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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마대제 1권(13화)
Chapter 4 윈스톤 자작가(5)


“……!”
베로크는 속으로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삭였다.
자신의 복부에 공격을 한 방 먹였다고 기고만장한 것이다.
실제로 자신이 다급히 움직이지 않고 신중하게 접근하여 공격했더라면 절대 허용하지 않았을 공격이었다. 그런데도 그 한 방을 먹였다고 기고만장한 태도를 넘어 자신에게 모욕을 주니 화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베로크가 자세를 바로 취했다.
“전력을 다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바뀌었소.”
에론테일 공작의 명은 의문의 고수에 대해 알아 오란 것이었다. 그 의문의 고수가 레이얀임을 알게 되었으니 임무는 성공적으로 완수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레이얀을 공격하고자 마음먹은 이유는 이것을 계기로 에론테일 공작가의 저력을 드러낼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국왕파와 벨리어드 공작파는 서로의 전력이 비슷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주 긴 시간 동안 아무런 충돌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에론테일 공작은 그 점을 상당히 짜증스러워했었다.
그렇기에 지금 많은 시선이 지켜보는 이 접전에서 능력을 보이고 자신이 에론테일 공작가 소속임을 밝혀 전혀 다른 전력임을 알리려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파벌이 전혀 다른 양상을 뛰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공격 자세를 취한 것이다.
그런 간계와 달리 겉으로 일견하기에는 레이얀의 말에 발끈하여 검을 드는 모습으로 보였다.
참으로 대단한 자였다.
겉과 속을 철저히 다르게 할 수 있는 사람. 아군이라면 든든하지만 적이라면 한없이 귀찮은 상대였다.
베로크의 몸에서 앞서와는 차원이 다른 기세가 흘러나왔다.
미약한 바람이 베로크의 몸에서 흘러나오더니 주위의 흙을 몰아내었다.
흙이 밀려난 원 안의 공간은 전부 베로크가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크윽!”
“큭!”
후작가의 기사들이 전신을 짓누르는 기세에 신음성을 토해 냈다.
그리고 마나를 끌어 올려 기세를 막아 내었다.
그때 베로크의 검에서 푸르른 마나가 치솟았다.
그것은 검을 뒤덮은 것으로 모자라 한없이 치켜 올라갔다. 그것이 극에 달했을 때 순식간에 줄어들며 검에 얇은 장막을 씌운 것처럼 변하였다.
그 모습을 본 록펠이 경악했다.
“오, 오러 나이트?”
앞서 일련의 과정은 엑스퍼트 단계의 기사들도 펼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다음에 나타난 얇은 장막은 오러 나이트의 전유물이었다.
쓸모없는 마나의 유실을 막으며 보다 더 날카로움과 파괴력을 지닐 수 있는 최고의 검, 오러 블레이드!
그것을 펼쳐 낸 것이다.
레이얀에게 가격당했을 때 그저 엑스퍼트 최상급에 이르렀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러 나이트라니!
마나의 농도로 보아 최근에 오러 나이트에 오른 것도 아니었다.
그런 자를 레이얀이 날렸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경악하는 와중에 베로크의 기세가 한층 더 폭사 되었다.
오러 블레이드를 완성하고 체내의 마나를 사방으로 표출해 내는 것이다.
“큭!”
한차례 돌풍에 록펠은 속이 진탕 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건 이길 수 없었다.
자신들 전부가 덤벼도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마스터가 목전인 오러 나이트를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불안감에 휩싸인 록펠의 시선이 절로 레이얀을 향했다.
레이얀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베로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팔짱을 끼고 지금 사태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마냥 한가로이 서 있었다.
그 모습에 한 방 먹인 것으로 인해 여전히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한 베로크가 한마디 내뱉으며 신형을 날렸다.
“놈! 그 배짱은 인정해 주마!”
자신의 기세에도 꿈쩍도 않는 강단은 솔직히 베로크도 감탄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것이었고, 지금은 저놈을 베고 에론테일 공작가의 힘을 드러내어야 했다.
순식간에 레이얀과 거리를 좁힌 베로크가 주위의 모든 것을 날려 버릴 만큼 강맹한 기세를 머금은 검으로 베어 들어갔다.

* * *

후작가와 자작가의 접전이 펼쳐지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숲 속 나무 위.
일반인의 육안으로는 그저 사람의 형상만 보이는 거리였다.
그곳에서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회색 눈동자를 번뜩이며 접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디엔의 소식이 두절되었다. 그 말은 실패했다는 건데.’
쉽사리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특급 어쌔신.
어쌔신 중에서도 최고의 최고만이 들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런 디엔이 실패했다니.
그 말은 레이얀이 섭외한 고수가 생각보다 더욱 강하다는 것이었다.
‘막바지에 와서 이런 변수라니!’
짜증이 치솟았다.
그동안 준비한 모든 것을 드러내고 움직일 단계에 접어들었다. 계획의 막바지란 뜻이었다.
그런데 정체도 모를 고수로 인하여 또다시 기일이 연기될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 자리에 선 것이다.
후작가에서 소규모 병력만이 출진하였기에 반드시 의문의 고수가 자리할 것이다. 그를 눈으로 확인해 보고 보고를 올려도 늦지 않았다.
마나를 불어넣은 안력에 레이얀이 들어왔다.
흑발에 붉은 눈동자. 그리고 다른 이들에 비해 왜소한 체격.
그다지 특별한 것은 없었다.
이내 관심을 끊고 일전에도 확인했었던 에론테일 공작가 소속의 베로크를 향해 눈을 돌렸다.
얼마나 강해졌는가를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 의아한 생각이 스쳤다.
먼 거리에서 보아도 베로크의 검에 마나가 서려 있었다.
그 검이 향하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던 레이얀이었다.
레이얀 하나를 죽이기 위해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었단 말인가?
의문이 들었다. 먼 곳에서 보아도 레이얀에게는 특별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반면 베로크의 기운은 확연히 피부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 말은 레이얀이 베로크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약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베로크는 레이얀을 향해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어째서?’
의문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려는 찰나 상당히 빠른 속도로 무엇인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특별한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정도의 속도라면 육안으로 확인하기 전에 먼저 피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그때!
예상과는 다르게 그것이 훨씬 더 빨리 자신에게 당도했다.
예상치 못한 고통이 오른쪽 어깨를 강타했다.
푹.
“컥!”
일반 기사들이 쓰는 검이 자신의 오른쪽 어깨에 틀어박혀 나무속을 파고 들어갔다.
‘이, 이게 무슨?’
대체 어디에서 날아왔단 말인가!
이 정도 빠르기와 세기라면 먼 곳에서 날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에게 기척조차 잡히지 않다니.
섬뜩한 느낌에 절로 마른침이 삼켜졌다. 상대가 마음만 먹었다면 자신은 벌써 죽었을 것이다.
디엔보다 훨씬 높은 실력에 오르면서 이런 기분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 와중에 오른 어깨에 박힌 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실로 오랜만에 느낀 기분이 더욱 신경을 자극시켜 반응이 민첩해졌다.
한층 예민해진 감각을 느끼며 검을 뽑고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 후에 적을 파악하여야 했다.
꽈악.
‘응?’
검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수백 년을 그 자리에 있어 온 바위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게 대체…….’
겨우 나무에 틀어박힌 검 한 자루 빼지 못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시도해 보아도 뽑히지 않자 이내 빼기를 포기하고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기감을 극한까지 끌어 올렸다.
검에 정신을 팔다가 죽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일단 적을 확인하여야 했다.
극한까지 끌어 올린 기감으로 인해 바닥을 기는 개미의 발자국 소리마저도 귀에 잡혀 왔다.
그렇게 왼손에 단검을 꼬나 쥔 채 주위를 날카롭게 살폈다.
후작가와 자작가의 접전을 지켜볼 여유는 없었다.
케이안트 제국의 계획에 일부분을 맡은 일곱 장로 중 하나인 겔릭과 레이얀을 암살하고자 했던 디엔의 수장인 펠리스. 그는 안타깝게도 어깨에 박힌 검이 레이얀이 날린 것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늦게 안력을 끌어 올린 것이 화근이었다.
안력을 끌어 올렸더라도 레이얀의 움직임을 확실히 보지는 못했겠지만 검이 사라지는 것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펠리스는 눈에 불을 켜고 존재하지도 않는 주변에 있을 고수를 찾으려 했다.

* * *

아침 일찍 동쪽에서 몰려왔던 먹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웠다.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은 우중충한 하늘을 지붕 삼아 베로크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성공적이군.’
검을 휘두르며 베로크는 먼 곳의 기척들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레이얀이 절대 이 한 수를 막을 수 없다는 자신감도 한몫했지만 자신의 의도가 성공적인지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역시나 몇몇 기척들은 담담한 가운데 그렇지 않은 기척들도 있었다. 확연히 느껴질 만큼 기운이 흔들렸다.
상당히 먼 거리에서 이곳을 보자면 어쩔 수 없이 안력에 마나를 끌어 올려야 할 것이고, 감정에 기복이 생기면 공급되던 마나에 일시적인 끊김이 생긴다.
그것으로 인해 기운이 흔들린다.
예상치 못한 자신의 실력으로 인해 당황하여 감정의 기복이 생긴 것이다.
상당히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베로크의 검로를 보는 것과 그자들의 기운을 베로크가 감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후작과 자작의 접전을 지켜보는, 집단에서 파견된 자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사이 주위에 어마어마한 돌풍을 일으키는 베로크의 검이 레이얀에 이르렀다.

후작가의 기사들 중 록펠을 비롯한 상급 3명은 베로크의 기세에 밀려났다가 다시금 앞으로 뛰쳐나갔다.
아무리 레이얀이 의문의 고수라고 할지라도 전력을 다한 오러 나이트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 정도의 경지에 오르기엔 레이얀이 아직 젊었다.
그렇기에 뛰쳐나간 것이었다.
자신들의 주군이 오러 나이트를 상대하고 있었다.
주군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빤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자신들 또한 오러 나이트를 이길 수는 없겠지만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이다.
그사이 레이얀은 몸을 빼면 되었다.
그것을 노리고 뛰쳐나간 것이지만 너무…… 늦었다.
오러 나이트의 속도는 훨씬 더 매서웠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주위에 강한 돌풍을 일으키며 레이얀을 베어 들어가고 있었다.
“아…….”
록펠의 입에서 슬픔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또다시 주군을 잃고 마는 것인가.
무능한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그때 레이얀의 오른손이 천천히 들려졌다. 육안으로 보일 만큼 천천히 들린 손은 정확히 베로크의 검로에 위치해 있었다.
‘……이런 멍청한! 맨손으로 검을 막으려는 건가!’
실로 어이없는 상황에 베로크가 실소를 흘렸다. 아둔해도 이렇게 아둔할 수가 없었다.
맨손으로 바위도 자르는 검을 막으려 하다니!
이내 검이 레이얀의 손에 닿았다.
툭.
“응?”
꺼림칙한 소리와 함께 레이얀의 손이 잘려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검이 손에 잡혀 버렸다. 그리고 잡히는 순간 무섭게 몰아치던 돌풍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검에 머금어졌던 마나 또한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