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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마대제 1권(2화)
프롤로그(2)


아버지의 어마어마한 양의 기억 때문에 어지럼증이 동반되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방대한 기억을 내 것으로 만드는 데 꽤 긴 시간이 들었다.
그리고 기억을 내 것으로 만들면서 아버지가 태양빛을 받기 위해 100년간 어떤 행동을 해 왔는지 알게 되었다.
받아들인 기억 속에 아버지가 그것과 관련하여 마법진을 연구 중인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성을 나섰던 이유는 바로 이 연구 때문이었던 것이다.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그곳은 사방이 꽉 막혀 마법으로만 들어갈 수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그곳으로 장소를 이동했다.
아버지가 가진 갈망만큼 깊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 또한 태양빛을 받아 보고 싶었다.
얼마나 따스한지, 얼마나 밝은지, 얼마만큼이나 날 감싸 줄 수 있을지. 많은 것이 궁금했다.
그렇기에 이 연구를 이어 갈 것이다. 뱀파이어지만 태양빛을 받아도 죽지 않을 수 있는,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는 아버지가 해 왔던 연구를 자신이 이어 갈 것이다.

200년.
100년이 걸렸다. 아버지 대에서부터 시작된 태양빛에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는 연구가.
이젠 완성을 하였고, 지금은 그것을 발동할 방대한 마나를 공급 중이다.
자연의 기운인 마나가 모두 공급된다면 마법진을 발동할 수 있다.
성공 여부는 모르나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2명의 가장 강하고 월등한 진마가 연구한 것이기에 실패란 수치인 것이다.
마나가 공급되는 것을 확인하고 성으로 이동하였다.
오랜만에 들린 성의 홀에서 쉬고 있을 때 성으로 들어서는 여러 개의 기척이 느껴졌다.
인상이 슬며시 찡그러졌다.
지금까지 모든 일이 타이밍이 좋지 않은 듯했다.
이번 또한 소파에 몸을 파묻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기척이 들어섰으니 말이다.
그 점이 아니더라도 기척의 주인들이 누군지 알기에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다.
200년 만에 처음으로 맞는 손님이었으나, 피바람이 한바탕 휘몰아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예상은 정확했다.
서열 3위 그리고 5위에서 8위까지, 총 다섯 진마가 나를 찾아왔다.
이유는 물론 로드 직책에 도전.
로드 직책을 물려받고 100년간 어떠한 활동이나 언급을 하지 않았기에 나를 만만하게 본 것이다.
그것이 아니고서는 첫 도전자인 8위, 레론이 그렇게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을 리 없었다.
아니, 자신만만을 넘어 거의 비웃음에 가까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당장에 베어 버리고 싶었지만, 본능보단 이성이 강한 나로서는 꾹 참고 그들을 지하 연무장으로 안내하였다.
지하 연무장의 용도는 바로 이것이었다.
도전하는 진마와 싸우기 위한 판인 것이다.
아버지의 기록서에는 이러한 내용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다른 방식으로 강함을 증명한 듯했다.
어쨌든 지하 연무장에 도착하여 레론의 재롱을 구경할 자세를 취했다.
이런 귀찮은 일은 거절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된다면 로드의 긍지를 저버렸다는 이유를 빌미로 전 진마의 척살 대상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 되어도 내가 질 리는 없지만, 차라리 지금의 귀찮음을 감수하는 편이 나았다.
그때 레론이 공격을 가해 왔고, 너무나 어이없는 속도에 고스란히 목숨을 취해 버렸다.
순식간에 레론의 숨통이 끊기자 나머지 진마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
태양빛을 쬐었지만 살아남은 상황에 직면했을 때 지을 법한 표정이었다.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며 왼손을 까닥였다.
그러자 정신을 차린 3위가 대뜸 공격 자세를 취했다.
역시 서열 차이는 확실한 것이었다. 3위의 움직임은 레론에 비해 상당히 빨랐다.
하지만 내 눈에 레론이 걷는 것으로 보였다면 3위는 그저 달리는 것으로 보였다.
곧 3위의 머리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러자 나머지 진마들이 당황하다가 내 시선이 닿자 무릎을 꿇는다.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일 이유는 없었다. 애초에 반기를 든 것이나 다름없는 놈들이기에 후일을 위해 증인 하나만 남겨 두고 모조리 죽여야 한다.
그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셋의 진마가 하나가 되었다.
살아남은 진마는 이젠 오체투지를 하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나를 이길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더군다나 아버지의 능력마저 받았기에 이젠 감히 신과 대등할지도 모른다.
그것도 모르고 도전한 어리석은 녀석들.
남은 진마를 뒤로한 채 마법진이 그려진 곳으로 이동했다.
공급되는 마나가 끊겼기 때문이다.
마법진이 완성된 것이다. 이제 발동할 일만이 남았다.
공동의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는 마법진에서 고고한 푸른 빛이 흘러나왔다.
그것을 한동안 내려다보다가 중앙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 마지막으로 발동할 시전자의 마나를 수식대로 공급하면 되었다.
그렇게 한다면 마법진은 발동할 것이고 인간이 될 것이다.
진의 중앙에 서서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
뱀파이어로서, 진마로서 태양빛을 받을 수 있는 바로 직전이라는 생각에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명명 내릴 수 없는 기분을 느끼며 천천히 마법진에 새겨진 글귀 하나하나를 살펴보았다.
아버지 대에서부터 나에게까지 이어진 바람. 그 바람의 결정체인 마법진.
그것을 완성하게 되었고, 바람을 이루게 될 순간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꽤나 긴 시간 사념에 잠겼던 것을 털어 버리고 한 손을 지그시 내려 마나를 수식대로 공급했다.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바라 왔던 것을 이루게 될 순간!
마법진의 푸른빛이 지나칠 정도로 밝아졌다. 그 세기는 점점 강해졌고, 너무나 밝아 시야를 넘어 소리마저 잃어버린 듯했다.
그리고 그 강대하고 고고했던 빛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빛이 사라진 진의 위에는 어느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진마대제 1권(2화)
Chapter 1 루스펠드 후작가의 후계자(1)


발칸디아 대륙의 베론 왕국은 대륙에 알려진 4강 3중 5약 중에 5약에 속하는 곳이다.
그곳은 왕국이란 명칭에 걸맞지 않게 광활한 영토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이 발전하지 못한 평지에 불과했다.
가장 심한 곳은 왕국 내의 루스펠드 후작령이었는데, 그곳은 왕국 내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지닌 3개의 공작 가문에 비견될 정도로 영토가 넓었다.
하지만 넓은 영토를 지녔다는 것, 그것이 다였다.
루스펠드 후작령은 영토의 6할이 평지와 산악이었다.
즉, 발전이 된 곳이 영토의 4할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당대 주인인 레닐 루스펠드 후작이 발전에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후작이라는 높은 직책에 의해 영지욕이 남들에 비해 많으면 많지 적을 리는 없었다.
그런데도 발전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적대국 케이안트 제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영지에서 거두어들이는 세금을 모두 기사 혹은 마법사 같은 전력에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에 최전방의 영토로써 대비를 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발전을 도모할 수가 없었다.
또한 실제로 케이안트 제국은 후작령을 노리고 있었다. 그 이유는 대륙의 젖줄인 칼로이프 강이 후작령을 빙 둘러 흐르고 있기 때문에 전략적 요충지로써 굉장히 안성맞춤이었다.
상당한 길이의 칼로이프 강을 끼고 있지 않은 왕국은 없다고 봐야 했다.
그뿐이 아니다, 후작령에는 다이아몬드 원석 광산이 있었다.
광산 채굴에 들어간 지 근 1년도 되지 않았기에 생산량은 많지 않았지만, 확실히 그저 돈이 들어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발전된 4할에 속하는 산악에서 나온 광산이었다. 그렇다면 아직 발전되지 않은 6할에 속하는 산악들은 어떻단 말이겠는가.
영지가 지니는 미래성으로 인해 케이안트 제국이 군침을 흘릴 만했다.
그 점이 아니더라도 후작령을 점령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후작령을 장악하게 되면 수로가 아니더라도 5약에 속하는 다섯 왕국 중 두 곳의 진출로가 확보된다.
그들로서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매력적인 먹이인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케이안트 제국의 노림을 받고 있는 루스펠드 후작령은 지금 후작 자리의 부재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당대 후작가의 주인 레닐 루스펠드 후작이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것은 한 달 전의 일이었다.
소드 엑스퍼트 최상급에 다다른 마나 컨트롤 실력과 뛰어난 검술을 지니고 있던 레닐 후작의 죽음은 엄청난 충격을 가져왔다.
그 충격은 죽음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더욱 커졌다. 그리고 커진 충격의 수십 배로 가문이 술렁이는 일이 발생했다.
레닐 후작이 죽음으로써 유일한 후계자였던 레이얀이 열병으로 쓰러진 것이다.
그것도 레닐 후작이 죽은 지 3일 만의 일이었다.
굉장히 의심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어떠한 이도 사태의 뚜렷한 진상을 밝혀내지 못했다.
그저 운이 없다는 결론만 내릴 뿐이었다.
또한 레이얀이 걸린 열병은 이상하게도 갈수록 악화되었다.
병을 낫게 하고자 쓴 약재는 애초에 통하지도 않았으며, 신성력은 몸 자체에서 거부하는 듯 튕겨져 나왔다.
그로 인해 가문의 사람들은 당대 주인을 잃은 슬픔에 빠질 겨를도 없이 유일한 후계자마저 잃을지 모른다는 아픔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기적과도 같이 전혀 손을 쓸 수 없었던 열병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정확히 열병으로 쓰러진 지 20일 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21일째 레이얀은 정신을 차렸고, 가문의 사람들은 안도할 수 있었다.
물론, 후작령 내의 몇 명의 관리들은 이 점을 몹시 안타까워했지만 그것을 아는 이는 당사자들뿐이었다.
성의 가신들과 집사는 깨어난 레이얀을 형식상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으로 레이얀을 대했다.
차기 후작령을 이끌어 갈 주인이란 점도 있지만 쓰러지기 전 레이얀은 아랫사람을 보듬을 줄 알았다.
개중에는 그 점에 감복하여 성자의 재현이라는 말도 나돌았다.
왜냐하면 품위 유지비를 모아, 남 몰래 생활이 힘든 영지민에게 지원을 해 준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우연찮게 드러나면서 레이얀을 추앙하는 자들이 생겼다.
하지만 다시 깨어난 레이얀은 어딘지 모르게 변해 있었다.
루비를 박아 놓은 듯이 아름다운 눈동자에서 느껴지던 따스함은 지독하리만큼 무심해져 있었고, 언제나 웃음기가 걸려 있던 입은 차갑게 닫혀 있었다.
분위기가 상당히 변해 있었지만 외모가 출중한 탓인지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예전보다 더욱 어울렸다.
집사와 몇몇 가신들이 상태를 물었다.
레이얀은 자신을 향해 처음 듣는 언어로 물어 오는 사람들을 보며 의문을 가졌다.
‘지구가 아니다.’
다시 깨어난 레이얀은 예전의 그가 아닌 태양빛을 받고자 했었던 직계 혈통 뱀파이어 중에서 가장 순혈인 진마의 영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