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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교관 1(14화)
Chapter 4 한밤의 불청객(3)
지금까지 했던 베어 임팩트 중에서 가장 완벽하게 시전되었다.
역시 실전이 좋아.
오크의 임기응변 또한 훌륭했다. 무리하게 방어를 하는 대신 바닥에 몸을 굴려 조슈아의 검을 피해 버렸다.
조슈아는 쉬지 않고 오크에게 공격을 가했다.
섀도우 스네이크.
내가 수정한 섀도우 스네이크는 방패로 방어를 한다고 가정하고 하는 공격이다. 상체가 완전히 비게 되기 때문이다.
조슈아는 현재 방패가 없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절대 섀도우 스네이크는 사용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지금 오크는 바닥에 누워 있는 상태였다. 굳이 상체 방어를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조슈아의 선택은 적절했다.
조슈아는 검을 바닥에 닿을 정도로 낳게 낮춘 채 오크를 향해 검을 날렸다.
마치 채찍처럼 휘두르는 공격.
속도가 빠르고 그 궤적 또한 변화무쌍하여 방어하기 쉽지 않은 공격이었다.
오크는 바닥을 계속 굴렀고, 조슈아는 그런 오크를 따라가며 섀도우 스네이크를 계속해서 시전했다.
조금만 더 하면 조슈아가 오크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조슈아의 부족한 실전 경험이 다시 문제가 되었다.
전투에서 호흡이란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호흡을 할 때 순간적으로 흐름이 끊어지기 마련인데 이 틈을 최대한 없앨 수 있어야 고수라 할 수 있었다.
조슈아의 틈은 아주 컸다. 오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얼른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변검이란 기본적으로 상대의 눈을 현혹시키는 공격 방법이다. 한 번 당한 공격은 그만큼 막기 쉽게 된다. 물론 그 수준이 완숙하게 되면 그런 문제도 사라지지만 조슈아는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다. 기습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상황은 지나갔다.
이제 오크는 조슈아의 베어 임팩트에 쉽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
조슈아가 호흡을 가다듬은 후.
조슈아와 오크는 동시에 공격에 들어갔다.
타이거 댄스!
“스틸 스톰!”
퍽! 퍽! 퍽! 퍽! 퍽! 퍽! 퍽!
오크의 바스타드 소드가 무수히 연달아 휘둘러졌다. 검에 담긴 힘은 강하지 않지만 끊어지지 않고 연이어 가해지는 공격이 상대를 혼란스럽게 하는 검법인 것 같았다.
조슈아의 타이거 댄스는 현란한 횡베기다. 적에게 피해를 주기보다는 견제하고 뒤로 물러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조슈아는 춤추듯 좌우로 검을 휘둘렀고, 오크는 폭풍처럼 바스타드 소드를 베어 왔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파각이 찾아온 것은 조슈아였다. 이번에도 역시 호흡이 문제였다. 아무래도 구보 시간을 더 늘여야겠다.
조슈아의 호흡이 멈추는 순간 빈틈이 드러났다. 오크는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왼쪽 어깨였다. 피가 살짝 튀었다. 그리 많은 양은 아니었다.
조슈아는 뒤로 물러나며 주저앉았다. 그러지 않았다면 더 깊게 베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이제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오크가 검을 들었다. 휘두르기만 하면 조슈아의 목숨을 끊는 것도 손쉬운 일일 것이다. 다리를 부러뜨리겠다고 했으니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리 부러지는 것만 해도 타격이 크다. 막아야 했다.
죽·여·버·린·다.
나의 살기가 오크를 향했다. 만약 제대로 살기를 뿜어낸다면 오크는 죽을 수도 있다. 나는 약하게 줄인 살기를 오크에게 보내었다.
오크의 몸이 본능적으로 굳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조슈아가 일어나 자세를 잡기에는 충분했다.
나는 조슈아에게 재빨리 전음을 보냈다.
“괜찮으냐?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까?”
조슈아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얼굴에는 분함이 떠올라 있었다.
자신이 오크에게 진 것을 분해하는 것 같은데 걔 너보다 세거든. 지금까지 한 것만 해도 너 꽤 잘한 거야. 그래도 그 패기는 마음에 든다. 만약 못하겠다고 했으면 훈련 강도를 두 배로 올리려고 했는데 너 운 좋구나.
나는 오크에게 향하던 살기를 없앴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오크가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모른 척하며 트롤을 상대했다.
슬쩍 보니 오크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트롤은 여전히 쌍부를 휘두르고 있는 중이었다. 그 변화가 현란하고 도끼에 담긴 힘도 강했다. 러너 상급에 달하는 실력이었다.
나는 건성건성 트롤을 상대하며 조슈아와 오크의 전투를 구경했다.
조슈아는 오크를 향해 정중하게 말했다.
“당신의 실력이 저보다 좋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대로 승복할 수는 없습니다. 제 마지막 공격을 막아 내신다면 졌다는 것을 인정하겠습니다.”
오크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실력도 제법이었다. 내가 네 나이일 때보다 더 강한 것 같다. 와라. 막아 주마.”
조슈아는 양 무릎을 살짝 굽히고 검을 뒤로 한껏 젖혔다. 현재 조슈아가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공격.
울브스 바이트!
어이. 너 그거 사기잖아.
울브스 바이트는 방어를 도외시한 필살의 공격이다. 방패가 없으면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된다. 대신 그 공격력은 아주 강하다. 그런 걸 막으라고 하다니. 꼬맹이가 제법 머리를 썼는데.
오크는 조슈아의 자세에 담긴 힘을 느꼈는지 진지하게 방어 동작을 취했다. 양손으로 바스타드 소드를 쥐고 검의 끝을 자신의 눈과 일치시켰다. 가장 기본적인 방어법이며 가장 완벽한 방어법이기도 했다.
조슈아의 몸이 한 걸음 오크를 향해 다가갔다. 내딛는 그 발이 거력을 담고 땅을 박찼다.
쿵!
진각.
동시에 한계까지 젖혀져 있던 검이 오크를 향해 찔러 들어갔다.
진각을 통해 얻은 힘과 몸을 비틀며 모았던 힘이 모조리 검 끝. 그 한 점에 집중되었다.
쾅!
나무와 철이 부딪히면서 날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것만 같은 소리였다.
이어서.
콰! 콰! 콰! 콰! 콰!
오크는 쳐 내려 하고 조슈아는 나아가려 했다. 어긋난 목적은 필연적인 파멸을 가져왔다.
철과 나무가 마찰하며 거칠게 신음했다.
그럼에도 목검에 담긴 힘은 질주를 멈출 수 없게 했다.
목검의 검첨은 험난한 여정을 마치고 오크의 가슴을 앞에 두었다.
그 순간.
뿌직.
나무라는 그 재질의 한계는 철의 굳건함을 극복할 수 없었다. 목검이 부러진 것이었다.
“철검이었다면 부러질 일은 없었을 거다. 네가 이겼다.”
“아닙니다. 무기 또한 제 실력의 일환. 그 무기가 부러졌으니 제가 진 게 맞습니다.”
조슈아와 오크는 승부를 마친 후 화기애애한 웃음을 나누었다.
뭐가 좋아서 웃고 있어!
“그 목검이 얼마짜린데. 부러뜨려 먹고 웃음이 나와!”
조슈아는 돈이 없을 테니 새로운 목검은 분명 내가 사 줘야 할 것이다. 아, 열 받아!!
쾅!
이번에는 내 검집에서 폭탄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열 받아서 힘 조절을 잘못한 것이었다.
“크아아아악!”
트롤이 날아갔다. 특이하게 왼쪽 뺨이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있었다. 비행의 목적지는 놀이 기절한 채 누워 있는 곳이었다.
쾅!
풀석!
트롤은 벽에 부딪힌 후 놀 위에 포개졌다.
형제끼리 우애가 돈독한 모습이군그래.
“형님!”
오크가 놀라 트롤을 향해 달려갔다.
나는 조슈아를 다정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너 목검 한 자루 살 돈 정도는 가지고 있지?”
감히 내가 이렇게 다정하게 바라보는데 몸을 떨어?
“어, 없는데요?”
“없다면 다야? 그럼 뭐로 수련할 거야?”
“교, 교관님이 사 주시면 안 됩니까?”
나는 제법 돈이 많다. 목검 한 자루 사 주는 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조슈아에게 돈을 쓰는 건 싫었다. 탈마에 이른 내가 가르쳐 주는데, 돈을 받지는 못할망정 쓴다는 게 말이나 될 법한 이야긴가.
“내가 왜? 네 무기니까 네가 알아서 구해야지. 내가 그런 거까지 해 줘야 되나? 네가 애야?”
“그렇지만 돈도 없고 구할 곳도 없는데…….”
“넌 아르바이트 같은 거 안 하냐?”
“예? 아르바이트? 그게 뭐예요?”
“아니다.”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야 많다. 돈을 적게 받지만 잡일 거리야 널리고 널렸다. 돈을 많이 받고 싶으면 귀족 아줌마들에게 밤 시중용으로 팔아먹어도 된다. 조슈아는 아주 미남은 아니지만 제법 잘생긴 편. 몸도 호리호리하니 아줌마들에게 잘 팔릴 것이다. 그렇지만 애초에 돈 벌려고 이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시간에 검 한 번 더 휘두르는 게 나에게 이익이 된다.
나는 조슈아에게 돈을 받아 내겠다는 미련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가 사 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게 다 밤중에 갑자기 쳐들어온 저놈들 때문이다.
나는 원망을 가득 담아 몬스터 삼형제를 쏘아보았다.
가만. 이게 다 저 자식들 때문이잖아. 피해 보상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몬스터 삼형제를 향해 걸어갔다. 조슈아는 그런 나의 뒤를 따랐다.
마침 처음 한 방에 기절했던 놀도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나는 트롤을 향해 말했다.
“어이. 너희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나에게 얻어맞은 것 때문인지 트롤은 떨며 대답했다.
“어, 어떻게 하, 하다니. 무슨 마, 말인가?”
“말인가? 말이 짧다. 내가 직접 길게 만들어 줘?”
트롤이 황급히 말했다.
“아, 아닙니다!”
음. 눈치가 제법 빠른 놈이군. 오크 역시 나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 파악 못하는 놈이 꼭 한 놈씩은 있는 법이다.
“너 이 자식! 감히 큰형님께 무슨 말버릇이냐?”
아직도 말이 짧네. 그래. 말 안 듣는 개는 패라고 그랬어. 내가 잠시 잊고 있었구나.
나는 주먹으로 놀에게 교훈을 내려 주려 했지만 마음을 접었다.
트롤과 오크가 자체 교육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퍽. 퍽. 퍽. 퍽. 퍽.
“막내야. 귀한 분이다. 알아 모셔라.”
“물론입니다. 형님.”
트롤의 말에 대답한 놀은 나에게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조금 전에는 제가 주제를 모르고 너무 날뛰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흠. 조금 아쉬운데. 나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놀의 표정이 해쓱해졌다.
“됐다. 그보다 우리가 받은 피해 어떻게 보상해 줄 거야?”
“예?”
트롤이 반문했다. 자식이 척하면 알아들어야지. 일부러 모른 척하는 거 아냐?
“너희들이 갑자기 쳐들어오며 받은 우리의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어떻게 보상해 줄 거냐고? 너무 놀라서 나이를 한 십 년은 먹은 거 같다. 게다가 얘는 피까지 났어.”
나는 조슈아의 상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피는 어느새 멎어 있었다. 딱지도 서서히 앉기 시작했다.
몬스터 삼형제의 시선이 차가워졌다. 이 자식들이!
“이거 흉터. 이거 어쩔 거야? 이런 거 평생 간다. 평생 지고 갈 상처를 남겼으면 그에 적합한 보상을 해 줘야 할 거 아냐!”
나는 소리치며 오른손의 검지와 엄지의 끝을 붙여 동그랗게 만들었다.
“부족하지만 이거라도.”
트롤은 자신의 품속에서 돈주머니를 꺼내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댕그랑하는 맑은 소리가 그 속에서 들려왔다. 그래도 형이라고 저놈이 제법 눈치가 있어.
트롤은 다른 두 동생들의 것도 마찬가지로 내놓았다.
나는 돈주머니 3개를 들어 열어 보았다. 제법 은화가 많이 들어 있었다. 금화가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만족하기로 했다.
“이걸로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마음 착한 내가 양보하기로 했다. 가 봐. 그리고 다시는 오지 마라.”
나의 말에 몬스터 삼형제는 서둘러 떠나가려 했다. 그런데 조슈아가 갑자기 소리쳤다.
“잠깐! 아직 가면 안 됩니다.”
“정지. 움직이면 죽는다.”
조슈아의 말을 무시하고 움직이려던 몬스터 삼형제가 나의 말에 거짓말처럼 정지했다. 트롤은 발을 앞으로 들고 있고, 놀은 발을 뒤로 들고 있는 상태였다. 그 상태로 내리지도 못하고 땀만 흘리고 있었다. 오크는 양발이 다 땅에 닿아 있는 상태라 편안한 표정이었다.
“왜?”
나의 물음에 조슈아는 심각하게 이야기했다.
“저 사람들은 아직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냥 보내면 저와 크라이스가 변태라는 소문이 마그란 전체에 퍼질지도 모릅니다.”
“에이. 설마. 저놈들도 생각이 있으면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는…….”
몬스터 삼형제는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무서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마치 더러운 것을 피한다는 태도다. 깜박하고 넘어갔으면 큰일 날 뻔했다.
나는 덜덜 떨며 조금이라도 멀어지려는 몬스터 삼형제에게 다가가 살기를 담아 협박했다.
“재는 몰라도 나는 그런 사람 아니다.”
뒤에서 조슈아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저도 그런 사람 아닙니다!”
나는 무시하곤 몬스터 삼형제에게 말을 계속했다.
“저놈도 아니라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아니다. 그냥 저놈 교육 좀 시키고 있던 거야. 사랑의 매라고 들어 봤지? 그러니까 이상한 헛소문이 돌면 너네 다 죽는다. 농담 아니야. 너희가 산골짝 사람 없는 곳이나 지하 수백 미터 아래에 숨어도 난 찾아낼 수 있다. 궁금하면 시험해 봐. 대신 시험료는 너네 목숨이다.”
트롤이 갑자기 헛바람을 들이쉬었다.
“히이익……. 다, 당신은!”
살기를 너무 담았나 보다. 살기를 한계 이상 끌어올리면 내 눈은 붉게 변해 빛난다. 나의 모습은 일반인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군인들에게는 아주 잘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