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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마대제 1권(8화)
Chapter 3 후작의 공표(2)


아르세인은 그것을 고민하는 것이다. 루스펠드 후작가에 등장한 새로운 고수. 그것은 곧 새로운 힘과 남는 전력을 의미한다.
힘의 분포가 거기서 거기인 지금 상황에서 후작가의 영입이란 변수는 크게 작용할 것이다.
그래서 아르세인은 루스펠드 후작가를 에론테일 귀족파로 영입해야 함을 고민하는 것이다.
한참 고민하던 베로크가 대꾸했다.
“흐음, 아무래도 신중하여야 할 듯합니다.”
“으음.”
맞는 말이었다.
루스펠드 후작이 발표한 공문에 대한 소식을 자신만 들은 것이 아닐 테니 말이다.
베로크의 대꾸에 이번엔 아르세인이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그의 입이 열렸다.
“아무래도 시험해 볼 필요가 있겠어. 다른 곳처럼 신중하게 움직여서는 얻지 못해.”
말을 함과 동시에 베로크를 바라보았다.
그것이 의미함을 알기에 베로크는 고개를 숙였다.
“명, 받들겠나이다.”
나직한 베로크의 음성이 집무실에 흘렀다.

법안을 발표한 지 어느덧 2주일이 흘러 있었다.
레이얀은 집무실에 앉아 책을 읽으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한다는 것.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인간이란 한 곳에 집중을 하면 다른 것을 내다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이얀은 그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에 가까웠다.
‘내가 보낸 10장 중 3장의 서신에는 반응이 있지 않았다.’
7장의 서신에는 장로들이 움직임으로써 반응해 왔다. 하지만 나머지 3장은 증발한 듯이 어떠한 대답도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무시라고 보면 되겠군.’
책장이 다음 장으로 넘겨졌다.
‘일단…… 바닥부터가 먼저겠지.’
최근에 발표한 공문서. 다른 가문의 자주성을 박탈하고 오로지 이 영지를 루스펠드 후작가로만 인정한다는 것.
그것이 방금 레이얀이 말한 바닥이자 기틀의 마련이었다.
바퀴벌레를 잡더라도, 내부에 있는 쥐새끼들을 몰아내더라도 바닥부터 만드는 것이 확실하여야 했다.
지나치게 귀찮음을 싫어했지만 한 번 시작하면 극도로 신중하고 완벽함을 기하는 레이얀의 성격이 발휘된 것이다.
그때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이미 다가오는 인기척을 알고 있었기에 집무실 밖의 기사가 보고를 올리기도 전에 대꾸했다.
“들어오라고 해.”
이미 아는 사실을 예의란 명분 때문에 기다리는 것은 레이얀 성정에 맞지 않았다.
“…….”
반면 기사는 레이얀의 실력이 높아진 것에 속으로 살짝 감탄하며 문을 열어젖혔다.
열린 문으로 들어선 집사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돌돌 말린 양피지를 건넸다.
여전히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그것을 받아 들었다. 그러자 집사는 다시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문을 닫고 나온 순간 집사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후아…….”
더 남고 싶어도 남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입을 떼기도 힘들었다.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전신을 짓누르든 위압감.
가히 살이 떨려 왔다.
그것은 집사가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일반인이었기에 더했다.
호흡을 가다듬은 집사가 걸음을 옮겼다. 그의 입가에는 예전, 록펠이 지었던 미소와 유사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집사가 나가고 한참 후 레이얀의 부름에 록펠이 집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일곱 장로들의 측근들을 모두 수감시키는 것에 걸린 시간이 2주였다. 그 말은 오늘 정확히 돌아온 것이었다.
돌아오자마자 주어진 것은 휴가가 아닌 영주의 부름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힘들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활발한 영주의 활동에 기쁜 마음을 억제하기가 힘들었다.
그는 집사 때와 같이 예의를 거치지 않고 레이얀의 먼저 들려온 대답에 집무실에 들어섰다. 그리고 간략한 예를 차리고 레이얀이 건네는 서신을 받고는 읽어 내렸다.

윈스톤 자작가는 루스펠드 후작가의 새로운 영주를 인정하지 못한다.
그로 인해 새로운 법안 또한 인정하지 못하기에 자주독립을 선언하며, 루스펠드 후작령에 속했던 윈스톤 자작가를 개별 영지로 선포한다.
자작가에서 생산되는 모든 이익물은 윈스톤 자작가에서 소유이며 자작가에 머물던 기사와 마법사들은 윈스톤 자작가에 귀속된다.
이는 윈스톤 자작가의 가주 체론 윈스톤의 결정이며 루스펠드 후작은 이를 따라야 한다.

서신을 다 읽은 록펠이 담담한 눈빛으로 탁자에 올려 두었다. 이미 레이얀에게 들었던 상황이기 때문이다.
2주 전, 레이얀은 일곱 장로들의 체포 명령과 함께 다른 명령을 하달했었다.
바로 당장이라도 전쟁이 발발했을 때 출진할 수 있게끔 병력을 조직화하고 세분화하라고 한 것이다.
이유를 여쭈었을 때 이렇게 말하였다.
‘새로운 법안에 분명히 이를 드러낼 놈이 있을 것이다. 그놈을 본보기로 확실히 짓누르지 않으면 차후에 더 귀찮아지겠지.’
그것을 들었을 때 속으로 얼마나 놀랐던가.
그저 가문을 강하게 만들기 위하여 법안을 만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레이얀은 그 앞의 문제를 내다보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문제를 2주 전에 들은 록펠은 서신을 보고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봤으면 나가 봐. 내일 출전한다.”
“……!”
뒤에 이어진 말에 록펠의 표정이 아연해졌다.
아니, 이 주 전에 전쟁에 대비하란 명령을 내려놓고 벌써 준비가 다 되었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준비가 덜 되었나 보군.”
“예, 아직 이동 시 먹을 식량 확보와 윈스톤 자작가로 향하는 최적의 이동 경로 파악 또한…….”
거창한 록펠의 설명을 끊으며 레이얀이 끼어들었다.
“그럼 나 혼자 간다.”
“컥!”
레이얀의 한 마디에 기겁을 했다. 그리고 레이얀의 안색을 살폈다. 농담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에.
하지만 레이얀의 무심한 눈동자가 장난이 아님을 내비치고 있었다.
이미 일곱 장로를 처리하기 위해 은밀히 고수를 섭외한 레이얀의 행동력을 알기에, 정말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든 록펠이 다급해졌다.
“지, 지금 당장 준비를 마치겠습니다!”
다급히 말을 마친 록펠이 예를 갖추고 빠르게 집무실을 뛰쳐나갔다.
일곱 장로들을 제압한 자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던 차에 레이얀의 부름에 들뜬 마음으로 응했었던 록펠.
그 궁금증은 지금 복도를 달려 연무장으로 향하는 록펠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사라져 갔다.

그날 밤 레이얀은 새로운 법안 발표 후 송곳니를 드러낸 아둔한 여우가 생긴 것에 기뻐하며 침실에 누웠다.
이 일을 잘만 처리하면 앞으로의 귀찮음이 없어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고수가 일곱 장로를 죽인 것으로 알려졌기에 상황이 더 귀찮아졌던 것이다.
일각에서는 새로운 미지의 고수를 섭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고, 영지 내의 조직들은 여전히 영주를 무시하고 있었다. 그 증거로 3개의 서신에는 답장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윈스톤 자작가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분명히 출전을 하면 어떻게든 그들의 귀에 흘러 들어갈 것이고, 자신의 무위를 확인하면 섣불리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레이얀은 그것을 바라는 것이다.
영지를 최고로 만드는 일에 몰두하게끔 주변의 하등한 것들이 사라지길 바랐다.
그렇기에 바람을 이루게 해 줄 내일의 출전에 만족스런 마음으로 잠들려고 했다.
눈을 감고 침상에 누워 있던 레이얀의 인상이 슬며시 찡그려졌다.
자신의 방을 향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숨조차 쉬지 않는 듯 그 기척은 상당히 옅었다. 레이얀이 아니라면 쉽사리 감지조차 못할 정도였다. 레이얀도 그 기척이 영주 성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잡혔기 때문이다.
원래라면 성벽 밖에서부터 느껴졌어야 정상이었다. 이것은 인간의 약한 육체로 인해 제한된 능력 때문이었다. 예전 진마의 육체였더라면 필시 옅은 기척이 아닌 완벽한 기척을 감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기척과 시기를 토대로 겔릭의 숨겨진 목표와 연관된 인물임을 쉽사리 추측해 낸 레이얀이 잠든 것처럼 호흡을 안정적이게 했다.
그사이 기척은 문 앞에 당도해 있었다.

근 이 주 전에 주인 없는 산장에서 명령을 하달 받은 디엔은 그 즉시 후작령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인 없는 산장이 후작령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기에 긴 시간의 소모 없이 바로 도착하여, 근 2주란 시간 동안 후작령을 조사할 수 있었다.
그럴수록 영주 성의 전력이 상당히 약소함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섣부른 행동은 화를 자초하는 지름길이었다. 그렇기에 근 1주가 넘는 기간 동안 순찰 도는 병사의 시간대와 영주 성 내부의 배치된 기사들의 위치에 대해 더욱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물론 자신의 기척을 감지할 고수는 절대 없었지만, 오만에서 오는 방심 또한 패배의 큰 요인이다.
그렇기에 집요하게 영주 성을 탐닉했다. 그리고 더 이상의 정탐이 쓸모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망설임 없이 성에 잠입하였다.
그리고 역시나, 모든 병사의 순찰 시간과 기사의 위치는 조사한 그대로였다.
모든 정보를 알고 움직이는 디엔의 존재를 깨달을 자는 없었다. 더군다나 디엔은 특급 어쌔신이라는 자리에 맞게 기척을 완벽에 가깝게 차단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아무런 막힘없이 나아간 디엔의 신형은 어느새 영주의 침실 앞에 당도해 있었다.
디엔은 깃털 떨어지는 소리조차 나지 않을 정도의 소음으로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침대에서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호흡 소리에 속으로 안심하며 조심스레 그곳으로 향했다.
주변에 느껴지는 기척이 없는 것으로 보아, 숨겨진 고수는 이 성에 없는 듯했다.
고수가 기척을 숨길 가능성도 있었지만, 성을 관찰하는 내내 이방인은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처음부터 자신의 기척을 깨닫고 사전에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검이나 마법에서 대성한 실력자들이 기척을 숨겨 봐야 드래곤 앞의 오우거였다.
순간이라도 호흡을 흩트리거나 주변에 있다면 모두 자신에게 감지되기 마련이다.
침상에 레이얀만 있음을 다시금 확인한 디엔이 안심하며 침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조용히 단검을 빼내 들었다.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충격이 갑작스레 디엔을 강타했다.
“컥!”
정확히 목을 가격당한 디엔의 신형이 순식간에 벽에 부딪혔다.
“쥐새끼가 성가시게 구는군.”
침대에서 일어난 레이얀이 무감각하게 말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어투에 디엔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맞은 것뿐인데 지나치게 아픈 목을 부여잡고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난 디엔이 레이얀을 살폈다.
한참 레이얀을 살펴보던 디엔의 눈빛에서 당혹감이 옅어졌다.
자신을 기다린 듯한 인상에 당황했지만 살펴보니 지나치게 마나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일반인이 지니는 것보다 더욱 적은 양의 마나가 느껴졌다.
그 말은 자신의 기척을 감지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생각을 마치는 순간 디엔이 경계심 어린 표정으로 기감을 끌어 올렸다.
‘섭외한 고수가 가르쳐 주었구나!’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흘끗 보았다.
방금 자신의 목을 강타한 것도 고수일 가능성이 높았다.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아무런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타격을 당하다니. 그 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 생각이 들자 디엔의 눈빛이 더욱 예리해졌다.
그때까지 디엔의 변화를 지켜보던 레이얀이 실소를 터트렸다.
“훗.”
움찔.
극도로 긴장한 탓에 갑작스레 들려온 웃음소리에 디엔의 몸이 한차례 떨렸다.
그리고 소리의 근원으로 시선을 돌렸다.
비릿한 웃음을 머금은 레이얀을 보고 속으로 울컥한 감정이었지만 육성으로 욕을 내뱉을 수는 없었다. 그 짧은 틈새만 보여도 그 고수는 자신을 공격할 것이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놈! 고수가 있다고 기고만장하구나! 빨리 그놈의 위치만 파악해 낸다면…….’
디엔의 예리한 눈빛이 주위를 빠르게 훑었다. 왼쪽을 훑고 오른쪽으로 지나가는 와중에 레이얀이 보였다.
그 순간 레이얀의 신형이 잠깐 흐릿해지는 모습이 시야에 포착되었다.
뇌가 미처 의문을 자각하기도 전에 복부에서 전해져 오는 강한 충격에 디엔의 몸이 기역 자로 꺾였다.
“커억!”
그대로 기역 자로 꺾인 디엔의 등을 레이얀이 손날로 내리쳐 버렸다.
쿠당!
바닥에 볼썽사납게 엎어진 디엔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냥 주먹질인데 어마어마한 고통이 동반되었기 때문이다.
복부는 속이 진탕된 느낌이었고 허리는 근육이 끊긴 것처럼 펼 수가 없었다.
부들부들 고통에 떨고 있는 디엔을 바라보던 레이얀이 멱살을 잡고는 바로 세웠다.
몸을 떨고 있는 디엔은 강제적으로 레이얀을 마주 보게 되었다.
“……!”
그리고 눈이 마주치는 순간, 몸의 떨림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너무나 무심한 눈동자를 직면한 순간 공포심에 몸이 굳은 것이다.
한참 디엔을 살피던 레이얀이 말했다.
“네놈도 졸개에 불과하구나.”
“……!”
레이얀의 무위와 방금 흘러나온 말에 디엔의 머릿속에 하얗게 타들어 갔다.
‘애, 애초에 고수는 영주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