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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펜의 유희 1권(15화)
5 명왕, 이계의 신, 신, 천사(1)
창문도 없는, 겨우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밀실.
환기가 되지 않아서 공기도 눅눅하고 숨쉬기 곤란했지만 그런 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으흐흐흐∼.”
모두들에게 기분 나쁘게 누런 이빨을 보이며 웃어댔다.
“샤펜 님, 왜 그러십니까? 기분이 나쁩니다.”
베그라이텐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으흐흐흐∼! 자, 데네브, 네가 뽑을 차례야.”
“네에∼ 그러지요.”
자, 오른쪽 것을 뽑아라! 뽑아!
데네브의 하얀 손이 카드 오른쪽으로 갔다.
씨익∼
“그렇게 기분 나쁘게 웃지 마세요.”
땀을 삐질 흘리며 데네브가 카드를 뽑아 갔다.
좋았어! 이제 한 장!
“커헉!”
급격히 얼굴이 구겨지는 데네브.
“응? 왜 그래?”
명왕이 물었다. 그녀의 카드는 아직 네 장이나 있었다.
“내려놓을 카드가 없어서 그래요. 자, 뽑으세요.”
“그래?”
쓰윽.
“컥!”
“훗.”
엄청난 희비 교차.
쯧쯧, 저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그러면 제가 뽑을 차례이군요.”
베그라이텐이 말했다.
“칫!”
명왕이 자신의 손에 있는 카드를 펼쳐 보여 주었다. 근데 다섯 장 가운데 우뚝 솟은 카드 하나.
훗, 이런 심리전이 가득한 게임에서 저런 짓을 하다니…….
누가 봐도 척 알겠다.
쓱!
“치잇!”
베그라이텐은 역시 다른 카드를 뽑았다.
그것 때문에 베그라이텐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명왕.
“앗! 맞네요.”
베그라이텐이 카드를 가운데에다가 놓았다.
“자, 남은 한 장이에요, 샤펜 님.”
“응.”
이런, 베그라이텐이 먼저 끝났네. 음?
“우오! 나도 끝났다.”
남은 건 데네브와 명왕.
“자, 우리 여유로운 승자들은 승리의 잔을 마실까?”
“네, 샤펜 님. 와인저장고에 다녀오겠습니다.”
“그러면 내가 잔을 가지고 오지.”
고3이었을 때는 술을 입에 댈 생각은 해 보지도 못했는데 요즘은 자주 마신다.
언제 성 밑에 있는 와인저장고를 베그라이텐을 따라 가 봤는데 와인이 수만 병이나 있었다.
그거 언제 다 마실지…….
그런고로 때만 되면 무조건 마시기로 했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거 다 먹기 전에는 죽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깝지 않는가?
물론 난 신이라서 죽지 않지만 그래도 아깝다.
꼭 다 마셔 버릴 것이다.
“저기, 근데 샤펜.”
게임하다 말고 명왕이 물었다.
“게임이나 집중하시지?”
“우우∼ 너 이판 끝나고 보자.”
“이기고나 봐.”
슥.
“오∼ 이제 한 장 남았다.”
데네브가 싱글벙글거리며 카드 세 장 중 두 장을 놓았다.
“으앗! 어느새!”
“그러면 제가 이겼네요, 명왕? 자, 남은 카드 가져가세요.”
결국에는 또 명왕이 지고 말았다.
“핫핫핫핫! 5만 년이나 사셨다면서 겨우 이런 간단한 심리 게임 하나 못하시나? 훗훗훗.”
“으으으윽!”
얼굴이 시뻘게지면서 분을 삭이는 명왕.
“잔은 세 잔만 가지고 와야겠네. 승자들만이 마실 수 있는 거니까.”
“으으으윽! 다시 해!”
“싫어요. 다섯 판이나 했잖아요.”
“다섯 판 중에 난 한 번도 이겨 보지 못했단 말이야!”
억지 부리며 징징거리기 시작하는 명왕.
“아, 거참, 누가 이기지 말랬습니까?”
“그러니까 다시 하자고.”
“싫. 어. 요. 후훗!”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
둘의 모습은 흡사 어린 조카를 가지고 노는 젊은 삼촌 같았다.
“근데 이제 슬슬 이런 게임도 지루하군요.”
갑자기 날 보며 진지하게 말하는 데네브.
“날 무시하지 마! 뒷글자에 ‘요’만 붙이는 고지식한 녀석! 아무튼 게임 다시 해!”
명왕이 날뛰었다.
“와인 가지고 왔어요.”
그 사이에 베그라이텐이 와인을 가지고 왔다.
아!
“맞다. 잔을 안 가지고 왔네.”
“그러실 줄 알고 잔을 제가 가지고 왔습니다.”
베그라이텐이 다른 손에 있는 와인 잔을 보여 주면서 말했다. 그런데 잔이 네 개였다.
“엇? 승자만 마시는 건데 왜 잔을 네 개나 가지고 왔어?”
“그러면 명왕님이 불쌍하잖아요.”
“오오오! 베그라이텐! 너밖에 없구나!”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베그라이텐을 꼭 안는 명왕.
아까는 죽일 듯이 노려봤으면서.
“아까 말하려던 건데, 너 한번 유희 떠나 보지 않을래?”
우아하게 와인을 마시다가(전혀 안 어울려. 어린애가 와인을 마시는 거!) 명왕이 진지하게 말했다.
“유희?”
“응.”
“유희라…….”
귀찮은데.
“마치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시는군요.”
뜨끔!
헉, 어떻게 알았지?
여유롭게 와인 잔을 돌리며 마시는 데네브. 난 그의 출신이 점점 궁금해지고 있다.
“야, 우리도 150년 동안 이렇게 카드 게임하는 것도 지겹다. 한 번 유희를 떠나자.”
이제는 내 팔을 잡아서 졸라대는 명왕.
150년 동안 카드 게임을 했다고?
“…….”
시간 한 번 빨리도 가네.
가만.
“그런데 왜 니네들이 보채?”
그렇다.
한 놈은 명부의 왕이고 다른 한 놈은 다른 세계의 신이다.
내가 유희를 가든 말든 이놈들이 무슨 상관인가?
“그야 우리들도 가 보고 싶으니까 말이지.”
얼씨구? 이놈들 봐라?
“명왕은 둘째 치고 너 데네브는 뭐야? 너는 네놈의 세계에서나 유희 가시지?”
명왕은 부하가 1억 명 이상 있으니까 명왕 하나 빠져도 상관없는데 데네브는 부하가 그렇게 많을 리 없다.
“글쎄요∼ 저희는 아직 그렇다 할 문명이 없어서요. 아직 한 200년은 더 있어야 한다고 테스타멘트가 말해 주었어요.”
테스타멘트는 데네브의 상천사이자 보좌관인데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럴 만도 한 게 데네브는 거의 일을 하지 않고 테스타멘트에게 다 넘기고 가끔 중요한 일만 서류에 사인을 해 주면서 거의 신계에서 놀기 바빴기 때문이었다.
“쳇,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러면 우리 유희로 뭘 할 건데? 아, 고마워.”
베그라이텐이 내 빈 잔에다가 다시 와인을 채워 주었다.
“그야 당연히 무난하게 용병이지!”
“하아?”
용병? 그 돈 받고 싸우는 거?
“이제 네 세계는 거의 봉건사회로 들어갔잖아. 그러면 떠돌이 용병을 하면서 네 세계를 여행하는 것도 괜찮지 않겠어?”
“…….”
귀찮게 그런 고생 거리를?
난 걸어서 여행을 다녀 본 적이 없단 말이야. 뭐하러 유희 따위를 하냐?
“그럼 너 뭐할 건데? 그 어린 몸으로 용병을 한다는 건 아니겠지?”
“나? 음∼ 길 가다가 주워 온 고아.”
“에헤?”
그것 참 간단하네.
“핫핫핫! 잘 어울리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뭐가 좋을까나? 그래, 마법사가 좋겠네요.”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저는 간단하게 기사, 아니 검사로 하면 되겠네요.”
그들의 말에 동참하는 베그라이텐.
“에? 너도 갈 거야?”
“그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샤펜 님이 위험한 일을 하시는데 보좌관인 제가 가서 지켜야죠. 그런데 샤펜 님은 무엇을 하실 겁니까?”
“나? 음…….”
뭐하지? 으……. 그래!
“신관이나 하지. 치료 같은 건 나한테 맡겨.”
그러면서 후방에 빠져서 편하게 싸우는 걸 구경하는 거지.
게다가 요즘 아시아 대륙에서 신관의 대우가 아주 좋다는데.
뭐, 진짜로 갈 생각을 없으니까 상관은 없지만.
“자, 그러면 결정되었으니까 가자!”
주먹 쥐고 팔을 들어 보이며 환호하는 명왕.
에?
“오우!”
명왕을 따라 하며 환호하는 데네브.
“잠시만요! 검이랑 갑옷을 챙겨 오겠습니다!”
베그라이텐, 너마저…….
“뭐, 뭐, 뭐, 뭐야? 정말로 가려고?”
“그럼, 말했으면 가야지.”
철컹!
베그라이텐이 갑옷을 넣은 가죽주머니에 약간 허름해 보이는 가죽옷을 입고 왔다.
“어떤가요? 천사 같지 않죠?”
“아니, 등에 날개 있잖아.”
“아, 맞다!”
슈우우우욱!
“헉!”
갑자기 빨려 들어가듯이 몸속으로 들어가는 날개!
“됐죠?”
말도 안 돼! 이런 만화 같은 일이? 무슨 날개가 나왔다 들어갔다 지 맘대로야?
“그러면, 기다려 봐. 나도 주워 온 아이로 분장해야지.”
“기왕이면 전쟁고아가 어떨까요? 애꾸눈에다가 팔 하나 없고.”
“안 돼! 그러면 내 귀여운 모습이 사라진다고.”
본인이 귀엽다고 하면 기분이 역겨운데.
“자, 이것은 일반 평민들이 입는 옷이랍니다.”
면을 여러 겹으로 짜서 만든 허름한 색의 옷을 명왕에게 주며 데네브가 말했다.
“정말이야?”
“네, 그럼요. 거기다가 하얀 앞치마를 달아 주면 일반 평민 주부라는군요.”
“에? 주부?”
싫은 기색이 역력한 명왕
“주부가 아니면 안 달면 그만이지 않습니까?”
“그건 그러네. 가만? 그러면 너는?”
“저야 뭐, 마법사들이 여행용으로 입는 로브에다가 마법주문이 적힌 마법 책을 옵션으로 들고 다니면 그만이지요. 자, 그러면 샤펜은?”
“신관이니까 신관복을 입어 주면 그만이지.”
“흐음∼ 어쩌지요? 신관복은 구해 두지 못했습니다.”
뭐야? 그러면 다른 건 다 있단 말인가?
“그래? 그러면 구해야겠네?”
“어디서 구할까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심하는 베그라이텐.
“……에이, 귀찮다. 차라리 네가 계시를 내려서 신관복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해.”
“누구한테요?”
“왜 있잖아, 너에게 큰 은혜 입은 엘프들 말이야.”
“아,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