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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펜의 유희 1권(21화)
6 어둠 속의 몬스터(3)
“에씨! 나 안 해!”
인내심이 바닥난 명왕이 막대를 냅다 던졌다.
역시…….
“자, 샤펜, 네가 해 봐.”
던져 놓고 다시 주우며 명왕이 건네주었다.
“난 이런 거 못해.”
“뭐야? 난 손에 물집이 날 때까지 했단 말이야!”
“손 내밀어 봐.”
[자비로우신 당신의 힘을 빌어 이 다친 상처를 치료하고자 합니다. 힐.]
신관들이 쓰는 신성마법은 주문이 따로 없다.
다만 주문을 시전하기 전에 신에게 온갖 미사여구를 쓰며 마법을 시동 걸어야 신성마법이 이루어진다.
근데 계속 웃기는 게, 난 지금 내 힘을 쓰기 위해 나에게 온갖 미사여구를 쓴다는 것이다. 자화자찬인가? 쩝.
“음…….”
자신의 치료된 손바닥을 보며 명왕이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잘했어.”
“칭찬 한번 받기 힘드네.”
“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시지?”
“칫.”
“아무튼 불이나 붙여.”
“헉헉헉!”
약 40분 뒤 난 지쳐 쓰러지고 명왕은 기분 좋게 모닥불을 쬐었다.
불은 어떻게 붙였는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물집 잡힌 손의 고통과 땀으로 인해 온몸이 끈적하다는 것뿐이다.
“자, 너도 모닥불 좀 쫴.”
“아냐. 아직 하나를 더 해야 돼.”
“뭔데?”
난 짐 속에서 접이식으로 된 삽을 꺼내서 폈다.
“또 오우거 같은 것들이 올지 모르니까 참호라도 파게.”
“그러면 수고해.”
팍!
의외로 땅이 부드러워서 쉽게 파졌다.
난 깊이가 약 1.5m짜리, 두 사람이 충분히 않을 만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땅을 팠다.
그리고 그 위에 나뭇가지를 깔고 넓은 내 얼굴만큼 큰 나뭇잎을 깔았다.
그리고 그 위에 주변의 흙을 뿌려 주변 땅과 색이 비슷하게 하였다.
판 흙들은 전부 계곡에다가 버렸다.
출입구용으로는 계곡에서 넓적한 바위를 가지고 와서 입구 위에 얹 자 감쪽같았다.
물론 일반 사람들이 본다면 알아보겠지만, 지능이 낮은 몬스터라면 속을 것이다.
“휴∼ 끝이다.”
“자, 그러면 이제 들어와.”
“잠시만, 씻고 보자.”
그리고 난 다시 계곡에 몸을!
“앗, 차가워!”
다이빙을 했는데 매우 차가웠다. 너무 추워서 난 곧장 나올 수밖에 없었다.
“너도 옷 좀 벗어서 말려.”
옷을 젖은 상태로 계속 입으면 감기 걸리기 딱 좋다.
그래서 벗어서 말린 다음에 입어야 한다.
지금 명왕은 젖은 옷을 그대로 입고 있다.
감기 걸리기 딱 좋은 상태.
걸어 두었던 옷을 꼭 짜내면서 내가 말…….
아, 실수했다.
난 천천히 명왕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명왕의 얼굴은 이미 홍당무가 되어 있었다.
난 이제 죽었다.
벌떡!
명왕이 벌떡 일어났다.
“으흐흐흐∼ 그래, 옷을 말려야 내일 입고 갈 때 편할 테니까?”
헉!
“미안해! 말실수야!”
난 얼른 무릎 꿇고 상체를 숙여 자비를 구했다.
“좋아, 벗도록 하지.”
네? 형……. 아니고 누님?
“뭐라고?”
잘못 들은 것이겠지.
이 무슨 삼류 성인물도 아니고.
“내가 바보도 아니고, 나 감기 걸리까 봐 그러는 거 다 알어.”
“…….”
도대체 무슨 바람이 든 거지?
“근데 보지 마.”
그런 당연한 말씀을.
“넵.”
“남자 앞에서 옷 벗는 일은 여태까지 없다고. 옷은 어디다가 걸어 둬?”
“저쪽 나뭇가지에 걸어 둬.”
여전히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내 옷을 걸어 둔 나무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알겠어.”
스륵, 스륵.
젖은 옷인데도 불구하고 살과 옷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헛! 잠시 그런 거 들을 필요 없어!
“고개 올리지 마.”
“안 올려.”
“우씨, 볼 것도 없는 여자라는 거냐?”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알겠어. 장난이야.”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났다.
“이제 됐어. 고개 올려도 돼.”
고개를 들었다.
명왕은 모닥불 옆에서 침낭에 고개만 내민 채 고치처럼 앉아 있었다.
“옷들 제대로 안 두었으니까 잘 걸어서 말려.”
“응.”
짐 속에서 암반등반을 대비한 밧줄을 꺼내서 나무와 나무 사이에 묶어 팽팽하게 하였다.
그리고 옷들을 걸었다.
근데.
“너 속옷도 벗은 거냐?”
“응.”
“…….”
이 인간아, 난 남자라네.
“그러면 속옷은 안 젖은 줄 알아?”
“…….”
그건 맞는 말이네.
“너도 옷 전부 말려야 하니까 전부 벗어. 오늘은 아직 해가 안 졌지만, 여기서 야영하자.”
“아, 알겠어.”
“아, 그리고 하는 김에 짐에 있는 옷들도 말려.”
거참, 더럽게 시키네.
그리고 약 30분 후 침낭에 고개만 내민 두 명의 신이 나란히 앉아 모닥불을 쬐었다.
기분이 묘하다.
좋아,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명왕아.”
전에 꼭 해 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명왕이 아니라 블루메야.”
명왕이 모닥불에 땔감을 넣어 주며 말했다.
땔감은 오늘 밤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만큼 충분했다.
“괜찮아. 우리 말고 있는 사람도 없는데.”
“뭔데?”
그래, 오늘 아니면 못할 것이다.
“니 본명은 뭐야?”
그렇다.
난 여태까지 명왕이라고만 알지, 명왕의 본명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전부터 꼭 물어보고 싶었다.
“명왕이야.”
“…….”
설마.
“나에게 샤펜이나 데네브 같은 이름은 없어. 주신께서 지어 주지 않으셨지. 왜냐하면 나는 죄를 지었거든.”
“무슨 죄?”
“내가 최초로 주신께서 만드신 영혼들 중에 자살한 영혼이거든.”
“아.”
그렇구나.
“…….”
“…….”
꽤 오랜 침묵이 이어졌다.
“왜 자살했어?”
“너무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 이제는 기억이 나질 않아. 다만 난 어떤 유목민족 족장의 딸이라는 것만 기억나.”
“그렇구나.”
은근히 불쌍하네.
“뭐, 이제 지난 일이니까 상관 안 해. 난 미래만 생각하니까.”
“그래?”
“그런 거지. 과거의 일을 가지고 연연하면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못된단 말씀.”
밤이 찾아왔다.
아직 자정이 되지 않아 새파란 바다만 보이는 인상은 주는 물의 달이 남색의 밤하늘에 매달렸다.
“하암∼ 배고픈데 밥 먹자.”
“우리 짐 중에 먹을 게 있을까? 짐에 있던 빵은 다 물에 불어서 못 먹게 됐는데.”
“내 짐에 훈제한 닭고기랑 내장으로 만든 소시지가 있을 거야. 물에 많이 있었지만 먹을 만할 거야. 그걸 나뭇가지에 걸어서 구워 먹자.”
“훈제 닭에 소시지라……. 맛있겠군.”
난 여전히 침낭 속에 있는 채 굴러서 침낭에서 손만 내서 명왕의 배낭에 있던 닭이랑 주렁주렁 매달린 소시지들을 꺼냈다.
“여기 막대.”
명왕이 얇은 막대를 주었다.
난 그것들을 전부 꿰어서 모닥불 옆에 꽂았다.
“맛있겠네.”
지글지글 구워지는 소리와 소시지, 닭 특유의 냄새에 명왕이 침을 꼴깍 넘겼다.
“자, 대충 익었을 거야.”
난 살짝 탄 소시지 중 가장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소시지를 명왕에게 주었다.
“잘 먹겠습니다.”
“그래.”
“너한테 하는 게 아니거든?”
“알았으니까 먹어. 농담도 못 받아 주냐?”
“응.”
그리고 명왕은 소시지를 한입 베어 먹었다.
베어 먹은 자리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명왕은 그 조그만 한 입술을 조근 조근 움직이며 소시지를 맛있게 먹는 것 같았다.
“그러면, 나도.”
한입 베어 먹었다.
“……!”
커, 커헉!
“짜! 아우 짜! 퉤!”
난 결국 그걸 뱉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지. 이건 소금기 보충용이니까.”
소금기?
“소금기 없으면 사람은 못 살잖아.”
“…….”
저기요, 우리는 신인데요?
“너무 리얼하자나.”
“그게 유희잖아.”
“이런…….”
저 녀석은 이렇게 짠 걸 아무렇지 않게 먹는단 말인가?
“자, 다음은 훈제 닭이나.”
명왕이 닭으로 손을 뻗쳤다.
덥석!
나도 닭으로 손을 뻗자 명왕이 찌릿 노려보았다.
“훈제 닭은 나 줘. 난 소시지 못 먹겠어.”
“그렇게 싫으면 삶아 먹어. 훈제 닭은 내가 좋아하는 요리 중 하나란 말이야.”
“우리에게 냄비가 있어? 그런 건 전부 베그라이텐이 가지고 있잖아. 그러고 보니 베그라이텐이 우리 여행자금도 가지고 있고.”
“어차피 나중에 찾게 될 거 그건 상관없잖아. 아무튼 훈제 닭은 내 거야.”
“안 돼, 이것은 내 생존권이 걸린 거라고.”
절대로 양보할 생각이 없다.
“내가 널 업고 간 거랑 불 피우고 빨래 널은 걸 생각해.”
“겨우 그런 걸 가지고. 그럼, 이렇게 작고 연약하고 게다가 여자인 나보고 그런 걸 하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