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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마대제 1권(16화)
Chapter 5 첫 번째 수하(3)
“허허, 그래 자네는 누구인가?”
한참 알페론을 보던 레이얀이 수인을 거두어들였다. 그 모습에 알페론이 자신의 명성에 레이얀이 조심스러워졌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흐뭇해했다.
고강한 실력을 지닌 만큼 상대에 대한 배려 또한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알페론은 레이얀의 강맹한 일격에 받은 충격 때문에 베로크를 날려 버린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젊어 보이는데 자네는…… 커억!”
알페론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아가며 차례대로 몸 또한 기울어졌다.
그때 묵직한 충돌음이 흘렀다.
퍼억.
“커헉!”
오른쪽으로 돌아갔던 알페론의 고개가 다시 왼쪽으로 향했다. 그와 함께 몸이 부자연스럽게 꺾였다.
알페론은 엄청난 고통보다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누구한테 맞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때 왼쪽으로 날아가던 알페론의 멱살에 창백한 손이 튀어나왔다.
와락.
한 손으로 멱살을 잡고 날아가려던 알페론을 잡아당겼다.
단 두 방만에 알페론의 입가로 선혈이 흘러내렸다.
“컥!”
아득해지는 정신 속에서 마주친 청년의 붉은 눈동자에 알페론이 아연해졌다.
방금 자신의 눈에, 기척에 전혀 잡히지 않은 공격을 이 청년이 했단 말인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눈동자가 그것이 맞음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네가 누구이건 상관없다. 여기는…… 내 영지니까.”
아무런 높낮이가 느껴지지 않는 음색이었지만 식은땀이 알페론의 등을 타고 흘렀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들었다.
퍼억.
“커헉!”
아까와 같은 충격이 알페론의 가슴팍을 강타했다.
뒤로 날아가고 싶어도 잡힌 멱살로 인해 날아가지도 못했다. 그렇게 레이얀의 구타가 시작되었다.
콰르릉!
쏴아아아.
아침부터 하늘을 가득 메웠던 먹구름에서 결국 벼락과 함께 굵은 빗방울이 쏟아졌다.
비를 맞고 있는 록펠의 두 눈과 입은 누가 더 큰가를 내기하듯 부릅떠져 있었다.
그건 후작가 기사들과 레이얀의 살기에서 정신을 차린 자작가 기사들 모두가 짓고 있는 표정이었다.
모두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레이얀이 서 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 흐르는 사이 수백 번의 주먹과 발이 알페론의 몸을 문질렀다.
이곳에 있는 어느 누구도 레이얀의 손속을 보지는 못했지만 갈수록 엉망진창이 되어 가는 알페론의 모습은 볼 수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왔던 멋들어지던 수염은 피에 젖어 아무렇게나 엉키고 뭉쳐 있었으며, 머리는 한없이 산발하여 영락없는 거지의 모습이었다.
레이얀이 축 늘어진 알페론을 무심하게 바닥에 던졌다.
철퍽.
아무런 저항 없이 젖은 바닥에 떨어진 알페론은 흡사 죽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미약하게나마 움직이는 가슴이 살아 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록펠의 입은 닫히지 않았다.
이것을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오러 나이트를 제압한 것도 믿기 힘든 일이지만 살상 병기나 다름없는 마스터를 주먹질로 제압하다니.
그것도 자신의 어린 영주가 말이다.
보고도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쌓아 온 상식이 레이얀으로 인해 붕괴되었기에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록펠의 심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레이얀이 입을 열었다.
“이대로 자작가로 가서 체론의 가족들을 감옥에 가두어라. 그리고 당분간 자작가의 성에 머문다.”
“…….”
평소의 록펠이라면 반드시 주군의 명에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충격적인 상황에 머리가 평소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머릿속에 주군의 명령을 입력하고 있었다.
참으로 전형적인 기사이자 충직한 부하가 아닐 수 없었다.
레이얀이 말을 덧붙였다.
“나는 따로 가도록 하지.”
그 말과 함께 레이얀의 신형이 증발하듯 사라졌다.
애초에 그 자리에 있지 않은 것처럼 어떠한 잔상도 남기지 않았다.
“…….”
레이얀이 사라짐에도 록펠과 기사들은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지은 채 방금 전의 일들을 회상하고 있었다.
* * *
펠리스는 아주 죽을 맛이었다.
아무리 기감을 끌어 올려도 기척은 잡히지도 않았으며 어깨에서 흐르는 피 때문에 정신까지 혼미해졌다.
당장이라도 정신을 놓고 싶었지만 그 순간 세상과 단절하게 된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그렇게 예민하게 기감을 끌어 올린 채 근 한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체온 또한 급속도로 차가워지고 있었다. 피부색도 과다 출혈로 인하여 지나치게 창백해졌다.
그런 상황일지라도 펠리스의 회색 눈동자는 날카롭게 빛났다.
정신력 하나는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디엔보다 더욱 높은 실력을 성취할 수 있었겠지만.
콰르릉.
쏴아아아.
날씨마저 펠리스의 편이 아니었다.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이리도 차가운 것인지 처음 알았다.
몸이 떨려 왔다.
자신이 왜 이런 상황에 처해야 하는 것인지 억울함도 들었다.
그렇게 잡히지 않는 기척과 끝없이 흘린 피 그리고 차가운 빗방울로 인하여 처음으로 펠리스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눈매 또한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그만큼 지친 것이다.
바닥으로 천천히 떨어지는 펠리스는 시야에 언뜻 사람의 발이 들어옴을 느꼈다.
“허어억!”
그 순간, 언제 지쳤나는 듯이 기염을 토해 내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면서 단검을 든 왼손을 내세웠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사람이 자신의 정면, 나뭇가지 위에 서 있었다.
아무리 방심했더라도 지척에 도달하기 전까지 빗방울이 닿으며 생길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생각이 들자 갑작스레 날아온 검에 찔렸을 때와 같은 두려움이 마음을 장악했다.
눈에 떨어진 빗방울과 두려움을 털어 내기 위해 고개를 한차례 털었다.
그리고 상대의 얼굴로 시선을 보내었다.
‘어?’
상대를 확인한 펠리스는 의아한 빛을 띠었다.
자신이 감시하러 왔던 레이얀으로 보인 것이다. 있을 리가 없는 사람의 모습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떠 보았다.
역시나 다름이 없었다.
“헉!”
덥썩.
미처 의문을 품을 새가 없었다. 몇 미터 떨어져 있던 레이얀이 순식간에 앞에 나타나 턱을 잡았기 때문이다.
“역시 쓸 만할 것 같군.”
“……?”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레이얀을 향해 펠리스는 왼손을 뻗었다. 그 손에는 아직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워낙 갑작스레 나타난지라 반응이 늦었을 뿐이지만, 다른 이들에 비해서라면 훨씬 빠른 축에 속했다.
반응이야 늦었지만 이 정도 거리라면 쉽사리 단검을 막아 내지 못할 것이었다.
툭.
역시나 레이얀의 등은 단검을 고스란히 허락했다.
“응?”
그런데 단검 끝을 통해 전해지는 느낌이 이질적이었다. 마치 돌바닥에 단검을 박은 기분이었다.
지친 정신으로 인하여 착각한 것이라 생각하며 조심스레 왼손을 뒤로 빼 보았다.
“……?”
기분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단검에는 피가 아닌 빗물이 맺혀 떨어지고 있었다.
와락.
“커헉!”
그때 레이얀이 잡고 있던 펠리스의 턱을 치켜들었다.
그러고는 왼손의 새끼손가락을 입가로 가져갔다. 레이얀의 루비빛 눈동자에 일순간 빛이 일렁였다.
툭툭.
“크륵!”
어느새 새끼손가락에 맺힌 핏방울이 펠리스의 입가로 떨어져 내렸다.
그제야 레이얀이 턱을 놓아 주었다. 그러면서 왼손으로 펠리스의 어깨에 박힌 검을 뽑아 들었다.
펠리스는 아무리 애를 써도 뽑히지 않던 검이 아무런 저항도 없이 부드럽게 나무에서 빠져나왔다.
털썩.
오랜 시간 쓰러지지 못하고 버티고 있던 펠리스는 갑작스레 검이 뽑히자 나뭇가지 위에 무릎을 꿇었다.
무릎이 닿기 무섭게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난 펠리스는 단검을 꼬나 쥐었다.
그리고 달려들기 위해 발을 굴리려 할 때.
“어?”
털썩.
이번엔 몸 전체가 나뭇가지 위로 쓰러졌다. 온몸의 힘이 풀린 것이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신은 말짱했다. 혀 또한 의도대로 움직여졌다.
그러자 절로 레이얀에게 시선이 향했다.
“노, 놈! 뭘 먹인 거냐!”
이미 혀에 닿는 순간 풍기는 피비린내에 그것이 피인 것은 알고 있었다. 펠리스는 피를 먹인 의도를 묻고 있었다.
분노 실린 펠리스의 눈동자가 레이얀을 쏘아보았다.
그 순간 펠리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펠리스를 지켜보는 레이얀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복부에서 시작된 이질감은 펠리스의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고통스럽지도 그렇다고 간지러운 것도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혈관을 수십 마리의 뱀이 기어가는 것만 같은 끔찍한 느낌이 들었다.
절로 소름이 돋았으며 몸이 떨려 왔다.
고통보다는 처음 겪는 이질감에 몸이 거부하고 있었다.
끔찍한 느낌이 전신을 다 훑었을 때, 갑작스런 고통이 복부에 찾아왔다.
“큭!”
절로 허리가 굽혀지며 손가락 관절이 구부러졌다. 그 고통은 갈수록 심해졌으며 신음 소리조차 낼 수 없을 만큼 아파 왔다.
그 모습을 레이얀은 무심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방금 레이얀이 피를 먹인 것.
그것은 보통 뱀파이어가 인간의 목을 물어 피를 취한 후 같은 뱀파이어로 만들 듯이, 진마가 수하를 만들 때 쓰는 방법이었다.
둘 중 더 고통스러운 것은 진마의 방식이었다.
진마의 피를 공급하는 방식이 덜 잔인한 듯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체내에 투입된 피는 사람의 신체 모두를 뱀파이어에 맞게끔 바꾸어 버린다.
신체의 모든 장기와 피가 뒤바뀌는 고통은 보통 인간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레이얀은 더 이상 완전한 진마가 아니었다. 영혼으로 인해 육체가 조금 변한 것은 사실이지만 육체는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펠리스는 더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 고통이 끝나고 나면 펠리스는 더 이상 자유의 몸이 아니었다. 진마의 피를 삼킨 인간은 오로지 그 진마에게 복종하게 된다.
펠리스가 보는 것을 레이얀도 볼 수 있게 되고 생각마저도 레이얀이 간파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 모두도 레이얀이 의도하여야 하지만 결론은 절대 배신할 수 없는 수하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물론 피를 먹는 모두가 수하가 되는 것은 아니다. 펠리스가 고통을 버텨 내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었다.
펠리스는 버텨 낼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피를 흘려도 근처에 적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세를 고수한 정신력은 쉽게 볼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펠리스를 보던 레이얀의 신형이 사라졌다.
자작가로 향한 것이다.
만약 고통을 버텨 내어 변하게 되었다면 펠리스 스스로 레이얀에게 찾아오게 될 것이기에 괜히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염없이 내리는 장대비가 애처롭게 보이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