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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교관 1(20화)
Chapter 6 실전 훈련?(2)


죽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 귀찮아진다. 이곳은 마그란. 페일라스 왕국의 수도다. 비록 뒷골목이라고 해도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 자세한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나를 찾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해 정도는 조용히 묻힐 것이다. 귀족도 아니고 뒷골목 인생이니까.
나는 노란 머리에게 신경 끄고 조슈아를 살폈다.
조슈아는 타이거 댄스로 대머리와 빨간 머리를 견제하고 있었다. 그러다 일순간 빨간 머리를 강하게 가격했다. 약한 타격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갑작스런 전환이다. 빨간 머리는 놀라며 균형을 잃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그 순간 조슈아는 몸을 돌리고 방패로 상체를 가렸다.
섀도우 스네이크.
뱀처럼 흐느적거리는 검이 바닥을 타고 대머리의 종아리를 노렸다.
대머리가 주먹을 휘둘렀지만 그 공격은 방패에 그대로 막혀 버렸다. 하지만 조슈아의 검은 대머리의 종아리를 베어 냈다.
검격이 꽤 깊게 들어갔다. 검첨의 궤적을 타고 몇 방울의 피가 튀었다. 대머리의 종아리 부분이 금세 붉게 물들었다. 피가 물컹거리며 흘러나오고 있었다.
“크윽. 제길.”
대머리는 신음성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 대머리를 향해 조슈아가 검을 들었다.
그 순간 뒤로 물러났던 빨간 머리가 번개같이 조슈아의 등 뒤를 노리고 숏소드를 찔렀다.
“방심하면 안 되지. 죽어!”
흔들.
조슈아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는지 천마보를 밟으며 빨간 머리의 숏소드를 피했다. 들려져 있던 검은 원래 목적이 그러했다는 듯 자연스럽게 빨간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베어 임팩트!
서걱!
번개 같은 수직 베기가 빨간 머리의 오른쪽 어깨를 베고 지나갔다.
“아악!”
빨간 머리는 그대로 숏소드를 놓치고는 비명을 질렀다. 빨간 머리의 오른쪽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상처는 꽤 깊었다. 뼈가 드러날 정도였다.
빨간 머리는 자신의 왼손으로 상처를 감싸 쥐며 주저앉았다.
나는 조슈아에게 다가갔다. 조슈아는 하얗게 질린 채 굳어 있었다.
첫 실전이라는 것은 그 당사자에게 아주 큰 부담을 가져다준다.
혹자는 검 한번 휘둘러 보지 못하고 전투를 끝낼 수도 있다. 장래가 기대되던 기사 지망생이 삼류 용병에게 당하는 것이 이런 경우다.
혹자는 잘 싸운 다음 전투가 끝난 후 자신의 행동에 두려움을 느낀다. 조슈아가 바로 이런 경우다. 싸울 때는 오직 이기는 것만 생각하기에 무리 없이 움직인다. 하지만 전투 끝난 후 자신이 사람을 상하게 했다는 걸 깨닫고는 뒤늦게 굳어 버리는 것이다.
나는 조슈아의 등을 팡팡 때렸다. 그제야 조슈아는 정신을 차리고는 나를 보았다.
“교, 교관님. 제…… 제가 무슨 짓을…… 사람을…….”
“검을 든 자가 피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 네가 공격하지 않았다면 도리어 당했을 거다. 무서워할 것도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
나의 말에도 조슈아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이건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다. 그래도 나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칭찬을 조금 해 주었다.
“잘했다. 실력이 제법이더구나. 특히 마지막에 저 빨간 머리의 공격을 피한 건 훌륭했다.”
“교관님이 흥정하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이 생각났습니다. 저자는 저의 검을 피할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지만 눈빛은 포기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조슈아는 대머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 다음 다시 빨간 머리를 가리키고는 말했다.
“그래서 무언가 남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저자의 공격을 알 수 있었습니다.”
“좋은 판단이다. 하지만 여전히 과감함이 부족해. 조금 더 정진하도록. 그리고 너무 헤밀라스 가의 비전에 의존하는 면이 강하다. 비전은 알려지지 않았기에 비전이다. 정말 위험할 때만 사용하고 웬만하면 기본 검법으로 상대할 수 있도록 해라.”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철검으로 대머리와 빨간 머리, 말대가리를 노란 머리와 같은 신세로 만들었다. 힘줄을 다 자르고 헤집은 것이다.
조슈아가 나의 행동에 놀라 눈을 부릅떴다. 그러고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헉! ……교. 교관님. 굳이 이, 이럴 필요까지 이, 있겠습니까?”
“그럼 그냥 죽일까?”
“그건 아닙니다!”
“놔두면 어차피 힘없는 사람들 등이나 처먹을 놈들이다. 뭐 어쩌다 한두 명은 맘을 바로잡고 생활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조슈아야. 너도 알다시피 나는 그렇게 너그러운 사람은 아니다. 귀찮은 일도 싫어한다. 그 한두 명 때문에 문젯거리를 남겨 놓느니 그냥 다 없애 버리는 것이 나의 방법이다. 나의 방법이 불만이냐?”
조슈아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불만이면 나를 막아 봐라. 검을 들고 나를 베어라. 가능하다면 말이지. 대신 나에게 덤빈 대가는.”
나는 살기를 일으켰다.
“죽음이다.”
조슈아는 신음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났다.
“크으윽. 그, 그만…….”
나는 살기를 거두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훗. 농담이다. 네가 더 강해지고 세상 보는 눈이 더 넓어진다면. 그때 이야기하자. 아직 네가 내 행동에 참견하기에는 한참 모자라.”
“죄, 죄송합니다.”
“됐다. 그만하고 가자.”
나는 걸음을 옮겼다. 조슈아가 내 뒤를 따르며 물었다.
“집으로 가는 겁니까?”
“집? 무슨 소리야? 이제 시작인데. 아카데미 개학까지 앞으로 일주일. 그 전에 실컷 실전 경험 쌓아야지.”
“에엑!”

그 뒤 나는 매일 조슈아를 끌고 뒷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조슈아에게는 이리저리 핑계를 댔지만 내가 뒷골목 양아치를 건드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놈들이 법의 테두리 밖에 있다는 것. 그 말은 법을 무시하고 산다는 말이지만 바꿔 말하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즉 아무리 건드려도 죽이지만 않으면 국가 차원의 간섭은 없다는 뜻.
개학 이틀 전. 오늘도 어김없이 양아치들을 해치우며 다녔다. 처음에는 힘들어 하던 조슈아도 이제는 완전히 익숙해졌다. 뭐든 익숙해지면 괜찮아지는 법이다. 후후.
그런데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그랬던가? 조슈아는 양아치 퇴치에 완전히 맛이 들렸다. 흡사 자신이 정의의 용사라도 된 양 의기양양해하며 행동했는데 그게 화근이 되었다.
지금까지 조슈아가 상대했던 놈들의 숫자는 최대 5명. 5명을 초과하는 인원이 있을 경우 무시하고 넘어갔다. 지형을 이용한다고 해도 아직 조슈아가 상대하기에는 너무 많은 인원이었기 때문이다.
5명 이하라도 주변을 둘러보고 패거리가 없다 싶을 때만 건드렸다. 한창 싸우는 데 숫자가 늘어나면 곤란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며칠간의 양아치 토벌로 자만심에 빠진 이 망할 훈련생 놈이 주변 조사도 없이 양아치를 건드린 것이었다.
처음 보기에는 3명이었다. 비리비리한 게 아주 약해 보였다. 너무 만만해 보였다. 그게 화를 불렀다.
조슈아가 한 대 때리는 순간 수십 명의 패거리들이 나타났다.
하필이면 주변도 공터. 지형을 이용해 치고 빠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당황해 주변을 둘러보던 조슈아가 나를 보며 다급하게 말했다.
“교관님. 제 실수입니다. 조금 더 신중하게 행동했어야 하는데. 부끄러운 말이지만 교관님의 힘을 조금만 보여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0번 올빼미. 이건 0번 올빼미의 훈련이다. 게다가 먼저 건드린 건 0번 올빼미가 아닌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모습을 드러낼까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챙겨 놓은 후드도 없다. 내공을 사용하면 나의 정체가 드러나게 된다. 결국 여기 모인 양아치 수십 명을 모두 죽여야 한다는 말이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뒤처리가 곤란하다.
마법을 쓸 생각은 없다. 마법은 나의 비장의 무기. 내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게다가 그들마저도 나의 수준을 원래보다 더 낮게 알고 있다. 어찌 됐든 마법은 패스.
무언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한참 고민해 봐도 딱히 떠오르는 방안이 없다.
양아치들 수십 명이 나와 조슈아를 포위하고 있다. 그 포위망을 헤치며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에까지 문신을 새긴 근육질의 사내였다.
“네놈들이 요즘 우리 애들을 건드리고 다닌다는 두 놈이구나. 다른 일로 바빠 손봐 주지 못했는데 이렇게 우리 아지트로 찾아오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어쩐지 숫자가 너무 많다고 했더니 양아치들 베이스캠프였구나.
나는 일단 잡아뗐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냥 지나가던 선량한 시민이오. 무언가 착각을 하신 것 같소.”
“웃기지 마라. 저 어린놈이 우리 애들 패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오리발 내미는 거냐?”
실수다. 조슈아가 이미 저지른 일을 깜박했다. 망할 조슈아 자식. 조금만 더 신중하게 행동할 것이지.
“당신의 착각이오. 딱 한 대 때렸소. 어른이 아이에게 훈계하며 사랑의 매를 든 거요. 그 정도도 용납 못할 정도로 당신의 속은 좁소?”
나는 좀 더 시치미 떼 보려 했지만, 비록 양아치 조직이라고 하나 한 조직의 수장. 나의 말은 먹히지 않았다.
“닥쳐라! 때린 놈은 네놈이 아니라 저 어린놈이잖아. 어디서 자꾸 헛소리야. 그런 어설픈 거짓말이 통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애들아. 일단 잡…….”
“잡아라! 만약 반항하는 자가 있으면 죽여도 무방하다.”
갑작스럽게 끼어든 목소리는 바깥쪽에서 들려왔다. 뭐지?
양아치 두목이 뒤쪽을 돌아보며 사납게 소리쳤다.
“어떤 씨방새가 싸가지 없이 내가 말하는 데 끼어들어?”
양아치 중 한 명이 다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형님. 기사단입니다! 얼른 도망치십시오!”
“허억! 뭐 뭐야?”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양아치들은 완전히 포위되어 있었다.
양아치 두목은 재빨리 어디론가 사라졌다. 두목이라 도망칠 뒷구멍 하나는 만들어 뒀나 보다. 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잠시 후 양아치 두목은 다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네놈이 우리 조직을 유인한 것이구나. 대단해. 완벽하게 당했어. 하지만 얌전히 잡힐 거란 착각은 마라. 죽는 한이 있어도 네놈만은 용서 못한다.”
내가 뭘 어쨌다고? 평소에 나쁜 짓 하고 살았으니 공권력이 개입한 거겠지. 왜 상관도 없는 날 끌어들여?
“네놈만은 죽인다!”
양아치 두목은 그렇게 소리치며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조슈아를 가리켰다.
“원한을 품을 대상이 잘못됐잖아. 애초에 건드린 건 저놈이다. 화풀이하려면 저놈한테 해.”
“닥쳐라. 네놈의 하는 말은 더 이상 믿지 않겠다.”
이게 바로 양치기 소년이 느꼈던 비애일까? 세상은 너무 가혹해.
잠시 감상에 빠져 볼까 했는데 조슈아가 초를 쳤다.
“교관님. 어떻게 교관님이 저를 팔아먹을 수가?”
나는 왼손으로 조슈아의 머리통을 갈기며 호통쳤다.
“이놈아. 네놈 실전 교육 시켜 주려고 그런 건데 뭐가 어쩌고 어째? 살기 싫지?”
“히이익!”
동시에 오른손에 든 검으로 양아치 두목의 배틀액스를 막아 냈다.
배틀액스는 중병기에 속한다. 무겁고 공격 범위도 작기에 사용하기 편한 무기는 아니다. 하지만 일격에 담긴 힘은 그 모든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묵직하고 파괴적인 공격이다. 별 생각 없이 막다가는 검 부러뜨려 먹기 십상이다.
나는 검이 배틀액스와 부딪히는 순간 슬쩍 검을 기울였다.
카가가가강!
배틀액스가 거친 소리를 내며 나의 검날을 타고 옆으로 흘렀다. 나는 그 틈을 타고 로우킥을 날렸다.
양아치 두목은 그래도 두목인지 나의 로우킥을 뒤로 물러나며 피해 냈다. 그러고는 다시 앞으로 나오며 배틀액스를 휘두르려 했다.
상대하기 귀찮아서 천마보로 빠르게 한 걸음 다가선 다음 발로 명치를 걷어차 버렸다.
“케엑!”
양아치 두목은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뒤로 자빠졌다. 허접한 놈이 왜 계속 귀찮게 해?
내가 양아치 두목을 처리하는 짧은 순간 기사단의 양아치 토벌도 끝나 가고 있었다. 순백의 갑주를 두른 기사들이 절도 있게 검을 휘두르면 양아치들은 하나씩 쓰러졌다. 그런데 순백?
페일라스 왕국의 기사들은 갑주에 따로 색을 입히지 않는다. 다른 나라의 기사들도 마찬가지. 갑주에 색을 넣는 것은 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자칫 내구도가 약해질 위험이 높았다. 의장용이 아니면 갑옷에 색을 넣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단 한 곳. 그곳의 기사들은 갑옷에 색을 넣었다. 그것도 흰색이었다.
그렇다. 이 기사들은 페일라스 왕국의 기사들이 아닌 것이다.
이들은 바로 신성제국 루엔로토스의 기사들일 것이다.
그 말은 즉 망할 광신도들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망할 광신도가 나와 조슈아를 향해서도 검을 휘두르려 했다. 나는 조슈아의 머리를 잡아 눌렀다.
“얼른 엎드려 절해.”
나 역시 절을 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고는 감격한 어투로 소리쳤다.
“세상을 어루만지사 루 아인께 영광 있으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루 아인의 기사님.”
세상이 네 거냐. 망할 루 아인? 확 저주 받아 버려라. 망할 광신도 자식.
신성제국은 나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상대다. 신앙으로 무장된 그들의 단결력은 어마어마한 결집력을 자랑한다. 까딱 잘못 건드리면 신성제국인 전체와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제국이 아니라 제국인이다. 그 둘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