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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펜의 유희 1권(20화)
6 어둠 속의 몬스터(2)
쿵!
응?
갑자기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뛰어! 가까이 왔어!”
명왕의 다급한 목소리.
전속력으로 달렸다. 발에 쥐가 나도록 힘을 주며 달렸다.
쿵쿵쿵!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왔다.
“빨리! 좀 더 빨리! 우리는 불멸의 존재야! 사지가 절단돼도 절대로 죽지 않아! 하지만 고통은 똑같아! 산 채로 사지가 절단나고 산 채로 그 더러운 오우거의 이빨에 씹히고, 산 채로 소화되고 싶지 않으면 뛰어!”
“제기랄! 끔찍한 소리하지 마!”
“저기! 계곡이 보인다!”
쏴아아아아∼
멀리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좋았어!”
발걸음을 더욱 빠르게 놀렸다.
“다 왔다!”
계곡 바로 앞에서 점프하였다. 계곡물은 깊어 보였다.
풍덩!
우리는 물속에 들어간 다음 몸에 밴 오크들의 피 냄새와 땀 냄새를 없애기 위해 최대한 몸부림쳤다.
참고로 난 오크들과 싸우지 않아 오크들의 피가 안 묻었는데 물속에서 본 명왕의 옷에서 검은 먹물 같은 게 마구 나왔다.
어느 정도 피가 빠지자 명왕이 물 밖으로 나오려고 했다. 난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뭐하는 짓이야?”
대략 물속에서 이런 명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려, 그냥 여기 있어.”
난 이때 내가 신인 걸 주신께 감사드렸다.
신은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고마웠다.
쿠웅!
단 1분도 안 돼서 그곳에 거대한 거인이 나타났다. 바로 오우거였다.
“크륵! 킁킁킁!”
녀석은 계곡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녀석의 숨소리와 콧소리가 물속까지 들려왔다.
우리는 최대한 물속 바닥까지 내려가서 그 녀석을 예의 주시하였다.
“크아아아!”
콰앙! 쾅!
먹잇감을 놓쳤다고 생각했는지 녀석은 물가에 주먹질을 하였다. 덕분에 충격파로 귀가 아파 왔다.
자, 신경질은 그만 내고 어서 가 봐, 거지야.
나 추워, 임마.
새벽부터 뭐가 좋다고 계곡물에 들어간 줄 알아? 응?
“크륵! 크륵!”
녀석은 화가 아직 덜 풀렸는지 근처의 바위를 들어…….
어?
혀, 형님, 설마 그 큰 걸 이쪽으로 던지시려고…….
“꾸르륵, 꾸륵!”
이미 상황은 눈치챈 명왕은 입에서 물방울을 잔뜩 뱉은 채 손발을 저으며 다른 곳으로 갔다.
제기랄! 저 새끼! 시력도 좋은 놈이었나? 이미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후웅!
육중한 소리를 내며 바위가 날아왔다.
철썩!
퍽!
“커헉!”
입에서 물거품이 마구 나왔다.
물 때문에 충격이 가셨지만, 바위의 무게로 인해 난 깔리고 말았다.
“도와줘! 바위에 깔렸어!”
물속에서 의사소통이 잘 안 되지만, 난 있는 힘껏 소리쳤다.
“미안해.”
명왕은 그렇게 말한 후 물속의 바위 틈새로 작음 몸을 숨겼다.
치사한 놈, 나중에 이 위기를 넘어가면 이런 저런 짓을 하고 말 테다!
“크르르르!”
오우거 녀석은 느긋하게 물가에 앉아 우리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숨을 못 참고 나오면 잡아먹을 속셈인 것이다.
놈은 아까 던진 바위로 잠시 흙탕물이 된 계곡물 때문에 내가 바위에 깔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일단 이 바위에서 나가야 되는데.
“크륵?”
한 5분 정도 지나도 우리가 안 나가자 오우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크아아아아!”
기다리다 못한 녀석이 발광하며 물속으로 들어와서 이곳저곳을 다 휘저었다.
하지만 바위틈에 숨은 명왕과 녀석이 던진 바위에 깔린 나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거기다가 수면을 휘저어 다니는 덕분에 오히려 물속이 더 안 보였다.
“크라라라락!”
이상한 포효를 지른 뒤 녀석은 쿵쿵거리며 매우 빠른 몸놀림으로 숲 속으로 사라졌다.
사, 살았다.
“야! 블루메! 오우거 갔어! 이제 구해 줘!”
입에서 거품이 나와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겠지만, 명왕 녀석도 바깥의 상황을 눈치챘을 것이다.
“아, 알겠어!”
명왕에게 대략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명왕이 헤엄치며 나에게 다가왔다.
“바위가 커서 나 혼자는 못 들겠어.”
“어쩌라고! 같이 밀어!”
나도 등을 들어 올리려고 했다.
“나무막대 좀 가지고 올게. 기다려!”
그렇게 말하고 명왕이 수면 밖으로 나갔다가 명왕의 팔뚝만큼 가느다란 나뭇가지 몇 개를 가지고 왔다.
“자, 들 준비해. 하나, 둘!”
“끄윽!”
물속이라서 그런지 힘을 덜 든 상태에서 바위가 올라갔다.
“크윽!”
명왕이 벌어진 바위 틈새에 가장 짧은 나뭇가지를 넣어 고정시켰다.
다행히 막대기는 고정되었다.
“다시 한 번, 하나, 둘!”
“크윽!”
이를 악 물고 등으로 바위를 밀었다.
또 틈새가 벌어지자 명왕이 더 긴 막대로 고정시켰다.
“나올 수 없어?”
“좀 더 공간이 필요해. 다리가 아직 껴 있어!”
“그러면, 다시 하나, 둘!”
“읏샤!”
조금만 더. 무게 중심이 다리 쪽으로 바뀌면서 다리가 매우 아파 오기 시작했다.
“거의 다 됐어. 하나, 둘!”
발목 부근이 빠져 나왔다.
“고정시켜!”
명왕이 이번에는 얼른 막대를 여러 대 고정시켰다.
그리고 난 얼른 기어 나왔다.
우리는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하아! 살았다.”
“그래! 살았어!”
명왕이 환호성을 지르며 내 목을 감싸 않았다. 그리고 내 볼에 뽀뽀했다.
“뭐, 뭐하는 짓이야?”
난 기겁했다.
“기쁘니까 그러는 거지!”
“기뻐도 그러는 짓은 하지 마!”
엄마와 어린 여동생을 제외하고 내 볼에 뽀뽀하는 여자는 명왕이 처음이었다.
“왜? 부끄러운 거야?”
화끈!
“아, 아냐!”
“에? 얼굴이 빨개졌는데?”
내 등에 딱 붙어 목에 양팔을 감싸며 말했다.
“근데 왜 붙어? 이제 내려와. 무거워.”
“뭐 어때? 계속 어부바해 줘.”
“어부바라니.”
“해 줄 거지?”
꾸욱!
“커헉!”
명왕이 내 머리의 관자놀이를 눌렀다.
“연약한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해 줄 거지? 그치? 나의 용, 사, 님?”
싫은데.
마음 같아서는 냅다 버리고 싶은데 명왕의 모습과 성격상 그러는 것도 뭐하고, 그러자니 관자놀이가 아프고.
“네에∼ 그러지요.”
난 업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근데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 되지?”
“글쎄, 일단은 계곡을 따라 내려가자. 아까 에델바이스가 계곡물을 따라 쭉 내려간다고 했잖아.”
계곡 아래쪽으로 향하며 내가 말했다.
“그랬나?”
“그렇게 말했어.”
“녀석들, 우리만 버리고 도망간 건 아니겠지?”
“글쎄? 베그라이텐이 날 버릴 리 없는데.”
“데네브는 우리를 버리지 않을까? 게다가 에델바이스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윽, 정말로 그러면 이번엔 내가 직접 그를 처단할 거야.”
“크크크, 그래, 그래 버려.”
“지난번처럼 그를 거세해 버릴 거야.”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그렇게 말하면 부자연스러워 보여.”
“우∼ 그러면 성인 모습으로 변신할까?”
“안 돼.”
“왜?”
“왜냐하면 무거워지는데다가 이미 에델바이스가 네 어린 모습을 보았는데 갑자기 성인으로 자라면 의심하지 않을까?”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군.”
“저기, 헉! 헉! 이것들 정말로 어디로 간 거지? 못 찾겠어.”
우리는 계곡을 따라 내려간 지 한 시간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일행을 찾지 못했다.
“그런 건 나도 몰라. 자, 빨리 가기나 해.”
여전히 내 등에 매달린 명왕이 재촉했다.
“이제 내려. 더는 힘들어서 못하겠어.”
“저쪽에 쭉 가면 나무가 없는 공터가 있잖아. 저기에 가서 쉬자.”
“응, 그래야겠어. 옷도 말릴 겸.”
내 외투는 울이다. 울은 물에 젖으면 매우 난감하다.
원래 울의 소재가 무거운 것인데 거기다가 물까지 추가되니 난감해질 수밖에.
게다가 여기까지 오면서 흘린 땀과 물이 섞인 냄새 때문에 옷을 빨아야 하는 필요성이 생겼다.
“자, 내려.”
공터에 도착하자마자 명왕을 내려 주었다.
“일단 나뭇가지를 모아. 불 좀 붙여야겠어. 저체온증 걸리겠어.”
“알겠어.”
난 젖은 외투와 상의에 입은 옷들을 전부 벗어서 주위의 나무에 걸어 두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잡초들을 뽑아(마른 잡초들이 아니지만) 나무에 불붙일 준비를 하였다.
“나 왔…….”
명왕이 굵고 얇은 나뭇가지들을 한 아름 가지고 오다가 내 모습을 보더니 흠칫거렸다.
“미안, 일단 옷을 말려야 하거든.”
“……살쪘어.”
“우씨.”
“거기 나온 똥배 봐라.”
명왕이 가져온 나뭇가지들을 내가 모아 둔 마른풀 위에 두고 나서 놀리는 어투로 내 배를 콕콕 찔렀다.
“찌르지 마.”
“물렁물렁한 게 재미있네.”
솔직히, 음……. 키 182에 몸무게 78이면 심각한 건가?
“그만 찌르시지? 불이나 붙이자. 춥다고.”
“그러지.”
그리고 명왕이 마른 나뭇가지와 어디서 구했는지 넓적한 나무를 가지고 왔다.
“에? 설마 그걸로 불을 붙이려고?”
여태까지 베그라이텐이 가지고 있던 부싯돌로 붙였지만, 우리는 부싯돌이 없었다.
“당연하지. 신의 권능으로 무엇이든지 해결하면 안 되잖아. 우리는 지금 새로운 체험을 하려고 유희 온 거야.”
그리고 그녀는 손바닥으로 나무를 비비기 시작했다.
근데 저런 거 불붙이기 어려운데.
그렇게 30분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