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사악교관 1(15화)
Chapter 4 한밤의 불청객(4)


이 자식. 한때 군복무라도 했나? 귀찮게 됐는데.
“쉿. 더 이상 말하지 마라. 나 이제 은퇴했다. 조용히 살 거다. 귀찮게 하지만 않으면 말이야. 내 성격 잘 알지?”
나는 트롤의 턱을 툭툭 건드려 주며 마무리했다.
“날 귀찮게 만들지 마라.”
트롤이 겁에 질린 말투로 대답했다.
“무, 물론이지 말입니다!”
역시 군복무 했던 놈이군.
“가 봐.”
“네. 감사합니다.”
트롤은 그렇게 소리치곤 다른 두 명을 데리고 쏜살같이 도망쳤다.
조슈아는 그런 트롤의 태도가 의아한지 나에게 질문했다.
“저 사람 왜 그런 거예요? 원래 알던 사이입니까?”
“살기를 강하게 해서 그래. 그랜드 마스터 되면 너도 할 수 있어.”
그랜드 마스터는 만능 해답이다. 아는 게 없는데 네가 어떻게 반박할 거야?
나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 조슈아에게 알릴 때가 아니다. 조금 더 신뢰가 쌓였을 때 알려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던 조슈아가 갑자기 외쳤다.
“참! 아까 그 사람들에게 의뢰한 사람이 누굴까요? 물어봤어야 하는데.”
“깜박하고 안 물어봤네. 아쉽지만 지나간 일이니까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좋은 기회였는데 좀 아깝네요.”
“바닥에 흘러 버린 와인은 다시 잔으로 돌아오지 않는 법이다. 내일도 수련해야 하니까 그만 신경 끄고 잠이나 자라.”
“네. 교관님도 안녕히 주무십시오.”
“그래.”
나는 조슈아의 방에서 얼른 나왔다. 난장판이라 치우는 데 고생 좀 할 거 같다. 이럴 때는 얼른 빠져 주는 게 센스 있는 행동이지. 암.
수고해라. 조슈아야.
나는 내 방으로 가기 전 건물 바깥으로 나왔다. 한밤의 시원한 공기가 나를 반겨 주었다.
후드를 걷었다. 길게 자란 검은 머리칼이 밤바람에 나의 뺨을 간질거렸다.
죽어라 달려가고 있는 몬스터 삼형제의 기감이 느껴졌다.
조슈아를 노리는 자들의 배후. 일부러 물어보지 않았다.
때론 모르고 지나가는 게 더 좋을 때도 있는 법이다.
내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클레어보이언스.”
내가 보는 것은 조슈아의 집 앞마당. 하지만 나의 시야에 또 다른 곳의 풍경이 겹쳐졌다. 나타난 것은 헉헉대며 달려가고 있는 몬스터 삼형제의 모습이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다시 한 번 나직하게 읊조렸다.
“타깃 오브젝트. 1, 2, 3. 체이스!”
기감으로도 몬스터 삼형제를 추적할 수는 있다. 하지만 거리가 더 멀어지고,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간다면 놓칠 위험도 있었다. 그렇지만 추적 마법이라면 놓칠 위험은 없다.
그렇다. 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그것도 언령이라는 강력한 형태로.
중원에서 죽기 직전 이상한 곳으로 이동했을 때, 점쟁이 노인에게 받은 목걸이가 사라지면서 나에게 전해 준 하나의 지식.
그것은 바로 마법이었다.
나의 발은 대지를 박찼다.



Chapter 5 심화 훈련(1)


“0번 올빼미. 오늘은 조금 특별한 훈련을 실시하겠다.”
“어떤 수련입니까?”
“네, 교관님! 이라고 대답하라고 하지 않았나?”
나는 인상을 잔뜩 섰다.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조슈아의 표정도 덩달아 굳어졌다. 조슈아는 힘차게 대답했다.
“네, 교관님!”
“그동안 본 교관이 너무 헐렁하게 한 것 같다. 나는 그런 나의 행동에 깊게 반성하고 있다. 앞으로 올빼미에게 질문은 용납되지 않는다. 무조건 내 말에 따른다. 알겠나?”
“네, 교관님.”
“목소리 봐라. 백 일 굶은 할아버지도 0번 올빼미보다는 목소리가 잘 나오겠다. 아침이라 목이 안 풀린 건가? 그러면 본 교관이 목소리가 잘 나오도록 만들어 주겠다.”
내가 노려보자 조슈아가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앞으로 취침.”
멍하게 서 있던 조슈아는 황급히 복명복창하며 앞으로 취침 자세를 취했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뒤로 취침!”
나는 그 뒤로 몇 번 더 반복한 후에야 조슈아가 바로 서게 했다.
“이제 목이 잘 풀렸을 거라 믿는다. 한 번 더 묻겠다. 알겠나?”
“네! 교관님!”
좋아. 적당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으니 이제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것을 왼쪽 팔목에 착용하도록.”
조슈아는 내 손에 들린 것이 무엇인지도 확인하지 않은 채 하늘이 떠나가라 소리 질렀다.
“네! 교관님!”
마음에 들어. 역시 처음부터 갈궈야 했어.
조슈아는 대답을 한 후에야 내 손에 들려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게 뭐…… 헉.”
닥치고 그냥 차라. 응?
조슈아는 나에게 질문을 하려다 놀라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겁에 질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흙이 잔뜩 묻은 채 저런 표정으로 나를 보니 마치 공포영화에 나오는 얼굴 같았다.
“착용해라. 그럼 이유를 알 수 있을 거다.”
“네! 교관님!”
조슈아는 두말하지 않고 내 손에 들려 있던 물건을 손목에 찼다.
내 손에 들려 있던 물건. 그것은 바로 팔찌였다. 하지만 평범한 장신구로서의 팔찌가 아니었다. 검정색, 녹색, 빨강색. 세 가지 색상의 보석이 박힌 마법의 팔찌였다.
각각의 보석에는 하나씩 독특한 마법이 걸려 있었다.
먼저 검정색 보석. 검정색 보석에 걸린 마법은 웨이트 인크리즈(Weight Increase). 몸무게를 두 배로 늘려 주는 마법이다.
두 번째 녹색에 걸려 있는 마법은 포지션 서베이(Position Survey). 내가 조슈아에게 준 마법의 팔찌는 두 개가 한 쌍을 이루는 것이다. 그 다른 하나의 팔찌는 내 왼 손목에 차여져 있다. 모양이 같아 잘못하면 커플 팔찌라는 오해를 살 수 있기에, 내 왼손에 찬 팔찌는 투명화 마법을 걸어 둔 상태다.
두 개의 팔찌는 서로 상대방의 위치를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조슈아가 내 위치를 알 수 없게 하기 위해 조슈아의 팔찌에는 제한을 걸어 두었다. 나는 조슈아의 위치를 알 수 있지만 조슈아는 나의 위치를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빨강색. 거기에 걸린 마법은 크라이시스 센스(Crisis Sense). 팔찌를 찬 사람이 위기를 느끼면 다른 팔찌를 찬 사람이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역시 제한을 걸어둬서 나의 상황을 조슈아가 알 수는 없다.
예상대로 조슈아는 팔찌를 착용하는 순간 신음을 내질렀다.
“헉. 갑자기 몸이…….”
“몸이 무거워졌다고 느꼈다면 정상적인 것이 맞다. 그 팔찌는 착용자의 몸무게를 두 배로 늘려 주는 팔찌이기 때문이다. 어제 네가 호흡을 잘 이어 가지 못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특별히 준비한 물건이다. 알겠나?”
“네! 교관님!”
“그럼 이제 수련을 시작하자. 0번 올빼미 뛰어……갓!”
“앗!”
조슈아의 구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조슈아의 옆에서 번개를 타고 달렸다.
역시나 조슈아는 금세 지치기 시작했다.
“군가 한다. 군가는 진군가. 하나 둘 셋 넷!”
“교, 교관님. 숨이…… 헉헉…… 죽을 것…… 헉헉, 같습니다…… 헉헉.”
조슈아는 얼굴이 벌게진 채 달리고 있었다.
“그 정도로 죽지 않는다. 달려라. 죽을 거 같으면 더 힘차게 달려라. 너의 몸은 예전의 몸이 아니다. 규칙적인 수련과 매일 밤 받은 추궁과혈로 너의 몸은 예전에 비해 월등히 강해졌다. 그런데도 힘들다고 느끼는 건 너의 정신적인 약함 때문이다. 몸은 강해졌지만 네가 마음속으로 제한을 걸기 때문이다. 너는 더 빨리 뛸 수 있다. 너는 더 강하게 내디딜 수 있다. 너는 더 오래 버틸 수 있다. 나를 믿어라.”
“네…… 교관……님.”
“좋다. 그럼 군가 한다. 군가는 진군가. 하나 둘 셋 넷!”
조슈아는 쥐어짜듯 소리를 내 군가를 불렀다.
“푸른 하늘…… 붉은 땅 우리는…… 용……감한 페일라스의 군인…….”
설마 진짜로 숨넘어가는 건 아니겠지?
그저께 몬스터 삼형제의 습격 때 나는 아주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조슈아의 수련을 조금 더 강화해야 하겠다고. 그래서 준비한 것이 바로 내가 조슈아에게 준 팔찌였다.
전투시의 호흡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수한 실전 경험이다. 죽어라 싸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호흡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조금 힘든 방법이다. 어느 세월에 그 정도 실전 훈련을 시킨단 말인가?
두 번째 방법은 아예 폐활량 자체를 늘려 버리는 것. 폐활량이 늘어나면 당연히 한 번의 호흡을 오래 유지할 수 있기에 그만큼 유리하다. 나중에 실전 경험까지 겹쳐지면 호흡의 틈을 찾기 매우 어려워진다.
처음 구보를 시킨 이유가 이 폐활량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그 증가치를 빠르게 올리기 위해 중량 증가의 팔찌를 사용한 것이다.
죽지만 않으면 조슈아의 폐활량은 아주 빠르게 늘어날 것이다. 죽지만 않으면.
준비한 것은 이것 한 가지만이 아니다. 몇 가지 더 있다.
구보가 끝이 났다. 평소보다 30분 정도 오래 걸린 것 같다. 조슈아는 좀비처럼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지듯 누우려기에 나는 소리쳐 막았다.
“눕지 마라. 선 채로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어라.”
“네…… 헉헉, 교관님. 후…… 아…… 후…… 아…….”
조슈아의 호흡이 안정되어 보이자 나는 말했다.
“아침 밥 잘 준비하도록. 평소보다 몸이 무거운 만큼 식사 준비하는 것도 힘들 거다. 하지만 그것도 모두 수련이다. 야채를 써는 칼질 하나에도 신경을 써서 행동해라. 그 모든 것이 너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거다.”
“네. 교관님.”
“밥 다 되면 불러.”
나는 그렇게 말을 하곤 씻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밥은 참 맛없었다. 기대도 안 했기에 실망도 없었다. 그래도 조슈아는 맛있게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란 말을 여실히 보여 주는 모습이다.
그래도 난 그냥 시장 안 하고 맛없게 먹을란다.
그리고 오전 수련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PT체조하는 시간을 없애겠다.”
조슈아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정말입니까?”
“나는 한 입으로 두말하는 인간이 아니다. 그리고 0번 올빼미. 내가 분명 네, 교관님. 이라고 대답하라고 했을 텐데?”
조슈아는 아주 밝은 얼굴로 힘차게 대답했다.
“네! 교관님!”
조슈아의 반응도 이해된다. 그동안 가장 힘들어 하던 것이 바로 PT체조였기 때문이다. 지금 많이 좋아해라.
나는 조슈아에게 한 자루의 도끼를 건네주었다.
“도끼는 왜 주시는 겁니까?”
나는 조슈아의 집에서 좀 떨어진 숲을 가리켰다.
“저 숲에 가서 나무를 해 와라. 길이는 1미터 정도. 굵기는 네 허벅지 굵기 정도로 해라. 그런 나무 108개를 만들어 와라.”
“108개나요?”
“그렇다.”
조슈아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반문했다.
“설마 오늘 안으로 다 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
“천천히 해도 돼. 대신 나무 다 하기 전까지는 잠 못 잘 줄 알아라.”
조슈아는 잠시 멍하게 나를 보더니 강력하게 항변했다.
“불가능합니다! 지금까지 도끼질 한번 한 적 없는데 갑자기 나무를 하라니요. 숫자가 적은 것도 아니고 108개는 너무 많지 않습니까?”
나는 조슈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누가 오늘 안으로 하라 그랬느냐? 천천히 해도 돼. 그냥 잠만 못 잔다 뿐.”
“그 말이 오늘 안으로 하란 말 아닙니까?”
사람이 좋게 말을 하면 좀 듣지.
“앞으로 취침.”
“헉……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뒤로 취침!”
“자동.”
“자동! ……자동이 뭡니까?”
“내가 그만할 때까지 계속 반복해.”
“네! 교관님.”
나는 1분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야 조슈아의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을 멈추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