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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펜의 유희 1권(13화)
4 새 친구(6)


퍼억!
“커헉!”
헉!
나르가 둔켈에게 박치기를 하였다.
“뭐하는 짓이야?”
퍽!
이번에는 둔켈이 발차기를 하였다.
“꺄악!”
이번에는 나르가 자빠졌다.
“지금 뭐하는 짓인가?! 너희를 믿고 따르는 신도들이 보이지 않는 가?!”
“헉!”
“헐!”
아, 이 어리석은 것들이 정말 신이란 말인가?
겨우 말 같지도 않은 걸로 싸우다니.
애도 아니고 결혼식장 위치 정하는 것 때문에 싸워서 성전까지 일어났다?
이번 성전으로 죽은 인간들과 수인족들이 이 사실을 들으면 어떻게 반응할까?
“…….”
아무래도 개종을 하겠지?
어쨌든 숨겨야겠군.
“리리야?”
“알아요, 샤펜 님. 이 일을 비밀로 해야 한다는 것을요.”
“똑똑하구나.”
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너희 둘은 들어라.”
“네.”
“예.”
“결혼식장은 내가 살고 있는 샤펜계에서 거행하도록 하겠다.”
“네?”
“예?”
이것들이.
“내 말을 자르지 말고 듣도록! 서로 상대 진영에서 결혼식을 올리지 않겠다고 하니 방법이 없지 않느냐? 내가 살고 있는 샤펜계에서 식을 올리는 것이 나쁘냐?”
“괘, 괜찮습니다.”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좋다. 그 대신 내가 이번 일은 모르는 것으로 하겠다. 공식적으로는 둘의 오해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한 후 죽은 인간들과 수인족들에게 큰 축복을 내려야 할 것이다. 특히 큰 피해자인 수인족들에게 말이다.”
“알겠습니다, 샤펜이시여.”
“모든 것은 당신의 뜻대로.”
“좋아. 베그라이텐?”
베그라이텐을 부르자 그녀가 내 앞에 나와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검에는 피와 깃털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네.”
“결혼식 준비를 해 줘야겠어. 천사들에게 명해서 모기에 물리고 있는 것들을 전부 풀어 줘. 천계, 마계, 이곳 중간계에 살고 있는 모든 지도자들에게는 초청장을 보내고.”
씨익!
그리고 그녀에게 웃어 보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녀도 눈웃음으로 답했다.
“포승을 풀어 줘라.”
“네.”
다시 팔을 휘둘러 진공막을 해제했다.
“자, 리리. 이제 내려가거라. 또 눈이 부실라.”
“네.”
착하기도 하지.
번쩍!
[모두들! 들어라!]
인간들과 수인족들이 고개를 숙였다.
[이번 성전은 빛의 신 나르와 어둠의 신 둔켈의 오해로 일어난 것이다. 조그만 한 오해로 인해 전쟁이 일어나고 학살이 일어난 것에 대해 나 창조신 샤펜으로서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난 주위를 빙 둘러보았다. 모두들 고개를 숙인 채 대답이 없었다.
[난 방금 나르와 둔켈의 이야기를 듣고 둘의 오해를 풀어 주었다. 이제 두 신은 서로 화해를 하고 내가 기거하는 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으니 너희는 이 둘의 결혼을 축복해 주도록 하여라.]
“인정할 수 없습니다!”
갑자기 수인족 하나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아까 그 복수에 불타오르던 수인족이었다.
[뭔가?]
“저희는 인간들 때문에 집도 잃고 가족도 잃었습니다. 불과 네 시간 전까지만 해도 저와 이야기를 나누던 애인은 지금 목이 잘린 차디찬 시체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전쟁을 그만하고 화해하며 신들의 결혼을 축복하라니요?!”
[그러면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건가? 만약 네가 나의 힘을 받아 여기 있는 인간들을 죽인다고 치자. 저 인간 병사에게는 가족이 없을 것 같나? 애인은? 가족은? 전부 다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자들이다. 만약 이들이 죽는다면 이 병사의 자식이 복수를 하기 위해 검을 들고 수인족들을 죽일 테고, 그러면 죽은 수인족의 복수를 위해 누군가가 또 검을 집어 들 텐데, 너는 그 끝이 없는 전쟁을 시작하겠다는 것이냐?]
“그, 그건…….”
[젊은 초원의 아들아, 너의 분노와 슬픔은 잘 알겠지만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을 뿐이다.]
털썩!
“그, 그러면 저는 어찌하오리까? 저의 죽은 애인은 어떡합니까?”
그가 울먹거렸다.
[그대는 아직 젊다.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야.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듯이, 새로운 이성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샤펜이시여, 차라리 죽은 저의 애인을 다시 부활시킬 수 없겠나이까?”
[그건 안 된다. 생명이 살고 죽는 것은 명부의 권한. 그것은 이미 정해진 것이다. 죽은 자는 되살릴 수 없다.]
“그, 그럴 수가.”
[미안하구나. 내가 아무리 명부의 왕을 만난다고 해도 명부의 왕은 고집이 세서 들어주기 힘들 것이다.]
“으아아아아∼!”
슬픔으로 울부짖는 수인족 청년을 보니 괜히 내 마음도 울적해졌다.

“……이렇게 해서 신랑 둔켈과 신부 나르가 정식으로 부부가 됐음을 선포한다.”
펑! 펑! 펑!
나의 선포와 동시에 천사들이 폭죽을 터트렸다.
그리고 둔켈과 나르의 키스가 이어졌다.
짝짝짝짝!
하객은 명왕, 데네브, 베그라이텐과 200의 천사들, 하급 천사들과 각 종족의 수장급들이었다.
결혼식은 호수 옆에 있는 넓은 잔디밭에서 거행하였다.
그 이유는 물속에서만 살 수 있는 인어들을 배려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하객들은 서로 모르고 살았기(아직 각 문명들끼리의 교류가 없었다) 때문에 뭔가 불편한 눈치였다.
인간들이 수인족들이 있는 남쪽으로 쳐들어 간 것도 나르의 계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곳에 수인족들이 있는 줄도 모르고 두 달 가까이 이동해서 수인족들을 공격한 것이었다.
“그럼, 신랑 신부 행진.”
빰빠빠빰 빰빠∼
아직 그렇다 할 악기가 없었기에 천사들 중 50명을 뽑아 나팔을 연주하게 했다.
푸드득! 푸득!
하급 천사들이 그들 위에 날아다니며 꽃잎과 꽃송이를 뿌렸다.
이제 막 신혼인 신랑 신부는 행진하면서 그 꽃들을 밟고 나아갔다.
스릉! 척!
또 그들을 옆으로 나머지 천사들이 완전무장한 채 창이나 검을 뽑아 서로 교차하면서 문을 만들어 주었다.
“휴우∼ 끝났네.”
난 주례 연단을 내려왔다.
척.
“앗, 차가워.”
누군가가 레몬에다가 얼음이 띄워진 탄산음료를 주었다.
“수고했어. 너, 긴장해 가지고 땀을 조금 흘리더군.”
명왕이었다.
“고마워. 근데 그것은 어떻게 안 되겠어?”
“안 돼.”
역시.
혹시나 해서 그 수인족 청년의 부탁을 명왕에게 물었지만 역시 대답은 ‘안 돼’였다.
“생명체가 죽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야. 그것은 절대로 거스를 수 없어.”
“그렇지만 우린 거스를 수 있잖아.”
“우린 신이잖아.”
“겨우 신이라는 이유로…….”
“‘겨우’라니, 얌마. 우리는 그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거라고. 이번 일을 도와준다고 치자, 그럼 다음에는 어떻게 할래?”
“그건…….”
“그러니까 도와줄 수 없는 거라고. 그런 생각은 그만두는 게 좋을 거야.”
“알겠어.”
휴우∼ 음?
“근데 명왕.”
“왜?”
“데네브 말이야, 왜 저렇게 두리번거려?”
“응?”
식이 끝나고 연회가 시작되었는데 한 손에 술잔을 든 채 데네브가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찾듯이.
“……그냥 냅둬. 근데 왜 정령왕들은 안 보여?”
“정령왕?”
“응.”
“그들도 초대를 했는데 전부 다 거부했어. 일이 많다나?”
“그래?”
“근데 왜?”
“그냥 안 보여서.”
하긴 그럴 만도 하지.
내 세계에서 사는 모든 종족들이 모인 결혼식인데 정령왕들만 안 왔으니까.
“샤펜이시여.”
응?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비단으로 짠 연두색의 소매가 짧은 옷을 입은 젊은 남녀가 나를 보고 있었다.
그들 머리에 올려진 티아라같이 작은 왕관을 보고 그들이 엘프 왕족이나 신관으로 있는 하이엘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말이 나와서 그러는 거지만 하이엘프들은 보통 엘프들보다 더 강력한 정령친화력과 마법을 다룰 수 있고 나의 축복을 더 받아 수명이 3천 년까지 보장된 이들이었다.
“무슨 일이지?”
내 말에 왕비로 보이는 여자 엘프가 자신의 뒤쪽에 숨은 한 어린 여자아이를 앞으로 나오게 했다.
“얘야, 이리 오려무나.”
아이가 낯가림이 심한지 엄마의 치마폭에 얼굴을 묻은 채 한쪽 눈만 빼꼼 내밀어 날 쳐다보았다.
젖살이 빠지지 않은 포동포동한 볼살에 사파이어같이 파란 눈동자를 가진 하얀 머리카락의 아이였다.
“저희의 아이입니다 이름은 에델바이스입니다.”
응? 알프스 산에서만 자란다는 그 꽃?
“멋진 이름이구나.”
“감사합니다.”
“저희 아이에게 축복을 내려 주십사 합니다.”
축복?
“축복? 무슨 축복을 원하는 건가? 장생? 다산? 행복? 아름다움?”
“그 전부를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을 내려 주십사 합니다.”
헐! 전부? 욕심도 많아라. 그리고 나 귀찮다고.
그렇지만 오늘 같은 날 신으로서 축복 내리는 걸 거부할 수는 없겠지.
그런데 엘프들의 왕은 연신 눈을 깜빡이며, 주의를 살피었다.
다른 종족들의 왕이 있을까 봐 걱정되는 듯했다.
“알겠다. 내 최고의 축복을 내려 주마. 자, 에델바이스라고 했지? 이리 오련?”
도리도리.
에델바이스가 고개를 저었다.
“얘야, 괜찮아. 우리 함께 예배드리고 기도드렸던 샤펜 님이시란다.”
이거 얼굴이 화끈거리는구만. 대놓고 그렇게 이야기하면 쑥스럽다고.
“정말이에요?”
“그럼.”
아이가 천천히 한 걸음씩 나에게 왔다.
“괜찮아. 금방 끝나니까.”
난 그 아이에게 손을 올렸다. 그러자 에델바이스가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