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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마대제 1권(19화)
Chapter 6 케이안트 제국의 음모(2)


말로써 형용할 수 없었던 지독한 고통을 버텨 내어 자신이 강해졌다고 생각한 펠리스는 그 강함이 레이얀에게는 씨도 안 먹힘을 깨달았다.
“내 앞에서 한 번만 더 살기를 드러내면…… 저승에서도 고통 받게 해 주마.”
미친 소리라고 치부할 만큼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펠리스는 지독하게 차가운 레이얀의 눈동자를 보며 정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의 초입인지라 아침부터 내린 비로 추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펠리스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두 눈을 마주하고 있는 펠리스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레이얀을 찾아온 자신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네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는 내가 먹인 피 때문이니 신경 쓰지 마라.”
수하가 되었음을 가르쳐 줄 마음이 사라졌다. 이유는 살기를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일 수는 없었다.
죽여 버리면 또다시 수고스러움을 자신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금 공격 또한 직접적으로 타격을 주지 않고 대기의 공기를 이용했다.
즉, 발을 빠르게 굴려 공기를 밀어냄으로써 턱에 충격을 가했던 것이다.
속도만으로 대기의 공기를 밀려나게 하여 상대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니. 절로 할 말이 없어지는 강함이었다.
그리하여 펠리스를 죽일 수는 없었기에 레이얀은 살기에 대한 대가로 잔인한 방법을 이용하여, 자신을 거역할 수 없는 수하가 되었음을 가르쳐 줄 계획을 세웠다.
레이얀을 원수로 볼 만큼의 고통을 겪은 펠리스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겠지만, 한 번의 살기를 참아 낸 레이얀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펠리스는 마른침을 삼켰다. 한 번의 공격으로 충분히 깨달았다. 더 이상 공격해 봤자 전혀 먹히지 않을 것임을. 그렇기에 펠리스는 날카로운 인상에 맞지 않게 조심스런 표정으로 레이얀을 바라보았다.
“너희에게 선택권을 주마.”
“……?”
펠리스는 긴장한 채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밖에 없는 마당에 갑자기 복수로 칭하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
그런 표정을 무시한 채 레이얀이 느릿느릿하게 한 어조씩 차갑게 말했다.
“모두 모여 희박하게나마 생존율을 올리던지, 하나씩…… 하나씩…… 죽어 나가던지. 선택해라. 얼마 뒤에 직접 물으러 갈 테니.”
“……?”
펠리스는 의문이 더욱 깊어졌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에 긴장이 절로 풀렸다.
하지만 이어진 레이얀의 말에 펠리스는 턱이 떨어질 만큼 입을 떡 벌렸다.
“당장 호거스로 가서 전해라.”
“어억!”
암살자가 보여서는 안 될 감정에 휘둘리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레이얀의 근처에 있으면 절로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차가운 눈빛, 표정,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유령과 같은 레이얀이지만 실상은 주위의 공간을 모조리 장악하고 있었다.
장악한 것을 넘어 주위의 기운을 지독하게 차갑게 만들었다. 일전에 집사가 숨이 막혔던 이유도, 모든 이들이 쉽게 두려움이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이유도 모두 이 때문이었다.
펠리스의 표정이 아연해졌다.
호거스는 루스펠드 후작령에 있는 여관의 이름이었다. 평범한 여관의 이름을 말한 것뿐임에도 이토록 놀라는 이유는 호거스가 케이안트 제국군의 전초기지였기 때문이다.
케이안트 제국에서 임무를 띠고 온 자들 중에서도 수뇌부들만 아는 그곳을 레이얀이 어찌 안다는 말인가.
일곱 장로 중 하나였던 겔릭마저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레이얀을 암습했었던 특급 어쌔신 디엔마저도 기점지의 존재 여부는 알아도 정확한 위치는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 둘이 호거스에 대해 불었을 가능성이 없게 된다. 디엔이 존재 여부는 발설했을 수도 있지만 레이얀은 정확한 명칭을 말했다.
‘대체 누가…….’
있을 수 없는 배신자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펠리스의 고민은 깊어지지 못했다.
지독하게 차가운 눈동자가 자신을 직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주친 것이 아니다, 단지 몸이 뚫릴 만큼 따가운 느낌에 그곳으로 시선을 옮겨 보았을 뿐.
꿀꺽.
마른침을 간신히 삼킨 펠리스는 지체 없이 문을 열고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의문을 표하고 싶었지만 그럴 상대가 아니었다.
묻기만 하면 가차 없이 일전의 고통을 다시 줄 것만 같은 눈빛에 망설임 없이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순식간에 자작가의 성에서 멀어지는 펠리스의 기척을 느끼며 레이얀이 흐릿하게 웃었다.
펠리스는 죽도록 달려 근 4일 만에 호거스에 당도할 수 있었다. 말을 타고 8일이 걸린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속도였다.
그렇게 호거스에 도착한 펠리스는 기본 절차를 거치고 그림을 지난 후에 수장이 기거하는 곳에 도착하여 그동안 있었던 일의 설명을 막 마쳤다.
“흐음…… 너를 웃도는 실력이라고?”
펠리스가 서 있는 테이블 너머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예…… 도저히 기척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침묵이 한참 동안 자리했다.
침묵이 깨어졌을 때는 아무도 없었던 테이블에 중년인이 앉아 있었다.
“책임질 수 있느냐?”
갑작스레 나타난 수장, 게리오스의 모습에 펠리스는 흠칫했다.
애초부터 그 자리에 있었음을 목소리로 짐작할 수 있었지만 도무지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기사의 경지로 치면 마스터에 이른 펠리스의 기감에 잡히지 않는다니!
루스펠드 후작령은 괴수들이 넘치는 장소가 아닐 수 없었다.
펠리스가 반문했다.
“예?”
“그 보고에 책임질 수 있느냐 물었다.”
게리오스의 물음에 펠리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쉽사리 믿을 수 없는 황당한 보고이기에 혹시 자신을 배반자로 몰지나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다.
“예, 제 목숨을 걸 수 있습니다.”
“흐음…….”
펠리스의 단호함에 게리오스가 인상을 슬며시 찌푸렸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믿기지 않았다.
예전부터 펠리스가 마음먹고 기척을 죽이면 마스터에 이른 기사조차 느끼기 어려웠다. 지금 얼핏 보아도 예전보다 더욱 강해진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강해졌음에도 레이얀에게 공격당했다고 말했다.
이것을 어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마스터조차 감지하기 어려웠던 기척을 레이얀이 쉽사리 간파해 내었단 말인가.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거짓을 고할 리 없었다.
지금 상황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배신할 인물도 아니었기에 게리오스는 이 보고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배신하지 않은 올곧은 도의를 지닌 게 아닌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정말 거치적거리는군.”
계획대로라면 지금쯤은 계획이 실행되고도 남을 시기여야 했다. 실제로 다른 후작령에 침투한 자들은 모두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유독 자신이 맡은 루스펠드 후작령은 준비를 마칠 수가 없었다.
겔릭의 죽음으로 인해 존재 여부가 드러난 변수 때문이었다.
그 변수를 완벽하게 알고 처리하기 위해 펠리스를 보내었고, 펠리스는 디엔을 보내었다.
그런데 디엔이 실패하고 뒤이어 확인하러 간 펠리스 또한 실패했다.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 아니 펠리스의 보고로 이미 드러난 변수는 제거가 되지 않았다.
정말 거추장스럽고 짜증스러운 일이었다.
보고대로라면 새파란 꼬맹이 때문에 케이안트 제국의 대업을 실행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가만…… 자신이 찾아온다 했다고?”
“……예.”
펠리스는 차오르는 희열을 느끼며 대답했다.
그런 희열을 느낀 게리오스가 피식 웃었다.
“훗…… 그게 자살행위임을 아는군?”
“당연합니다. 그 녀석은 이 방에조차 오지 못하고 제거당할 테니까요.”
케이안트 제국이 꾸민 음모를 실행하기 위한 최고의 실력자들이 이 건물에 기거하고 있었다.
그런 곳에 레이얀이 홀로 온다면…… 자신을 쉽사리 이긴다 하더라도, 자신만큼이나 강한 자들 여럿을 쉽게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아주 만약에 가능성으로 그들 다수를 이겨 내더라도 수장 게리오스는 이기지 못할 것이다.
“훗. 그럼 수고를 할 필요가 없겠군.”
“예?”
“찾아온다 했으니 우리는 맞아 주기만 하면 되지 않나.”
“……!”
호의가 느껴지는 표현이었지만 말 속에 숨어 있는 뜻을 파악한 펠리스는 희미하게 웃음 지었다.
“제압한 후에 배신자에 대해 물으면 되겠군.”
“…….”
이어진 게리오스의 말에 펠리스는 얼굴을 굳혔다. 자신 또한 의문인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그 배신자는…….”
말을 길게 끌며 게리오스가 품으로 손을 넣었다. 다시 나온 손에는 엄지손가락만 한 붉은색의 빛이 뿜어지고 있는 보석이 들려 있었다.
“……!”
그것을 본 펠리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펠리스가 배신하지 못하는 이유. 그것은 바로 저 보석 때문이었다.
“이미 이 부근을 떠났을 테니…… 이것을 깨뜨리면 되겠지.”
“…….”
입술을 질끈 깨문 펠리스는 일전의 일을 떠올렸다. 케이안트 제국은 음모를 실행하기 위해 은밀하게 실력자들을 모았다. 장시간이 소모되는 음모였지만, 실력자 대부분이 기여한 만큼 영토를 하사하겠다는 매력적인 보상에 참가하였다.
그 말은 언제고 더 좋은 보상이 생겨나면 배신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케이안트 제국의 황제는 이미 그 점까지 감안하고 있었다.
그는 대륙의 적으로 낙인찍힌 흑마법사들이 쓰는 흑마법으로 실력자들과 계약을 했다.
바로 저 보석.
자체적으로 빛을 뿜어내는 붉은 보석은 실력자 하나하나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었다.
저것이 깨어지게 되면 실력자 또한 죽게 된다.
펠리스가 배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목숨이 담보되어 있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조건에 넘어가지 않았어야 했다.
하지만 자신만의 영지가 생긴다는 것은 충분히 넘어갈 만한 조건이었다.
그런 펠리스를 향해 게리오스가 손짓했다.
짧게 고개를 까딱인 펠리스가 방을 빠져나갔다.
“자네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이 보석에는 다른 효과도 있지.”
붉게 빛나는 보석을 보며 게리오스가 비릿하게 웃었다.
“만약 본 사실과 다르게 얘기를 할 경우 보석의 색이 지독하게 어두워지지.”
비릿한 웃음이 사라지고 이내 게리오스의 표정에 짜증이 서렸다.
“안타깝게도 자넨 사실을 고했군…….”
그렇다는 말은 레이얀이 정말로 펠리스를 제압했다는 것이었다. 또한 자신에게 직접 온다는 말마저 사실이었다.
한참 보석을 바라보던 게리오스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창한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겠군.”
그 정도 실력자라면 지금부터 준비를 하여야 했다. 자리를 벗어나는 게리오스의 얼굴에는 짜증기가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를 웃음이 차지하고 있었다.
케이안트 제국의 대업이 자신이 맡은 영지 때문에 미루어지고 있었지만, 자신의 영지에서 가장 큰 기여도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레이얀을 제압하여 인질로 삼으면서 완벽하게 장악하게 될 후작령으로!
방을 나설 때까지도 게리오스 입가에는 웃음이 떠나지를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