칼로 베어 줘!
나의 바람이 통한 걸까. 사내는 철봉을 바로 휘두르지 않고, 철봉을 쥐지 않을 손으로 철봉의 끝을 잡았다. 그러고는 비틀었다.
철컥.
작은 기계음과 함께 철봉의 길이가 길어졌다. 정확하게는 철봉이 길어진 게 아니라 철봉 속에서 무언가가 나오고 있었다.
검이었다. 철봉은 검을 숨기기 위한 목적과 검집으로서의 목적을 동시에 수행하기 위한 장치였다.
철그렁!
속이 빈 철봉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사내는 양손으로 검을 잡았다.
“나를 원망하지 마라.”
사내는 잔인하게 웃으며 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원망해 주겠다. 네가 뭔데 나한테 원망해라, 마라야! 건방지게.
나는 모닥불 가에 앉아 있는 상태였다.
나는 일어나지 않은 채 왼쪽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그대로 사내의 검을 향해 휘둘렀다.
나의 경지는 탈마다. 눈앞에 보이는 시정잡배는 손가락 하나로 죽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나는 내공을 사용할 수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공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면 상당히 귀찮아질 여지가 있었다. 순수한 근력과 검법으로 상대하는 게 차라리 편했다. 어차피 센 놈들도 아니고.
나는 사내의 검을 가볍게 흘린 다음 검 끝으로 상대의 손목을 그었다. 공격은 내가 놀랄 정도로 깔끔하게 들어갔다.
나의 검이 동맥을 자른 건지 사내의 손목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 피의 절반 이상이 나에게 쏟아졌다. 제기랄.
“크아아아아악.”
“닥쳐!”
나는 몸을 일으킨 다음, 자신의 손목을 쥔 채 울부짖는 사내의 얼굴을 그대로 걷어찼다. 사내는 피할 생각도 못하고 나의 발에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사내는 대자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고는 그대로 기절했다.
약할 거라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그렇지. 뭐가 이리 허접해?
나는 허탈해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사내의 손목에서는 피가 뭉클뭉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가만히 놔두면 과다출혈로 죽을 것 같았다.
그러게 선량한 나는 왜 건드려?
나는 쓰러진 사내에 대한 신경을 껐다.
퍽. 퍽. 퍽. 퍽. 퍽.
둔탁한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처음 나타난 소년에게 사내 4명이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소년의 무기가 목검이라 철봉과 부딪히며 그런 소리가 난 것이었다.
소년의 실력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지만 실전 경험이 부족해 보였다. 조만간 제압될 것 같았다.
나는 도와줄 생각이 없었기에 가만히 싸우는 모습을 구경했다.
예상대로 소년은 사내들에게 금세 무력화 되었다. 발목을 얻어맞은 것이다. 아직 목검은 쥐고 있었지만, 절룩거리는 다리로는 더 이상의 전투는 힘들어 보였다.
여유가 생기자 사내들의 시선이 소년에서 다른 쪽을 향했다. 그러다 한 사내가 내 쪽을 바라보았다.
“제크!”
내 앞에 쓰러져 있는 놈의 이름이 제크인가 보다. 사내의 외침에 다른 사내들의 시선도 내 쪽을 향했다.
“이 새끼. 죽여 버리겠다!”
한 명의 사내가 아직 목검을 쥐고 있는 조슈아를 상대하고, 남은 세 명의 사내가 살기등등한 자세로 내 쪽을 향했다. 세 명의 사내가 봉을 비틀었다. 빈 봉은 밖에 떨어지고 시퍼런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이. 난 정당방위였다고. 그리고 저놈은 그냥 상대하면서 아무 상관도 없는 나는 왜 죽이려고 그래?
왠지 억울했다. 당연히 고운 말이 나올 수가 없었다.
“실력도 없는 양아치 새끼들이 어디서 까불어? 귀찮으니 닥치고 뒈져라.”
“죽여 버리겠다.”
“네 혀를 원망해라.”
어차피 죽일 생각이었잖아. 어찌 이리 식상한 협박 멘트람.
사내 둘은 나의 도발에 직통으로 걸려들었다. 하지만 남은 한 명은 달랐다. 그는 냉정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양아치 두목쯤은 되어 보였다.
양아치 두목이 차가운 말투로 사내들에게 말했다.
“제법 실력이 있는 놈이다. 조심해라.”
양아치 두목의 말에 금세 덤벼들려던 두 양아치의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그냥 덤벼들었으면 쉽게 상대했을 텐데 귀찮게 되었다.
세 사내는 순간적으로 움직여 나를 포위했다. 다구리에는 제법 조예가 있어 보였다.
공격의 시작은 양아치 중 한 명이었다.
양아치 한 명이 크게 검을 휘둘러 나를 공격해 왔다. 실제 공격이 아니라 나를 물러나게 하려는 목적인 듯 다른 양아치와 양아치 두목이 조금 늦게 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나는 물러나는 대신 처음 공격한 양아치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동시에 검을 하늘을 향해 든 다음 수직으로 내리그었다.
챙!
나의 검과 양아치의 검이 거칠게 조우했다.
나는 검이 부딪히는 반동을 이용해 검의 방향을 90도로 꺾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