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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펜의 유희 1권(6화)
3 세계 창조의 시간(2)
“으∼.”
확실히 금성이네. 산성구름들로 뒤덮인 행성.
시작할까?
억눌렀던 기운을 해방하자, 몸에서 광채가 발하였다.
[신의 이름으로 명한다. 산성구름은 사라져라.]
쿠구구구―
누런 산성구름들이 사라지면서 화산 활동이 활발한 화산들과 흐르는 용암들이 보였다.
[신의 이름으로 명하니 화산은 멈추고 물이 있을지어다.]
순식간에 화산들이 굳어지면서 땅에서 맑은 물들이 솟아나왔다.
[하늘은 맑고 시원한 공기가 있는 푸른 하늘이 될지니 이는 신인 나의 뜻이다.]
바다가 만들어지고 파란 하늘에는 흰 구름들이 둥둥 떠다니는 그럭저럭 지구와 비슷한 행성으로 변했다.
“음…….”
꽤 괜찮네? 그럼…….
푸드득!
“자, 잠시만요!”
날갯짓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귀여운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
“베그라이텐?”
얼른 개방했던 기운을 줄였다.
“헉, 헉! 갑자기 샤펜 님의 기운이 느껴져서요.”
철그럭, 철그럭.
갑옷 소리를 내며 그녀가 헉헉거렸다. 어지간히 급히 온 모양이었다.
“저와 상의 없이 그렇게 무작정 세계를 만드시면 어떡합니까?”
집들이 간 주제에.
“네가 샤펜계를 구경한다고 했으니까 그런 거지 뭐. 나 혼자서도 만들 수 있겠더라.”
“안 돼요! 샤펜 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까먹으셨어요!”
중요한 사실?
“뭔데?”
“이곳의 진리를 어떻게 하실 건지 결정하셨나요?”
“진리?”
“예, 보통 마법 아니면 과학으로 결정합니다.”
“마법? 과학? 그게 무슨 소리야?”
“예를 들어 과학으로 하신다면 생명과 퍼트릴 때 진화론적으로 그냥 바다에 생명의 씨앗, 즉 세포를 퍼트려……. 주절주절……. 자연의 균형을 위해서는……. 어쩌구 저쩌구…….”
“…….”
알 수 없는(마치 어떤 교수가 과학계에 논문을 제출하듯이 어려운 문법과 문자들로 가득한) 말을 끊임없이 주절거리는 베그라이텐.
슬슬 머리가 아파 오기 시작했다.
“……그러면, 마법은 어떻게 하는 거야?”
난 그녀의 말을 잘랐다.
“세계를 창조하신 다음에 자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정령왕들을 두시고…….”
또 연설하려고?!
“그래그래, 알았어. 정령왕을 소환하면 되는 거지?”
“그전에 샤펜 님이 이 행성의 진리를 마법으로 선포하셔야 합니다.”
선포까지 하는 거야?
잠시 인상을 썼지만, 기운을 풀고 입을 열었다.
[앞으로 내 세계의 진리는 마법으로 선포한다.]
내 손에서 기운들이 뻗어 나가더니 행성을 감쌌다.
[마법이란 이 세상을 구성하는 원소, 즉 마나를 다룰 수 있는 힘, 또는 마나로 법칙을 바꾸는 힘, 또는 나의 권능의 일부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갑자기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힘을 많이 사용한 부작용 같았다.
[신의 이름으로 명한다. 물, 불, 땅, 바람의 근원이 생길지어다.]
펑!
내 앞에 물덩어리와 불덩어리, 흙으로 된 공, 회오리바람이 나타났다.
[너희의 이름은 각각 엘라임, 샐리온, 노아스, 실피드라고 짓겠다. 너희는 너희가 살 정령계를 만들고 너희들의 권속을 두어 내가 만드는 이 세계의 자연을 관장하라.]
팟!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들은 폭발하듯이 사라졌다.
“샤펜 님, 이것을 받으세요.”
베그라이텐이 나에게 자루 하나를 넘겨주었다.
“이게 뭐야?”
“주신께서 주신 땅의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씨를 가진 열매 맺는 나무의 씨앗들입니다. 주신께서 특별히 주셨어요.”
“그래? 잘됐네. 그거 어서 땅에다 뿌리고 와.”
“네? 제가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 베그라이텐.
“그럼 내가 뿌리리?”
“명령만 내리시면 저절로 뿌려질 텐데.”
“힘들어. 정신적으로 매우 피곤해.”
“그, 그렇지만.”
크크, 걸렸어.
“너도 일해 봐야지.”
도끼눈으로 베그라이텐을 노려보았다. 녀석은 내 보좌관이다. 난 상관이다. 보좌관은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베그라이텐은 자루를 쥐고 집무실을 나갔다.
“그래, 수고해라.”
난 나가는 그녀를 배웅해 주었다.
“가서 열심히 뿌리고 와. 크크크.”
그녀가 사라진 걸 확인하고 뒷말까지 은근슬쩍 남겨 주었다.
“하암∼.”
힘 좀 썼더니 졸리네.
자야겠다.
침실로.
역시나 의지와 함께 주변이 포근한 침실로 바뀌었다.
“온돌방이 최고지.”
내 침실은 전생에 살던 한국의 내 방과 비슷하게 되었다. 방의 크기는 우리 집 아파트 평수랑 똑같지만 좌식 생활을 했던 나는 신이 되어서도 좌식 생활을 하기로 했다. 좌식 책상, 커다란 좌식 소파와 여러 가지 장식물들로 내 방은 아주 멋져 보였다.
“으윽.”
난 교복을 벗고(죽었을 때 교복을 입고 있어서 여태까지 교복을 입은 상태였다) 부드러운 비단 솜이불에 들어갔다. 바닥은 잘 달궈졌는지 따뜻했다.
죽어서 신이 되고 처음으로 자는 날이었다.
“으으…….”
지금 몇 시지? 학교 가야……. 아, 나 죽어서 신 됐지?
“아함, 잘 잤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어디서 여자아이 같은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억!”
노랑머리를 양 갈래로 나눠서 땋아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날개 달린 여자가 옆에 있었다. 하얀색 제복에 황금색 아길레떼를 착용하고 옆에는 예식용(화려해 보여서 전투용은 아닌 것 같다)장검을 가진 전형적인 여성장교의 모습이었다.
“누, 누구세요?”
난 벽에 착 달라붙어 그녀와 최대한 떨어졌다.
“저, 전데요?”
아, 너였냐?
“베그라이텐?”
“네.”
“다른 사람인 줄 알았잖아. 근데 왜 자고 있는 사람 옆에서 그런 옷을 입고 앉아 있는 거야? 부담되게.”
“전천사의 평상시 입는 지급품입니다. 게다가 저는 샤펜 님의 보좌관이지 않습니까?”
“보좌관이면…….”
“상관의 안전을 위해 옆에서 지켜야지요.”
“…….”
어쭈, 내 말 자르네?
“자, 샤펜 님, 세계 창조를 마저 끝내셔야지요.”
“응? 그거 끝난 거 아냐?”
“끝나다니요. 아직 생명체를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아, 그런가?
“어제 제가 씨를 뿌리고 저의 힘을 이용해서 온갖 풀과 나무들을 자라나게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생명이 살지 않는 무생행성인지라 허전합니다.”
“알겠어. 씻고 나서…….”
“샤펜 님은 씻지 않으셔도 됩니다. 신이라서 때도 끼지 않으니까요.”
“그래?”
신이 되고 나서 편한 것도 있네.
“자, 그리고 이걸 받으세요.”
베그라이텐이 웬 책자를 넘겨주었다.
“이건 뭐야?”
“샤펜 님이 세계 창조를 하기 위한 안내책자입니다. 제가 샤펜 님 주무시는 동안 만들었습니다. 이 안내책자를 따라서 하시면 될 것입니다.”
“그래?”
친절해서 마음에 든다.
“알겠어.”
난 일어나서 옷을…….
“…….”
난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
“샤펜 님, 왜 그러세요?”
저, 저기 말이야, 남자가 이런 모습으로 있으면…….
“고개 좀 돌려줄래? 옷 좀 입게.”
난 지금 흰 티셔츠와 팬티 차림이었다. 근데 베그라이텐은 아무렇지 않게 날 보고 있다.
저리 가라구.
“네?”
베그라이텐에게서 나온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과 말투.
남녀 개념이 없는 것이냐!
“당장 고개 돌리지 못해?!”
“아, 예!”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는 베그라이텐.
마음에 안 든다.
“이제 고개 돌려도 돼.”
“앗!”
뭐야?
베그라이텐이 날 보더니 양손을 얼굴에 붙이며 비명을 질렀다.
“샤펜 님! 어째서 그런 옷을 입으시는 겁니까? 신께서 그런 옷을 입으시다니!”
“뭐, 뭐가? 내 교복이 어때서?”
그렇다. 난 자연스럽게 교복을 입은 것이었다.
뭐가 문제 있는 건가?
“당장 벗고 다른 옷을 입으세요. 제가 신에 걸맞는 옷을 가져오겠습니다.”
베그라이텐은 사라지더니 2분도 안 돼서 금방 나타났다.
“자, 이 옷으로 갈아입으세요, 샤펜 님.”
베그라이텐이 가지고 온 옷은 마치 교황이 입는 옷이랑 비슷했다. 백색에 황금실로 수놓여진 옷과 교황이 쓰던 그 큰 모자 비슷한 황금실로 수놓여지고 보석이 박힌 모자와 군대에서 장군들이 쓰는, 끝에 내 주먹만 한 둥그런 보석이 박힌 기다란 지팡이까지 있었다.
“뭐야, 이건. 소매가 넓어서 활동하기 불편하겠다.”
“그래도 신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서는 필요합니다.”
누구한테 무슨 위엄을 세운다는 거야?
“싫어, 이런 건 안 입을 거야.”
“안 돼요. 제가 그렇게는 눈뜨고 못 봐요! 그렇게 입으시지 않으시면 제가 샤펜 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다고 동료 천사들에게 눈총 받게 돼요.”
“그건 내 알 바 아니야! 아무튼 난 그렇게 넓은 옷은 못 입으니까 그런 줄 알아.”
“그렇게는 못합니다!”
어어?
와락! 풀썩!
아악! 머리가!
베그라이텐이 나를 덮쳐서 누인 다음에 그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예리한 단도를 꺼내 들었다.
“자, 잠깐! 컥!”
베그라이텐이 내 턱을 손으로 눌러 입을 열지 못하게 하였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 베여요.”
부욱!
컥!
내 옷을 칼로 자르고 있다! 안 돼!
찌익!
이제는 찢고 있어! 그러지 마!
부우우우우욱!
“읍읍!”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