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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펜의 유희 1권(18화)
5 명왕, 이계의 신, 신, 천사(4)
번뜩!
고양이같이 째진 눈으로 슬라임이 나를 노려보았다.
건들면 죽여 버리겠다는 듯이.
“우욱!”
속이 울렁거렸다.
생각해 보라.
아주 맛있는 사과푸딩에 사람의 눈이 빙글빙글 돌며 이리저리 시선을 옮긴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나?
그런데 저놈은 사람 잘못 만났다.
[소멸.]
사아아악!
내 말 한마디에 그 슬라임은 가루가 되어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허억! 허억!”
여자 엘프는 슬라임이 사라지자마자 숨을 헐떡거렸다.
머리카락은 모두 다 녹아 버렸고 옷도 다 녹아서 조금만 늦었으면 그 엘프의 살도 녹아서 슬라임에게 소화됐을 것이다.
물론 덕분에 난 그녀의 맨살이 보이는 등과 엉덩이, 다리를 보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예뻤다.
난 그녀에게 다가가 얼른 외투를 벗었다.
“빨리 이걸 입으세요.”
“고, 고맙습니다.”
“응? 무슨 일이야?”
“샤펜 님!”
소리를 듣고 명왕과 베그라이텐이 다가왔다.
“흑흑흑!”
그 엘프는 많이 놀랐는지,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토닥토닥.
“괜찮아요. 끝났어요. 녀석은 소멸했어요.”
난 그녀의 등을 다독여 주며 위로하였다.
“무슨 일이시죠?”
“이 엘프, 슬라임에게 산 채로 먹힐 뻔했어.”
“저런.”
명왕이 다가왔다.
“빨리 치료 안 해 주고 뭐해?”
“다행히 옷만 녹아서 내가 내 외투로 덮어 주었잖아.”
“그래? 근데 머리카락이…….”
“우아아아앙!”
명왕의 말에 그 엘프가 완전히 대놓고 대성통곡하였다.
“뭐하려고 쓸데없는 말을 한 거야?!”
“그건 둘째 치고 빨리 원상복구 시키지 못해!”
“아, 알겠어.”
[신이시여, 당신의 힘을 빌어 상처받은 생명에게 치료를, 리커버리.]
이것은 신성마법 중 하나인 리커버리였다.
마법에서는 치료마법이란 없고 치료는 오직 신성마법에만 있었다.
물론 신성마법은 치료계 마법이다.
공격마법은 별로 없다. 근데 신인 내가 신의 힘을 비는 주문을 외워 신성마법을 펼친 것은 역시 유희 때문이라는 것은 잘 알 것이다.
아까의 소멸을 너무 다급해서 그런 거지만.
웅웅웅―
연두색 빛이 도는 내 손을 그 엘프 아가씨의 머리에 대었다.
참고로 리커버리는 몸이 스스로 회복하게 해 주는 마법으로, 일시적으로 쓰면 괜찮지만 자주 쓰면 몸에 노화 반응이 일어난다.
몸이 자체적으로 회복하게 하는 것을 빠르게 하는 것이기에.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해서 그 부분의 시간을 빠르게 지나가게 하는 것이다.
다리털 같은 데에 리커버리를 걸면 다리털이 빨리 자라난다.
다리의 생체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다.
스르르륵∼
그 엘프 아가씨의 머리털이 새싹이 자라나는 걸 녹음한 테이프를 빨리 돌리듯이 조금씩 자라났다.
이 엘프 아가씨의 머리카락은 흰색인 것 같았다.
비단실같이 멋지게 반짝이는 흰색 머리털이 자라났기 때문이다.
“자, 됐습니다.”
머리카락이 어깨를 조금 지나갈 쯤 난 리커버리를 시전하는 걸 멈췄다.
“오호∼ 예쁘네, 나랑 같은 백색 머리카락인데, 느낌이 다르네.”
“헤에∼ 그러네요.”
“헛!”
어느새 부활한 데네브가 피 묻은 외눈안경 너머로 그 엘프를 유심히 관찰해 보고 있었다.
“칫! 거세까지 해 버렸는데!”
안타깝다는 듯이 말하는 명왕.
어이, 그런 모습으로 그런 말 하지…….
“유감스럽게도 다시 붙었답니다! 핫핫핫핫!”
맞받아치는 거냐?!
“쳇.”
스릉, 철컥!
베그라이텐은 아쉬운 표정이 역력한 채 손수건으로 검에 묻은 피를 닦아 검집에 도로 넣었다.
“저, 저기.”
그 엘프 아가씨가 한 손으로 한 수풀을 가리켰다.
“네?”
“저, 저쪽에 제 여분의 옷이랑 신발이 있을 거예요.”
“내가 가지고 오지.”
명왕이 직접 수풀에 들어가서 가죽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가방 하나를 가지고 왔다.
“자, 남자들은 가자. 어이, 베그라이텐, 옷 갈아입히는 데 도와줘.”
“알겠습니다.”
나와 데네브는 그 엘프 아가씨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다른 곳으로 갔다.
“다 됐습니다.”
“어, 그래.”
베그라이텐의 부축을 받은 엘프 아가씨가 우리가 다가가자 엉거주춤 인사했다.
“인간이시군요. 목숨을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이름은 에델바이스, 숲의 아이들의 나라, 이드라엘의 공주입니다.”
“네?”
에델바이스? 엘프 공주?
“…….”
그러고 보니 저 사파이어 같은 큰 눈망울에 허연 머리, 똑같다.
“헙!”
데네브가 크게 숨을 들이켰다.
“오오오∼ 닮았어.”
그가 조용히 중얼거리는 게 들려왔다.
“뭐가요?”
“아닙니다. 오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뭔 개소리야? 지가 신이면서.
“저기…….”
아!
“저의 이름은 샤펜입니다. 참고로 신관입니다.”
난 그녀에게 악수하려고 했다. 그녀도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탁!
“저의 이름은 데네브입니다. 저는 마법사이지요.”
데네브가 내 손을 쳐 내더니 양손으로 그녀의 손을 꼭 붙잡았다.
“아, 예.”
“저는 베그라이텐. 보시다시피 신관님을 모시는 검사입니다.”
“난 블루메, 그냥 얘네들을 따라다니고 있어.”
우리들은 각자 통성명을 하였다.
“근데 왜 공주가 무단으로 가출을 한 거야?”
흠칫!
내 말에 그녀의 몸이 흠칫거렸다.
“어, 어떻게 아셨나요?”
“우리는 엘프들의 마을을 들렀거든요. 저희들도 여행자랍니다.”
데네브가 여전히 그녀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너무 무례하군.
“여행자요?”
에델바이스의 눈이 커졌다.
“네, 그렇습니다.”
“어디어디를 여행해 보셨나요?”
“에…… 그러니까.”
“숲의 나라를 처음으로 방문한 거랍니다.”
난 데네브의 말을 가로챘다.
“어이, 데네브. 그 손 좀 그만 잡지 그래? 무례하잖아.”
“아, 이런.”
데네브가 얼른 손을 뗐다.
“근데 어째서 무단가출하신 거죠? 국왕께서 추격병을 보냈다는데 어떻게 탈출하셨는지?”
“무단가출이 아니에요! 전 세상을 보고 싶어요! 항상 저를 ‘홀리 엘프’라고 하면서 내가 가진 약, 아니, 활과 함께 어디든 나가지 못하게 하고 궁전에서 평생을 보내게 하려는 우리 부모님이 잘못되신 거예요.”
“…….”
그렇게 된 거군.
내 축복을 받았다고 홀리 엘프로 추앙하다니.
뭐, 무기도 하사받았으니 그럴 만할지도.
그리고 약속된 승리의 활은 비밀인가 보군.
약속의 ‘약’을 말하다 말았잖아.
“자, 그럼 어떡하실 겁니까?”
“무엇을 말이죠?”
“고향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아니면 계속 이렇게 위험한 여행을 혼자 하실 겁니까?”
“샤펜, 잠시만요.”
데네브가 날 제지했다.
텁!
데네브가 다시 한 번 에델바이스의 손을 붙잡았다.
“에델바이스 양, 저희와 여행을 같이 하시지 않겠습니까?”
뭐?
“너, 지금…….”
“어허∼ 뭐 어때요? 새로운 동지가 생겨서 좋잖아요.”
“하지만 그녀는 엘프들의 공주야! 우리와 급이 다르다고. 그녀를 돌려보내야 해.”
“하지만 여행을 하고 싶은 열망은 우리랑 똑같아요. 게다가 엘프들의 국왕이 우리에게 그녀를 찾으면 돌려보내라는 말도 하지 않았잖아요?”
이 자식, 어지간히 에델바이스에게 반한 것 같다.
눈동자가 말똥말똥한 게 눈에서 광채가 나올 것 같군.
“…….”
뭐라 반박을 해야 하는데 할 말이 안 나온다.
“게다가 엘프는 활을 잘 쏜다고요. 우리들에게도 좋은 거 아니겠어요? 우리 파티엔 궁수가 없잖아요.”
“…….”
음∼ 반론이 없을까?
“신분도 공주니까 믿을 만하고, 게다가 설마 구해 줬는데 사기를 치겠어요?”
“…….”
없구나.
“자, 그러면 가도 되는 거지요?”
“근데 에델바이스에게도 물어봐야지 않아? 그녀의 의사에 따라서…….”
“가겠습니다!”
뭐?
“같이 가겠습니다. 혼자 여행하는 것보다 그것이 더 좋을지도 모르지요.”
제기럴∼
뒤적뒤적.
에델바이스가 짐 속에서 상아색 장궁을 하나 꺼냈다.
어릴 때는 단궁이었는데 에델바이스가 성장하면서 궁도 성장했기 때문에 장궁이 된 것이다.
“저와 이 활을 걸고 맹세합니다. 저는 당신들의 짐이 되지 않을 것이며 이 활로 우리들의 앞을 막는 자들을 꿰뚫어 버리겠습니다. 아무리 여행이 고달파도 불평을 하지 않을 것이며, 그곳이 뜨거운 불판이어서 올라가기 힘든 산이라도 심해의 바다라도 따라갈 것을 맹세하겠습니다.”
“제기랄! 알겠습니다! 따라오세요!”
“오! 잘 생각했어요, 샤펜.”
좋아 죽는 데네브.
“어이, 명, 아니 블루메! 넌 찬성이야? 반대야?”
“난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베그라이텐은?”
“저는 언제나 당신의 뜻을 따릅니다.”
“알겠어, 에델바이스 양? 우리는 당신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인원 합류로 여행은 시작됐다.
여기, 엘프 한 명 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