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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마대제 1권(4화)
Chapter 1 루스펠드 후작가의 후계자(3)
그리고 그 생각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다.
깃털 펜을 들고는 잉크병에 깊숙이 묻혔다가 빼내었다. 곧 깃털 펜이 빠르게 양피지 위를 지나다녔다.
펜을 다시 놓았을 때는 이미 돌돌 말린 양피지가 10개 되었을 때였다.
그것들은 모두 후작의 인장으로 봉해져 있었다.
양피지 10개 중 7개는 일곱 장로에게 날아갔다.
그곳에는 영주 후계자로서 장로들을 소집한다는 명령이 적혀 있었다.
그 명령서를 받은 장로들은 빠르게 마차를 준비하여 자신이 거주 중인 성에서 빠져나갔다.
하지만 목적지는 영주 성이 아니었다.
그들이 향한 곳은 일곱 장로 중 하나인 겔릭의 성이었다.
속속들이 장로들이 도착하는 가운데 겔릭은 가장 먼저 도착한 2명의 장로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장로들과 같이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어 있었다.
그들은 각각 게드릭과 헥토란 이름을 지닌 4클래스에 오른 마법사였다.
물론 세상에 알려지기는 2클래스 마스터이다.
애초부터 속일 생각이 아니라 영지에 들어와서 경지가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장로라는 직책이 있기에 경지를 드러낼 기회가 없어 알려진 경지가 수정되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겔릭도 마찬가지인데 겔릭은 애초부터 경지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헥토가 성급한 성격을 참지 못하고 질문하였다.
“똑같은 내용이란 말이오?”
겔릭은 몇 차례나 다른 장로를 기다리자 하여도 물어 오는 헥토의 태도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모두 똑같은 듯하오.”
“정말 레이얀이 정신을 차린 겁니까?”
이번엔 게드릭이 물어 왔다.
아무래도 이들의 궁금증부터 해결하여야지 기다리는 시간이 편할 것 같았기에 겔릭이 입을 열었다.
“레이얀의 열병이 씻은 듯이 나았고 지금은 정상적인 영주 대행을 하고 있다 하오.”
레이얀이 깨어난 지 5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겔릭은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어떻게 깨어난 것이오? 그 병은…….”
“어허!”
기밀을 언급하려는 헥토에게 눈치를 주었다.
“자세한 건 모르겠소. 일단 나머지 장로들을 기다립시다.”
단호한 겔릭의 어조에 헥토가 찻잔을 들었다. 가장 궁금했던 문제를 해결했으니 조금 기다릴 참을성이 생긴 것이다.
그때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게드릭이 입을 열었다.
“소집령에 응하실 계획입니까?”
그 질문에 헥토도 찻잔을 입에 대고 겔릭을 바라보았다. 잠시 뜸을 들이던 겔릭이 대답했다.
“그럴 이유가 없소이다. 그리고 이 소집령은 우리에게 더욱 좋게 작용할 것입니다.”
헥토와 게드릭의 얼굴에 의문이 서렸지만 겔릭의 입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모든 것은 일곱 장로가 모였을 때 알게 될 것이다. 헥토도 이 점이 그만큼 중요한 것을 알기에 간신히 묻고 싶음을 참고 나머지 장로들을 기다렸다.
루스펠드 후작의 후계자 레이얀이 정신을 차리고 일곱 장로를 소집했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백성들은 드디어 주인이 들어섬에 기뻐했지만, 다른 관리들과 조직들은 그런 레이얀을 비웃었다.
아무런 힘도 없는 어린 녀석이 멋도 모르고 움직이려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영주의 위상은 땅에 떨어진 상태였고 실권은 일곱 장로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영주가 어떠한 수를 쓰더라도 지금 상황을 타개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역시나 일곱 장로는 어린 영주의 소집령을 대놓고 무시했다.
공식적으로 거절한 것도 아니고, 무시해 버린 것이다.
그것도 은밀히 알려진 소집령도 아니고, 영주 후계자의 권한으로 소집한 것을 말이다.
그로 인해 그들은 모종의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다른 영지에 확실히 알릴 계기가 생긴 것이다. 후작가의 실권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단 것을 말이다.
그들은 이번 소집령을 기회로 이용하여 중앙 진출까지 꾀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발 빠른 몇몇 귀족은 벌써부터 일곱 장로를 만나고 있었다.
그만큼 루스펠드 영지는 노른자라고 할 만큼 매력적인 땅이었기 때문이다.
영주 성의 가신들과 록펠이 이 점을 모를 리는 없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역시나 루스펠드 핏줄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반면 록펠은 의문을 가졌다.
‘내가 잘못 본 것인가?’
침대에서 일어난 레이얀은 정말 변해 있었다.
얼핏 일견하기에는 상당히 냉정하고 생각이 깊어 보였다. 하지만 지금 이 결과는 무엇이란 말인가.
역시 언제나 긍정적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레닐 루스펠드의 피를 이었단 말일까.
레닐 루스펠드는 지닌 바 검술 실력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그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었다.
레이얀은 검술 실력이 뛰어나지만 그 또래의 실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평범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직 힘으로 이들을 제압하기란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일까.
록펠은 침대에서 일어난 레이얀이 전에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을 했음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급히 발걸음을 집무실로 옮겼다.
기사단의 힘을 모르는 것이기에 레이얀이 그런 행동을 취한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록펠이 이 정도로 생각할 만큼 다시 깨어난 레이얀의 모습은 그에게 큰 신뢰를 주었다.
집무실에 도착한 록펠이 문을 지키고 서 있는 기사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기사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고 안에 언질을 넣었다.
“들어와.”
뱀파이어 때 수없이 읽었던 서적을 통해 영주 생활을 잘 알고 있는 레이얀이 철자에 따라 록펠을 집무실에 들였다.
“무슨 일이지?”
읽고 있는 서적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록펠은 그런 모습에 다시 한 번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일반 가신들도 알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책이나 읽고 있다니!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도 대답이 없자 그제야 레이얀이 서적에서 눈을 떼고 록펠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정신을 차린 록펠이 찾은 이유를 털어놓았다.
그는 노련한 정치인이 아니었기에 말 속에 의도가 고스란히 베여 있었다.
“일전에 기억이 나시지 않는다고 하셨기에 못난 충신이 노파심에 영주 성 기사단의 전력에 대해 설명 드리고자 찾아왔습니다.”
“…….”
록펠의 대답에 레이얀은 순식간에 그의 의도를 깨달았다.
지금 장로들의 행동을 레이얀이 모를 리 없었다.
이미 대륙에 서서히 퍼져 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그 문제의 중심점인 자신이 모른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자신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으니 가문에 힘이 없기에 그런다고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자신의 승낙을 기다리는 록펠을 바라보며 레이얀이 입을 열었다.
“마나 유저인 기사가 100명, 엑스퍼트 중급이 20명, 그리고 록펠 단장을 포함한 엑스퍼트 상급이 3명, 나머지는 일반 기사. 내가 잘못 알고 있나?”
“……!”
록펠은 차기 주인을 면전에 두고 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그만큼 놀란 것이다.
레이얀이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은 전력을 모르기에 장로들을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님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다른 것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차기 주인일지라도 이미 록펠은 주인으로 인정한 레이얀의 생각을 감히 물을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알고도 움직이지 않는 레이얀의 의도가 너무나 궁금하여 여쭐 수밖에 없었다.
“그, 그렇다면…….”
“어째서 내버려 두느냐고?”
기다렸다는 듯이 레이얀의 말이 튀어나왔다.
“…….”
록펠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어린 주인이 자신의 의문을 모조리 알고 있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갑자기 어린 주인의 입가에 슬며시 걸린 미소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두고 보면 알 거야.”
그 말을 끝으로 레이얀은 시선을 책으로 돌렸다. 한참을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록펠이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후 조용히 방을 빠져나갔다.
그로부터 며칠이 또다시 흘렀다.
그동안 일곱 장로의 입지는 더욱 확고해졌는데, 이는 아무런 대처도 취하지 않는 공식 후계자의 모습 때문에 더욱 가속화되었다.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는 일곱 장로 중 하나인 겔릭에게 한밤에 서신이 도착했다.
한밤에 도착한 부드러운 재질로 이루어진 고급 양피지에는 직간접적으로 루스펠드 영지의 장악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내용을 다 읽은 겔릭이 그 자리에서 서신을 태워 버렸다.
‘드디어 움직이시려는 건가.’
겔릭은 재가 될 때까지 서신을 지켜보다가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빠르게 다른 장로들과 접촉 후 그들은 하나의 내용을 표명했다.
그것은 영주 대행의 소집령에 응하겠다는 것이었다. 상당히 늦은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이 행동은 많은 권력자들에게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이제 와서 일곱 장로가 응답하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일까.
이미 모든 것이 넘어왔지만 후의 문제를 위해 후계자를 제거하려는 것일까?
혹은 누군가와 거래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런 추측이 떠올랐지만 자세한 사정은 영주 대행인 레이얀과 장로들이 부딪힌 후에야 밝혀질 것이었다.
갑작스런 일곱 장로의 움직임에 의해 루스펠드 후작령 내에서 은밀히 움직이던 실력자들도 그들을 예의 주시하기 시작했다.
실력자들에게 주목 받고 있는 일곱 장로들은 소집령에 응한다고 발표한 지 삼 일 후 저마다의 성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영주 성으로 마차를 출발시켰다.
그게 지옥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것임을 모른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