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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마대제 1권(10화)
Chapter 4 윈스톤 자작가(2)
그런 록펠과 달리 다른 기사들은 어이없는 상황을 겪은 것에 황당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불만을 표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수하를 기다려 주지 않은 주군을 탓해야 하는가?
그것은 기사도에 맞지 않았다.
그렇기에 어느 누구도 불만을 표하지 못하는 것이다.
록펠은 잠시 뒤쳐졌던 기사들 또한 합류하며 행렬이 정리되자 안위를 묻고자 하였다.
간밤에 암습을 받았기에 수하 된 자로서 멀쩡하더라도 물을 의무가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록펠은 곧 고개를 살며시 저으며 질문을 관뒀다.
레이얀의 모습으로 보아, 돌아올 대답이 뻔했기 때문이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주변을 살폈다.
잠시 레이얀 주변을 훑은 록펠은 기대한 고수로 보이는, 심지어 하인으로 보이는 자도 없자 의아함을 느꼈다.
하인이야 레이얀이 아무리 변했다 한들 예전의 성정으로 미루어 보아 떼어 냈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미지의 고수는?’
오지 않은 것일까, 혹여 먼저 간 것인가?
그를 보고 싶은 마음에 물음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참았다.
실제로 미지의 고수는 소문을 통해 록펠이 알게 되었다.
자신에게 직접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레이얀이 밝히기 꺼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함부로 질문할 수 없는 것이다.
속으로 궁금함에 끙끙 앓던 록펠의 귀로 레이얀의 음성이 들려왔다.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레이얀이 묻고 있었다.
“윈스톤 자작가에 발견된 다이아 광산이 있지?”
“네, 그리고 광산화되어 가는 산맥 또한 있습니다.”
레이얀의 질문에 차분하게 록펠이 대답했다.
“주인을 무는 개는 필요가 없지.”
“…….”
그 한 마디에 록펠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곱 장로 때처럼 친인척까지 처리, 아니 법안에 명시된 것처럼 척살할 것이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록펠의 옆에 있던 기사가 끼어들었다. 그는 루스펠드 기사단의 부단장 직을 맡고 있는 멕스였다.
“저기, 그분은 오시지 않은 것입니까?”
“……!”
갑작스런 멕스의 행동에 록펠의 몸이 굳었다. 레이얀이 말하지 않은 것에는 모두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참고 있었거늘 부하 녀석이 저지른 것이다.
질타의 눈빛으로 멕스를 한 번 쏘아봤지만 록펠도 궁금한 사안이었기에 레이얀의 등을 향해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가르쳐 주어야 하나?”
부단장의 질문은 두루뭉술한 물음이었지만 레이얀이 모를 리 없었다. 심지어 레이얀은 자신이 일곱 장로를 처리하고 발표한 법안에 대한 소식이 왕성에도 전해졌다는 사실마저 알고 있었다. 물론, 왕실 전체가 아닌 몇몇 귀족들에게만 전해진 것뿐이지만 그것을 아는 레이얀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개별 정보통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실로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저 영지 내에 활동 중인 이들의 대화를 지나치게 발달한 청각으로 듣거나 기감에 잡히는 행동만으로 소속이나 목적을 간파한 것이다.
먼 곳에 있는 자들에 대한 정보도 아는 마당에 소속 기사의 질문을 모를 리 없었다. 그들의 눈에 서린 기대감도 읽어냈기에 더더욱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가르쳐 주지 않는 이유는 자신임을 설명하기가 귀찮았기 때문이다.
“아, 아닙니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멕스가 레이얀의 짜증 서린 음색을 느끼고 다급히 사과했다.
“…….”
멕스의 사과를 들은 레이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말을 몰았다. 주변인의 관심으로 인한 귀찮음이 싫기에 홀로 자작가로 향해 모조리 짓밟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경우 가문 내에 자신의 강함에 대해 소문낼 사람이 없게 된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이들과 동행하는 것이었다.
굳이 소규모를 요구한 이유는 소규모일 경우 성 내의 가장 강한 기사들만이 집결될 것이고, 그들이 떠들어 대는 자신의 강함을 믿지 않을 이는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레이얀은 그것들을 노리고 기사들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었다.
한편 록펠은 레이얀의 대답에 눈을 빛내었다.
약간 과한 면이 있는 거절이지만, 아직 드러내지 못하는 정보를 숨겨야 하는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보였다.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더 이상 영주가 어려 보이지 않았다.
외형은 여리게 보이지만 그 속은 강철보다 더욱 굳세었다.
하나가 다르게 보이며 좋게 작용하자 모든 것이 좋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신뢰가 깊어지는 한편으로, 록펠은 얼마 후 보게 될 고수에 대한 흥분이 전신을 감돌았다.
레이얀이 출진할 것이란 사안은 출발하기 전부터 성 밖에 흘러 나가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은밀히 결정한 사안도 아니었으며, 레이얀이 드러나길 의도했기에 그 소식은 영지 내에 순식간에 퍼져 나가 윈스톤 자작가에도 닿았다.
“뭐, 뭐라! 벌써 움직였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독립선언을 한 것이 말이다.
그런데 후작가에서는 벌써 출정을 했다. 가히 놀라운 결단력이었다. 하지만 체론은 그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레이얀이 조심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언제 도착하는가!”
“아무래도 오늘 밤에 도착할 듯싶습니다.”
“다행이군. 늦지 않았어.”
체론 윈스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후, 일곱 장로를 죽인 고수도 그를 어쩔 수는 없을 것이다.”
혼자 읊조린 체론의 눈에 탐욕이 서렸다.
“후작령을 이끌기에 레이얀은 무능력하다! 내 위에 설 그릇이 아니지.”
체론 윈스톤은 자작가의 독립을 넘어 후작령 전체를 장악할 계획이었다. 그것은 얼마 전 찾아왔던 인물에 의해 추가된 목표였다.
독립을 위해 오랜 시간 준비를 해 왔었다. 그것을 터트릴 시기만을 기다리는 차에 레이얀이 자주권을 박탈한다는 선언을 했다.
하지만 이것을 빌미로 독립을 주장하기에는 아직 자작가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었다.
국경에 배치되어 있는 후작가의 병력을 모두 끌어모을 경우 자작가는 순식간에 휩쓸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레이얀의 선언을 빌미로 독립을 주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후작가와 버금가는 아니 훨씬 웃도는 힘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후작가를 장악할 야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강력한 힘이 생긴 것이 아니더라도 레이얀이 이끌기에는 후작령이 너무나 강대했기에 비슷한 나이 대인 체론은 그 점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이번 전투에서 자작가가 승리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후작가의 출전 소식과 함께 병력 규모를 들었기 때문이다. 겨우 23명의 소드 엑스퍼트 급의 기사와 어린 영주.
그것이 자작가로 향하고 있는 병력의 전부였다. 상당히 정확한 정보였다. 영주의 사정이 얼마나 혼탁한지 확연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런 점은 개의치 않고 체론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
“감히 자작가를 무시해?”
성을 무너뜨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기사가 아닐 수 없었다.
가히, 태산을 가른다는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기사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후작가에 그 정도 경지에 오를 만한 기사는 없었다.
마스터란 나이를 넘어 깨달음이 필요했다. 그것은 어릴 때부터 두각을 드러내기에 만약 후작가에 그런 기사가 있었다면 분명히 소문이 났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출진 병력을 듣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일개 엑스퍼트 기사들로 자작가를 함락하려 하다니!
자작가에 대한, 가문에 대한, 자신에 대한 무시가 아닐 수 없었다.
“어디, 높은 그 콧대를 짓눌러 주마.”
체론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자신보다 검술 실력도 미천한, 그저 좋은 가문에 태어난 레이얀에게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분노를 참을 길이 없었다.
분노함에도 체론의 입은 웃고 있었다.
패배 후에 레이얀의 얼굴에 걸릴 표정이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을 위해서라면 지금 이 기분을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출진 병력에 일곱 장로를 제압한 고수로 보이는 자가 없는 것이 걸렸지만, 그가 참가한다 하더라도 승패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자신을 지지해 주는 자는 강대했기 때문이다.
“오만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 주마. 어리석은 후작! 크크크.”
이른 승리감에 취한 웃음이 집무실에 흘렀다.
* * *
케이안트 제국을 마주하는 루스펠드 후작령은 베론 왕국의 최고 서쪽에 위치해 있었다.
루스펠드 후작인 레닐은 보다 더 효과적으로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근처 자작가, 남작가들을 장악하였다.
원래는 순수 힘으로 모두 뺏어야 했지만 전력의 손실은 후에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강한 힘을 바탕으로 레닐은 효과적은 결과를 창출해 내었다.
레닐이 선택한 방법은 자주권을 보장해 주는 대신에 후작령에 귀속되게끔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영지에 귀속된 자작가와 남작가들은 전체적으로는 후작령으로 불리나 세부적으로는 따로 나뉘게 되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윈스톤 자작가인 것이다.
윈스톤 자작가는 후작령에서 최고 동쪽에 있었다. 그곳은 칼로이프 강을 고스란히 옆에 끼고 있었으며 왕성으로 향하는 중요 길목이 위치해 있었다.
중요한 기점이었지만 레이얀에게 그런 것은 상관이 없었다. 후에 올 더한 귀찮음을 없애기 위해, 최고의 영지로 만들기 위한 필요한 일을 할 뿐이었다.
레이얀이 머무는 영주 성은 당연하게도 후작령의 중심에 있었고, 레이얀과 기사들은 동쪽으로 꾸준히 이동해 나갔다.
8일을 꾸준히 달려온 그들은 근처 냇가에서 마지막 휴식을 취했다.
정면으로 보이는 끝없는 평야를 지나가면 윈스톤 자작가에 접어들기 때문이다.
“후작님, 굳이 이렇게 빨리 움직여야 했습니까?”
무리와 떨어진 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레이얀에게 다가온 록펠이 물을 건네며 물었다.
조금 더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면 기사들은 불편하더라도 레이얀은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토록 서두른 이유가 궁금했다. 출전 당시에 그 이유를 짐작했음에도 묻는 이유는 짐작과 확정은 확실히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록펠은 레이얀에게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주군에서 인정받는 것이야말로 기사에게 있어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록펠은 질문하였다.
이렇게 대화를 꺼내면 자연스레 레이얀이 자신의 생각을 물어올 것이라 여기고, 자신이 짐작한 것을 털어놓으며 인정받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곳에 오는 와중에 하였어도 되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마지막 휴식에 질문을 하게 된 것이다.
물을 받아 든 레이얀이 한 모금 마시고는 대꾸했다.
“굳이 그것을 가르쳐 줘야 하나?”
“……!”
영주 성을 나설 때 멕스에게 했던 대답과 상당히 유사했다. 그때는 상당히 감명 받았었지만, 막상 자신이 당하자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록펠의 기분이 어떠하던 레이얀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물을 받아 든 록펠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빠르게 움직이게 된 이유.
강함을 드러내야 한다는 점과 다른 가문에서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게끔 하기 위한 본보기 처리.
이러한 것들이 복합되어 레이얀의 행동력을 가속화시켰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유를 가지고 움직여도 되었다. 아직 드러난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가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윈스톤 자작가가 어찌 되는지 보고 반기를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먼저 움직인 이유는 바로 자작가에서 준비한 패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니, 궁금한 점 때문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타 가문의 반발에 자신이 직접 나서기에는 상당한 귀찮음을 느끼고 있었다.
자존심 또한 귀찮음에 한몫하고 있었다. 겨우 하등한 인간을 처리하는 일에 자신이 직접 움직여야 한다니. 그렇기에 수고스러움을 대신해 줄 수하가 필요했다.
‘확실히 자작가에서 준비한 패가 있겠지. 그렇지 않고는 일곱 장로를 죽인 나에게 쉽사리 송곳니를 드러내진 않을 테니.’
모든 것이 미지의 고수를 향해 쉽사리 송곳니를 드러내기란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자작가가 그리했다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이었다.
레이얀은 그 패를 기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