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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펜의 유희 1권(4화)
1 명계(4)
퍽!
“커억!”
“뭘 둘러보는 거야? 자리에 앉아!”
우씨, 저 빌어먹을…….
오만 살이래도 일단 어려 보이는데 그냥 콱 꿀밤을 일천 대 때려 버릴까.
아, 일천 대는 너무했나?
내가 때리다가 지쳐 죽겠지.
아, 난 죽은 거지? 그러면 계속 때릴 수 있을까?
“뭐 먹을 거야?”
“응?”
난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뭐 먹을 거냐고?”
뭐, 뭘 먹어?
“여, 영혼이 무슨 식사를 한다고…….”
“아놔! 난 너랑 식사를 하고 싶다고!”
뭐, 이런 억지가…….
“안 해? 안 할 거야?”
“할게요.”
거부하면 이번엔 나이프가 날아올 것 같았다.
“자, 여기 메뉴.”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진 명왕이 가죽으로 된 책자를 넘겨주었다.
음∼ 음∼ 음∼
왜 이렇게 이렇게 영어가 많아?
꼬부러진 푸른 잉크로 된 필기체가 나를 맞이했다.
게다가 사진도 없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난 아까 시킨 거 다시 줘. 다 식어서 먹을 수 없을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언제 왔는지 다시 하얀 제복을 입은 여자(꼭 스튜어디스 같은 머리와 옷을 입고 있었다)가 고개를 공손히 숙인 채 명왕의 주문을 받고 있었다.
“그쪽은?”
“저, 저는 그냥 안심스테이크로…….”
“응? 그런 게 있어?”
명왕의 중얼거림.
어, 없는 거야?
“손님, 등심스테이크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 구워 드릴까요?”
“중간으로.”
“네, 알겠습니다.”
메뉴판을 가지고 사라진 그녀는 다시 옆문으로 들어갔다.
“너, 솔직히 말해. 영어 못 읽는 거지?”
윽!
수능을 보는 수험생이었지만 난 영어는 매우 약했다.
그랬기에 난 외국어영역를 포기하고 수리영역과 언어영역 쪽으로만(문과인 주제에!) 열심히 공부해 왔었다.
“이거 네가 마지막으로 살던 세계의 공용어이길래 일부러 메뉴판을 영어로 해 준 건데 뭐야? 공용어도 모르는 거야?”
그리고 깔보는 듯한 명왕의 눈빛.
“풉.”
마지막으로 비웃음.
주, 죽일 거야! 죽일 거야! 반드시 죽이고 말 거야.
쪼르르∼
분노로 인해 흥분한 심장을 진정시킬 쯤 명왕이 내 잔에 적포도주를 가득 채워 주었다.
“자, 마시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
저, 저기요, 그 모습으로 말하면 어울리지 않습니다만?
“저, 전 아직 미성년자인데…….”
“아놔! 이제 앞으로 귀한 분이 될 사람인데 겨우 술 한 잔을 못 마셔?”
음?
“저기, 귀한 분이라뇨?”
“아, 맞다. 이거 안 보여 줬네.”
명왕이 종이조각을 나에게 넘겨주었다.
“신?”
신이라고?
“신이 된 것을 축하해.”
시, 신이라고? 신? 신?
“내 예상이 맞다면 신은…….”
“그래, 절대자이자, 전지전능한 자.”
내가, 아까까지만 해도 평범한 고3학생이었던 내가, 신이 된다고?
“이 식사가 끝나고 넌, 아니 당신은 나와 같이 주신께 가주셔야겠습니다.”
뭐, 뭐야? 왜 갑자기 경어를 쓰고?
“그, 근데 주신은 누구신데요?”
“우주를 창조하시고 행성을 만드신 분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신들의 주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신들의 주인이라.”
덜컥.
아까 나갔던 여자가 음식이 담긴 수레를 끌고 왔다.
커다란 접시에 매우 두꺼워 보이는 스테이크, 더운 야채, 감자튀김, 야채 볶음밥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여러 가지 소스들이 담긴 종지가 놓여졌다.
“맛있게 드십시오.”
명왕은 자신의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것은 깃발이 꽂힌 어린이 정식이었다.
오만 살인 주제에 저런 모습에 저런 음식을 먹다니. 쯔쯔, 나잇값을 해야지.
“저기, 그런데 그러면 신의 수명은 얼마입니까?”
“없습니다.”
“네?”
없다고?
“신은 절대 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영혼은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자세한 것은 주신께 들으시길.”
그리고 다시 음식에 시선을 돌린 명왕.
그러면 나도…….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2 신이 되다(1)
식사가 끝난 후 명왕이 아기자기한 하얀 손으로 내 팔을 붙잡았다.
“주신께 갈 겁니다.”
그 말과 함께 갑자기 주변이 바뀌었다.
우주였다.
어두운 곳에 무수히 밝게 빛나는 별들.
그리고 그 사이에 안락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흔들거리며 파이프담배를 피며 커다란 거울을 바라보는 하얀 수염을 배까지 기른 늙은 남자, 이자가 주신이었다.
“뭐냐?”
“명왕입니다. 주신이시여.”
명왕이 주신에게 공손히 절하자 나도 엉거주춤 따라 했다.
“이번에 확률 삼천 대 일인 추첨으로 뽑힌 아이냐? 신이 될 아이인 것이냐?”
“그렇습니다.”
부드러운 눈빛으로 주신이 내 전신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흐음, 그래. 그러면 네가 3,562번째 신이 되는 아이로구나. 아이야, 이리 오렴.”
난 그의 말에 홀린 듯이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마치 어린아이를 부르는 듯한 말투였지만 왠지 그의 말에 편한 느낌이 들었다.
“흠∼.”
그가 내 머리에 손을 올렸다.
[아무것도 없는 혼돈의 바다에서 씨앗을 터트려 만물을 창조한 주신의 이름으로 묻겠다. 전지전능하며, 절대자이며, 불멸의 신이 되겠는가?]
“…….”
아, 대답하는 건가?
“네, 되겠습니다.”
[신이 되어 너의 백성, 너를 믿고 의지하는 자들을 위해 봉사를 할 것인가?]
“네, 하겠습니다.”
[신이 되어 특정 민족, 종족들만 편파하지 않도록 할 것인가?]
“네, 그렇습니다.”
[신이 되어 잘생긴 자도 못생긴 자도 왕도, 거지도, 왕비도, 창부도 가리지 않고 사랑할 것인가?]
“네, 그렇습니다.”
[주신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한 행성을 다스리는 신이 되어라.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샤펜이다.]
화아아악!
“크윽!”
황금빛 물결이 내 몸을 감쌌다.
번쩍!
황금빛 물결이 내 전신을 감쌌을 때 눈부신 빛이 번쩍였다.
“윽!”
명왕이 번쩍이는 내 몸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손으로 빛을 가렸다.
“기운을 줄이거라. 신인 너는 모든 것을 네 의지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속으로 네가 원하는 것을 생각해라.”
기운을 줄이라고?
허억!
내 몸에 빛나던 빛이 점점 줄어들더니 이내 얼굴에 후광만 남게 되었다.
“그래, 그래, 잘했다.”
주신이 거울에 손짓을 하자 거울이 내 앞으로 움직였다.
“네가 다스릴 행성을 고르거라.”
거울에서 여러 가지 행성들이 나왔다.
“저기,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무어냐?”
“제가 전에 살던 지구와 같은 행성이었으면 합니다.”
순간 주신의 눈동자가 커지고 말았다.
왜 그러시는 거지?
“지구……라고 했느냐?”
“네.”
주신의 파이프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고 눈을 감은 채 애수 어린 표정으로 생각에 빠졌다.
난 그동안 기다려 주었다.
“……지구라……. 반가우면서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구나.”
“지구를 아십니까?”
내가 묻자 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럼, 알다마다. 바로 내가 맨 처음에 만든 생명이 사는 네 개의 행성 중 하나였으니까.”
네?
“그, 그러시면? 지금도 다스리십니까?”
“귀찮아서 포기했다.”
그가 쑥스럽게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네?”
난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네 개의 행성, 네 가지 다른 이론으로 세계를 만들었는데 도대체가 그것들이 좀 말썽이어야지. 그래서 그냥 알아서 살라고 포기해 버린 곳이지.”
갑자기 주신의 이미지가 매우 저렴하게 보였다.
“그래, 이게 낫겠군.”
주신이 행성 하나를 가리키자 거울에서 그 행성이 확대되었다.
“크기도 지구와 비슷하고 시간도 24시간, 위성이 두 개이지만 괜찮을 것 같군.”
그 행성은 금성처럼 누런 구름으로 뒤덮인 행성이었다.
“이 행성을 소개하자면, 음…… 지구의 지식으로 말하자면 금성과 같은 곳이다.”
아, 내 예상이 맞았다.
“이곳을 네 힘으로 개척해서 생명의 꽃이 필 수 있는 땅으로 만들어 보거라. 의지력만 발휘한다면 어렵지 않을 것이니 걱정 말거라.”
“저, 근데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이 됐지만 뭘 어떻게 해야 금성(일단은 금성이라고 치자)을 사람이 사는 환경으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넌 신이다.”
네, 그런데요?
“넌 신이기에 모든 것이 네 의지에 따라서 움직이게 되어 있다. 그러니 그 행성을 네 의지에 따라서 움직여 보거라.”
의지력? 내 의지력에 모든 것이 변한단 말인가?
“너를 보좌하기 위해 내가 천사 하나를 붙여 주겠다.”
천사?
“알겠습니다.”
주신이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자, 명왕을 따라 나가거라. 그곳에 미리 천사가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 가서 열심히 살아라.”
“자, 가자.”
무시무시할 정도로 새하얀 명왕의 손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다시 주변이 바뀌었다.
이곳은?
“여기는 신계야.”
밝은 햇살이 구름을 통해서 비치고, 여러 가지 예쁜 꽃들이 핀 동산에 과일나무에는 열매가 철을 가리지 않고 맺혀 있고 맑은 계곡물에는 돌멩이 대신 보석들이 보였다.
돌 대신에 보석들이 널린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