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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펜의 유희 1권(7화)
3 세계 창조의 시간(3)
“으흑흑흑흑.”
“그렇게 슬픈 겁니까?”
이, 이 나쁜!
“흑흑흑!”
베그라이텐, 이 여자는 결국 내 교복을 다 찢어 버리고 말았다. 교복을 찢는 것까진 괜찮았는데 속옷까지 찢어서(알고 보니 베그라이텐이 준비한 옷 중에 속옷도 있었다) 강제로 갈아입혔다.
“흑흑흑흑. 넌 남녀 구분도 없는 거냐?”
“천사는 신의 종, 종이 주인의 옷을 갈아입혀 주는 건 당연한 겁니다.”
글러먹었어.
“훌쩍, 그래 아무튼 종족들을 만들어 보자.”
우리가 있는 곳은 집무실이었다.
“호오? 풀이나 나무들이 벌써 다 자라서 초록으로 붐비네?”
“네. 하지만 균형을 위해 호수나 늪, 초원, 사막 등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주 아름답고 보기 좋구나.”
확실히 내가 본 지구와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멋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자, 그러면 샤펜 님, 이 세계의 이름을 뭐라고 부르시겠습니까?”
“응?”
그거, 생각해 두지 않았는데…….
“음…….”
이곳의 지형, 중앙에 거대한 덩어리의 대륙밖에 없지? 주위에 크고 작은 섬들도 몇 개 있고. 지구에서 가장 큰 대륙이라면…….
“아시아로 하지.”
“아시아요? 뜻이 무엇입니까?”
“심오한 뜻이 있어. 묻지 마.”
“알겠습니다.”
의외로 쉽게 넘어간다.
“그나저나 종족은 뭘로 만들까나.”
마법이 있으니까 드워프나 엘프는 기본으로 있고, 수인족(라이칸 슬로프)에다가 인어도 넣어주고 드래곤에다가 마족, 천족, 아니 이것들은 마계나 천계에다가 두고. 뱀파이어도 넣고 몬스터 같은 오우거나, 트롤, 오크, 웨어울프, 고스트, 가고일, 그리핀, 슬라임, 와이번 등등, 온갖 짐승들 새 육상동물 해상동물…….
“좋아, 대충 생각해 뒀으니 시작한다.”
“여기 받으세요.”
베그라이텐이 사람 크기만 한 점토가 두 덩어리 놓여진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접시를 주었다.
[나 샤펜의 이름으로 말하니 너희는 일단 나와 비슷한 인간의 남녀 한 쌍으로 변하라.]
뭉클뭉클.
점토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더니 이내 멋있는, 나신의 남녀 한 쌍으로 변하였다.
[너희 족속들의 이름은 엘프다. 너희는 나의 사랑을 받아 자손대대로 아름다운 모습을 하게 될 것이며 수명 또한 일천 년에 이르는 무궁무진한 수명을 얻게 될 것이다. 또한 너희는 귀와 눈이 좋아 너희의 시야를 방해하는 것과 듣지 못하는 것은 없으리로다.]
내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그것들의 귀가 길쭉하게 자라났다.
[너희의 숙명은 생명의 보고인 숲, 즉 자연을 사랑하며 가꾸고, 수호하는 일이다. 식사는 주로 과일이나 야생곡식, 때때로 사냥을 하여 고기를 먹는 것이다. 내 너희들을 위해 너희들을 수호하는, 또는 너희가 나의 은총을 받았다는 증표, 또는 너희가 지켜야 할 세계수를 내리니 너희는 받아 이 나무를 잘 기르라.]
난 다시 베그라이텐에게서 작은 묘목을 받아 그들 사이에 놓아주었다.
[자, 엘프여, 나의 숨결을 받아 생명을 얻으라.]
“후∼ 후∼!”
난 그들의 코에 각자 숨결을 불어넣어 주었다.
쩌저적! 쩌쩍!
점토들이 갈라지더니 완벽하게 살아 숨 쉬는 엘프 남녀가 만들어졌다. 그들은 나를 보더니 무릎을 꿇고 절을 하였다.
[가라, 너희가 살 곳은 동쪽의 광활한 대숲이니라.]
그들은 각자 하나의 빛이 되어 아시아의 동쪽으로 날아갔다.
“휴우∼ 말하기 참 힘드네. 자, 다음은 드워프로 하자.”
“네.”
[나 샤펜의 이름으로 말하니 너희는 일단 나와 비슷하지만 키가 작은 인간의 남녀 한 쌍으로 변하라.]
이번에도 인간과 비슷하지만 키가 작은 남녀 한 쌍이 만들어졌다.
[너희는…….]
이렇게 해서 아시아 대륙에 살 종족들은 엘프, 드워프, 수인족, 인어, 뱀파이어가 되었다.
엘프에겐 아름다움과 긴 수명을 주었고, 드워프는 키가 작은 대신에 가장 강한 체력과 손재주를, 하체가 물고기의 꼬리인 인어에게는 물에서 숨을 쉴 수 있게 하였고, 수인족에게는 팔, 다리, 귀가 여우나 토끼, 개, 호랑이, 사자와 같이(꼬리도 주었다) 뛰어난 후각, 동물과의 교감능력, 동물과 같은 민첩한 능력을 가질 수 있게 했다. 뱀파이어에겐 뛰어난 미모와 박쥐로 변하는 능력, 엘프보다는 아니지만 긴 수명을 주었지만, 피를 마시지 않으면 말라죽는 숙명을 주었다. 다만 햇빛에 타죽는 숙명은 주지 않았다.
그리고 엘프에겐 동쪽의 대숲을, 드워프에겐 북쪽의 무궁무진한 자원이 많은 돌산맥을, 수인족에겐 남쪽의 거대한 열대우림과 초원을, 인어에겐 대륙을 감싸는 바다를, 뱀파이어에겐 서쪽의 늪이 많은 평야를 주었다.
중간계를 관리하기 위해서 드래곤 레드, 실버, 블루, 블랙, 그린, 골드를 각각 한 쌍씩 두고, 천족과 마족을 만들었고 또 그들을 대표하는 빛의 신과 어둠의 신도 만들었다. 이들은 내 전체 힘의 이분의 일을 반으로 나눠서 주었다. 난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세상에는 빛이 있듯이 어둠도 존재하는 법. 너희 천족은 빛을 대표하고 마족은 어둠을 대표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빛이 선은 아니고 어둠이 곧 악은 아니다. 너희에겐 각자 천계와 마계라는 다른 차원의 세계를 줄 테니 그곳에서 살며 둘이 공존하도록 하라. 나의 자식들아, 다시 한 번 경고하건대 중간계를 차지할 생각을 말도록 하라. 균형이 깨지면 오히려 세계 자체가 붕괴할 위험이 있으니.]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둘이 노려보며 으르렁거리는 빛의 신과 천족, 어둠의 신과 마족들을 보며 난 경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물과 기름은 섞일 수 없는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인간입니다.”
베그라이텐이 점토덩어리 두 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 힘들어, 힘들어. 좀 쉬었다 하면 안 될까? 힘을 많이 소진했어. 중급 신들이지만 빛의 신과 어둠의 신 둘 다 합쳐서 두 명이나 만들었다고.”
“그런 것쯤 한번 자고 일어나면 회복됩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신들도 상, 중, 하로 나뉜다. 상급은 주신의 권능으로 만들어지고, 중급 신은 상급 신이 자신이 관장하는 세계의 균형을 위해 내가 만든 것처럼 만든다. 그리고 하급 신은 중급 신이 또 자신의 힘을 나눠 천사들을 만드는데, 그중 몇 명은 날개를 떼라고 한다. 천사에게는 날개를 뗀다는 것은 신으로 승격되는 것이다. 물론 날개를 떼는 것과 동시에 다른 천사들에 비해서 많이 강해진다.
이와 같이 천사들도 엄격하게 신분제가 있는데 최상급은 베그라이텐이 속한 전천사로 이루어지고, 상급 천사는 주신의 힘으로 만들어진 천사들이었다. 중급 천사는 상급 신들이 자신의 일을 위해 두는 천사들이다. 하급 천사들은 중급 신들이 두는 천사들로, 이 천사들은 하급 신들로 격상이 된다고 해도 중급 천사보다는 약했다.
“조금만 쉬자. 응?”
베그라이텐이 뼛속까지 불만인 얼굴로 본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 줘…….
“제가 주스 만들어 드릴까요?”
“레몬에 탄산 추가.”
“바라는 것도 많으시네요.”
“가끔 생각하는 건데 너 내 부하 맞어?”
“네, 맞습니다.”
말하는 건 잘해.
베그라이텐이 주스 가지고 오는 동안 난 집무실에 퍼질러 누웠다. 이제 인간만 만들면 내 일은 끝나는 것이다. 난 상급 신이자 이 아시아 대륙의 창조신. 내 일은 창조만 하면 그만이다. 나머지는 빛의 신과 어둠의 신이 알아서 잘 다스려 줄 것이다.
한마디로 탱자탱자 놀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 어찌 기분이 아니 좋을 수 있단 말인가?
“자, 여기 레몬 주스입니다. 탄산도 넣었고 어름도 띄웠습니다.”
베그라이텐이 맥주잔같이 큰 유리잔을 내려놓았다. 탄산 물방울에 얼음이 동동 띄워지고 작은 레몬이 두둥실 떠다니고 유리잔 표면에 서리가 맺인 것만 봐도 매우 시원하고 맛있어 보였다.
“오∼ 고마워!”
난 자리에서 일어나 한 잔을 쭉 들이켰다. 톡 쏘는 탄산과 레몬의 시큼한 맛! 시원한 얼음 설탕을 풀었는지 단맛이 느껴져서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이야∼ 맛 좋다.”
“그럼요. 누가 만든 건데요.”
녀석, 내 칭찬에 기가 살아서 콧대가 하늘로 치솟는다.
“아무튼 그거 다 드시고 나면 마지막으로 인간을 창조하셔야 합니다.”
“그래, 알겠으니까 그만해.”
마저 주스를 마시며 말했다. 갑자기 달콤하던 레몬 주스 맛이 쓰게 느껴졌다.
“하아∼”
“빨리 하십시오.”
거참, 부하 주제에 더럽게 재촉하네.
“알겠어.”
이러다가 신으로서의 위엄이 사라지는 거 아냐?
[나 샤펜의 이름으로 말하니 너희는 나와 똑같은 인간의 남녀 한 쌍으로 변하라.]
뭉클뭉클.
살아 있는 생물처럼 움직이며 점토덩어리들이 사람 형상을 해 나갔다.
[너희는 나의 모습과 똑같은 모습으로 만들었다. 너희 족속들을 인간으로 부르겠다. 너희에게는 다른 족속들처럼 능력을 주지 않을 것이다. 가장 나약한 존재가 되겠지만 너희에게는 황금보다도 귀한 여러 가지 재능을 내리겠다. 그것들 중 일부는 나의 권능의 일부이기도 하다. 또한 다른 족속들에게 주어진 숙명을 내리지 않겠다.]
그렇게 말하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인간이여, 나 샤펜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약속한다. 너희 족속들이 멸망할 위험에 처하게 되면 내가 너희를 구원할 수 있는 증표를 주겠다.]
그것은 하얀색 도자기 같은 돌멩이였다. 난 그 돌을 그들 사이에 놓아 주었다.
[이것은 약속의 증표다. 너희는 너희 족속이 아주 위험할 때만 이것을 사용하도록 하라. 자, 인간이여, 나의 숨결을 받아 생명을 얻어라.]
“후∼ 후∼!”
그들의 코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쩌저적, 쩌적.
점표 표면이 깨지면서 살아 있는 인간 남자와 여자가 완성되었다. 인간 남자 하나가 약속의 징표인 돌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둘은 내게 무릎을 꿇었다.
[가라. 너희가 살 곳은 대륙 중앙의 거대한 강이 흐르는 기름진 평야다.]
인간들도 빛이 되어 행성의 중앙으로 날아갔다.
“휴우∼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