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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교관 1(24화)
Chapter 7 개학(2)


조슈아의 집에서 헤론 아카데미까지는 걸어서 2시간 정도의 거리였다. 즉 조슈아가 2시간 뒤에 도착했다는 말이다.
먼저 온 나는 경비실에 가방을 놔두고는 경비와 친분을 나누었다. 어찌나 말이 많던지. 조슈아가 도착할 때쯤 사람들이 한꺼번에 많이 오는 덕분에, 경비의 일이 많아져 정신없는 틈을 타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너무합니다. 크라이스! 정말 혼자 가실 줄은 몰랐습니다.”
“요즘 훈련이 편하지?”
조슈아는 태도를 싹 바꿨다.
“정말 좋은 수련이 된 것 같습니다.”
“조심해. 새 학기라 봐주는 거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창피당하기 싫거든 알아서 행동해라.”
나는 그렇게 말하며 등교 중인 학생들을 바라봐 주었다.
“으윽.”
조슈아는 조용히 찌그러졌다. 나는 걸음을 옮기며 아카데미의 모습을 구경했다.
헤론 아카데미의 정문은 추상적인 조형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 같은 것이 반원으로 휘어져 정문을 만들고 있었다. 그 양쪽으로 붉은 벽돌담이 아카데미를 감싸고 있었다.
정문을 지나면 아름드리 가로수들이 길게 가로수 길을 만들고 있었다. 그 가로수 길을 한참 걸어가면 대학교 건물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 있었다.
아카데미의 규모는 제법 커 보였다. 대충 보기에도 지구의 4년제 대학과 비슷한 규모였다.
가로수 길을 따라 3분 정도 들어가자 먼저 넓은 운동장이 나타났다. 그 뒤로 하나하나 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건물 앞에서 조슈아가 멈춰 서선 나를 향해 말했다.
“전 이제 가 봐야 하는데, 크라이스는 어디로 가요?”
“난 갈 곳 따로 있다. 신경 쓰지 말고 가 봐.”
“그럼 나중에 봬요.”
조슈아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조금 더 걸어가 교직원 건물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내가 만날 사람은 교직원 건물에 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좋지 않다. 너무 이른 시간인데다 개학이라 개학식도 있고 해서 상당히 바쁠 것 같았다.
좀 더 늦게 올걸.
이제 와서 후회가 되었지만 그런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건 아니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간 다음 서무실로 찾아갔다.
제법 예쁘게 생긴 여직원이 나를 반겨 주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히콘 메르스타토를 찾아왔습니다.”
나의 말에 여직원이 조금 놀란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학장님을요? 선약은 되어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지금 만날 예약을 하고 싶습니다만.”
“누구라고 전해 드릴까요?”
“그리톤 전장의 동료 헤닐이라고 전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조금 뒤에 개학식이라 한참 기다리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너무 늦게만 아니라면 괜찮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서무 직원은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5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나타났다.
“11시에 시간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은 8시였다. 3시간이나 남았다. 으으.
“어디 시간 보낼 만한 곳이라도 있습니까?”
나의 질문에 서무직원이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나도 곤혹스럽다. 그런 것도 몰라? 그러고도 잘도 월급 받아먹는구나.
“도서관이라도 이용할 수 있을까요?”
“도서관 가시면 대출은 안 되고 거기서 보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그럼 그곳에 가 있으면 되겠군요. 고맙습니다.”
“11시까지 여기로 와 주세요.”
서무직원의 말을 뒤로하고 나는 직원 건물을 나섰다.
도서관을 찾아가려는데 각 건물에서 학생들이 우루루 몰려나왔다. 운동장 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니 개학식을 시작하려나 보다.
그러고 보니 이 세상의 학교는 구경한 적이 없는데, 갑갑한 곳에서 책 보는 것보다 개학식 구경하는 게 더 낫겠지.
나는 개학식을 구경하기 위해 운동장을 향했다.
개학식의 모습은 지구의 학교와 별다를 바 없었다. 학생들이 각 반별로 줄을 맞춰 서 있고 앞에 있는 교단에는 교수들이 한 명씩 나와 무언가 이야기를 했다.
교수들 사이로 내가 찾아온 인물인 히콘의 모습도 보였다.
많이 삭았네. 하긴 10년이나 흘렀으니.
나는 시선을 돌려 학생들 쪽을 바라보았다.
이곳 아카데미의 규율은 지구의 학교에 비해 느슨한 것 같았다. 교수가 앞에서 말하는 도중에 자기들끼리 속삭이는 경우가 많았고 그걸 제지하지도 않았다. 학생들도 너무 심하게 떠드는 게 아니고 간간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 무질서한 느낌보다는 자유롭다는 느낌이 강했다.
나는 그렇게 학생들을 구경하며 조슈아를 찾아보았다. 그리 어렵지 않게 조슈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잠시 조슈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왕따?
조슈아는 그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주변의 아이들이 조슈아를 대화에 끼워 주지 않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조금은 짐작하고 있었다. 수련을 하다 쉴 때면 조슈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조슈아 자신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유독 친구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확신한 것은 아니었다.
조슈아의 성격은 확실히 재미없다. 착하고 정의롭다. 본받기에는 좋지만 함께 하기에는 조금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렇지만, 친구가 많을 성격은 아니지만 하나도 없는 건 이상하다. 왕따당할 정도의 성격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왕따를 당한다면 누군가 고의로 조슈아를 왕따시키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아마 그놈이겠지.
좋지 못하다.
고독이란 인간의 마음에 그늘을 만든다. 그 그늘을 깨며 아이는 어른이 된다. 하지만 그 그늘이 너무 클 경우 도리어 마음이 그늘에 잡아먹혀 버릴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이 자라서 범죄자가 되고 성격파탄자가 된다.
조슈아가 어떻게 되는 거야 상관없지만 무의 경지에 오르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늘에 잡아먹히면 마스터는커녕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르기도 힘들다.
손을 한번 써야겠다.

개학식은 길었다. 그리고 지겨웠다. 나는 30분 정도 구경하다가 도서관을 향했다.
도서관에서는 잡지를 뒤적이며 시간을 보내었다.
그리고 약속한 시간이 되었다.
11시가 되어 서무 직원의 안내를 받아 교장실로 들어갔다.
히콘은 여전히 바쁜지 5분 정도 지난 후에야 교장실로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며 나를 향해 반갑게 외쳤다.
“헤닐. 이 친구야. 몇 년 만인가. 그동안 연락이라도…… 당신 누구요?”
페일라스 왕국의 귀족은 5년간 의무 군복무를 해야 한다. 히콘 역시 5년간 의무 군복무를 했고 그때 나와 만났다. 헤닐은 히콘이 복무할 때 같이 복무했던 놈이다. 지금은 뭐 하는지 나도 잘 모른다.
히콘은 스태프를 빼어 들었다. 오른손으로 스태프의 중간을 잡고, 왼손 검지와 중지를 스태프의 머리에 있는 수정에 가져다 대었다. 워메이지의 기본 전투 자세다.
“오랜만이다. 울보.”
“무슨 말을 하는 거요? 헤닐과 무슨 관계요? 당장 정체를 밝히시오. 아니면 사람을 부르겠소.”
“고작 10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네 별명을 잊어버린 거야?”
“10년 전이라면 그리톤 전장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소. 당신이 누군지 말해 주시오. 그리고 중요한 건 나는 절대 울보가 아니었소.”
“우기는 건 여전하네. 그리고 일단 좀 앉아라. 오랜만에 만났는데 스태프가 웬 말이야.”
히콘은 나의 말에 따르지 않았다. 대신 수정에 대고 있던 중지를 떼고 약지를 대신 수정에 대었다. 수정에선 희미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마법의 캐스팅이 끝나고 발현만을 남겨 두고 있을 때 수정에서 저런 빛이 난다.
묵언영창이 제법 빨라졌는데? 학장이 되었다기에 마법에는 신경 못 쓸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닌가 봐.
“소심한 성격도 여전하고. 그만하고 일단 앉아라. 작대기로 장난치면 맞는다.”
내 말은 씨도 먹혀들지 않았다. 처음부터 원래 모습으로 만날 걸 그랬나? 이놈에게 부탁하려면 어차피 내 본모습을 보여 줘야 하는데.
“미안하지만 당신의 정체가 수상하니 일단 구속하겠소. 피해는 없을 거요. 바인드!”
히콘은 주문을 외쳤다. 동시에 마법이 발현되었다.
스태프의 수정에서 하얀색의 실 같은 것 수십 가닥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그 하얀 실 같은 것들은 이내 나의 온몸을 칭칭 둘러쌌다.
내공을 돌릴 때라면 몰라도, 지금처럼 내공을 운용하지 않는 상태라면 절대 피할 수 없다. 물론 피할 생각도 없다.
나의 몸은 이내 굳었다. 실 같은 것들에 의해 움직임이 구속된 것이다.
히콘은 내가 완벽하게 무력화 된 것으로 보이자 그제야 긴장을 풀곤 스태프를 내렸다. 그는 조금 편안해진 어투로, 대신 한껏 의심이 깃든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이제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나는 히콘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스스스스스스슷.
수천 마리의 벌레가 나의 몸을 지나가는 것 같은 불쾌한 느낌이 전신에 느껴졌다. 단전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나의 내공이 사지 백해로 뻗어 나갔다.
동시에.
쩡!
나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마법이 깨어졌다.
하얀색 실 같은 것들이 산산조각나 사방에 날렸다. 그 갑작스런 변화에 히콘이 다급하게 스태프를 들어 나를 향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내 몸을 감싸고 있던 또 다른 마법 역시 깨어졌다.
페이스 폴리모프(Face Polymorph).
얼굴의 모습을 바꾸는 2계의 마법이 강제로 해제되었다.
벌레 수천 마리가 몸을 기어 다니는 것 같은 느낌. 그것은 마법이 강제로 깨어질 때의 감각이었다.
나는 탈마의 경지에 올랐고, 마법 역시 언령이라는 가장 강력한 형태로 구사할 수 있다. 하나만 가져도 세상을 울릴 힘을 두 가지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두 가지의 힘은 동시에 사용할 수 없다.
기사가 마나를 사용하는 방법과 마법사가 마나를 다루는 방법은 전혀 다르다. 그렇기에 검에 마나를 담고 마법을 사용하는, 마검사라는 존재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다.
나의 경우는 조금 더 특별하게 마나를 사용한다. 내공이라는 형태로 변형시키는 것. 내공과 마법 구현에 사용되는 마나는 극악의 상성을 보인다. 내공이 도는 나의 몸은 모든 마법에 반발한다.
기사의 경우 마법사에게 보조마법을 받고 싸운다. 힘과 속도, 체력을 월등히 강화시키는 보조마법이다. 그만큼 보조마법을 받지 않았을 때와의 전투력 차이는 크다.
나는 이런 보조마법 역시 받지 못한다. 내공을 단전에 가두고 있을 때는 괜찮다. 하지만 내공을 몸에 돌리는 순간 나의 몸을 강화시키던 모든 마법은 산산이 깨어져 버린다.
하지만 이건 단점이 아니다.
버프 계열의 좋은 마법뿐 아니라 저주 같은 디버프 마법까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나는 보조마법을 받지 않아도 보조마법을 최고로 받은 기사보다 강하다. 그런 나에게 해로운 마법마저 통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정말 사기적으로 강하다.
히콘의 바인드와 나의 페이스 폴리모프가 한순간에 풀린 이유가 이 때문이다.
크라이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중년 남자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의 본모습이 드러났다.
“다, 당신은 누구요?”
이 자식이 아직도 나를 못 알아봐? 예전에 매가 부족했나?
마침 거울이 있어 나의 모습이 보였다.
다듬지 않아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칼.
원래의 짙은 갈색이 아니라 완전한 검은색이 되어 버린 눈동자.
원래 약해 보이는 외모였는데 환골탈태와 반로환동을 거치며 피부까지 좋아져 완전히 여려 보이기만 하는 얼굴이었다.
선명하게 붉은 입술이 뽀얀 피부와 어울려 더욱 강조되어 보였다.
내 얼굴이지만 정말 재수 없단 말이야. 쉽게 잊기 힘들 정도로 개성적인 얼굴이기도 하고.
그런데 히콘 이 망할 녀석이 감히 하늘보다 높은 나를 못 알아봐?
아! 그러고 보니 이 모습일 때는 항상 살기를 끌어올린 상태였구나.
나는 살기를 끌어올려 눈에 집중했다.
나의 눈이 붉게 빛났다.
히콘은 나의 눈이 빛나는 순간 바닥에 주저앉았다.
“히이익! ……다, 다, 당신은 블러…….”
“그만. 나 그 별명 싫어한다. 알지?”
“물론 알고 있습니다. 페일 님.”
히콘과 함께할 때는 페일이라는 이름을 썼다.
“지금은 크라이스다. 크라이스라고 불러.”
“알겠습니다. 크라이스 님.”
히콘은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은 채 조금씩 떨며 나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렇게 겁을 내니 조금 섭섭하다. 그래도 너랑은 꽤 오랫동안 함께하면서 제법 친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구나.”
히콘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아닙니다! 저 역시 페일…… 아니 크라이스 님과 함께할 때가 좋았습니다.”
“그럼 일단 여기 와서 앉아. 편하게 이야기 나누자.”
나는 손으로 내 앞의 소파를 가리켰다. 히콘은 그 의자에 앉은 다음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러면 안 되는 건데 최근에 너무 무시무시한 소문을 들어서. 물론 당연히 과장되었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저도 모르게 그만.”
“괜찮아. 이해해. 나라도 그랬을 거다. 그리고 그 소문 사실이다.”
“히이익!”
“뭘 또 새삼스레 놀래? 너무 겁먹지 마라. 그리고 나 이제 은퇴했다.”
“예? 은퇴라니요?”
“전쟁터 떠돌아다니는 거 그만뒀어.”
나의 말에 히콘의 표정이 그제야 밝아졌다.
“잘됐습니다. 떠도는 건 그만두고 이제 정착할 때도 되셨죠. 크라이스 님 정도면 처녀장가도 문제없을 겁니다. 하하하…… 어라. 그런데 어째 10년 전보다 더 젊어지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됐어.”
“……설마 그랜드 마스터! 그래서 은퇴하실 수 있었던 거군요.”
“그래. 이제는 피가 없어도 상관없다.”
히콘은 나의 말에 진심으로 기뻐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