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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펜의 유희 1권(19화)
6 어둠 속의 몬스터(1)
화르륵, 딱딱.
모닥불의 나무가 타고 껍질이 갈라지는 소리.
휘이이잉∼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소리.
부스럭 부스럭.
무언가 천천히 조용하게 걸으려고 죽어라 노력하는 티가 나지만 마른 나뭇잎 때문에 소리가 들리는 발자국 소리.
“…….”
천천히 침낭에서 일어났다.
이미 베그라이텐은 어두운 수풀 쪽을 응시 중이었다.
“오크예요.”
에델바이스가 내 옆으로 조용히 다가오며 말했다.
“그들의 숨소리가 나요. 한 30분 전부터 났었는데 저희들을 지나갈 줄 알았지만, 곧장 이곳으로 오고 있어요. 숫자는 대략 여섯쯤. 아마도 도적질하러 온 것 같아요.”
역시 엘프인가?
소리만으로도 그렇게 알다니(내가 뭘 좀 잘 만들었네).
난 주위를 둘러보았다.
데네브와 명왕은 아직 취침중이다. 곤하게 자는 그들은 무척 평온한 표정이었다.
“…….”
감각이 무디나 보군.
“에휴∼ 내가 이래서 여행 가지 말자고 했다니까.”
어디 보자, 신성마법에 공격마법이 천벌 말고 또 뭐 있더라?
생각이 잘 안 나네.
부스럭! 부스럭!
“놈들이 와요!”
끼익!
에델바이스가 활을 당겼다. 그러자 저절로 푸른 불꽃의 활이 생겨났다.
피잉!
활시위를 놓자 푸른 빛줄기가 어두운 숲 속 너머로 날아갔다.
푸우욱!
“취익!”
무언가 꿰뚫어지는 소리와 외마디의 비명이 들려왔다.
부스럭! 부스럭!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베그라이텐!”
“네!”
베그라이텐이 내가 하사한 검을 들고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스컹!
무언가 뼈째로 같이 잘려 나가는 소리. 아마 목이겠지.
“취익!”
촤악! 으드드득!
“취아악!”
살을 가르고 뼈를 긁는 소리, 그 뒤로 계속 고함소리와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끝났습니다.”
한 손에 칼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초록색 머리통 다섯 개를 든 베그라이텐이 수풀에서 나왔다.
“브라보!”
난 그녀에게 엄지손가락을 올려 보였다.
“…….”
오크의 머리를 보았다. 전체적으로 사람 같은 얼굴이었지만 초록피부, 돼지 코와 똑같은 납작한 코, 끝이 뾰족한 귀, 툭 튀어나온 어금니등 사람과 달랐다.
뚝, 뚝.
검은색 핏물이 잘린 머리에서 흘러내렸다.
그들의 죽은 얼굴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눈을 부릅뜬 채 죽은 표정, 보라색 길쭉한 혀를 내민 채 얼빠진 표정, 또는 웃는 표정, 싸우다가 그대로 죽었는지 악을 쓰는 표정, 무표정 등, 각자 제각각이었다.
“샤펜 님, 그렇게 빤히 볼 만한 것이 아닙니다.”
휘익∼
그리고는 베그라이텐이 오크들의 머리통을 저 멀리 던져 버렸다.
“우∼ 좀 더 구경하고 싶었는데.”
“샤펜 님.”
“알겠어.”
그나저나 이것들은 결국에는 일어나지도 않았네.
머리만 내밀고 누에고치처럼 침낭 속에 들어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본 채 ‘코오∼’ 숨소리를 내면서 편안하게 자는 데네브와 명왕이었다.
“이제 자자.”
아쉽지만 자고 있는데 건드릴 수 없는 노릇이다.
“저는 보초를 서겠습니다.”
베그라이텐이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 머리만 한 바위에 앉으며 말했다.
“어? 왜?”
“오크들의 피 냄새가 조금씩 나고 있습니다. 후각이 예민한 몬스터들이라면 피 냄새가 진동할 것이라 판단됩니다. 또 몬스터들의 습격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저도 보초를 서겠어요.”
에델바이스도 나서며 말했다.
“아냐, 그렇게 하지 말고.”
나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여자들이 보초를 선다는데 남자가 편히 잔다면 그건 매우 큰 실례다.
“일단 베그라이텐 먼저 서고 두 시간 뒤에 에델바이스도 서도록 해. 그 다음에는 내가 보초를 서지.”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주무십시오.”
베그라이텐을 제외하고 우리는 먼저 자기로 하였다.
“으음∼.”
자다가 갑자기 눈이 떠졌다.
극도로 긴장한 나머지 깊게 잠을 자지 못한 것 같았다.
새벽인지 주변의 하늘이 밝아졌고 안개가 자욱하게 낀 상태였다.
“이제 일어나셨습니까?”
응?
데네브였다.
얼굴에 검은 오크의 피가 묻은 매우 피곤한 얼굴이었다.
게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전부 깬 채 모닥불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뭔 일 있었어?”
“그래, 있었다.”
명왕이 핀잔을 날렸다. 그녀의 손에도 클러우가 꼭 쥐어져 있었다.
“설마 밤새도록…….”
“그래, 오크들의 습격이 있었어.”
“샤펜, 우리가 그렇게 깨웠는데 일어나지 않으시다니. 감각이 그렇게 무뎌서 어떻게 여행하려고 그러시는 건가요?”
뭐? 뭐? 맨 처음에는 자기들도 못 일어났으면서!
“맞아. 이 쓸모없는 하루하루 똥만 만들어 내는 녀석.”
우씨.
“하지…….”
“쉿!”
에델바이스가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주의를 주었다.
“산 너머에서 이쪽으로 오는 몬스터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요. 잠시만.”
그리고 에델바이스는 눈을 감고 청각에 집중을 하였다.
“핫! 모두 짐을 챙겨서 어서 여기를 떠나요! 빨리!”
“뭐?”
“빨리 빨리 움직여요! 그놈은 아주 빨라요!”
다급하게 말하는 그녀의 음성에 우리들은 얼른 짐을 꾸렸다.
“이쪽으로! 이쪽으로 쭉 가면 계곡이 있어요!”
빠른 속도로 뛰어가는 그녀의 뒤를 우리는 따라가며 의아했지만 난 순간적으로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공포.
그녀의 얼굴은 공포 그 자체였다.
오싹.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두려움이 퍼져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도, 도대체 어떤 몬스터이기에?”
“나중에! 나중에 이야기해요! 뛰어!”
“순간적인 이동은 시간의 절약, 블링크.”
제일 뒤처진 데네브가 블링크를 써서 에델바이스의 옆에 붙었다.
“혹시 오우거입니까?”
“네! 맞아요!”
“오우거!”
기억난다.
내가 만들었으니까.
키 6m, 지능은 인간으로 치면 세 살 정도, 가죽 두께 약 5cm, 내장을 보호하는 지방의 두께 약 6cm, 생긴 건 전체적으로 인간이지만, 얼굴은 침팬지와 흡사하고 머리와 등에 털이 많음.
숲에서 활동하며, 먹이사슬 중에서 가장 높은 부류에 속한 별명이 숲의 폭군으로 불리는 몬스터. 참고로 후각도 예민하다.
아마 만들 때 팔의 두께가 내 허리 두께의 5배 정도 했지?
난 약간 통통한 편인데.
그러고 보니 그거 다 근육이었지 아마?
“오, 젠장!”
걸려도 잘못 걸렸다.
“녀석은 수 킬로미터에 떨어진 곳에서 오크들의 피 냄새를 맡아 이곳으로 전속력으로 달려왔을 거예요! 그 죽은 오크들이 시간을 벌어 주겠지만 하루에 5백 킬로그램 이상 먹는 오우거인 이상 우리도 녀석의 표적일 겁니다! 게다가 우리는 오크의 피에, 땀범벅이니 아무리 도망쳐도 피하기 힘들 것입니다. 빨리 계곡으로 가서 몸을 담그고 계곡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야 해요!”
유희로 온 이상 신의 권능을 쓰면 안 된다.
이미 에델바이스를 구하기 위해 그 룰을 한 번 어겼지만 그걸 또 써선 안 된다.
“오우거가 한번 노린 사냥감을 계속 노리는 습성이 있다고 해도 계곡물에 들어가서 냄새를 제거하면 포기할 거예요.”
“하악! 하악!”
뛰다가 지쳐서 속도가 점점 느려지는 명왕이 보였다. 그리고 얼마 못 가서 그녀는 쓰러지고 말았다.
“블루메, 힘들어?”
유희용 이름을 부르며 난 그녀의 옆에 붙었다.
“하악! 하악! 심장이 폭발할 것 같아!”
어린 여자아이 몸으로는 지구력이 별로 없을 것이다.
“내 등에 업혀!”
“하지만…….”
“빨리! 죽고 싶은 거야? 이러다가 뒤처져.”
“고마워.”
눈물을 찔끔 흘리며 명왕이 내 등에 업혔다. 그녀는 가벼워서 부담이 되질 않았다.
“헉! 헉!”
나머지 일행은 한참 앞서 나갔다.
“샤펜 님!”
멀리서 날 부르는 베그라이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먼저 가! 빨리!”
길이 너무 험했다. 등산로를 따라 다니던 길이 아니라 원래 길이 없는 곳을 뛰고 있었다.
가끔 가다가 장미 목을 만나면 매우 낭패였다.
윽!
방금 가지 하나가 볼을 베고 스쳐 갔다. 피가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나 때문에 미안해. 아까 비난했던 거 취소할게.”
“당연한 거지.”
“……야!”
윽! 귀에다 대고 소리치면…….
“너 말하지 마, 입에서 단내 나.”
“…….”
에이씨, 어쩐지 너무 착하게 나간다 했어.
어찌 나랑 동급인 신들은 전부 이렇게 성격이 더럽지?
“빨리요! 거의 다 왔어요!”
멀리서 에델바이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지금…….”
턱!
어라?
“헛!”
커다란 나무뿌리에 발이…….
쿵!
“……일어……. 샤펜……. 정신을…….”
으으윽!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일어나! 샤펜! 정신 좀 차려 봐!”
착착착!
“우욱! 그만 때려!”
명왕이 내 볼을 손바닥으로 마구 쳐 대면서 날 깨우고 있었다.
“너 넘어지면서 머리가 바위랑 부딪쳐서 기절했었어.”
“으윽! 그래? 내가 얼마 동안 쓰러져 있었어?”
아직도 아픈 머리를 꾹꾹 누르며 물었다.
“한 30분 정도.”
제기랄! 괜히 유희 따위 나와서 이 고생이라니.
내 성의 이부자리가 그리워진다.
“근데 나머지 일행은?”
“우리가 넘어진지도 모르고 그냥 가 버린 거 같아.”
우씨, 이것들이…….
나중에 만나면 가만히 안 둘 거야.
“자, 다시 업혀.”
“고마워.”
다시 달리려고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