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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교관 1(18화)
Chapter 5 심화 훈련(4)
하지만 그건 전투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인의 이야기. 어느 정도 무기를 다룰 수 있고 겁만 먹지 않으면 충분히 상대 가능하기도 하다. 몬스터의 피가 섞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힘이 좋고 사납다고 하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동물. 창칼로 찌르면 죽는 건 마찬가지다.
어쨌든 일반 농부인 크래커는 블랙보어의 덩치에 놀라 조용히 숨어서 지켜만 보았다. 하지만 농작물의 피해를 방치 할 수는 없는 일. 다음 날 밤. 크래커는 나무를 깎아 만든 창을 들고 몰래 잠복했다.
그날 밤도 블랙보어는 어김없이 출현했다. 그리고 크래커는 창을 들고 블랙보어에게 용감하게 돌진했다.
죽을 뻔했단다. 개울가에 굴러 떨어져 겨우 살았다고 했다. 크래커는 실의에 빠져 마을 주점에서 넋두리를 했고 마침 그곳에 있던 내가 그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나는 정의로운 마음으로 크래커를 도와주기로 결심했다.
“이런 이야기다.”
조슈아가 감동받은 표정으로 나를 향해 말했다.
“크라이스가 이런 면도 있었군요. 전 크라이스가 다른 사람의 불행 따위는 냉정하게 무시해 버릴 냉혈한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걸 확 패? 오늘 수고해야 할 놈이니 한 번 참아 주자.
“자. 내 이야기를 들었으니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겠지. 넌 숨어서 멧돼지가 나타나는지 살펴라. 그리고 멧돼지가 나타나면 바로 나에게 보고해라.”
“알겠습니다. 크라이스. 그런데 크라이스는 무슨 일을 하는 겁니까?”
“이것도 훈련이다. 0번 올빼미. 교관님이라 부르도록!”
“네! 교관님!”
자식. 좋은 일 한다니까 신났나 보네.
“졸지 말고 잘 살펴라. 난 좀 쉴 테니까 블랙보어 나타나면 꼭 깨우고.”
“아…… 네.”
나는 크래커에게 방 하나를 얻어 숙면을 취했다.
“교관님. 교관님!”
무언가 몸을 흔들었다. 눈을 뜨니 조슈아의 모습이 보였다.
“뭐야?”
잘 자고 있었는데. 짜증나네. 확 패 버려?
“블랙보어가 나타났습니다.”
블랙보어? 그게 뭐였더라…….
나는 잠시 생각한 뒤에야 여기가 어디고 왜 이곳에 와 있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졸리고 귀찮다. 괜히 한다고 했나?
하지만 아니다. 그럴 순 없다. 큰 걸 얻기 위해 약간의 고생쯤은 감수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억지로 잠을 날려 버리고 몸을 일으켰다.
조슈아를 따라가자 달빛 아래로 커다란 덩치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밤이라 그런 게 아니라 정말 검은색이었다.
“조슈아. 가서 잡아라.”
“예?”
뭘 놀래서 바라보니? 당연히 네가 할 일이지. 귀찮게 내가 잡을까?
“가서 잡아. 널 위해 특별히 준비한 실전 훈련 맛보기다. 네 검에는 너무 망설임이 많아. 피를 보는 걸 두려워해. 저 블랙보어와 싸우며 그 두려움을 없애라.”
“예……옛! 그런데 위험하지 않을까요?”
“당연히 위험하다. 하지만 0번 올빼미. 위험하다고 피해 갈 거냐?”
“아닙니다. 교관님!”
“그래. 가라. 가서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저 사악한 동물을 해치워라!”
조슈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저놈도 먹고 살려고 그러는 건데 사악까지는…….”
나는 조슈아의 엉덩이를 뻥 찼다.
“닥치고 가서 잡아.”
조슈아는 싸구려 철검을 신중하게 들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전진했다.
신나게 수박을 먹던 블랙보어가 조슈아의 등장을 알아차렸다. 땅에 박고 있던 머리를 들어 조슈아를 주시했다.
잠시간의 정적.
블랙보어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블랙보어가 돌진했다.
두두두두두!
순식간에 속도를 올린 블랙보어가 사나운 기세를 품고 조슈아에게 달려들었다. 조슈아 역시 피하지 않고 블랙보어를 향해 달려 나가…….
“으아악!”
조슈아는 옆으로 구르며 블랙보어의 돌격을 피했다.
돌격은 파괴력이 강한 반면 빈틈 또한 크다. 신중하게 무기를 찔러 넣으면 오히려 스스로의 힘에 자멸할 수도 있다. 달려 나가는 힘이 강한 만큼 반격당했을 때의 충격도 크기 때문이다. 겁먹고 피하지만 않으면 오히려 쉽게 상대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돌격이다. 겁먹지만 않으면 말이다.
돌격해 오는 상대 앞에서 공포를 억누르고 차분한 마음을 가진다는 것.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그것이 쉬웠다면, 기사단의 돌격은 자살로 향하는 직행 코스가 되었을 것이다. 돌격이 주는 위압감과 공포가 엄청나기에 사람들은 도망치게 되고, 전선은 와해된다.
블랙보어의 돌격은 기사단의 돌격만 한 박력은 없지만 대신 야생의 사나움을 담고 있었다. 그 기세가 매우 사나워 조슈아가 겁먹고 피해 버린 것이다.
나는 미리 챙겨 두었던 쿠키를 씹으며 조슈아에게 외쳤다.
“겁먹지 말고 똑바로 봐! 그러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조슈아는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블랙보어의 방향 전환은 훨씬 빨랐다. 조슈아가 미처 자세를 잡기 전에 블랙보어가 조슈아를 향해 다시 돌격했다. 조슈아는 겨우 방패로 막을 수 있었지만 그 타격을 흘리는 데는 실패했다.
쿵!
어마어마한 타격음과 함께 조슈아의 몸이 3미터나 튕겨 나갔다. 바닥에 떨어진 조슈아의 몸이 몇 바퀴나 굴러갔다. 부딪히며 받은 힘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조슈아는 일어나지 못하고 꿈틀거렸다.
“여기서 끝이냐, 조슈아? 너의 실력은 고작 멧돼지 한 마리 상대하지 못할 정도였단 말이냐? 넌 내게 기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였느냐!”
내가 기어코 움직이게 할 참이냐? 아직 쿠키도 다 못 먹었는데. 이거 맛있네.
블랙보어는 땅을 긁으며 조슈아를 주시하고 있었다. 조슈아가 움직이는 순간 다시 돌격할 것 같았다. 조슈아는 일어나지 못하고 땅에 누워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번쩍 일어났다.
그 순간.
“꾸에에에엑!”
두두두두두두!
블랙보어가 가속했다. 그 속도는 웬만한 말의 전력 질주에 버금갈 만한 속도였다. 거리가 제법 되었기에 충분히 가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슈아는 검을 뒤로 당겼다. 찌르기 자세다. 그 자세로 블랙보어를 기다렸다.
블랙보어와 조슈아의 거리가 1미터가 되는 순간!
블랙보어가 날았다. 그 기세는 포탄. 박차는 다리 힘에 흙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조슈아는 소리쳤다.
“저는 무능력자가…….”
조슈아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발은 대지를 받치고 허리는 부드럽게 회전했다. 손에 들린 검은 뇌전이 되었다.
“아닙니다!”
쾅!
흡사 폭발음과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으아아아악!”
조슈아가 다시 튕겨져 날아갔다. 소리칠 힘도 모두 검에 모았어야지. 바보 같은.
그렇지만 잘했다.
조슈아는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씨익 웃었다. 손에 검이 들려 있지 않았다.
블랙보어의 정수리에 철검이 박혀 있었다. 블랙보어가 천천히 옆으로 넘어갔다.
풀썩.
“교관님. 제가 해냈습니다!”
“장하다. 일 끝났으니 그만 가자.”
“네, 교관님!”
조슈아는 소리치며 내 뒤를 따르려고 했다.
“왜 그냥 와?”
“예?”
“저거 가져와. 집에 가져가야지.”
“아…… 예.”
조슈아는 블랙보어의 시체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번쩍 들어 올릴 수 없었다. 맞다. 참. 그렇지 않아도 수레 빌리기로 했었는데.
나는 크래커 내외를 깨웠다. 수레를 얻어 블랙보어의 시체를 겨우 실을 수 있었다. 블랙보어의 무게는 수백 킬로그램이었다. 몰래 중량 감소 마법이라도 걸지 않았으면 수레로 옮기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기사님. 대접을 해 드려야 하는데 이렇게 보내게 돼서.”
“비리비리한 남정네들이 힘도 좋네. 그거 참 허벌나게 고맙소. 다음에 오면 내 밥 한번 대접 하리다.”
나와 조슈아는 크래커와 밀레느 부부의 환송을 받으며 그곳을 떠났다.
내가 수레의 앞에서 끌고 조슈아가 뒤에서 밀었다. 웨이트 디크리즈(Weight Decrease)는 무게를 절반으로 줄이는 마법. 여전히 무거운 건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걷다 나는 넌지시 말했다.
“조슈아야. 고블린도 할 수 있는 멧돼지 바비큐 방법이 있더구나.”
잠시 침묵. 그리고 조슈아가 입을 열었다.
“……혹시 제 수련이 목적이 아니라 애초에 멧돼지를 노리신 건 아닙니까?”
“그럴 리가 있느냐? 하지만 기왕 얻은 고기인데 잘 써야 되지 않겠느냐?”
“그렇군요.”
나는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봉투를 꺼내었다. 크래커 부부에게 의뢰비로 받은 1,000달란트다. 공돈이다. 후후후.
게다가 제주도 흑돼지도 한번 못 먹어 봤는데 여기서 흑멧돼지를 먹게 될 줄이야. 삼겹살. 삼겹살. 삼겹살…….
주르륵.
아! 침 흘렸다.
쓰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