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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마대제 1권(6화)
Chapter 2 후계자의 귀환(2)


“사담이 길었군. 너희들을 소집한 이유는 이제 내가 영주임을 알리기 위해서다.”
“……!”
그 말에 헥토의 입이 더욱 벌어졌다. 황당함을 넘어 어이가 없었다.
모두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고 있을 때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겔릭이 소리쳤다.
“웃기지 마시오!”
“인정하지 못한단 건가?”
“그렇소!”
“어째서?”
“……항시 전투태세인 이곳을 이끌기에 당신은 부족하기 때문이오.”
말을 하면서도 겔릭은 은연중에 불안감을 느꼈다. 왜냐하면 여전히 공간을 장악하고 있는 헥토의 기세는 자신도 거슬릴 정도로 강했다. 그런데 그 기세를 정확히 받고 있는 레이얀이 너무나 태연했기 때문이다.
마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아!’
레이얀의 반응을 살펴보던 겔릭이 별안간 깨달았단 표정으로 속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레이얀을 찬찬히 살펴본다.
무표정한 얼굴과 척 보아도 창백하다는 느낌이 드는 피부색.
레이얀을 살필수록 겔릭의 입가가 슬며시 올라갔다.
‘아무것도 못 느끼는구나!’
레이얀이 걸린 열병은 보통 병이 아니었다.
일곱 장로들이 비밀리에 구한 독초를 정기적으로 레이얀 식사에 섞었다.
물론, 먼 거리의 일곱 장로들이 수고스러움을 하진 않았다. 돈이면, 권력이면 무엇이든 되는 이 세계에서 가진 자란 참으로 편한 것이었다.
그 독초의 효과는 몸의 내부를 도는 피의 속도를 수십 배 증가시킨다. 그것만으로도 일반 사람이라면 심장이 견디지 못하고 터져 버릴 것이다.
그렇지만 레이얀은 일반인이 아니다. 마나를 다스리는 실력자였다.
그런 실력자에게 이 독초는 더욱 무서운 효과를 발휘한다.
온몸에 퍼져 있는 마나를 체외로 내보내며 내부의 피를 모조리 말리는 것이다.
이토록 무서운 효능을 지닌 이 독초의 이름은 카치아. 평범한, 아니 위스키처럼 달콤하게 느껴지는 이름이지만 가진 바 능력은 악마의 잔혹함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 독초를 지속적으로 먹은 레이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 나았을 수야 있지만, 그 독초의 효과를 생각해 본다면 가진 바 마나를 모두 탕진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마나를 이용한 기세를 전혀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마나를 이용한 기세는 일반인이 느끼기에 그저 서늘한 공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반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기세도 있지만 헥토가 그것을 발현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겔릭의 태도가 한껏 여유로워졌다.
당장 살인이 벌어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 같은 얼음장의 표정은 연기가 분명했다.
‘그래, 그 점은 칭찬해 주마. 크크, 지금까지 속았으니 말이다.’
“에헴. 지금까지 후계자로서 그릇된 행동을 하지 않았기에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고자 하오. 그러니 헥토 장로의 말대로 하시지요.”
“…….”
레이얀의 고개가 정면으로 돌아가며 아무것도 없는 벽을 응시한다.
그리고 코웃음을 치며 입꼬리를 살며시 올렸다. 마치 겔릭이 하는 양이 우습다는 듯이.
“흥.”
작은 소리였지만 장내에서 그것을 듣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레이얀에게 시선이 집중된 지금, 그 태도가 의미하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겔릭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빌어먹을 자식이!’
당장에 호통을 치고 싶었지만 겨우 참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행여나 어린 영주를 핍박했다는 소문이 나돈다면 분명 마찰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기회조차 받지 않겠다는 거요?”
겔릭의 말에 레이얀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서서히 사라졌다.
입매가 완전한 일자가 되는 그 순간!
샤샥.
덥썩.
“컥!”
어느새 레이얀이 겔릭의 머리를 한 손으로 움켜잡고 있었다.
“무, 무슨!”
“……!”
나머지 장로들이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레이얀의 움직임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이게 무슨 짓이오!”
겔릭이 당황하며 소리쳤다. 그러면서 은연중에 마나를 일으켜 손을 떼어내려 했다.
그런데 전혀 밀려나지가 않았다.
마치 홀드 마법에 걸린 것처럼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홀드 마법과 다른 점이라고는 머리에 얹힌 가녀린 손 하나가 너무나 무거웠다. 마치 거대한 산을 지탱하는 기분이었다.
그때 입김이 겔릭의 귓가를 간질였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스산한 음성.
“네가 뭐라고 나에게 기회를 준다는 거지?”
“……!”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겔릭이 한차례 몸을 떨었다. 미지의 공포에 머리와는 달리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본 헥토가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나섰다. 겔릭이 느끼는 공포를 알 리 없는 헥토는 갑작스레 일어난 상황에 당황한 것이라 판단했다.
“지금 뭐하는 짓이오! 당장 겔릭 장로를…….”
언성을 높이던 헥토가 가슴 부위의 따끔한 느낌에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고개를 슬며시 내려 보았다. 헥토가 갑작스레 말을 멈추자 다른 장로들도 그를 바라본다.
얼핏 멀쩡한 듯했지만 가슴 부위의 옷이 횡으로 네 줄이나 째져 있었다.
“이게 무슨…… 쿨럭!”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헥토가 피를 토했다. 비단 입에서만 피가 흐르는 것이 아니었다.
째진 옷 사이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헥토의 신형이 서서히 기울었다.
이내 바닥에 닿아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을 때 어느 누구도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안타깝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살았을 텐데.”
물론 거짓말이었다.
인간은 호흡을 하는 와중에도 근육이 움직인다. 그 말은 말을 하지 않더라도 숨을 쉼으로써 근육이 움직여 찢겨진 부위가 벌어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레이얀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였다. 헥토가 쓰러진 이유가 모두 자신이 한 것임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하등한 인간이 자신의 손이 출수하는 장면을 보았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었다.
레이얀의 의도는 정확히 먹혔다.
장로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과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복합된 얼굴로 레이얀과 헥토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는 도중에 겔릭의 떨림은 더욱 심해졌다. 레이얀에게 닿는 것만으로 이토록 공포심을 느낄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침상에 쓰러져 있을 때 영혼이 들어온 시점에서부터 어느 누구도 레이얀을 건들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겔릭이 공포를 느끼는 것은 다른 것에 있었다.
바로 조금 전 레이얀과 눈을 마주친 것이 화근이었다.
뱀파이어의 눈동자는 선천적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빠져들게 하는 매혹이 서려 있었다. 그것 말고도 뱀파이어의 붉은 눈동자는 인간에게 근본적인 두려움을 심어 줄 수도 있었다.
신체는 인간이지만, 영혼으로 인하여 그 신체가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었다. 창백한 피부 톤이 단적인 예였다.
눈동자에 서린 마력은 단순히 마주치는 행위만으로 되지 않고 레이얀이 의도해야만 되는 것이었다. 아무리 레이얀의 두 눈이 차갑다지만 겔릭이 피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피한 이유는 바로 근본적인 두려움에 의한 것이었다.
꽈악.
“크윽!”
머리를 조여 오는 압력에 겔릭이 신음성을 토했다.
‘이, 인간의 악력이 아냐!’
금방이라도 찌그러질 것 같이 압축된 겔릭은 여전히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레이얀이 발휘한 공포심에 짓눌려 그에게 대들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때 레이얀이 겔릭이 내밀었던 양피지가 놓인 테이블을 향해 왼손을 뻗었다. 그러자 마치 자석에 끌려가듯이 양피지가 허공을 격해 레이얀의 손에 쥐어졌다.
그리고 왼손을 들며 예의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너흰 큰 착각을 했어.”
“……?”
“……크으.”
여전히 헥토와 레이얀을 번갈아 보던 장로들이 레이얀의 말에 시선을 보내었다.
“이 따위 것으로 날 누를 수 있다고 생각했나?”
화르륵.
레이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양피지에 불이 붙었다. 그 불은 굉장히 느리게 양피지를 태워 가고 있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게드릭이 다급히 마나를 끌어 올렸다. 지금 불타고 있는 서류는 상당히 중요한 것이었다. 다름 아닌 그들이 조작한 서류의 원본이기 때문이다.
“지금 뭐하는 짓이오!”
그리고 마법을 전개하려는 찰나!
서걱.
섬뜩한 소리가 선명하게 귓가를 울렸다. 게드릭 또한 그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소리의 근원지를 찾으려고 고개를 움직이는 순간 뜻하지 않게 바닥을 바라보게 되었다.
툭.
바닥에 떨어진 게드릭의 얼굴에서 두 눈이 부릅떠지며 생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털썩.
시간 차를 두고 게드릭의 몸이 허물어지자 겔릭을 제외한 다른 4장로들이 대경했다.
순식간에 2명의 장로가 죽어 버렸고, 후계자 권한 승인 여부가 적혀 있던 서류가 불타 버렸다.
길지 않은 시간에 일어난 엄청난 일에 모두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크윽…….”
겔릭의 신음 소리가 흘렀다.
그는 지금 일어난 모든 일들보다 레이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가장 강력한 접착제에 붙은 것마냥 도저히 손을 떨어뜨릴 수가 없었다.
다른 장로들은 겔릭의 신음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굳은 얼굴로 자세를 바로잡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알 수 없는 공격에 2명의 장로가 죽어 버렸지만, 아직 장로들이 더 많았다.
숫자를 넘어 장로들은 마법사였다. 그렇기에 레이얀에게 질 일은 없다고 판단 내렸다. 실제로 레이얀의 정체불명의 공격 또한 끝이라고 생각했다.
어쌔신들이 쓰는 암습 무기를 사용한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두 개의 공격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장로들은 순식간에 죽어 버린 두 명의 장로에게서 받은 충격 때문에 겔릭을 잡을 때 레이얀의 속도를 망각하고 있었다.
레이얀은 달라진 장로들을 비릿한 미소로 살펴보았다.
“끝까지 귀찮군.”
그 한 마디와 함께 레이얀의 두 눈이 지독하게 차가워졌다.
파아앗.
그 순간 레이얀을 중심으로 무형의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커억!”
“컥!”
겔릭을 제외한 4명의 장로들의 몸이 순식간에 식은땀으로 젖어 버렸다.
‘사, 살았다?’
장로들은 모두 하나 같이 자신들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 본 그것.
수십 개의 칼날이 온몸에 박히는 환상!
너무나 생생하여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나니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그들은 이 현상에 의문을 품을 새가 없었다. 온몸을 난도질하는 듯이 살벌한 기운이 장로들을 옥죄어 왔다.
겔릭은 그 기운을 받지 않고 그저 레이얀의 손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덜덜덜.
이길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기세등등하던 장로들이 몸을 떨었다.
심지어 바닥에 주저앉는 장로도 있었다.
그만큼 레이얀이 내비친 살기는 그들의 심적에 큰 타격을 주었다.
두려움과 공포심이 장악한 장로들의 두 눈은 레이얀을 향해 있었다.
“너희에게 예우해 준 것이 궁금하겠지.”
그들을 살피며 레이얀이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말했다.
“마지막 만찬이라 생각해라.”
그 말과 함께 레이얀이 왼손을 횡으로 그었다.
귀찮은 파리를 날려 보내는 듯한 사소한 행동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서걱.
아까와 같은 섬뜩한 소리가 여러 곳에서 흘렀다. 그리고 4명의 장로들은 공포심에 물든 눈빛 그대로 생명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