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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교관 1(11화)
Chapter 3 기본 훈련(5)
다음 날 아침. 나는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헉. 괴물이다.”
퍽!
“켁!”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괴물을 향해 주먹이 날아갔다. 방금 깨었지만 주먹이 나아가는 궤도는 완벽한 선을 그렸다. 이거야말로 권법의 표본. 나의 실력은 녹슬지 않았군. 후훗.
어라. 그런데 어째 비명 소리가 익숙했다.
괴물이 익숙한 목소리로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크라이스. 깨우라고 해 놓고 너무한 거 아닙니까!”
“조슈아냐? 너 얼굴이 왜 그래?”
“크라이스가 어제 추궁과혈한 결과 아닙니까!”
참. 그랬지. 어제 나도 모르게 얼굴로 손이 가더라니.
“얼굴에 근육이 얼마나 많은지 네가 알아? 그만큼 마나홀도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곳이 얼굴이다. 내가 땀 뻘뻘 흘려 가면서 추궁과혈해 줬으면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지금 나한테 불평하는 거냐? 오늘부터 추궁과혈하지 말까?”
“아, 아닙니다!”
“나가서 구보 준비해.”
“예!”
구보를 하는데 조슈아의 몸은 어제에 비해 힘이 넘쳐흘렀다. 내가 그 고생을 해 가며 추궁과혈을 해 줬으니 당연한 결과다. 얼굴이 조금 흉측해졌지만 그 정도 부작용이야 효과가 좋으니 넘어가자. 흠흠.
조슈아도 자신의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아까 추궁과혈 이야기를 꺼내자 바로 꼬리를 말았지.
구보를 끝낸 후 아침 식사를 했다. 솜씨는 어제 밤과 다를 바 없었다.
추궁과혈의 강도를 조금 올려 볼까?
그 후 오전 내내 PT체조를 하고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오후가 되었다.
팔팔하던 조슈아는 다 죽어 가고 있었다.
“왜 그렇게 힘이 없어? 아침에는 날아다니더니.”
“PT체조란 거 너무 힘듭니다.”
“힘든 만큼 얻는 것도 많으니까 너무 불만 가지지는 마라.”
얻는 거…… 있겠지? 뭐, 없으면 말고.
오후에는 조슈아의 검법을 봐 주기로 했다.
“일단 네가 알고 있는 검법을 보여 줘 봐.”
조슈아는 중원의 삼재검법과 비슷한 기본 검법을 보여 주었다.
아래로 베기. 위로 베기. 좌 우 횡 베기. 찌르기.
이름도 페일라스 왕국 기본 검법이었다. 검을 처음 잡는 사람들이 배우는 것으로 나라에 따라 앞의 이름만 틀려지는 가장 기초적인 검법이었다.
“그거 말고 헤밀라스 가문의 검법은?”
조슈아는 곤란한 듯 말했다.
“그건 비전이라 함부로 보여 줄 수 없습니다.”
“내가 네 검법에 대해 알아야 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조슈아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알았습니다. 가르쳐 드릴게요. 하지만 비전이니까 절대 익히시면 안 됩니다.”
“걱정 마라. 헤밀라스 가의 검법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만은 자신할 수 있다. 나의 검법은 세계 최강이다.”
조슈아는 헤밀라스 가의 검법을 보여 주었다.
헤밀라스 가의 검법은 모두 6가지의 비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첫 번째. 베어 임팩트.
위에서 아래로 내리긋는 수직 베기다. 하지만 평범한 수직 베기와는 다르게 강한 검력 하나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베기다. 속도가 빠르지도 않고 변화 또한 없다. 하지만 그 폭발적인 검력은 방어 자체를 부수고 타격을 가한다.
원심력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검을 크게 휘두르는데, 그 때문에 자세가 흐트러지는 것이 단점이다.
두 번째. 섀도우 스네이크.
베어 임팩트와는 반대로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공격이다. 공격을 가할 때 팔을 최대한 아래로 내린 상태에서 위로 휘두르게 되는데, 그때 손목을 접었다가 펴 주게 됨으로써 검 자체는 베기가 아닌 찌르기 공격을 가하게 된다.
당하는 상대는 갑자기 아래에서 검이 튀어 올라와 자신의 목과 턱 사이를 찌른다고 느끼게 된다. 그래서 섀도우 스네이크라는 이름이 붙었다.
세 번째. 타이거 어설트.
호랑이의 앞발 공격은 한 방에 황소도 기절시킨다고 한다. 그처럼 타이거 어설트는 극강의 횡베기다. 몸을 최대한 비틀었다가 바로 펴면서 하체에서부터 허리, 어깨, 팔까지 모든 힘을 검에 모아 휘두르는 게 그 요령이다.
네 번째. 울브스 바이트.
환검이 가미된 찌르기 공격이다. 공격의 순간 검 끝을 흔들어 상대가 자신이 노리는 곳을 알 수 없게 한다.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른 기사가 울브스 바이트를 시전할 경우 단순한 환각이 아니라, 실제로 여러 곳에 상처를 낼 수 있다. 비록 검기를 만들 수는 없다고 해도, 검법 자체에 살기를 유형화 할 수 있는 상승의 묘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불스 차지.
방패로 가하는 공격이다. 기사들 중 방패를 사용하는 자들은 많으며 그 방패로 공격을 하는 자들 또한 많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팔과 어깨, 간혹 허리의 힘까지 합쳐 방패로 가격한다. 하지만 불스 차지의 경우 앞으로 달려 나가며 방패를 휘두르는 것으로 일반적인 방패치기보다 그 타격이 더 강하다.
반면 달려 나가며 방패를 휘두르는 것이기에 공격 실패 시 빈틈 또한 더 크다.
마지막 여섯 번째. 라이온즈 하울링.
동물의 제왕 사자. 그 사자의 포효는 모든 동물을 제압한다. 이름과 달리 검을 휘두른다고 해서 무슨 소리가 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극강의 압력으로 상대를 짓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 제압하는 붕검. 그것이 라이온즈 하울링의 정체다.
붕검은 상승의 공부다. 마나를 다룰 수 없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 그래서 익스퍼트가 되어야 겨우 비슷하게 시전할 수 있고,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후에야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조슈아는 베어 임팩트부터 라이온즈 하울링까지 하나씩 시연하며 설명해 주었다.
“좋은 검법이다. 아니 훌륭한 검법이다.”
강에 치우치긴 했지만, 아니 오히려 강에 집중했기에 헤밀라스 가의 검법은 더욱 위력이 강해졌다.
나의 좋은 평가가 기뻤던지 조슈아는 밝은 모습으로 나에게 되물었다.
“그렇죠?”
그랜드 마스터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으니 기분이 좋을 만도 할 것이다.
“음, 검법 자체는 좋은데 네 실력은 영 별로야.”
조슈아는 이내 시무룩하게 변했다.
“저도 압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열심히 할 겁니다.”
자신 가문의 검법을 자랑스러워하고 그 검법을 갈고닦는 모습은, 보기에는 좋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넌 해도 안 돼.”
나의 단언에 조슈아가 거세게 반박했다.
“그걸 어떻게 한 번 보고 아십니까? 제가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열심히 수련하면 저도 잘할 수 있을 거예요.”
“거짓말하지 마. 너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수련했잖아. 그렇지?”
조슈아의 실력에 비해 그 숙련도는 월등히 높았다. 오랜 시간 연습하지 않고는 그 정도의 숙련도가 나오지 않는다.
나의 말이 사실인 듯, 조슈아는 나의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넌 그 검법으로 백날 수련해 봤자 실력 안 늘어.”
“좋은 검법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실력이 없고 재능도 부족한 건 아는데 그래도 열심히 하면…….”
“잠깐. 헤밀라스 가의 검법이 안 좋다거나 네가 재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아냐. 오해하지 말고 들어.”
나는 정색하고는 진지한 어투로 이야기했다.
“헤밀라스 가의 검법은 강에 치우친 검법이다. 그게 문제가 되는 건 아니야. 오히려 강의 장점을 극대화시킨 훌륭한 상승의 검법이다. 하지만 문제는 너한테 있어. 네 재능 문제가 아니라 너의 몸이 문제다. 너의 몸은 너무 가늘다. 비록 내가 밤마다 추궁과혈로 강하게 만들어 준다고 해도 기본 바탕을 무시할 수는 없다. 제법 강한 몸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게 너의 한계다. 헤밀라스 가의 검법은 어느 정도 덩치도 크고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야 제대로 그 묘용을 살릴 수 있다.”
짝!
조슈아가 갑자기 박수를 쳤다.
“아! 맞습니다. 확실히 아버지는 키도 크고 힘도 셌습니다.”
조슈아의 말투는 마치 아이들이 ‘우리 아빠 힘세요’라고 자랑하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저 초롱초롱한 눈빛이라니. 네가 애냐?
그래도 고(故) 헤밀라스 남작의 실력이 제법 좋았다고 하니 실제로 덩치가 좋고 힘도 좋았겠지.
“그래. 체격 조건이 좋아야 헤밀라스 가의 검법을 제대로 살릴 수 있어. 하지만 넌 그렇지 않다.”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하죠?”
“일단 너에게 맞게 검법을 좀 고쳐야겠다.”
“그런 것도 가능합니까?”
“나 그랜드 마스터야. 그 정도는 식은 수프…… 먹기까지는 아니지만 할 수는 있다. 그 때문에 아무래도 오늘이랑 내일은 네 수련을 봐 줄 수 없을 것 같다.”
“괜찮습니다.”
조슈아는 나를 보며 눈을 반짝거렸다. 아마 스스로도 헤밀라스 가의 검법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수련을 쉬는 건 안 되고, 헤밀라스 가의 검법을 수련하는 것도 그리 효과가 없으니, 페일라스 왕국 기본 검법을 수련해라. 각 동작당 1,000번씩.”
조슈아가 눈을 크게 뜨더니 외쳤다.
“너무 많아요.”
“그래? 그럼 각 2,000번씩. 싫어? 그럼 3,000번 할까?”
“아, 아닙니다! 1,000번으로 하면…… 안 되겠습니까?”
“좋다. 대신 건성건성 하지 말고 한 동작을 하더라도 마음을 담아 신중하게 휘둘러라. 알겠나! 0번 올빼미?”
“네, 교관님!”
조슈아는 한쪽으로 가서 목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나는 명상을 하기 위해 나의 방으로 들어갔다.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헤밀라스 가의 검법을 그렸다.
조슈아는 힘이 약한 반면 민첩하고 유연성은 좋은 편이다.
나는 헤밀라스 검법의 패도적인 기운을 줄이고 빠름과 유연함을 잘 발휘할 수 있게 만들 생각이었다.
명상을 하는 데 자세가 중요한 건 아니니 가장 편한 자세를 취했다. 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웠다.
눈 감고 누워 있으니 수마가 몰려왔다.
좀 천천히 하자. 저녁때 되면 조슈아가 깨워 주겠지.
나는 달콤하게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