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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교관 1(21화)
Chapter 6 실전 훈련?(3)


만약 잡혀간다면 제대로 된 조사가 될 거라 믿기 어렵다. 나와 조슈아도 우리를 포위했던 놈들과 한패거리로 생각할 게 뻔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원하는 조용히 산다는 일은 완벽하게 깨어진다.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루 아인의 눈을 피할 수 없다. 루 아인이 전능하다는 말이 아니다. 루 아인의 신도가 그만큼 많다는 말이다. 산속에 숨어 살지 않는 한 신성제국의 눈을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나와 조슈아를 공격하려던 성기사가 공격을 멈추고는 질문했다.
“구해 주다니 무슨 말입니까?”
“며칠 전 괴롭힘을 당하는 한 아이를 구해 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괴롭히던 놈들이 여기 있는 이 패거리 중 한 명이었나 봅니다. 그들은 길 가던 우리를 잡아와서는 그 복수를 한다며 폭행을 하려 했습니다. 기사님들이 아니었다면 저와 이 아이의 목숨은 오늘로서 마지막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루 아인께 영광 있으라. 의로운 행동은 반드시 보답 받는 법입니다. 형제님. 저희들이 아니었다고 해도 루 아인께서 형제님을 도우셨을 겁니다.”
신이 그렇게 한가하겠니? 잘도 그러겠다.
“루 아인의 도우심이었습니다. 그럼 저희는 하던 일이 있어서 이만 가 보겠습니다. 가자. 조슈아야.”
재빨리 여기를 벗어나려 했지만 성기사가 나의 걸음을 막았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형제님? 상황이 이러해서 부득이하게 신분을 확인하는 절차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조금만 시간을 내 주십시오.”
이런 꽉 막힌 자식. 그냥 좀 보내줘. 마교 파위대 신병 같은 놈아!
“어쩔 수 없겠지요. 괜찮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저를 따라오십시오.”
성기사는 한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조슈아가 나에게 바짝 붙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괜찮을까요?”
“내가 알겠냐? 그러게 왜 확인도 안 하고 건드려? 귀찮게 됐잖아.”
“죄송합니다.”
“됐다. 괜찮을 거다. 넌 귀족이라 신분이 확실하고, 내 신분은 용병길드에서 확인해 줄 테니까.”
성기사가 우리를 데리고 가는 곳은 전투가 벌어지는 곳과는 조금 떨어진 장소였다. 그곳에 테이블이 놓여 있고 페일라스 왕국의 귀족으로 보이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테이블에 앉기 전.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백색 기사들 천지였다. 그런데 그 사이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한 명 눈에 띄었다. 거리가 멀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미소년.
다른 표현은 생각나지 않는다. 녹색 머리칼과 녹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소년이었다.
남자 자식이 더럽게 재수 없게 생겼네. 비리비리한 놈. 아. 눈이 썩는다.
입고 있는 옷을 보면 성기사는 확실히 아니다. 그럼에도 성기사와 함께 다니는 것을 보면 어디 귀한 집 자식이라도 되나 보다.
자세히 살피니 귀한 집 자식이 확실한 것 같다. 단순히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성기사와 미소년이 서 있는 위치를 자세히 살피니, 성기사가 미소년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러운 놈이군.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나는 미소년에게서 신경을 껐다.
나와 조슈아는 테이블에 도착했고 먼저 이름을 밝힌 것은 조슈아였다.
“조슈아 헤밀라스입니다.”
귀족 남자는 테이블에 놓여 있는 책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조슈아 헤밀라스라는 이름이 있군. 그럼 귀족패를 보여 주게.”
조슈아는 품속에서 동그란 금속패를 꺼내어 내밀었고 남자는 책과 금속패를 번갈아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말했다.
“확인했다. 헤밀라스 남작의 아들 조슈아 헤밀라스가 맞군.”
귀족 남자는 시선을 돌려 나를 보더니 사무적인 어투로 말했다.
“당신의 이름과 신분을 말하시오.”
“이름은 크라이스. 동급 용병입니다.”
나는 말을 하며 용병패를 꺼내어 귀족 남자에게 내밀었다. 동패에는 크라이스라는 이름이 음각되어 있었다. 귀족 남자는 용병패를 받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하대로 말했다.
“크라이스라. 천한 용병이군. 전쟁터에나 있을 것이지 이곳엔 왜 왔느냐?”
이게 원래 일반적인 귀족의 행태지. 조슈아랑 지내며 잠시 잊고 있었는데 떠올리게 해 줘서 아주 고맙다. 그 은혜는 꼭 갚을게. 꼭!
“일전에 헤밀라스 남작님께 은혜를 입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 자제 분의 사정이 어렵다 하여 도움이 될까 하고 찾아왔습니다.”
“너 같은 놈들은 사라지는 게 도움을 주는 거다.”
귀족 남자는 조슈아를 보더니 충고하듯 말했다.
“조슈아라고 했나? 사람은 가려서 사귀는 거라네. 귀족의 품위를 흐트러뜨리지 않게 주의하도록.”
조슈아는 대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분위기가 이상해져 갔다. 내가 옆구리를 찌른 후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명심하겠습니다.”
귀족 남자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인 후 성기사를 향해 말했다.
“두 사람의 신원은 확인했습니다. 둘 다 크로디스 파와는 무관한 자들입니다. 보내 주어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형제님.”
성기사는 귀족 남자에게 인사한 후 나와 조슈아에게 말했다.
“루 아인께 영광 있으라. 앞으로도 그 의로운 마음 영원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루 아인께 영광 있으라.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조슈아는 눈치를 살피더니 나를 따라 인사했다.
“루 아인께 영광 있으라.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그런 후에야 나와 조슈아는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걸어가는데 조슈아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크라이스. 제가 멋대로 나서는 바람에.”
“알면 됐다. 다음부터 그러지 마라.”
“네. 그런데 루엔로토스의 기사들이 이곳에는 무슨 일일까요?”
“내가 알겠냐? 또 이단 심판이라도 하러 왔나 보지.”
“그럴까요? 그런데 생각보다 성기사의 태도는 친절하더군요. 반면 저희 페일라스 왕국의 귀족은…….”
나는 조슈아의 머리에 꿀밤을 하나 먹여 주었다.
콩!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 못한다더니 네가 딱 그 꼴이다. 얼마 전까지 너는 안 그랬는 줄 아느냐?”
나의 말에 조슈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항변했다.
“저는 그 남자처럼 행동한 적 없습니다.”
“그놈만큼 심한 건 아니지만 너 역시 재수 없는 귀족이란 사실은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그 재수 없음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고.”
“그…… 그런…….”
“헛소리 그만하고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 오랜만에 재수 없는 자식을 만났더니 속에서 마구 끓어오르는구나. 먹는 걸로 스트레스나 풀어야겠다.”
나의 말에 조슈아가 밝은 얼굴로 말했다.
“저번에 갔던 그 식당으로 가죠?”
“그 식당? 네가 사고 쳤던 그곳? 그런 일을 벌이고도 찾아갈 생각을 하다니 너도 얼굴 참 두껍구나. 그래도. 뭐. 그 집 음식이 제법 괜찮긴 했어. 그리로 가자.”
나와 조슈아는 예전에 유일하게 외식했던, 그러다 난장판을 만들었던 식당을 찾아갔다.

밤의 길을 혼자 걸었다. 조슈아는 식당을 나오며 들를 데가 있다고 하고 먼저 보냈다.
작은 문제가 있긴 했지만 계획했던 일은 예상대로 진행되어 갔다. 원래라면 그놈들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릴 테지만. 궁금한 것도 있으니 오늘은 내가 그놈들을 찾아가는 중이다.
내가 걷는 곳은 뒷골목이다. 온갖 추잡한 일들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나는 휘적휘적 걸었다.
걷다 보니 추잡한 행동이 이루어지는 곳을 지나게 되었다. 남자 세 놈이 여자 아이 한 명을 덮치려 하고 있었다.
이 시간에 이런 곳을 오다니. 바보 같은 년이군.
나는 무시하고 지나가려 했다. 만약 그 소녀의 머리칼이 녹색이고, 눈동자 또한 녹색이란 것을 보지 못했다면 그냥 지나갔을 것이다.
저 아이는? 오호라. 이거 생각지도 못했던 행운이군.
나는 소녀의 머리칼과 눈동자 색을 확인하는 순간, 막 소녀의 옷을 잡아 찢으려는 놈의 가랑이 사이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물컹! 퍽.
기분 나쁜 감촉이 발등으로 전해져 왔다. 하지만 보람은 있어 그 남자는 양손으로 그곳을 감싸 쥐고 고꾸라졌다. 입에서 거품이 흘러나왔다.
다른 사내 둘이 나를 보며 소리쳤다.
“웬 놈이냐?”
“죽고 싶어?”
나는 조슈아스럽게 외쳤다.
“힘없는 아녀자를 강제로 해하려 하다니, 남자로서 부끄럽지도 않느냐? 너희 같은 놈은 하늘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다음 처음 사내와 같은 응징을 내려 주었다.
퍽! 퍽!
세 남자는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별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나는 소녀에게 손을 내밀며 조심스레 말했다.
“괜찮습니까?”
“네? 네. 고, 고마워요.”
소녀의 눈가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많이 무서웠을 것이다. 나는 따뜻한 음성으로 소녀에게 말했다.
“이곳은 위험한 곳입니다. 저런 놈들이 하나둘이 아닙니다. 집이 어느 곳입니까?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소녀는 깜짝 놀라더니 더듬거리며 말했다.
“집…… 집이요? ……서, 서쪽…….”
“일단 움직이지요. 이곳에 계속 있는 것은 위험합니다. 일단 말씀하신 서쪽으로 가죠.”
“네…… 네!”
나는 소녀와 나란히 걸었다. 대화는 없었다.
잠시간의 침묵.
소녀가 입을 열었다.
“저…… 은인께선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은인이라니 가당치 않은 말입니다. 제가 한 일은 은인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거창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 이름은 크라이스. 하찮은 동급 용병입니다. 말씀 낮추어 주십시오. 아가씨.”
소녀는 머뭇거리더니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저…… 저는 리네아인 듀스 레오하피넬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동급 용병이 뭐죠?”
이 소녀는 오늘 낮에 잠깐 본 적이 있었다. 성기사들에게 보호받고 있던 미소년이었다. 짧은 머리칼에 남자 같은 옷이었다. 멀리서 보았기에 미소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제심 약한 사내들은 참지 못할 정도로 예쁜 소녀였다.
성기사들이 보호하는 인물이기에 상당한 고위 귀족가의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의의 용사 흉내를 내며 구했다. 그런데 예상 외로 성과가 좋다.
레오하피넬이라면 신성제국 최고의 공작가. 생각보다 훨씬 거물이었군. 기억하겠다. 리네아인 듀스 레오하피넬. 나의 봉이여. 후후후.
“용병의 등급은 네 단계로 나누어집니다. 동급, 은급, 금급, 특급. 그중 동급이 가장 실력이 낮고 숫자가 많으며, 특급이 가장 실력이 높고 숫자도 적습니다.”
나의 자조적인 말투 때문인지 소녀는 볼을 부풀리고는 말했다.
“크, 크라이스는 동급 용병이라고 했지만 그래도 그 발차기는 대단했어요. 휘리릭 하니까 한 방에 한 명씩 쓰러뜨렸잖아요!”
겁에 질렸으니 뭐든 안 대단해 보일까? 그런 주제에 잘도 여기까지 왔구나. 말썽쟁이 귀족 계집. 덕분에 나에게 도움이 되었으니 다행인가.
“좋게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리 대단한 건 아닙니다. 조금 치사한 방법이기도 하고.”
나의 말에 리네아인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얼굴을 붉혔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내가 무슨 말 한 건지 알아들었어? 조그만 게 발랑 까졌네.
어느덧 어두운 구역을 벗어나 번화가로 나왔다.
“서쪽으로 나오긴 했는데 집이 어느 방향입니까?”
마그란에 집이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고 기사단이 이쪽에 머무를 리도 없다. 이곳은 일종의 서민 구역. 제국에서도 상위 계층에 속하는 성기사들은 동쪽 구역의 고급 여관에 묵고 있을 것이다.
리네아인은 다시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사실은 이곳에 집이 있다는 거 거짓말이에요.”
“곤란하군요. 이런 밤은 아가씨같이 아름다운 분이 돌아다니기에는 위험한 시간이랍니다.”
언젠가 읽었던 붉은 책에 나오는 바람둥이의 대사다. 말을 하고 있으니 속에서 무언가 올라올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어리고 세상 경험이 부족할 테니 이런 가식적인 말과 행동을 좋아할 것 같다.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억지로 참았다. 다행히 참아 낸 성과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