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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교관 1(17화)
Chapter 5 심화 훈련(3)
늙은 노인 한 명이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노인은 나와 조슈아를 한 번 힐긋 보더니 신경을 껐다.
사러 온 것은 목검이다. 조슈아는 목검을 살피더니 하나를 집었다.
죽을래? 800달란트? 네가 미쳤구나.
나는 조슈아에게 그런 나의 속마음을 말하지는 않았다. 그냥 속으로 생각했을 뿐이다. 겨우 800달란트를 아까워할 정도로 나는 속이 좁지 않다. 그냥 조금, 아주 조금 쳐다봐 줬을 뿐이다.
조슈아는 기특하게도 처음 든 목검을 내려놓은 다음 가장 싼 목검을 골랐다. 가격은 510달란트.
“왜 이렇게 싼 걸 고른 거냐? 가격은 신경 쓰지 마라.”
“정말…….”
죽고 싶으면 그래도 된다. 죽고 싶으면.
조슈아는 기특하게 외쳤다.
“아닙니다. 전 이 검이 마음에 듭니다.”
“네가 마음에 든다니 할 수 없지. 그럼 돈을 줄 테니 가서 계산해라.”
나는 그렇게 말한 후 조슈아에게 510달란트를 건네주었다.
“단. 깎아라!”
노인에게 계산하러 가려던 조슈아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예?”
“설마 510달란트 다 주고 사려는 생각은 아니겠지?”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아까 오면서 아줌마랑 가게 주인이랑 흥정하는 거 봤지? 그거처럼 가격 깎아.”
조슈아는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그,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
“전 귀족입니다. 물건 값을 흥정하는 것은 명예롭지 못한 행동입니다. 게다가 제가 싸게 사면 저 노인 분께서 결국 손해를 보게 됩니다. 저는 그런 일은 할 수 없습니다.”
어이구. 이 착해 빠진 바른생활 범생아. 조금 약은 녀석이었으면 편했을 텐데. 에잉.
“그건 너의 착각이고 오만이다. 저 노인은 이 무기점의 주인 혹은 점원. 즉 상인이다. 기사에게 전투가 이루어지는 곳이 전쟁터라면, 상인에게는 자신의 가게가 바로 전장이다. 기사가 검으로 싸운다면 상인은 흥정을 통해 전투한다. 그것이야말로 당당한 상인의 자세. 너는 저 노인을 모욕할 셈이냐?”
“하, 하지만.”
“흥. 저 노인의 손해를 네가 걱정한다?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가 책임지는 법. 네가 감히 무어라고 남의 처지를 고려하느니 마느니 오만한 생각을 하느냐? 빌어먹을 선민의식이다. 너 역시 썩어 빠진 귀족의 하나와 마찬가지구나.”
나의 말에 조슈아는 잠깐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당당한 어투로 항변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잘못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제 귀족으로서의 명예까지 짓밟지는 말아 주십시오.”
“귀족의 명예라? 그딴 쓸데없는 것은 당장 갖다 버려라. 네가 지켜야 할 것은 아무 쓸모 없는 귀족의 명예 따위가 아니다. 네가 지켜야 할 것은 바로 긍지다. 긍지란 남이 정의해 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긍지란 그 스스로 인정하는 것. 너는 긍지가 없는 인간이냐?”
조슈아는 떨리는 눈빛으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럼 됐다. 무엇이 부끄럽고 무엇이 못할 짓이냐? 가라. 가서 싸워라.”
어르는 건 이 정도로 하고 이제 달래야지.
“조슈아야. 전투란 결국 수읽기 싸움.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면 대응법을 생각할 수 있고 그것이 결국 승리로 이어진다. 내가 보기에 너는 실전 경험이 부족해 그런 대응을 잘 못하는 것 같더구나. 흥정이란 무기만 들지 않을 뿐 전투와 마찬가지다. 아니, 무기를 들지 않기에 오히려 더 치열하다 할 수 있다. 상대의 생각을 읽고 빈틈을 파고든다.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든 후 가장 이익이 되는 가격을 찾아낸다. 그것이 바로 흥정이다. 무기만 들지 않았을 뿐. 그 또한 일종의 전투다. 수련으로 생각해라.”
“크라이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저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흥정이라는 전투. 굳은 각오로 임하겠습니다.”
역시 채찍 당근 전법은 잘 먹혀드는 것 같아. 후후.
“400달란트 넘으면 오늘 밤새도록 잠도 못 자고 검 휘두를 줄 알아라.”
조슈아는 신음성을 내뱉었다.
“헉…… 400달란트는 너무…….”
“대신 300달란트 이하면 철검 하나 사 주마.”
나의 말에 울상이던 조슈아의 얼굴이 확 펴졌다. 그러고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노인에게 다가갔다. 조슈아는 뻣뻣한 자세로 노인에게 목검을 내밀며 말했다.
“이 검 얼마입니까?”
노인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시끄럽게 떠들더니 고작 고른 게 이건가? 에잉. 가격 봤을 거 아냐? 510달란트네.”
조슈아는 흥정에 들어갔다.
“깎아 주십시오. 300달란트로.”
아이구, 머리야. 정말 멀구나.
노인은 얼굴을 더욱 찌푸리더니 소리쳤다.
“안 팔아. 나가!”
조슈아는 금세 당황하더니 허둥대며 말했다.
“그, 그럼 400달란트라도…….”
“나가라니까!”
“저 이 검 꼭 사야 되는데 파시면 안 되겠습니까?”
“자네 지금 나 놀리나?”
조슈아는 금세 저자세가 되었다.
“그런 거 아닙니다. 정말 안 될까요?”
조슈아야. 귀족의 명예라며? 그새 가져다 버린 거니? 참 빠르구나.
몇 번 더 실랑이가 오고 간 후 조슈아는 결국 495달란트에 목검을 샀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 있어? 네가 잠을 자기 싫다는데.”
나는 무기점에 있는 검들 중 목검 한 자루와 철검 한 자루를 골랐다. 철검은 가장 싼 것이었고 목검은 가장 비싼 것이었다.
“내가 하는 걸 잘 봐라. 그리고 느껴 봐.”
나는 노인장의 앞으로 걸어갔다.
“이 검 두 자루. 얼마요?”
노인은 귀찮다는 듯 말했다.
“한 번에 좀 하지. 목검은 2,000달란트고 철검은 1,300달란트네.”
원래 철검이 목검보다 몇 배나 비싸지만, 뭐 최고급 목검과 최하급 철검이니까.
“별로 좋지도 않은 검인데 왜 이렇게 비싸? 목검은 1,000달란트하고 철검은 600달란트 하면 되겠네.”
노인은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까부터 장난치나? 그럴 거면 썩 나가게.”
노인은 나가라고 했지만 그게 진심은 아닐 것이다. 노인의 속마음 정도는 눈빛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노인은 내가 그 가격으로 사기를 바라고 있었다. 노인도 아는 것이다. 내가 부른 가격이 적당하다는 것을.
“블루오크 나무는 목검의 재료로는 최상급에 속하지. 하지만 그건 9번 말린 것일 경우고 이건 3번, 많아야 4번 말렸겠네. 철검은 색이 탁해. 그만큼 불순물이 많다는 뜻이지. 잘 깨지겠어. 목검 900달란트. 철검은 500달란트.”
노인은 당황해서는 소리쳤다.
“이, 이보게. 갑자기 가격을 더 깎는 경우가 어디 있는가?”
나는 살짝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했다.
“목검은 수련용 검이라 굳이 좋은 나무를 쓸 필요가 없지. 좋은 나무를 쓰는 경우는 장식용의 경우인데 이건 모습이 평범해서 장식용으로서도 못 써. 즉 쓸데없이 비싸기만 할 뿐이지. 또, 이런 허접한 철검을 쓰다가는 언제 죽을지 몰라. 당연히 실전용으로 이 검을 살 사람은 없겠지. 모양도 볼품없으니 역시 장식용으로 불합격. 목검 800달란트. 철검 400달란트.”
노인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그만. 내가 졌네. 자네 검을 보는 안목이 아주 좋구먼. 자네가 말한 가격에 팔겠네.”
나는 1,200달란트를 내고 목검과 철검을 구입했다. 목검은 내가 챙기고 철검은 조슈아에게 넘겨주었다.
“이 철검 역시 수련용이다. 부서질 위험이 크니까 네 몸처럼 아끼고, 휘두를 때도 강한 타격을 받지 않게 주의해. 그럼 좋은 수련이 될 거다.”
돈이 아까워서 제일 싼 검을 산 게 절대 아니란다. 오해하지 말거라.
조슈아는 기특하게도 감격 받은 표정으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래. 많이 감사해야지.
“그래도 오늘 잠 못 자는 건 알지?”
“괜찮습니다. 아니, 오늘은 밤새도록 휘둘러 보고 싶습니다.”
조슈아는 홀린 눈으로 싸구려 철검을 보고 있었다.
“개학 전까지 검법 수련할 때는 그 철검을 사용하겠다. 목검과 철검은 무게와 균형이 다르니까 그 차이점을 미리 알아 두는 게 좋을 거다. 어차피 아카데미에서는 목검밖에 사용하지 못하니까.”
“예!”
그렇게 좋냐?
살인을 경험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실제 처음 사람에게 검을 휘두르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망설임이 생기기 마련이다. 만약 상처라도 입으면 놀라 굳어 버리기도 한다.
검만 휘둘러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른 기사가 뒷골목 깡패에게 목숨을 잃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이것이 경험의 차이에 의한 일이다.
하지만 일부러 살인이라는 끔찍한 경험을 할 수는 없다. 살인이란 정말 부득이한 경우에만 행하는 절대 피해야 할 일 중의 하나다.
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내 생각은 다르지만 조슈아에게 나의 생각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냥 몇 놈 죽여 보면 알아서 몸에 살기가 밸 텐데. 아쉬워라.
살인이 안 된다면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하면 된다.
바로 살생.
물론 사람을 베는 것과는 다르겠지만, 그래도 아예 아무런 경험이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나는 이런 사정을 조슈아가 알아듣기 쉽게 잘 풀어서 설명했다. 조슈아가 되물었다.
“그런데 여기는 왜 온 겁니까?”
나와 조슈아가 있는 곳은 조슈아의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농가였다.
“기왕 경험할 거면 좋은 일도 하는 게 좋겠지.”
나와 조슈아가 농가의 대문으로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두 명의 남녀가 달려 나왔다. 남자의 이름은 크래커. 여자는 밀레느로 이 농가의 주인 부부다.
크래커가 나의 손을 잡더니 간절한 어투로 말했다.
“아이고. 어서 오시오. 그래.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걱정 말고 맡겨 주십시오. 식후 운동 거리보다 쉽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여러분들이 와 줘서 정말 다행입니다.”
알겠다. 알겠으니까…… 이 아저씨야. 손 좀 놔!
“이제 마음 놓으셔도 됩니다. 그보다 나타난다는 곳이 어디입니까?”
나는 크래커의 손을 슬쩍 밀어서 떨어뜨렸다.
“내 정신 좀 보게. 이리 따라오십시오.”
크래커가 내 손을 덥석 잡더니 어디론가 걸어갔다.
아. 제길. 남자라서 싫다 그런 유치한 이유가 아니다. 어이, 크래커. 당신 손은 도대체 왜 이렇게 끈적거리는 거야. 싫다. 정말.
크래커는 채 다섯 걸음 만에 멈추더니 뒤로 돌아 밀레느에게 소리쳤다.
“뭐 해. 이 여편네야? 귀한 분들이 오셨는데 먹을 거라도 좀 내와 봐!”
밀레느는 시골 출신인 듯 방언이 심했다.
“아따. 말하는 꼬라지 좀 보소. 좀만 기다리라요. 내 냉큼 가져올랑게.”
밀레느는 부엌으로 짐작되는 곳으로 달려갔다.
크래커에게 이끌려 나는 걸어갔고, 조슈아는 어리벙벙한 얼굴로 뒤를 따랐다.
도착한 곳은 집 뒤로 조금 떨어진 밭이었다. 그곳은 수박밭이었는데 곳곳에 파헤쳐진 자국이 눈에 띄었다.
크래커가 그 자국들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하소연했다.
“조금만 있으면 수확해야 하는데 저걸 다 파먹어 버려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휴. 그놈이 나타난 게 일주일 전인데 밤마다 내려와서는 밭을 저렇게 만들고 가 버렸습니다. 얼마나 사나운지 사람을 보며 도망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달려들더라니까요. 그래서 물리치지도 못하고. 어휴.”
나는 크래커의 손을 슬쩍 뗀 후 등을 토닥이며, 옷에 손을 살짝 닦기는 했지만, 잔잔한 목소리로 위로했다.
“이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안 나타날까 걱정이지. 오늘 모습을 보이기만 하면 그놈은 더 이상 살아 움직이지 못할 겁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크래커는 고맙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완전히 안심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어차피 나와 조슈아의 실력을 모르니 미심쩍어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크래커의 생각이 어떻든지 상관없다. 목적만 이루면 되니까.
“여기는 저희에게 맞기고 그만 일 보십시오.”
크래커가 농사짓는 게 수박밭만은 아니었다. 크래커는 잘 부탁한다고 거듭 부탁하며 사라졌다.
잠시 후 밀레느가 와서 음식을 주고 갔다. 평범한 빵과 쿠키 종류였지만 조슈아가 한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조슈아야. 이거 참 맛있다. 저 아줌마한테 가서 음식 하는 법이나 좀 배워라.”
조슈아는 먹고 있던 쿠키를 꿀꺽 삼킨 후 입을 열었다.
“어차피 며칠 후면 기숙사 들어갈 텐데 지금 배워서 뭐합니까?”
“하긴 그것도 그래.”
“그런데 크라이스.”
“왜?”
“여긴 도대체 왜 온 겁니까?”
“내가 설명 안 해 줬냐?”
“예.”
“그런 상황에서 묻지도 않고 잘도 먹고 있었구나. 대단하다. 우리가 여기에 온 이유는…….”
일주일 전 농부 크래커는 자신의 밭이 파헤쳐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일은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계속되었다.
결국 크래커는 범인을 찾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밤을 새며 밭을 감시했다. 결국 범인을 발견했으니 바로 블랙보어였다.
블랙보어는 이름 그대로 검은색 멧돼지다. 일설에는 몬스터의 피가 섞였다고 한다. 그 말의 진실성이야 알 수 없지만, 그런 말이 떠돌 정도로 블랙보어는 저돌적이었다.
일반적인 멧돼지는 사람을 보면 달려들 때도 있지만 도망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블랙보어는 다르다. 블랙보어에게 도주란 없다. 무조건 돌진이다. 덩치도 커서 허리까지 온다. 몸길이는 3미터가 넘는다. 그만큼 무겁고 힘도 강하다. 일반 농부가 상대하는 건 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