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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펜의 유희 1권(16화)
5 명왕, 이계의 신, 신, 천사(2)


잠깐!
“이봐! 난 안 간다니까? 뭐하려고 사서 고생을 해? 그냥 내 성, 내 방에서 이불 덮고 따뜻하게 있는 게 최고지. 너네가 말하는 건 마치 나보고 고생하자는 말로밖에 안 들리거든?”
“샤펜 님, 신은 영원불멸한데 계속 똑같은 지루한 일상으로 사실 수 있겠습니까?”
“어, 난 살 수 있어.”
“…….”
일단 한 명 침묵.
마키아벨리에게 군주론이 있다면 나 샤펜은 억지론이 있다!
“그렇다면 넌 우리가 유희를 떠난 동안 뭐하면서 지낼래? 전처럼 놀지 못할 거 아냐?”
이번에는 명왕이 딴지를 걸었다.
“훗, 말상대는 너희 말고도 200천사가 있거든? 아, 맞다. 너희가 유희를 떠난 동안 난 계시를 내려서 너희를 잡아 족치라고 하면서 위에서 너희가 어떻게 지내는지 지켜봐야지. 그것도 재미있겠네.”
“…….”
이것으로 두 명 침묵.
오오오∼ 잘하고 있어, 샤펜! 자, 이제 마지막으로 가장 큰 고비를 넘기면 되는 거야!
“훗훗훗훗∼.”
갑자기 웃기 시작한 데네브.
응? 뭐야? 저 사악한 웃음은?
“자, 그러면 저는 주신께 보고서를 하나 올리고 오겠습니다.”
에? 웬 보고서?
“그러고 보니 전에 샤펜 님이 엘프들에게만 강력한 무기를 주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그것도 보고서에다가 넣어 주면 주신께서 아주 좋아하겠습…….”
주신께서 나에게 하시던 말이 생각났다.
‘신이 되어 특정 민족, 종족들만 편파하지 않도록 할 것인가?’
“가, 갈게요.”
“그래야죠. 훗훗훗훗.”
나는 결국 큰 산에 굴복하고 말았다.

“자, 어서 계시를 내리세요.”
“으윽! 알겠어.”
[숲의 아이 중 나의 말이 들리는 신실한 종이 없느냐?]
결국에 난 계시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샤펜이시여, 당신의 신실한 종이 여기 있나이다.
곧장 대답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너는 누구냐?]
―예, 저는 샤펜 님의 신전에서 일하는 여사제이나이다.
[내가 나의 세상에 사는 모든 백성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기 위하여 강림할 것인데 입고 갈 의복이 없으니 너는 속히 내가 입을 옷을 만들라. 단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고 너와 다른 신실한 나의 종들만 알게 두도록.]
―강림을 하신다 이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너희 남자 신관들이 여행 때 입는 여행용 신관복으로 만들어 주도록. 기한은 3일이다. 내가 강림하는 시간은 저녁 불의 달 시간이다.]
이 세계에는 달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빨간색이어서 불의 달이라고 불리고 나머지 하나는 파란색이어서 물의 달이라고 불린다.
물의 달은 정오서부터 떠 있지만 태양 때문에 안 보이다가 태양이 지면서 초 저녁때 보이다가 자정쯤에 서쪽으로 넘어가고 그와 동시에 동쪽 하늘에서 불의 달이 뜬다.
불의 달은 정오까지 떠 있다가 진다.
―알겠나이다. 샤펜이시여, 이 모든 것은 당신의 뜻대로.
“다 했다.”
계시를 내리고 나서 난 누워 버렸다.
“3일 뒤지?”
“응.”
“좋았어! 빨리 짐 챙겨야지.”
명왕이 쏜살같이 차원의 문을 소환하더니 명계로 가 버렸다.
“저는 여비를 챙기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베그라이텐도 어디론가 가 버렸다.
“전 이미 챙겨서 여기 있겠습니다.”
밤이 다돼 간다.
딸랑딸랑∼
벌컥!
작은 종을 울리자 메이드 차림의 천사 하나가 들어왔다.
“…….”
분명히 저런 옷 입지 말라고 했는데.
“부르셨습니까?”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님이 주무실 방으로 안내해 드려라.”
“알겠습니다. 자, 저를 따라오십시오.”
“고마워요.”
데네브도 내 방에서 나갔다.
“…….”
이제 혼자군.
“으윽! 유희 따위 가고 싶지 않은데.”

3일이 지난 자정이 되기 10분 전.
“자, 다 준비되었지?”
“응! 준비 끝났어.”
“준비되었습니다.”
“네.”
평민 여자아이, 마법사, 검사로 완벽하게 변장한 명왕과 데네브, 베그라이텐.
“에휴∼.”
절로 한숨이 나온다.
[강림.]
엘프의 신전으로.
힘을 최대한 줄인 채 강림하기에 우리의 몸이 점점 빛으로 변하더니 시야가 바뀌었다.
우리가 있는 곳엔 재단이 있고 그 앞으로 긴 의자들이 보였다.
“오∼ 만들었느냐?”
그 신전 가운데에 있는 다섯 명의 남녀 엘프들을 보며 내가 말했다.
그들은 전부 가운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샤펜이시여.”
그들이 나에게 절을 하며 말했다.
“신관복을 가지고 오너라.”
“여기.”
한 여사제가 잘 다림질이 된 옷과 꽤 길어 보이는 부츠를 나에게 바쳤다.
“…….”
헐퀴, 옷이 비단이잖아? 비단옷을 여행용으로 입는단 말이야? 절대 그런 게 아닌 거 같은데.
초록색 바탕에 검은색 기단으로 은단추가 달린 신관복은 어딘가 세련되어 보였다.
기단에다가 은실로 이상한 문자도(엘프들의 문자) 적혀 있었다.
“이것은 외투입니다. 안에 온도조절마법이 걸려 있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해서 좋습니다.”
이번에는 사제 하나가 코트 하나를 주었다.
“…….”
이번에는 약간 거친 회색의 두꺼운 울이었다.
트렌치코트(우리나라에서는 바바리코트로 알려졌는데 그건 특정회사의 이름일 뿐 잘못 알려진 것이다)처럼 은단추가 나란히 달렸고, 커다란 검은색 옷깃 너머 매우 크고 두꺼운 후드가 달렸다.
“고맙다. 수고했어.”
옷들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다른 것보다 소매가 좁았기 때문이다.
신으로서 입던 예복은 아무리 입어도 소매가 넓은 옷이라서 불편했었다.
“그대가 교황인가?”
내가 그들의 하얀 사제복들 중에 가장 화려한 붉은색으로 옷깃에 장식한 한 남자 사제를 보며 말했다.
그는 중년의 모습에다가 수염까지 기르고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샤펜이시여.”
“내가 그대 족속들의 왕의 땅, 그러니까 엘프의 공주에게 내린 무구가 있을 것이다. 맞나?”
이제 엘프 수명 상 어엿한 아가씨가 됐을 에델바이스의 행방이 궁금했다.
약속된 승리의 활을 잘 다루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네, 그렇습니다.”
“그래, 그 공주는 요즘 무엇을 하고 지내느냐?”
“저, 그것이 얼마 전에 가출을 하였습니다.”
땡∼
갑자기 머리가 비고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가, 가출?”
“그렇사옵니다. 쪽지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는데 ‘세상을 여행하며 경험을 쌓고 싶다’고 적혀 있다 들었습니다.”
“…….”
무구 가지고 가 버린 거야? 그런 거야?
“여자 혼자 갔단 말이야?”
“네, 그렇습니다. 샤펜이시여.”
으이구∼ 몬스터가 바글바글할 텐데.
“왕은 어떻게 하였나? 추격대를 보냈나?”
“유니콘을 탄 우리 전사들을 보내 보았지만 발견하지 못하였다 하옵니다. 아무래도 숲의 영토를 벗어난 듯싶습니다.”
“크으∼.”
머리가 아파 온다.
“뭘 그런 애를 생각해? 얼른 가자.”
명왕이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
“아, 알겠어. 그럼, 우리는 가겠다.”
“잠시 이 미천한 종이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뭔가?”
“주위에 계신 분들은 누구신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음…….”
알려 줘야 하나?
난 그들에게 무언으로 물어보았다.
도리도리.
데네브가 고개를 돌렸다.
“알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자, 그럼 가자.”
나를 선두로 일행은 곧장 그 신전을 벗어났다. 신전 측에서 무슨 조치를 했는지 거대한 나무로 가득한 엘프들의 마을에는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없었다.
“우와∼!”
상당히 인상적인 마을이었다.
대부분 집들이 커다란 나무를 파서 만들거나 아니면 거대한 나무줄기 위에 나무로 된 판자나 진흙, 점토 등을 이용해 만든 집들이었는데 집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질긴 나무 넝쿨로 된 밧줄이나 줄사다리를 사용해야 했다.
나무들 사이에는 청동으로 된 매우 아름다운 장식이 된 기둥이 있었는데 그 위에 커다란 수정구 같은 게 있고 그 안에 약 5센티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나비처럼 날개가 달린 아기자기한 아이들이 거기서 놀고 있었다.
그것들은 바로 페어리들이었다.
페어리들이 몸에서 빛을 발산하는 걸 이용해 수정구 옆에 구멍을 뚫어 놓아 페어리들이 자유롭게 출입을 하게 둔 아주 친환경적인 가로등이었다.
그 가로등 사이로 땅에 돌을 박아서 길을 만들었는데 마치 정원 같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또한 길 주위에서는 축축한 이끼, 여러 가지 알 수 없는 꽃, 푸른 잔디들이 깔려 있어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물 냄새와 함께 향기로운 꽃향기가 느껴졌다.
“음,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멋있군요.”
데네브가 엘프 마을의 주위를 쭉 살펴보며 말했다.
그의 옷은 몸에 착 달라붙는 학자풍의 검은 가죽으로 된 소매가 짧은 마법사 로브였다.
그리고 외줄가방을 맸는데 그 안에는 가죽으로 표지가 된 자칭 마법 책이 들어 있었다.
“그러게.”
명왕은 전에 데네브가 준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다.
게다가 얼굴에는 검댕이 칠을 해서 누가 보면 방금 저녁 늦게까지 놀다 온 개구쟁이로 보였다.
“마을을 빠져나가는 길은 이쪽인 것 같습니다.”
베그라이텐이 어두운 숲 속으로 이어진 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는 바지까지 입은 남장을 하려고 노력하였는데 머리를 남자처럼 잘라(머리를 자르다니! 머리가 긴 게 예뻤는데!) 기름을 발라 올백머리로 만들었다.
그래도 귀여운 이미지가 가득한 여자 이미지가 벗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목소리도 낮게 하고 힘을 주는 노력까지 보였지만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 귀엽다’라고 할 수밖에 없는 목소리였다.
“…….”
마치 모든 것들이 잠자는 듯한 매우 조용한 숲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무섭다.
“저기를 지나가야 하는 거야?”
“네, 그렇습니다.”
여태까지 밝은 곳에서만 살아서 저런 거 보니까 무섭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