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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펜의 유희 1권(5화)
2 신이 되다(2)


“와하하!”
“깔깔깔!”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 둘이서 멋진 양복과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바지와 치마를 살짝 걷어 올리고 발을 물에 담가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그들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계속 자지러지게 웃고 있었다.
그들 옆에는 원피스 같은 흰색 옷을 입은 자가 술잔과 술병, 과일이 담긴 쟁반을 든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의 등에는 커다랗고 하얀 날개가 있었고 머리에는 링이 있었다.
“저게 천사인가요?”
“그래.”
명왕의 말투가 원상복귀됐다.
“…….”
“왜, 내 말투가 도로 변해서 마음에 안 들어? 신 후보자를 중히 모시라는 주신의 명령이 있었으니까 그런 거야. 하지만 넌 신이 되었지, 명왕도 신과 동급이라구. 너한테 존댓말을 쓸 이유가 없는 거라구. 너도 편하게 말해.”
젠장, 그런 거였어?
“뭐, 어쨌든.”
스윽.
명왕이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 지내 보자, 샤펜.”
씨익 웃으며 명왕이 악수를 청했다. 여태까지와 다르게 살가운 표정이었다.
샤펜, 이것이 바로 나의 새로운 이름이다.
“그래.”
난 그녀의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
“앞으로 자주 놀러 와.”
“어디로?”
“여기로.”
어라?
“나 여기서 사는 거 아냐? 신계라며?”
“아냐.”
명왕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여기 신계는 각자 다른 세계를 관장하는 신들이 모여서 쉬거나 친분을 쌓고 회의하는 일종의 마을 회관 같은 곳이야. 저기에 건물이 보이지?”
명왕이 가리킨 곳은 지평선 부근이었다.
그곳에 마치 우리나라 국회같이 커다란 돔이 있는 건물이 보였다.
“저기가 대회당이야.”
“허, 맙소사.”
그 건물은 황금으로 지었는지 햇빛을 받아서 황금빛으로 번쩍거렸다.
여기서 의지력을 써 볼까? 좀 더 가까이 보여라…….
“…….”
망원경으로 본 듯이 대회당이 확대된 채 보였다.
“…….”
확실히 황금으로 도배했네. 게다가 기둥에 보석이 박혀 있구만. 아주 돈이 썩어나나 봐?
“확실히 신이니까 돈이 썩어날지도?”
“응?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야.”
푸드득!
어디선가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샤펜 님.”
웬 천사가 그에게 다소곳이 한쪽 무릎을 굽히며 말했다.
“……!”
예, 예쁘다!
천사는 여자였는데, 중세 기사처럼 하얀 칠이 된 갑옷을 입은 천사였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가 쓴 투구는 마치 티아라처럼 정교하게 장식된 투구였고 보석까지 박혀 있었다.
그리고 갑옷에는 검과 날개가 조합된 상감무늬 식으로 금을 넣어 놓아서 매우 아름다움을 과시한 갑옷이었다.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얼굴이, 얼굴이! 너무 귀여워!
전형적인 서양여자로 보이는데, 사람의 눈이 어린 사슴처럼 눈망울이 어떻게 저렇게 클 수 있지?
눈동자도 크고, 피부도 아기 피부처럼 뽀얗고, 마치 조각사가 만든 예술 작품인 것처럼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저는 상급 전천사 베그라이텐입니다. 이번에 주신의 명을 받아 샤펜 님을 보좌하게 되었습니다.”
허억! 목소리도 귀엽다!
……근데 이름은 안 어울린다. 베그라이텐이라니! 저렇게 귀여운 모습인데 그런 이름이라니! 전혀 여자 같지 않잖아.
“뭐, 뭐라고? 상급은 둘째 치고 전천사라고?”
명왕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왜, 왜 그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네, 그렇습니다. 명부의 왕이시여.”
“여태까지 주신께서 전천사를 신의 보좌관으로 보낸 적이 없는데?”
명왕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전천사가 그렇게 대단한 거야?
“저희는 오직 주신의 명령에 따라 행동합니다.”
베그라이텐이 고개를 들어 거짓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눈에 힘을 주며 말하였다(전혀 위압감이 없고 귀여워 보인다!).
“저기, 천사랑 전천사의 차이가 뭐야?”
“주신의 군대이자 뽑혀서 신들을 보좌하는 상급 천사들은 거의 반 정도 신에 가까운 힘을 가지고 있는데, 전천사는 그들 중에 뛰어난 천사들을 가려서 뽑아 전투 훈련을 시킨 천사들이야. 이들의 힘은 신의 힘의 사분의 삼 정도로 아주 강력하지. 그렇지만 신의 권능을 쓰지는 못해.”
명왕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어쨌든 나보다는 약하다는 거 아냐?”
“그 정도의 힘만 있어도 세계 하나 날려먹는 건 껌도 아니거든?”
우우, 그런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지 말아 줘.
“샤펜 님, 이제 슬슬 이동을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베그라이텐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어디로?”
“세계를 창조하셔야죠.”
“어, 어디로 가야 하는데?”
“일단 차원을 만들어야죠. 아니, 행성의 이름부터 정해야 합니다. 자, 할 일이 태산입니다.”
덥석!
어이, 이봐, 남자의 손목을 아무렇지 않게 잡으면…….
베그라이텐이 내 손목을 붙잡아 끌고 갔다.
“행성의 좌표는 이미 주신께 들었습니다. 차원의 문을 엽니다.”
쿵!
갑자기 하늘에서 커다란 문 하나가 떨어졌다.
“이, 이봐,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명왕이 다른 쪽 내 팔을 붙잡았다. 둘은 그렇게 대치된 모습을 보였다.
……것보다, 너희 둘 날 능지처참할 생각이냐? 팔 아프다.
“주신께서 서두르라 하셨습니다.”
베그라이텐이 나를 당기는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던 명왕이 힘에 밀려 내 팔을 놓고 말았다.
“우씨, 전천사라고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지!”
“급한 건 급한 겁니다!”
“나 샤펜이랑 하고 싶은 말이 많단 말이야!”
“그런 건 나중에 하십시오!”
덜컥!
그리고 베그라이텐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 너머에 있는 곳은!
……우주였다.
“어? 자, 잠깐!”
우주라니! 우주복도 안 입었단 말이야!


3 세계 창조의 시간(1)


“어? 자, 잠깐!”
우주라니! 우주복도 안 입었단 말이야!”
수, 숨을 참아야 해! 귓구멍도 막고! 눈도 감고! 가만! 우주는 진공상태라서 몸속에 있는 기체들이 무한정으로 팽창해서 사람이 터진다고 했는데?
안 돼! 그렇게 죽을 순 없어! 이 못된 천사 같으니라고! 날 죽이려고 이런 짓을 하다니!
“샤펜 님, 왜 그러십니까?”
응?
눈을 천천히 떠 보았다. 눈을 뜨자마자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보는 베그라이텐의 얼굴이 보였다.
“…….”
주위는 보석 같은 별들이 총총히 뜬 우주와 어디서 많이 본 행성과 위성이 보였다.
아, 저기가 내가 세계를 창조해야 할 곳이구나.
갑자기 손목이 아파 온다. 베그라이텐이 내 손목을 아직 놓지 않고 있었다.
“이제 좀 놔줘.”
“죄, 죄송합니다.”
베그라이텐이 내 손목을 놓으면서 잡았던 손을 문질렀다.
“아까 명왕님 앞인지라 제가 너무 긴장하고 말았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베그라이텐이 말했다.
“저…….”
“왜?”
“일단 차원 먼저 만드시는 게 어떠신지요? 저희가……. 앗! 죄송합니다. 샤펜 님께서 사실 곳이 필요합니다.”
“의지력을 사용하면 되는 거야?”
“네.”
고개를 숙이며 베그라이텐이 말했다.
내가 살 차원아, 생겨라……. 음, 이왕이면 산에 있는 멋진 중세 성처럼 보였으면 좋겠네. 방은 수십 개, 커다란 주방도 두고 커다란 홀도 두고 내 침실도 넓게 두고……. 성의 전체적인 디자인은 독일의 노이슈반슈타인 성같이 첨탑이 솟은 성으로 하되 벽돌이 아닌 바위산을 통째로 아름답게 깎아서 만들고, 산 아래에는 호수와 하늘 높이 솟은 아름드리 소나무로 이루어진 숲으로 두는 거야. 그래! 그리고 폭포! 그리고 그 옆에 정자를 두는 거야. 운치 있게 구경하기 좋잖아!
번쩍!
갑자기 번쩍거리더니 주변이 바뀌기 시작했다.
“와아!”
베그라이텐이 마치 신의 강림을 본 신도처럼 두 손을 모아 내가 만든 차원을 보았다.
“드디어 샤펜계가 만들어졌군요.”
응?
“잠깐, 샤펜계라니?”
왜 거기에 내 이름을 붙이는 거지?
“그야 당연히 샤펜 님이 사실 차원이니까 샤펜계이지요. 보통 차원을 만든 신의 이름을 붙입니다.”
그런 건가? 하긴, 내가 아는 게 별로 없으니까.
“너무 멋있군요!”
베그라이텐이 내가 만든 차원을 보며 감탄을 연발했다.
“성도 멋있고! 와아! 폭포도 있어요! 게다가 호수까지!”
아까와 딴판으로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핀 채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는 베그라이텐.
그렇게 좋냐?
푸드득!
날개를 퍼덕이며 베그라이텐이 날아올랐다.
“한번 주변을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날아가 버렸다.
저기, 아까 빨리 세계를 만들어야 하니까 서둘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렇게 마치 집들이 구경하듯이 가 버리면 어찌합니까?
“휴우∼ 할 수 없지, 혼자 만들고 말지.”
집무실로.
생각과 함께 시야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이곳은 집무실이다. 원형 그리스 식 의회같이 생긴 곳이지만 자리는 오직 하나고 가운데는 행성이 3D입체로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