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샤펜의 유희 1권(22화)
6 어둠 속의 몬스터(4)


우씨.
명왕이 최종 경고문을 내렸다.
“너, 닭을 포기하지 않으면…….”
“않으면?”
“다음 식사는 못하는 거지. 식량은 나만 가지고 있거든.”
어…….
난 내 짐을 열어 보았다. 물에 젖어 흐물거리는 빵들만 있었다.
“…….”
난 천천히 닭을 잡고 있던 손을 내렸다.
“그래, 그래야지. 흐흐흐∼.”
그리고 명왕은 닭을 게걸스럽게 뜯어먹기 시작했다. 저 조그만 한 입에 닭이 다 들어갈 듯했다.
한 점은 주겠지…….
으드득!
뼈를 부러트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퉤!”
그리고 명왕은 큼지막한 닭 다리뼈를 뱉어 냈다.
닭다리 하나라도 주겠지.
찌익!
명왕의 한 입에(고기가 매우 부드러운지) 남은 닭다리 하나마저 사라지고 뼈만 남았다.
“쩝쩝쩝.”
“먹는 소리 내지 마.”
“뭔 상관이야?”
윽! 부러우니까 그러는 거지.
“안 먹어?”
명왕이 물었다. 닭에 양념이 되어 있는지 그녀의 입에 빨간 소스와 후추, 허브가 보였다.
“이런 소시지는 못 먹겠어.”
“까다로운 녀석. 지금 네가 이러는 와중에도 먹을 것이 없어서 산에 가서 나무껍질을 벗기고 열매나 풀을 캐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야.”
“그래, 그래, 알았어. 그러니까…….”
쿵!
응?
묵직한 발소리.
명왕이 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쿵!
놈이다.
“불 꺼.”
난 얼른 널어놓았던 빨래들을 걷었다.
명왕은 얼른 모닥불에 모래를 뿌렸다.
물론 옷도 입지 않은 맨몸이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은 살고 봐야지.
“서둘러. 소시지랑 남은 닭고기는 그냥 여기다가 둬!”
“알겠어.”
쿵!
놈의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이곳으로 오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모든 짐을 챙기고 얼른 참호 안으로 들어갔다.
명왕이 들어가고 나도 들어간 후 뚜껑용 바위로 출입구를 막았다.
쿵! 쿵!
발소리가 바로 코앞까지 들려왔다.
“크워어어어어!”
예상대로 오우거였다.
“크륵?”
녀석은 우리가 있어야 할 곳에 없자 의아해진 것 같았다.
“킁킁!”
근처에서 냄새를 맡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먹다 둔 소시지랑 닭고기를 발견한 것 같았다.
그리고 곧 예상대로 녀석이 무언가 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워어어어어!”
녀석은 그것만으로도 배가 안 차는지 분노의 고함소리를 냈다.
쿵!
녀석의 묵직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먼 곳으로 사라졌다.
“갔네.”
명왕이 중얼거렸다. 그녀는 이미 몸을 침낭 속에 묻어 두었다.
“그래, 갔어.”
나도 이미 들어간 상태였다.
“걸어 놓았던 옷들도 대충 말랐어.”
“그래.”
“그런고로 여기서 자자.”
“에? 다리도 반밖에 못 펴는데?”
“그러면 계속 저 오우거에게 시달릴 거야?”
“우, 그렇지만.”
“자라면, 자! 오우거랑 싸울 거면 밖에서 자고.”
“당연히 여기에 자야죠.”
“그래, 그렇지.”
잘못 자면 내일 심히 고생할 밤이었다.

“자냐?”
깊은 밤, 명왕의 목소리에 선잠이 깨었다.
“응, 잠이 안 온다.”
사실은 졸려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다.
“야.”
“왜?”
“나 추워.”
부스럭 부스럭.
명왕이 이쪽으로 기어왔다.
우리 사이에 있던 짐들은 발로 자신이 있던 자리로 밀더니 몸을 세워 누운 채 이쪽을 보았다.
자리가 비좁은 관계로 나도 몸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우리 둘은 얼굴을 마주 보며 누운 상태가 되었다.
“나 좀 안아 줘.”
“뭐라고?”
이해가 안 되고 있다.
“추우니까 나 좀 안아서 재워 줘.”
“…….”
이걸 어찌하나요.
“아기를 재워 주듯이 말이야. 잠이 잘 안 와.”
“저기요? 저는 남자인데요?”
“얌마, 그러면 이렇게 어린 여자아이에게 흑심이 있다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
“그러면 뭐 어때, 언제 책에서 보니까 사람이 추워서 쓰러질 때는 자신의 체온으로 몸을 덮어서 따뜻하게 해 준다더라. 그러니까 어린 여동생 재워 준다고 생각하면서 안아 줘.”
“우∼!”
“나 추워. 빨리 해 줘.”
“하기 싫은데.”
“유희를 왔으면 여러 가지 체험을 해야지.”
그런 건 전혀 체험하고 싶지 않아.
“빨리 해.”
침낭의 지퍼를 열고 한쪽 팔을 내밀자 명왕이 팔에 머리를 올려 팔베개를 하였다.
반대편 팔로 명왕을 꼭 안아 주었다.
“네 팔이 차가워지니까 내 침낭 안에 손 넣어도 돼.”
그건 내가 곤란해.
“단, 보면 죽는다.”
이 여자가 정말.
천천히 눈을 질끈 감으며, 명왕의 침낭에 손을 집어넣고 곧장 그녀의 등 쪽으로 향했다.
손바닥이 등에 닫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진짜로 얼음처럼 차가웠던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부스럭 부스럭.
명왕이 내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추워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양 볼이 빨갰다.
초가을인데도 이곳은 날씨가 추웠다.
근데 모기가 활동하는 이유가 뭐지?
쓰윽, 쓰윽.
얼른 등을 손바닥으로 비벼 주었다.
“너, 감기냐?”
“바보야, 신이 병에 걸리는 거 봤어?”
“그러면 저체온증?”
“그런 거 안 걸린다니까?”
감기 몸살 같은데.
“추우니까 떠 빨리 비벼.”
“알겠어.”
은근히 명왕이 걱정돼서 더욱 세게 비비다 꼭 끌어안았다.
이 녀석 매우 아파 보였다.
“잠시.”
명왕의 이마에 손을 얹어 보았다.
“뜨거운데?”
“뭐라고?”
내 말을 믿을 수 없는지 명왕이 자신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이럴 수가! 내가 병에 걸리다니!”
“어쩌냐? 감기몸살약도 없는데.”
아마 오우거 때문에 물에 들어가서 감기몸살이 난 것 같다.
“이거 굉장해!”
에?
“내가 유희에 와서 이런 체험도 하다니!”
괜히 걱정해 주었나?
“야.”
“왜?”
“안 되겠다. 맨몸으로 꼭 끌어안아 줘.”
“이미 그러고 있잖아.”
“아니, 감기몸살은 땀을 많이 흘려야 낫는 거야. 상체랑 상체가 꼭 붙도록 안아 줘.”
“고, 곤란해.”
“그러면 내가 감기몸살로 고생하길 바라는 거야? 동료가 그러면 안 되지.”
“저기, 난 남자, 넌 여자인데?”
“근데 그거 알아?”
“뭔데?”
“신은 성별이 없어.”
에? 뭐라고?
“그러면…….”
“그냥 자신의 전생 때 성별로 있거나 취향에 맞춰서 있는 것일 뿐. 언제는 몇 년의 주기로 성별을 바꾸는 사람도 있지.”
“…….”
허걱! 그런 거였어?
“그러니까 우리 신들은 성에 대해서 얽매이지 않아. 그러니까 상관없어. 빨리 해.”
“가만! 그러면 내 성별을 여자로 바꾸면 내 천사들은 어떻게 되지?”
“그들은 성이 정해진 애들이니까 남자로 바꿀 수 없어. 요즘 주신께서 손 떼신 세계에서는 남자가 여자로 여자가 남자 되는 수술이 있다는데 그것을 할지도? 아니다, 안 하겠다. 아무튼 꼭 끌어안아 줘.”
명왕이 더 내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어쩔 수 없네.

똑.
“으음∼”
콧등에 차가운 감촉이 들었다.
부스럭.
천천히 바위를 옮겨 주위를 살펴보았다.
숲은 짙은 안개로 시야 확보가 힘들었다.
“…….”
고요했다.
매우 고요한 아침이었다.
오직 들리는 소리는 옆의 계곡물이 흘러가는 소리뿐이었다.
“어이, 블루메, 일어나.”
난 얼른 대충 마른 옷을 입고 명왕을 깨웠다.
“으음∼ 졸려…….”
“이미 아침이야. 이제 아침 먹고 움직여야지.”
“우씨∼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거 몰라?”
개소리.
“빨리 일어나.”
난 그녀를 흔들었다.
침낭이 이슬 맞아 눅눅했다.
“우웅∼ 못돼 먹었어.”
부스스 눈을 비비며 그녀도 자리에서 일어…….
“보지 마.”
“안 봤어.”
볼 생각도 없다.
“저녁에 고마웠어. 덕분에 땀 좀 흘려서 감기기운이 사라진 것 같아.”
옷을 입으며 명왕이 말했다.
우리는 밤새 서로 꼭 끌어안은 채 잤던 것이다.
덕분에 나도 땀 좀 흘렸다.
물론 아무런 일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명왕의 얼굴의 혈색이 거의 없어 보였고 입술도 색을 잃었다.
게다가 진땀을 흘리는 것이, 같이 붙어서 잔 것으로 생긴 땀이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 매우 아픈 상태였다.
“거참 다행이네.”
겉으로는 빈정거렸지만 걱정되었다.
“빈정거리지 마.”
“자, 그러면 이 소시지를 어떻게 먹을까나∼”
“그냥 구워 먹어.”
그렇게는 안 되지.
난 얼른 짐 속에서 쇠로 된 컵을 꺼냈다.
스테인리스강이 아닌 게 아까웠다.
그리고 거기에 물을 떴다.
“뭐해?”
“불 좀 붙이자.”
명왕이 나뭇가지와 넓은 나무판을 주었다.
“붙여.”
이 인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