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사악교관 1(7화)
Chapter 2 조슈아 헤밀라스(4)
소년의 몸속에 들어 있는 미증유의 힘의 정체. 그것은 하나의 문장이었다. 그리고 그 문장은 나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전쟁이 없을 때 용병은 할 일이 없다. 나는 용병으로 20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동안 수많은 취미를 가졌다. 그중 하나에 독서도 포함되어 있었다.
야사 모음집에서 본 것이었다. 당연히 옛날이야기에나 나오는 전설이라 생각했다. 존재할 거라곤 생각한 적도 없었다.
내가 이 문장을 기억하는 건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경지가 탈마에 오르며 기억력 또한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 책을 읽은 지 3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 역시 한몫을 했다.
책에는 써져 있었다. 그 문장에 담긴 것은 하나의 병기라고.
평범한 병기는 아니었다.
신이 인간에게 남겨 준 대마왕 격살용 최후 최강의 병기.
신기 세인세레스.
탈마에 오르며 욕망이란 것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돈과 권력에 대한 미련이 없었기에 지금처럼 정체를 숨기고 떠돌 수 있었다.
게다가 남자라면 누구나 있을 예쁜 여자를 보면 느낄 욕망. 그러한 욕망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아. 그건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어쨌든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망 자체를 거의 느껴 보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거대한 욕망을 느꼈다.
싸우고 싶다.
부수고 싶다.
신에 이 세상에 남긴 유일한 희망을.
시험하고 싶다.
그리하여 알고 싶다.
나의 한계가 무엇인지.
내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가능하리라.
최후 최강의 병기라 불리는 신기 세인세레스라면.
나의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그로써 나는 정말 오랜만에 살아 있음을 느꼈다.
“으하하하하하.”
내가 갑자기 웃은 탓인지 소년이 놀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소년을 보며 말했다.
“강해지고 싶나?”
“물론입니다.”
“내가 강하게 만들어 주겠다.”
나의 말에 소년은 얼굴을 찡그렸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당신이 강하다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마나를…… 헉.”
나는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내공을 불어넣었다. 처음과 달리 불쾌한 느낌은 없다.
우우우웅.
한계를 넘은 내공이 검의 틀을 깨고 나왔다. 검붉은 색의 기운이 검을 둘러쌌다.
“오…… 오러 마스터!”
이곳은 검기를 오러. 그리고 화경, 극마의 경지를 마스터라 한다.
마스터의 경지에 든 사람이 흔한 건 아니지만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마스터로도 어느 정도 믿음을 얻을 순 있지만 내가 소년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완벽한 믿음이 필요했다.
나는 내공을 더욱 강하게 불어넣었다.
우우우…….
미친 듯이 울어 대던 검명이 순식간에 잦아들고 고요가 찾아들었다.
터질 듯 넘실거리던 오러는 한순간 다른 것으로 변화했다.
마치 검붉은 유리가 검을 둘러싸고 있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오러에 비하면 지극히 안정돼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실상 이 유리는 결코 얌전하지 않았다. 그 속에 담긴 기운은 세상 그 어느 것보다 거칠고 광포했다.
“오오오러…… 브, 브, 브, 블레이드! ……그랜드 마스터!!”
소년은 나의 검강을 보곤 자리에 주저앉았다.
“배우고 싶으냐?”
소년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눈은 여전히 검강에 고정된 채였다.
“가르쳐 주겠다. 그리고 만들어 주겠다. 너를 그랜드 마스터로.”
“…….”
소년은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한참을 바라보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어째서 저에게 그렇게 잘해 주시려고 하죠? 저와 당신이 만난 것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그랜드 마스터는 세상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제자도 잘 들이지 않는다. 그렇게 알려져 있었다.
확실히 귀찮아서 그런 일 안 하겠지. 나도 신기를 보지 못했다면 절대 이 아이를 가르치겠다는 생각을 안 했을 테니까.
“내가 원하는 건 바로 너다.”
너와 한 판 뜨고 싶다. 뭐 그런 것까지 벌써 말할 필요는 없겠지. 그런데 너무나 축약된 말이 오해를 샀나 보다.
“저는 남자인데 남자와 남자끼리 그건 안…… 그렇지만 그랜드 마스터…….”
소년은 차마 거절은 하지 못한 채 무릎을 굽혀 팔로 감쌌다. 고민 중인 거 같은데 눈에는 눈물마저 한 방울 맺혀 있었다.
나는 소년의 그런 모습을 보곤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왔다.
무슨 입에 담기에도 끔찍한 저질스런 망상을 하고 있는 거냐? 이 망할 꼬마가!
나는 소년에게 꿀밤을 먹여 주었다.
쾅!
“크악!”
힘이 조금 세긴 했지만 어쨌든 꿀밤은 꿀밤이니까.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소년을 향해 말해 주었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마라.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니까. 한 번만 더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면 눈알을 뽑아 버리겠다.”
소년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 알겠습니다! 저 그런데 그럼 도대체 왜?”
“나는 용병이다. 당연히 내가 원하는 건 거래다. 너를 도와주는 대가로 나는 네가 하나의 일을 해 주었으면 한다.”
“어떤 일입니까?”
“그건 그때 가서 말해 주마.”
“그럴 순 없습니다. 어떤 일인지도 모르고…….”
소년은 다시 팔로 몸을 감쌌다. 아니라니까, 자식아! 이놈 혹시 이상한 놈 아냐?
“걱정 마라. 이상한 일도 아니고 불의한 일도 아니다. 너에게도 도움이 될 거다. 장담하지.”
물론 생명을 걸어야 하겠지만.
“조, 좋습니다.”
“그럼 계약서를 작성해야지.”
나는 품에서 종이를 꺼내었다. 상인들이 상거래 시 주로 하는 위자즈 콘트랙트(Wizard’s Contract)였다.
위자즈 콘트랙트란 계약자의 영혼에 계약을 각인하는 것으로,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온갖 불행한 일을 당하다 결국 사망하게 된다. 만들기가 쉽지 않지만 그 신뢰도가 높기에 국가 간의 거래에도 자주 사용되는 것이었다.
나는 계약서를 든 채 외쳤다.
“나 크라이스는 조슈아 헤밀라스가 그랜드 마스터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며 그가 그랜드 마스터가 될 경우 한 가지 일을 명령할 수 있다.”
나는 손끝을 살짝 찔러 피를 한 방울 계약서에 떨어뜨렸다.
나는 소년에게 계약서를 건네주었다.
“나 조슈아 헤밀라스는 그랜드 마스터가 될 경우 크라이스가 말하는 한 가지 일을 수행한다. 그 일은 불의하지도 음흉하지도 않은 일일 경우에 한한다.”
소년은 자신도 피를 한 방울 계약서에 떨어뜨리며 나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얼씨구. 어디서 그딴 눈빛으로 날 쳐다봐. 두고 보자, 꼬맹아. 확실하게 굴려 주마.
나와 소년은 동시에 외쳤다.
“나 크라이스는 계약에 동의한다.”
“나 조슈아 헤밀라스는 계약에 동의한다.”
계약서는 밝은 빛을 내뿜었다. 이로써 계약은 완료되었다.
나는 조슈아 헤밀라스라는 소년을 가르치게 되었다.
Chapter 3 기본 훈련(1)
나는 조슈아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내가 묵는 방은 집에 단 하나밖에 없는 손님용 방이었다.
집도 참 작지. 귀족 집이라면서 손님방이 하나밖에 없다니. 게다가 시설도 별로 좋지 않았다. 조슈아의 방보다도 안 좋은 것 같았다.
나는 제일 좋은 방을 사용하고 싶었지만 조슈아가 자신의 아버지가 쓰던 방이라고 결사반대했다. 그 와중에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뢰를 밟은 것이었다. 하도 우울해해서 괜히 미안해졌다.
조슈아의 아버지 방을 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음으로 찾은 것은 조슈아의 방이었다. 조슈아의 방은 손님방과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맨땅에서도 잘 자는 나다. 대충 만족하기로 했다.
그 후 나는 조슈아의 훈련 계획을 만들었다.
원래는 느긋하게 하려 했다. 어차피 경지란 것이 서두른다고 오르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서둘다가는 경지에 영영 못 오를 수도 있었다.
탈마에 들며 나의 수명은 매우매우 늘어났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대충 생각하기에 300년 정도는 더 살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시간은 아주 많았다. 그리고 조슈아는 아직 젊었다. 조슈아가 늙어 죽기 전에만 경지에 오르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그래서 천천히 하려 했는데 조슈아의 사정을 듣는 순간 생각을 바꾸었다.
조슈아는 헤론 아카데미의 기사학부 4학년생이었다.
헤론 아카데미는 마그란에 위치한 종합 교육 기관이었다. 총 6년의 과정을 거치며, 기사학부, 마법학부, 행정학부, 기술학부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기사학부는 말 그대로 기사를 양성하는 곳으로 검법을 비롯한 각종 무기술과 전술 등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소울아머의 운용법 또한 배울 수 있었다.
내가 서두르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이 소울아머의 운용법 때문이었다.
소울아머란 판타지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타이탄, 즉 탑승형 골렘 병기였다.
내가 조슈아를 가르치게 된 가장 큰 이유인 신기 세인세레스 역시 일종의 소울아머였다.
소울아머의 운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면 조슈아가 강해져 봐야 나의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조슈아는 반드시 제대로 된 최고의 소울아머 운용법을 배워야 한다.
소울아머는 그 탑승자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는데, 그것이 마치 두꺼운 갑주를 몸에 걸치고 움직이는 것 같다고 하여 아머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비록 탑승자의 생각에 따라 움직인다고 하나 그 움직임이 실제 몸의 움직임과 같을 수는 없었다. 처음에 소울아머에 탑승할 경우 제대로 걷는 데 1주일이 걸린다고 하니 움직임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 수 있다.
소울아머는 나 역시 다룰 수 없었다. 용병으로만 떠돌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가르칠 수도 없었다.
그런 소울아머의 운용법을 아카데미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었다.
1학년부터 바로 배우는 것은 아니었다. 5학년이 되어야 배울 수 있었다.
소울아머 때문인지 5학년부터는 반 배정이 랜덤이 아니라 성적순으로 갈라진다. 시험 등수에 따라 우등반부터 열등반까지 나누는 것이다.
최고 클래스의 반으로 갈수록 더 고급의 소울아머 운용법을 배울 수 있다.
조슈아는 현재 4학년이었다.
지금은 여름방학이라 아카데미에 나가지 않았다.
조슈아의 성적은 중간이었다. 제길.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조슈아의 훈련 계획을 짰다.
오전 6시 기상.
아샤하르나에도 시계란 것이 있었다. 하지만 매우 고가품이라 고위 귀족이나 겨우 가질 물건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로 시각을 유추하거나 도시 중간에 위치한 시계탑을 보고 시간을 알 수 있었다.
시계가 없는 것은 조슈아의 집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옆집에서 닭을 키웠다. 닭은 6시쯤에 울었다. 어제 확인한 사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