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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마대제 1권(15화)
Chapter 5 첫 번째 수하(2)


그 말과 함께 알페론의 신형이 꺼지듯이 사라졌다.
움찔.
“하아…….”
대륙에 알려진 10인의 마스터 중 하나인 알페론의 곁에 있다 보면 언제나 볼 수 있는 무위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가볍게 한숨을 내쉰 아이린이 푹신한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그녀 또한 언제쯤 되어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봐 줄 남편감이 나타날지 걱정이었다.
그렇게 손녀를 내버려 두고 마차를 나선 알페론은 빠른 속도로 숲을 가로질러 나갔다.
먼 곳에서도 확연히 느껴진 어마어마한 기세가 피어오른 곳으로.
그 정도의 기세라면 못해도 오러 나이트일 것이 분명했다.
마스터라는 경지에 오르고 자신의 일 수를 견디는 실력자를 본 것이 까마득한 지금, 그 고수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그것만으로는 마스터가 직접 움직이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알페론이 움직인 이유는 아들의 잔소리를 들을 생각과 손녀의 끝없는 혼처 거절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는 것이었다.
검만을 바라보며 한 길을 달려온 알페론은 의외로 순진한 구석이 많이 남아 있었다.
기세를 향해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순식간에 줄이며 나아가는 알페론의 입가에 언뜻 웃음기가 서렸다.
그렇게 순식간에 기세가 느껴진 곳에 도착한 알페론은 가장 먼저 의문을 느꼈다.
많은 기사가 대치 중에 있었지만 얼핏 보아도 그들 사이에 있는 중년인이 조금 전 기세를 내뿜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그 중년인이 젊은 청년에게 검이 붙잡힌 채 맞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그저 평범한 청년에게 말이다.
청년이 두 번째 주먹을 내뻗었을 때 알페론은 잘못 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청년이 세 번째 주먹을 내지르려 할 때 끼어들었다.
“허허, 그만하게나.”
마스터란 주위의 마나를 마음만으로도 움직일 수 있는 가히 괴물의 경지였다.
그 경지에 오르면 의도하지 않아도 말에 기세가 실리며 주위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지금처럼…….
대부분의 기사가 당황한 눈빛으로 알페론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청년과 조금 전까지 공격당하고 있었던 중년인을 제외한 단 한 명을 빼고.
중년인을 공격하던 청년은 차가운 눈동자로 자신을 직시하고 있었다.
‘허어…….’
사람이 저토록 차가운 눈동자를 지닐 수 있다는 사실에 알페론은 속으로 감탄했다.
마스터인 자신이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올 만큼 차가운 눈동자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무서운 눈동자를 지닌 청년에게서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스터에 이르며 더욱 예민해진 감각에 잡히지도 않았으며 청년 주위에 있는 마나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눈동자는 힘이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지만 자신의 감각에는 전혀 잡히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청년을 관찰하고 있을 때 중년인을 향해 내뻗었던 주먹이 살짝 움직였다.
회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알페론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아무리 보아도 중년인이 약자는 아니었지만 패배한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런데도 굳이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것에 인상이 쓰였다.
“허어, 이제 그만해도……!”
콰앙!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중년인의 복부에 닿은 주먹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있는 힘을 다해 내지른 것도 아니고, 멈추었던 것을 다시 살짝 내뻗은 것인데 가공할 만한 소리가 주위를 울렸다.
소리만 가공한 것이 아니었다. 복부를 가격당한 중년인의 몸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순식간에 날아갔다.
황당한 상황에 알페론이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감정을 추스르고 말했다.
“허어, 자넨 패자에게 굳이 일격을 가해야 했나?”
“이곳에 놈들은 개나 소나 도의를 따지는군.”
“뭐, 뭐라?”
알페론이 레이얀의 독설에 일순간 당황했다. 그러다 이내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기사라면 당연히 기사도를 따라야 하지 않겠나.”
과격한 언사에도 알페론은 쉽사리 분노하지 않았다. 마스터에 이르기까지 쌓아 온 정신적 수양은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깊었다.
“기사라서 당연히 따라야 한다? 그럼 나는 기사가 아니면 되겠군.”
“……그, 그게 무슨 소리인가! 감히 기사도를 모욕하지 말게나!”
꿈틀.
레이얀의 눈썹이 다시금 움직였다.
‘감히’란 말을 권위주의에 찌든 이곳 귀족들은 입에 달고 다녔다.
본래라면 자신에게 ‘감히’란 언급을 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여야 했지만 저 노인을 건들면 더한 귀찮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기 때문에 한 번 정도는 참으려 했다.
그러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 것과 강함을 내보이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그다지 인상적인 무위를 보이지 않은 것 같았기에 레이얀이 오른손을 늘어뜨렸다.
그리고 레이얀의 두 눈이 지독하게 차가워졌다.
파앗.
레이얀 부근에서 미약한 바람이 일며 일전에 일곱 장로들이 겪었던 살기가 다시금 내뿜어졌다.
“허어억!”
“컥!”
털썩.
그 살기를 고스란히 받은 자작가의 기사들이 식은땀에 젖은 채로 땅에 주저앉았다.
몇 명은 심장을 부여잡은 채로 그 자리에서 즉사하기도 했다.
반면 후작가의 기사들은 날카로운 기운만을 느낄 뿐이었다. 레이얀이 살기를 조절한 것이다.
그들마저도 죽여 버리면 후에 영지에서 일을 처리할 때 사소한 일도 자신이 하여야 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또한 애초에 그들을 데려온, 소문을 내기 위한 산증인이란 목표가 상실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으음.”
레이얀의 살기를 받은 알페론이 신음성을 흘렸다.
이토록 짙은 살기는 검을 쥔 이래 처음이었다.
그리고 일순간 보였던 칼이 몸에 박히는 환영. 너무나 생생한 느낌이었다.
청년의 몸에서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살기는 정말 가공할 만큼 매서웠다.
그때 늘어뜨린 레이얀의 오른손의 다섯 손가락에서 붉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마치 손톱이 길어지듯 땅으로 길어진 붉은색의 형상은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걸 보는 알페론은 섬뜩함보다 예기를 읽었다.
“으음…….”
보는 것만으로도 베일 것 같은 예기였다. 닿는 순간 그것이 강철일지라도 베어질 것 같은 느낌에 알페론은 처음 보는 기술임에도 의문을 품지 못하였다.
알페론의 오른손은 어느새 허리에 차여진 검 손잡이를 쥐고 있었다.
그런 알페론을 레이얀이 가공할 살기를 내뿜으며 지켜보았다.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게 되었을까.
자신이 호전적으로 말한 적도 없으며 투지를 드러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젊은 청년은 자신에게 살기를 내비치고 있었다.
조금 전 한 말에 감정이 상하여 그런 것 같지만 어디서 상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특별히 상대를 자극할 만한 말을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고민하던 알페론이 이내 생각을 지웠다. 전신을 짓누르고 있는 살기를 막기 위해 마나를 돌리느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만큼 살기가 너무나 짙었다.
‘허어, 그 참 이상하군.’
분명 일말의 마나도 느껴지지 않은 청년에게서 숨조차 쉬기 힘들 만큼의 살기가 내뿜어졌다. 그것 말고도 청년의 손에 맺힌 예기를 뛰는 기운. 저건 분명히 마나로 만든 것이었다.
보통 푸른색을 머금는 것과는 달리 붉은색이라 할지라도 마나임이 확연히 느껴졌다. 그럼에도 청년의 몸 주위에서는 어떠한 마나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참으로 의아한 상황이었다.
마나로 모종의 기술을 불러내었지만 몸에서는 마나가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히 체내의 마나를 유동시켰을 터인데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청년을 살펴보고 있을 때 알페론의 머릿속에 어이없는 생각이 떠올랐다.
눈앞의 젊은 청년이 자신보다 경지가 높다?
너무나 어이가 없어 이내 고개를 저었다.
‘허허, 그럴 리가.’
마스터란 꿈의 경지인 오러 나이트를 넘어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영향력을 지니는 경지였다.
그런 마스터 위의 경지는 아직 드러난 바가 없었다. 아주 예전 검신이라고 불렸던 자가 그랜드 마스터일지도 모른다는 추정만 들었을 뿐. 즉, 마스터가 최고의 경지나 다름이 없단 말이었다.
그런 자신보다 눈앞의 청년이 높은 경지이다?
그 말은 도저히 맞지 않았다. 아무리 타고난 천재라고 할지라도 깨달음이 없이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가 오러 나이트였으며, 그것에서 또 다른 벽을 깨고 다른 세상을 보지 못하면 오를 수 없는 것이 마스터였다.
그런데 새파란 어린 녀석이 마스터를 넘어 행여나 그랜드 마스터이다?
자신이 생각하고도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왜 마나가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알페론의 고민은 길어지지 못했다.
“허억!”
앞의 청년의 신형이 잠깐 흐릿해진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느새 지척에서 오른손을 내리찍고 있었다.
알페론이 검이 순식간이 검집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어두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검에서 빛이 뿜어졌다. 검에 서린 예기는 레이얀의 그것에 미치지는 못하였지만 상당히 날카로웠다.
콰앙!
레이얀의 수인을 막은 알페론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크윽!”
어느새 알페론이 처음 서 있었던 자리에 선 레이얀의 눈썹이 움직였다.
베로크가 자신의 공격을 버틴 것도 마찬가지이고, 막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공격도 인간이 막았다.
여러모로 인간의 실력과 이념이 자신을 놀라게 하는 한편으로 또다시 짜증이 치솟았다.
하찮은 인간에게 자신의 공격이 막히다니.
한편 뒤로 수십 걸음 밀려난 알페론은 경악하고 있었다. 자신이 뒤로 밀려났다는 사실보다 검에서부터 팔을 따라 어깨까지 전해진 충격에 경악했다.
쾌속을 버리고 오로지 힘을 밑바탕에 둔 검술은 대륙에 많았다. 허나, 방금 그 일 수는 힘을 밑바탕에 둔 어떠한 검술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막강했다.
전신이 뒤흔들리는 충격이란.
경악 어린 표정으로 알페론이 검을 보았다. 만약 마지막에 마나를 잠깐이나마 끌어 올리지 않았더라면 반드시 금이 갔을 것이다.
대륙에 알려진 명검 중 하나인 실버 론즈에 금이 가다니.
겪지 않았다면 절대 믿지 못할 일이었다.
검을 살펴보던 알페론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청년이 달려들 자세를 취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서 있는 자세만으로도 달려들 수 있음을 알페론은 한 번 겪은 것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빨리 입을 열었다.
이 정도의 강자라면 대륙에 소문이 났을 것이 분명하기에 어떤 자인지 알려는 것이다.
“노부는 알로이크 제국의 알페론이라고 하네. 자네는 누구인가?”
알페론의 말을 들은 록펠이 이름을 되뇌었다.
“알페론? ……알페론 ……헉!”
잡히지 않는 기억을 애써 찾아냈을 때 록펠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알로이크의 수호기사 알페론?”
대륙의 알려진 10인의 마스터들은 모두 저마다의 수식어가 있었다. 그중 상대의 공격을 꾸준히 받아 내며 집요하게 허점을 찾아내는 방어 검술의 대가인 알페론은 수호기사란 수식어로 대륙에 더욱 알려져 있었다.
“허허, 노부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군.”
알페론이 인정하자 다른 기사들도 경악했다.
평생을 살아도 드래곤만큼이나 보기 힘들다는 마스터가 이곳에 있다니!
비록 마스터들 중에서 실력이 낮은 축에 속한다고 한들, 마스터였다!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국왕 이상인 마스터!
“……!”
록펠은 너무나 놀라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생각해 보니 이곳에 와서 참으로 많이 놀란 것 같았다.
오러 나이트의 등장부터 그를 단숨에 제압해 버리는 주군의 무위까지. 더군다나 갑작스레 등장한 마스터까지.
평생 동안 놀랄 것을 이곳에서 다 겪는 기분이었다. 잠시 충격에 빠져 있는 록펠에 머물렀던 알페론의 시선이 레이얀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