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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펜의 유희 1권(3화)
1 명계(3)
“지금부터 당신이 만나 봐야 할 사람은 명부의 왕이십니다.”
에?
“왜, 왜요? 왜 갑자기 스케일이 그렇게 커지는 겁니까? 명부의 왕이라니,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아뇨,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이번 환생을 끝으로 영혼이 소멸하기 때문입니다.”
뭐라고?
“그, 그게 무슨 말이죠? 환생을 끝으로 영혼이 소멸하다니요?”
“그 환생으로 생을 산 다음에 죽으면 이곳 명계로 영혼이 인도되는 게 아니라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겁니다.”
“어, 어째서요?”
“당신은 666 숫자의 의미를 아십니까?”
“그, 그건 악마의 숫자가 아닙니까?”
“당신들의 세계는 그러는가 보군요. 사실 666은 영혼이 환생할 수 있는 숫자를 이르는 말입니다.”
“영혼이 환생할 수 있는 숫자?”
“네, 그렇습니다.”
국장이 무의식적으로 잉꼬처럼 따라 말한 나를 차분하게 마주 보며 말했다.
“그 숫자는 우주를 창조하시고 차원을 만드시고 세계를 만드시는 주신께서 결정하신 숫자입니다.”
“저, 저기, 근데 왜 꼭 666입니까?”
“그 뜻은 저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신의 깊으신 뜻을 감히 물을 생각조차 없습니다.”
하아∼ 참으로 무관심한 분이군.
“명계의 법을 보면 마지막으로 사는 666번째 생을 보낼 수 있는 생물은 드래곤밖에 없습니다.”
“드래곤요?”
왜 갑자기 용이 나오는 거지?
“그렇습니다. 드래곤입니다. 물론 그들 중……. 아닙니다. 자세한 건 명부의 왕께 들어 주십시오.”
국장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투명하고 커다란 튜브 안에 캡슐 같은 것이 있는 이상한 방이었다.
“국장급 간부 이상만 쓸 수 있는 엘리베이터입니다.”
국장이 튜브를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자 튜브가 벌어지더니 사람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생겨났다.
“자, 타시죠. 이 엘리베이터는 곧장 명부의 왕이 계시는 곳으로 올라갑니다. 어이, 너 끝까지 잘 데리고 다녀라. 일 잘못 그르치면 너나 나나 끝이니까. 알겠어?”
“아, 알겠습니다.”
“그럼.”
알피지에게 으름장을 놓고, 국장은 이내 자신의 할 일이 끝났다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 버렸다.
“이런 젠장, 내가 어쩌다가 명부의 왕을……. 난 이제 죽었다.”
알피지가 먼저 엘리베이터에 탔다.
“뭐해? 타지 않고?”
“아, 예예.”
[출발합니다.]
스르르르륵!
내가 그 튜브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자 벌어졌던 입구가 도로 닫히더니 매우 빠른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라? 이거 위험한 거 아닙니까?”
너무나도 위험해 보였다.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통행하는 속도와 맞먹는 듯했기 때문이다.
“위험하지 않아. 총 5백 층까지 있는 건물이니까 이 정도 속도로 올라가야 빨리 도착한다고.”
그런가? 아!
“그건 둘째 치고 아까 엘리베이터 없다고 하지 않았나요?”
“아까 한 말 못 들었어? 이건 국장급만 탈 수 있는 거라잖아.”
“그래도 있긴 있었네요.”
“아, 몰라. 나도 국장 만나는 게 이 회사 생활 3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란 말이야. 난 국장의 얼굴이랑 엘리베이터가 존재했는지도 지금까지 몰랐다고.”
아, 그러세요?
30년 동안 일하면서 자기 직장 상사랑 이 건물을 둘러본 적도 없는 건가?
“이상해 보이지? 너도 이 일 하면 잘 알게 될 거야. 어때? 너도 나처럼 저승사자 하지 않을래?”
“저승사자는 어떻게 하는 건데요?”
“전생에 자살을 한 영혼들이 하는 거야. 신께서 주신 생을 마음대로 마감했으니까 죄를 지은 것이지. 저승사자는 그것을 속죄하기 위한 영혼들이 하는 거야.”
자, 자살?
“자, 너는 다음 생에 자살을 하는 것이야.”
“그게 대체 무슨! 이번에 다시 살아났다가 죽어 버리면 영혼이 소멸하는데 무슨 저승사자요! 인생 끝 낼일 있습니까?”
“혹시 모르지. 자살해 가지고 속죄하라면서 몇백 년을 더 살게 해줄지도 모르잖아.”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죽으면 곧장 소멸이라는데 속죄할 여유는 있습니까?”
“하긴 그래.”
띵!
종소리가 났다. 도착한 모양이다.
[최상층, ‘명부의 왕’의 집무실입니다.]
엘리베이터를 나왔다.
“오오오∼!”
밑에서 보았던 것과 다르게 커다란 홀과 높은 천장 등, 내부는 매우 넓었다(물론, 전부 흰색이지만).
그리고 그 홀 너머에 있는 커다란 문.
“저기가 집무실일 거야. 냉큼 따라와.”
알피지가 앞장서서 걸어갔다.
“근데 이곳에 이렇게 커다란 홀을 설치할 이유가 있습니까?”
족히 300m는 되어 보이는 홀을 한참 동안 걷다가 의문이 들어 물었다.
밑에서 일하는 곳은 복도와 방 내부가 매우 좁았는데 이곳은 그와 반대로 지나칠 정도로 넓었다.
“일종의 과시욕이겠지.”
“…….”
겨우 그런 거야?
“더러운 자본주의 돼지새끼.”
“…….”
응?
“내가 전생에 소련에서 살았거든.”
“전생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까?”
“지워 버리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 수도 없잖아.”
“아.”
그렇군.
“그건 둘째 치고 더러운 자본주의 돼지새끼라고?”
되묻는 것은 갑자기 들려온 전혀 다른 목소리였다.
“응?”
“냉큼 이리 와.”
어라? 여기에 여자아이가 있었…….
“우왓?”
“어어?”
갑자기 멱살이 잡힌 듯하더니 몸이 붕 떠서 순식간에 문 앞으로 날아가 버렸다!
오오∼ 젠장,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아니, 것보다 문에 부딪칠 것 같은데?
“부, 부딪친다!”
알피지도 위험을 감지하고 두 팔로 얼굴을 X자로 교차해서 보호하려고 하였다. 물론 나도 그렇게 했다.
벌컥!
우리의 생존 본능을 무시하듯 문이 활짝 열리고 우리는 그곳으로 빨려가듯이 들어가 버렸다.
그와 동시에 우리를 이끌던 그 이상한 힘이 사라졌고…….
우당탕!
“우아악!”
“커헉!”
우리는 멋지게 바닥에 굴렀다.
“일어나라, 죽은 자야.”
또 어린 여자아이의(여자아이이지만 근엄한) 목소리가 들렸다.
“크흐…….”
아픈 머리를 문지르며 둘러보았다.
“…….”
방 전체가 피처럼 붉은색이었다.
바닥의 카펫, 벽, 샹들리에, 꽃병, 꽃, 장식용 식기 등등.
“어딜 보는 것이냐!”
땡!
“아야!”
무언가 날아와 내 머리를 강타했다.
내 머리로 날아온 건 붉은 칠이 된 작은 손잡이가 달린 종이었다.
명부의 왕의 그 화려한 집무실 중앙에 붉은 칠이 된 커다란 마호가니 책상이 놓여 있고 그곳에 커다란 안락의자와 어울리지 않게 새하얀 머리, 새하얀 피부, 붉은색 커다란 눈동자에 피로 짠 듯 붉은 드레스를 입은 꼬마아이(꼬마라고 할 수밖에 없다. 너무나 아기자기하고 귀엽다)가 있었다.
“명, 명부의 왕을 뵈옵니다!”
알피지가 냉큼 옷을 추스르고 엎드려 절했다.
이 꼬마애가? 명부의 왕? 정말이야?
“감히 영혼 주제에 건방지구나! 내 겉모습만 보고 쓸데없는 판단을 내리지 마!”
그 꼬마아이가 이번에는 붉은색 가죽으로 된 책을 던지려고 하였다.
매우 두껍다.
게다가 끝부분에 쇠로 징까지 박혀 있는 책이다. 들고 있는 꼬마아이의 가느다란 팔이 후들거린다.
“잘못했습니다! 제발 용서를!”
맞으면 죽음이다!
“……봐주도록 하지.”
쿵!
묵직한 소리를 내며 책이 떨어졌다.
“아무튼 665번 생을 산 영혼은 오랜만에 보네. 350년 만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명부의 왕이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너의 마지막 생을 결정하기 위해서 부른 것이다, 죽은 아이야.”
절대로 여자아이 같지 않은 근엄한 표정과 목소리로 명왕은 날 코끝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아까 나에게 던졌던 종을 주워서 흔들자, 매우 맑은 종소리가 들려왔다.
덜컹!
집무실 오른쪽에 있는 문이 열리더니 칼퇴근한 부장처럼 하얀 제복을 입은 남자가 상자 하나를 책상에 두고 나가 버렸다.
“자, 뽑기다. 생을 아주 오래 사는 생물들을 전부 집어넣은 것이지.”
뽀, 뽑기?
“얼른 뽑아.”
“겨우 이걸로 결정하는 거예요? 다음 생을?”
“응.”
“아까 드래곤으로 환생한다고 하던데.”
“누가?”
“국장이라는 사람이요.”
“국장이?”
명왕의 눈이 치떠졌다.
“멍청한 놈, 드래곤만 생을 사는 것이 아니거늘. 뭐 아무튼 빨리 뽑아. 나 저녁 식사 중이었단 말이야.”
아까와 다르게 어린애가 칭얼거리듯이 명왕이 재촉해 댔다.
“근데 이렇게 다음 생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한가요?”
“응, 매우 중요해.”
“왜요?”
“그야……. 아, 귀찮아! 빨리 뽑지 못해? 음식 식으면 맛없단 말이야!”
거참, 대충 인생이구만.
부스럭 부스럭.
손을 집어넣자 종이조각들이 부스럭거렸다.
어, 어느 것을 뽑지?
“빨리 안 뽑아? 응?”
짝짝!
윽!
명왕이 손바닥으로 내 머리를 연신 쳐댔다.
정말 성질 뭐같이 더러운 여자다.
“아, 알겠으니까 그만 때려요!”
“뽑을 때까지 계속 때릴 거야! 빨리 해!”
“으윽! 어린애같이 이럴 겁니까?”
“내 나이는 오만 살이거든? 어린애라고 하지 마!”
오, 오만 살?
“나이를 그렇게 처먹고 잘하는 짓이다!”
게다가 그 어린 모습이란! 완전히 사기가 아닌가?
“뭐,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난 얼른 종이쪼가리 하나를 꺼내 들어서 명왕의 코에 가까이 들이댔다.
“종이 뽑았다고요.”
“너, 그전에 한 말이…….”
응?
명왕은 나한테 말을 하려다가 종이조각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뭐가 잘못됐나?
“뭐, 뭐야? 이게 뭐야? 이딴 놈이? 설마 이딴 놈이? 말도 안 돼.”
명왕이 내가 쥐고 있는 종이조각을 뺏더니 눈동자를 연신 나와 종이조각으로 돌리면서 중얼거렸다.
“따, 따라와.”
아까 상자를 들고 나오던 사람이 출입했던 문을 명왕이 가리켰다.
“그러죠.”
“넌 이제 가 봐. 여기서부터는 네 소관이 아니니까.”
명왕이 알피지에게 말했다.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와 알피지의 짧은 만남은 끝났다.
덜컥!
키에 맞지 않게 성큼성큼 걸어간 명왕이 문을 덜컥 열었다.
거기는 무슨 식당 같았다.
그것도 아주 호화로운 호텔 식당 같았다.
바닥에 붉은 카펫, 흰색 기다란 식탁보가 깔린 식탁, 호화롭게 조각된 은촛대, 매우 깨끗한 도자기 접시, 은제 수저, 은제 나이프, 은제 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