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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마대제 1권(11화)
Chapter 4 윈스톤 자작가(3)
지금 괜찮은 수하를 물색 중에 있었기에 만약 쓸 만한 실력을 보유했다면 수하로 만들어 버릴 작정이었다. 이것이 레이얀이 빠르게 움직인 이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반면 록펠과 다른 기사들은 알게 모르게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아무리 고강한 실력이라 하더라도 수적 차이는 쉽사리 극복할 수가 없다.
자작가에서도 엑스퍼트 급의 기사가 있을 테니 말이다. 더군다나 마법사까지 합세한다면 이 수로는 도무지 승을 바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록펠을 비롯한 상급 3명의 힘이 상당히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갈 경우 필패하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불안감이 드는 것이다. 그 점은 의문의 고수가 나타나지 않아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레이얀에 대한 록펠의 믿음에 의해 기사들은 간신히 불안감을 억눌렀다.
자신의 불안감을 드러내 버리는 것은 록펠의 믿음을 부정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안감을 억누른 초조한 휴식을 취한 그들이 다시 움직인 것은 동틀 무렵이었다.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루스펠드 후작가의 기사들이 말을 옮겼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멈추고 말았다.
먼 곳에서 일련의 무리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아침 햇살에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있었다.
말을 타고 다가오고 있는 무리는 윈스톤 자작가에서 출전한 기사들이었다.
그들을 확인한 록펠의 인상이 굳었다.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기세가 확연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얼핏 보아도 기사들의 수가 200에 가까워 보였다.
‘저런 말도 안 되는 수라니…….’
성의 모든 전력이 빠져나온 것 같았다.
하긴 그들은 충분히 그럴 여유가 되었다. 지리적으로도 성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여기서 만약에 영주인 레이얀을 죽인다면 ‘영지전’이 허용되는 이곳의 합당한 주인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록펠이 인상 쓰고 있을 때 레이얀이 한마디 했다.
“수고를 덜어 주는군.”
“……!”
무미건조한, 심지어 아무런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음색이었지만 록펠은 가슴이 안정됨을 느꼈다.
마치 전혀 패배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이다.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었다.
상쾌한 아침 바람을 따라 먼 동쪽에서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체론 윈스톤은 오랜 시간을 기다려 왔다.
아버지 대에서부터 바라 왔던 것.
가문의 독립.
언제나 바라마지 않았지만 쉽사리 독립권을 주장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 않겠는가, 애초에 후작가의 전력에 굴복하여 후작령에 귀속되었다.
힘이 없다면 독립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힘이 생겼다.
독립을 주장할 수 있는, 나아가서는 후작령을 넘볼 수 있을 만큼의 힘이 생겼다.
드디어 자신이 소드 엑스퍼트 최상급의 반열에 든 것이다.
서른 살도 되지 않은 이십 대 중후반에 말이다. 물론 자신만의 실력을 가지고 거대한 후작가에 도전하지는 않았다.
체론 윈스톤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한다.
말을 타고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는 중년인이 눈에 들어왔다. 얼핏 일견하기에는 평범했지만 체론은 며칠 전에 그가 보여 준 검무를 잊을 수가 없다.
정확한 신분이 없는 자가 갑작스레 도움을 주겠다며 찾아왔기에 체론은 그를 보자마자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검을 뽑아 들었다.
그때 그가 보여 준 검술이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만큼 고강했다.
그렇기에 공성전을 바라지 않았다.
자신의 힘과 그의 힘만 있다면 마스터가 없는 후작가를 짓누르는 건 쉬운 일이었다.
도움을 주겠다는 그를 의심하기도 했지만 후작가에 멸망당한 가문의 자제라는 말에, 복수하고 싶다는 말에 의심을 완전히 지우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었다.
모든 가문이 후작가와 싸우지 않고 귀속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가문은 반발했고, 결과는 처참했다.
이자가 아니었다면 감히 후작가를 넘볼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마스터가 아닌 이상, 국경에 배치되어 있는 후작가의 엑스퍼트 상급 기사들이 몰려온다면 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모조리 몰려오더라도 이자, 베로크만 있다면 그들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최상급인 자신을 간단히 제압할 정도의 실력이라면 못해도 오러 나이트, 크게 본다면 마스터 초입일지도 몰랐다.
절로 흥분이 되었다. 이런 강자가 자신을 도우겠다니!
그 또한 복수가 아닌 다른 목적이 있어 자신에게 접근한 것이겠지만 자신에게 피해가 되지 않으면서, 자신의 목적에만 이용이 되면 되었다.
흥분에 몸을 떨고 있을 때 먼 곳에 루스펠드 기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얼핏 보아도 채 30도 되지 않을 듯했다.
보고를 들었기에 병력 규모를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보니 다시 분노가 피어올랐다.
‘감히 날 그 정도로 생각하다니.’
후작의 빠른 대응을 생각할 때마다 체론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자작가가 약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루어진 대응으로 보인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자작가도 숨겨진 힘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인데 말이다.
이것이 그릇 차이라 생각한 체론은 더더욱 후작이 되고 싶은 욕망에 들끓었다. 비록 왕가에서 인정하여야 하지만 그 점은 의외로 쉽사리 될 것이다.
권력 다툼을 하고 있는 내부 상황에서 국경의 귀족 자리 부재란 자칫 왕국이 순식간에 멸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 미래 일까지 생각하던 체론이 레이얀을 떠올렸다.
경험 없고, 감정에 치우치는 어린놈이 가문을 이끌게 되면 어떻게 될지 뻔하였다.
지금의 경우만 보아도 그러했다. 단순히 자작가이기에 약하다고 생각하고 저런 전력을 구비한 것이다.
체론은 자신이 후작이 됨으로써 후작령의 멸망도 막는다는 과도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두고 봐라, 레이얀. 네놈은 자신의 오만함에 피눈물을 흘릴 것이다.’
머지않아 자작가를 무시한 레이얀은 톡톡히 그 값을 치룰 것이다.
그사이 루스펠드 후작가를 나타내는 문양이 눈에 확연히 들어오는 거리까지 그들이 다가왔다.
그 무리의 선두에 흑발을 지닌 청년이 말에 올라 있었다.
청년을 바라보는 체론의 두 눈에 짙은 살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윈스톤 자작가와 루스펠드 후작가의 기사들이 넓은 평야 위에서 대치했다.
그 상태에서 체론이 후작가의 기사들을 살펴보았다.
확실하게 확인한 소규모 인원에 속으로 끓어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면서 체론이 말했다.
“우리가 주장한 독립권에 답서는…… 그런데 굳이 답을 들을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마치 후작가가 또다시 힘으로 핍박하려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상대를 자극하려는 것이다.
체론도 자신의 아버지처럼 권력에 익숙한 전형적인 귀족이었다.
그렇기에 정치계에 그것처럼, 싸움에 임하기 전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것을 행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억울함이 깃든 음색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체론이 바란 사람이 말한 것이 아니었다.
체론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중년의 기사가 있었다.
한때 레닐의 수호기사였고 지금은 루스펠드 기사단장만 맡고 있는 록펠이었다.
“웃기지 마라! 네 녀석들이 보낸 서신은 애초에 레닐 루스펠드 후작과의 조약은 고려조차 하지 않은 발언이지 않았느냐!”
“감히 기사 주제에 귀족의 말에 대꾸를 하다니!”
체론이 노호성을 터트렸다.
척 봐도 체론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지만 신분제도가 철저한 이곳에서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큭…….”
록펠 또한 그것을 잘 알기에 그 말에 반박을 할 수 없었다. 단지, 레이얀이 나서길 기다리는 수밖에.
그때까지 레이얀은 체론 자작이 아닌 옆에 있는 중년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나를 정확히 꿰뚫어 볼 수 있기에 그가 체론 자작이 준비한 비장의 패임을 알 수 있었다.
‘검사라…….’
발칸디아 대륙에 와서 경험해 본 것은 암살자의 공격뿐이었다. 그것도 압도적인 실력으로 시도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렇기에 검사가 가지는 힘의 척도를 확실히 모르는 레이얀이 이내 관심을 끊었다.
레이얀이 바랐던 수하는 블링크를 다루는, 이곳 개념으로 6클래스의 마법사 혹은 자신을 암살하고자 했던 암살자 이상의 실력을 지닌 암살자였다.
기사는 전혀 고려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만약 레이얀이 만족할 만한 실력이라면 지금 고려할 가치가 있었다.
그렇다 한들 레이얀의 눈에는 도무지 차지 않았다. 체내에 보유한 마나 양이 예전 진마들 중 8위 레론에 미치지도 못했다.
아무리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시험은 해 보아야 했다. 이곳에 온 가장 큰 이유가 수하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레이얀의 시선이 체론을 향했다.
“어차피 죽을 놈과 대화할 시간은 없다.”
“뭐, 뭐라?”
레이얀의 한마디에 체론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이내 분노로 일그러졌다.
“이 녀석이 영주가 되더니 현실을 내다보지 못하는구나! 좋다, 내 친히 너를 위해 대결을 신청할 테니…….”
후작가 기사 30명과 자작가 기사 200명의 싸움은 단순한 학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실력 면에서는 후작가의 기사들이 출중하나, 압도적인 물량에서는 실력도 빛을 발하지 못할 것이다.
혹여, 후작가가 의외로 선전할 수 있지만 만약 체론이 나선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체론이 기사들을 앞세우고 엑스퍼트 최상급의 실력을 드러낸다면 급속도로 승패는 기울 것이다.
록펠이 체론을 상대할 수는 있겠지만 그의 경지는 상급에 불과했다.
경지를 나누는 이유는 강함의 차이가 확실히 있기 때문이다.
숫한 전투 경험과 임기응변으로 인하여 록펠이 이길 가능성도 있었다. 허나, 전투 경험의 차이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경지가 최상급이다. 그렇기에 록펠은 체론을 상대로 그저 시간 벌기밖에 할 수 없었다.
어린 나이에 최상급에 들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체론은 학살을 자행할 생각이 없었다. 가문의 명성을 드높이고 싶은 야망이 있었지만 할 수 있다면 전력을 아끼고 싶었다.
그렇기에 귀족 간의 대결을 통해 승부 여부를 가릴 작정이었다. 하지만 체론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체론이 말을 하는 와중에 레이얀이 록펠에게 손을 뻗어 검을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으드득.
‘……이, 이제는 대놓고 무시해?’
소규모 병력과 함께 빠른 출진. 그 점에 대해서는 감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면전에서 자신의 말을 무시하다니!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놈에게 벽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어야 했다.
체론의 손이 검으로 향했다.
베로크는 후작가와 대치한 순간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한 인물이 자신의 신경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살기나 기세 따위로 자극한 것이 아니었다. 지극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자신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 인물은 후작가의 기사들 선두에 있는 레이얀이었다.
‘이상하군.’
후작가의 모든 기사들의 마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로 인해 경지도 어느 정도 추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레이얀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눈앞에 있되 있지 않은 것만 같았다. 마치 허공을 유영하는 바람과도 같았다.
한참을 그 점에 대해 고민하던 베로크가 생각을 정리했다.
‘아티펙트인가?’
그렇지 않고서는 자신의 이목을 숨길 수는 없었다. 레이얀이 자신보다 경지가 높을 일은 절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법 도구의 힘을 빌었다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관심을 끊고 이번엔 기감을 더욱 끌어 올려 주위를 살펴보았다.
자신이 체론 자작가에게 도움을 주게 된 이유는 에론테일 공작의 명 때문이었다.
그 명을 완수하여야 했다. 고수의 존재 여부를 파악하고 실력을 확실히 알아야 했다.
기감을 끌어 올린 베로크의 인상이 이내 찌푸려졌다.
후작가와 자작가의 접전을 지켜보는 많은 기척이 느껴졌지만, 정작 일곱 장로를 제거했을 법한 실력자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 말은 두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자신의 범위 밖 먼 곳에 있거나, 자신보다 실력이 높다는 것.
이것 또한 레이얀이 자신보다 더욱 높은 실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만큼 터무니없었다.
오러 나이트의 초입 경지에 오른 자신보다 높은 경지라면 오러 나이트에 오른 지 꽤 되었거나 그 이상인 마스터였다.
그런 자를 아무리 레이얀이 조심한다고 한들 은밀히 섭외할 수 있을까?
그 정도의 실력자라면 제국에서도 후한 대접을 해 주고도 남을 것이다.
그런데 일개 왕국의 후작이 그를 섭외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일곱 장로는?
‘아!’
베로크는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문만 믿고 진짜 고수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실수를.’
후작이 발표한 법안과 그 모든 것이 베로크의 머릿속에 퍼즐이 맞추어지듯 맞추어졌다.
이내 퍼즐이 다 맞추어졌을 때 베로크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완성한 퍼즐.
그것은 암살자의 힘을 빌려 일곱 장로를 죽였거나 다른 것으로 제거한 후에 의도적으로 후작이 고수가 있다고 소문을 냈던 것이다!
그것에 힘입어 자주권을 박탈하는 법안을 발표한 것이고 말이다.
생각을 정리한 베로크가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고 아무 기세도 심지어 마나조차 느껴지지 않는 레이얀을 바라보았다.
굳은 것 같은 무뚝뚝한 얼굴 지나칠 만큼 차가운 눈동자.
저 모든 것이 연기란 생각에 비웃음이 걸린 것이다.
자신이 나설 필요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