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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마대제 1권(7화)
Chapter 2 후계자의 귀환(3)
그제야 레이얀이 겔릭을 잡은 손을 놓았다.
털푸덕.
갑자기 가해지는 힘이 사라진 탓에 자리에 주저앉았던 겔릭이 다급히 일어섰다.
그리고 레이얀과 거리를 벌리고자 뒤로 신형을 날렸다. 이미 레이얀에게 걸렸던 근원적인 공포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툭.
‘응?’
거리를 벌리던 겔릭은 뒤꿈치에 걸리는 이질감에 고개를 숙여 보았다.
“헉!”
두 눈이 부릅떠진 게드릭의 얼굴이 바닥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전부 죽어 있었다.
비록 자신과 같은 목표를 띤 자들은 아니었지만 행동을 같이해 온 자들이었다. 그런 고로 하나하나가 제 한 몸을 지킬 실력은 가지고 있었다.
그런 자들이 모두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것도 지독하게 두려움에 찌든 표정으로.
겔릭은 협력자들의 표정에 앞서 모두 죽어 있는 지금의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대, 대체 누가!”
겔릭은 장로들을 죽인 것이 레이얀임을 몰랐다. 레이얀이 주위의 소리를 듣지도 느끼지도 못하게끔 기막을 쳤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기막을 치지 않았더라면 겔릭은 레이얀이 발하는 살기에 심장이 멎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만큼 날카롭고 차가운 살기였으며 겔릭은 지나치게 레이얀과 거리가 가까웠던 것이다. 레이얀이 살기를 조절하여도 되었지만 기막을 치는 것보다 살기를 컨트롤하는 것이 더욱 귀찮았기에 겔릭을 보호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안다면 까무러칠 고수들이 여럿 있을 것이다.
기막이란 자기 스스로에게 치기도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쓰러진 장로들을 미친듯이 살피는 겔릭을 향해 레이얀이 말했다.
“넌 죽일 수가 없었지.”
“……?”
레이얀의 높낮이 없는 음성에 겔릭이 시선을 보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표정은 내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네, 네놈이 죽였단 말이냐!”
“…….”
“대체, 감히 네놈이!…… 컥!”
기가 막힌 상황에 호통을 치려던 겔릭이 숨을 격하게 내뱉었다.
어느새 눈앞에 다가온 레이얀이 겔릭의 목을 움켜잡고 있었다.
큰 힘을 가하지 않았건만 겔릭은 자신을 죄어 오는 압박감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런 겔릭을 향해 레이얀이 말했다.
“너는 다른 놈들과 다르더군.”
꽈악.
“커어억!”
레이얀은 겔릭과 눈을 마주치며 공포심만 심어 준 것이 아니었다.
겔릭의 눈을 통하여 그의 기억 속을 파헤쳤다.
극히 짧은 순간이었기에 방대한 기억의 겉핥기에 지나지 않았지만 개중 하나가 상당히 레이얀을 자극했다.
그것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아내고자 겔릭을 죽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무심하게 겔릭을 바라보던 레이얀의 두 눈에서 홍염이 일었다.
핏빛보다 진한 붉은색이 레이얀의 눈자위를 다 덮었다.
그 눈을 강제적으로 보고 있던 겔릭의 몸이 돌처럼 굳었다.
“끄으으…….”
겔릭의 안면이 푸들푸들 떨리기 시작하더니 눈자위가 뒤집어졌다.
그리고 떨림이 극에 달했을 때 목을 움켜쥔 손을 풀었다.
털썩.
바닥에 힘없이 떨어진 겔릭은 미약한 떨림을 보이며 여전히 굳어 있었다.
그런 겔릭을 보는 레이얀의 두 눈에 붉은빛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대신 그 자리를 귀찮음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놈의 정보만으로는 부족하군.”
그 말과 함께 문 쪽으로 신형을 옮겼다.
진마대제 1권(7화)
Chapter 3 후작의 공표(1)
회의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록펠은 걸어 나온 레이얀을 보고 의아함을 지녔다.
소드 엑스퍼트의 상급 단계에 이른 록펠의 감각은 의도하지 않아도 주변의 모든 것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고로 회의실 밖에 있던 록펠의 귀에 내부의 대화가 들려야 함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물론 마나 컨트롤이 수준급에 이르러 소리를 차단하는 기막을 칠 수야 있겠지만 방 안의 인물 중 그것이 가능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사라 하여도 오러 나이트에 이르러서 겨우 1m 공간만 차단할 수 있었고, 마법사라 하여도 7클래스의 대마도사가 되어야 기막을 형성할 수 있었다.
물론 평균이 저럴 뿐, 마나의 이해도가 남다르다면 기막을 형성할 수 있는 경지의 차이는 있을지 모른다. 허나 안의 인물들은 그런 가능성이 추후도 없었다.
그렇기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다가 별안간 나온 레이얀의 모습에 의문을 지닌 것이다.
그런 록펠의 귀로 레이얀의 무미건조한 음성이 들려왔다.
“일곱 장로의 가족과 관련된 모든 이를 감옥에 가둬라. 만약 반항한다면…… 죽여도 상관없다.”
지나칠 정도로 무감각한 어조에 기사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록펠은 방금 받은 명령에 일순간 표정이 멍해졌다.
기사들이 그토록 바라 왔던 것이지만 실현 불가능했던 그것을 행하라 하다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레이얀이 걸음을 옮기는 그때, 조금 열려 있던 문을 통해 회의실의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문은 누군가가 밀기라도 한 것처럼 아주 서서히, 천천히 열리며 내부를 훤히 보여 줬다.
내부의 쓰러진 의자 하나, 피에 젖은 대리석 바닥과 카펫 그 모든 것이 하나씩 눈에 들어올 때마다 록펠과 기사들의 두 눈은 하염없이 커졌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 내부의 상황에서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록펠은 레이얀이 향한 복도로 눈을 돌렸다.
붉은 카펫이 깔린 복도를 거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곱 장로의 죽음은 그들의 가족을 체포하는 영주의 기사들로 인해 알려졌다.
모두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고개를 갸웃거릴 때 레이얀이 공문을 발표했다.
앞으로 영지를 이끄는 후작이 자신임을 밝혔으며, 일곱 장로가 역모를 일으켜 죽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것을 접한 모든 이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믿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장로들이 죽었다는 얘기 때문이었다.
기세등등하게 영주 성을 찾아간, 저마다 마법을 익힌 장로들이 죽었다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문제였다.
더군다나 몇 년 전에 알려진 그들의 경지에는 분명히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죽었다니.
그 말은 영주 성의 전력이 강하다는 말인가.
그것 또한 가능성이 없었다.
영주 성의 전력 태반이 케이안트 제국의 국경지대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법사인 일곱 장로는 누구에게 죽임을 당했단 말인가.
현재 후작이 된 레이얀이 아무도 모르게 섭외한 고수가 있다는 말일까. 그나마 이것이 그럴듯한 주장이었다.
왜냐하면 7명의 마법사를 상대하려면 같은 마법을 익힌 마법사여야 했다.
소드 엑스퍼트 최상급이라 할지라도 7명의 마법사를 이겨 내기란 어려운 감이 있었다.
그렇기에 모두들 섭외한 고수가 있다는 의견에 초점을 기울였다.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의견은 확신에 이르렀다.
소드 엑스퍼트 하급의 레이얀이나 그보다 높은 경지의 록펠만으로 일곱 장로를 제압할 수는 없었다.
물론 영지 내의 정확한 전력은 모르나 전투태세인 현 상황에서 영주 성에 기거하는 실력자들은 적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모두들 이번 일을 레이얀이 섭외한 고수가 있다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일곱 장로의 죽음이라는 어이없는 일에 끓어오른 세간이 잠잠해지고 있을 때 또다시 왈칵 뒤집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레이얀이 또 다른 공문을 발표한 것이다.
후작의 인장이 찍힌 공문서에는 이러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영지 내의 타 가문의 자주권을 박탈하며, 영지의 법도를 어긴 자는 반역과 동등한 죄로 취급하여 척살에 이른다.’
루스펠드 후작가는 항시 전투태세의 위험한 곳이었다.
그런 곳은 고하가 분명하여야 했기에 레닐이 가장 먼저 행한 일은 주변 영지들의 장악이었다. 베론 왕국은 영지전을 허가하기에 광활한 영토를 지니고도 대륙의 5약에 속하게 된 것이다. 서로를 갉아먹기에 강해질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레닐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에 앞서 제 살을 갉아먹는 곳에 전력을 잃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압도적인 전력으로 장악하는 대신 그들을 루스펠드 영지 내로 영입하며 자주권을 인정하여 주었다. 엄연히 한 틀에 있지만 다른 가문으로써 체계를 공고히 다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레이얀이 박탈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루스펠드 영지 내의 숨은 실력자들과 조직들은 일곱 장로를 죽였다고 어린 영주가 기고만장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새로운 법률에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 다른 가문들의 행보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들이 움직일 필요가 없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 대다수는 이미 레이얀이 과한 행보를 했다고 결단 짓고 있었다.
영지 내에 있는 타 가문이 아무리 남작 이하라고 하지만 모두 국경 부근에 있기에 전력이 튼실했다.
겨우 일곱 장로들을 죽인 고수만 가지고 모든 가문들의 반발을 진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오만한 판단이라 결론 내린 것이다.
새로운 법안과는 상관없이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타격을 입은 자들은 어둠 속에서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포근해야 할 달빛마저 싸늘한 무거운 밤이었다.
인적이 드문 곳에 지어진 주인 없는 산장은 언제나 밤이 되면 동물들의 잠자리였다.
하지만 지금 그곳에서 풍겨지는 기운에 동물들은 감히 접근조차 못했다.
인간은 느끼지 못할 만큼 절제된 기운이었지만 너무나 강대하여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그 기운이 느껴지는 산장 안으로 작은 발소리조차 나지 않는 인영이 들어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저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죽은 것이 사실인가?”
“아닙니다. 그는 감옥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산장 안에 들어선 인영은 갑작스런 물음에도 놀란 기색 하나 없이 조리 있게 대꾸했다.
“그렇다면?”
목적어를 떼 먹은 물음이었지만 인영은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장로들이 죽음으로써, 그 또한 죽은 것으로 알려진 듯합니다.”
“그렇다면 장로들이 죽은 건 사실이군.”
“예. 그들을 죽인 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목격자가 없어 알아낼 방법이 없습니다.”
“흐음, 그 자리에 지금 영주가 있었지 않나.”
“……예.”
인영, 그러니까 특급 어쌔신의 반열에 오른 디엔은 다음에 이어질 말이 예상되었다.
“영주라도 상관없다. 변수가 될 수 있는 상황은 확실히 해 두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명령을 하달 받은 디엔은 잠시 시간을 둠에도 다른 말이 없자 즉시 산장을 빠져나갔다.
멀어져 가는 기척을 느끼며 산장에 몸을 숨기고 있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꽤나 준수한 얼굴에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그리고 차가운 회색 눈동자는 날카로운 얼굴을 더욱 부각시켰다.
회색 눈동자가 달빛에 덮여 무섭게 번뜩였다.
‘기필코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게 할 것이다.’
특급 어쌔신 디엔에게 명령을 내릴 정도의 사내, 그 또한 다른 이의 명령에 움직이는 것이었다.
에론테일 공작가.
베론 왕국의 세 공작가 중 한 곳이자, 검가로 알려진 기사도의 가문이었다.
그곳의 현 가주, 에론테일 아르세인은 충복의 보고에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 그런 법안을 등재했단 것이냐?”
“예, 지금 후작령은 그 법안에 술렁이고 있습니다.”
“허어, 정녕 숨긴 패가 있단 말인가.”
한숨을 내쉬는 아르세인을 뒤로 중년인이 나섰다.
에론테일 공작가의 숨겨진 패 중 하나이자, 아르세인의 오른팔이라고 불리는 베로크였다.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뭔가?”
수하가 대뜸 끼어드는, 다른 가문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벌어졌지만 아르세인은 오히려 눈을 빛내며 베로크를 바라보았다.
그만큼 그는 베로크를 믿고 있는 것이다.
“일곱 장로들을 죽인 것은 레이얀이나 후작가의 기사들이 아닌 제3의 힘이 개입되었을 것이 분명한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이미 세간에 알려진 당연한 것을 되풀이하는 베로크에게 답답함을 느끼며 아르세인이 보채었다.
그것을 알아챈 베로크가 호흡을 가다듬고는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었다.
“그 힘도 분명히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일곱 장로를 죽였다는 파급에 힘입어 그 공문을 발표한 것으로 보입니다.”
“호오, 그 말은 일곱 장로를 죽인 미지의 실력자라는 궁금증과 두려움을 이용한 것이란 말이군?”
“그렇지요.”
베로크의 긍정에 아르세인이 눈을 빛내었다.
“그렇다면 그대는 어찌하면 좋겠는가?”
“…….”
아르세인의 갑작스런 물음에 베로크가 생각에 잠겼다. 아르세인이 묻는 것의 무게를 알기 때문이다.
대륙에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베론 왕국은 현재 국왕파와 에론테일 공작 산하의 귀족파, 그리고 벨리어드 공작가의 귀족파가 나뉘어 대립하고 있었다.
중립은 오딘 공작가와 변방의 후작가들뿐이었다. 변방의 후작가들은 애초에 중앙 권력 다툼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전력은 국경을 담당하는 곳에 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작령에 만약에 남는 힘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새로운 전력으로 사용 가능함을 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