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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마대제 1권(20화)
Chapter 7 기사단장들의 귀환(1)


루스펠드 후작 성의 ‘응접실’보다 조금 작은 집무실에서 금발의 다소 무뚝뚝한 얼굴의 중년인이 안건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의 책상에는 케이안트 제국을 상징하는 불사조가 새겨진 작은 깃대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깃대의 옆에는 제국의 총사령관이자, 국내외 영향력을 크게 미치는 안건을 처리할 때 최종 승인을 내리는 옥새가 놓여 있었다. 옥새를 다룰 수 있는 인물, 그것은 최고위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가 바로 케이안트 제국의 당대 황제 카트리언인 것이다.
카트리언은 눈앞에 놓인 장문의 서류들을 빠르게 훑으며 처리해 나갔다. 왜냐하면 그가 기다리던 연락이 드디어 왔다는 보고를 전해 받았기 때문이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으나, 기다리던 그 연락은 비밀리에 진행된 계획의 진척 상황을 알리는 것이었다.
필시 집무실 근처에 수호기사들을 제외하고는 인기척이 전혀 없으나,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아무리 철저한 비밀일지라도 목숨이 걸린 것이 아닌 이상 새어 나가기 마련이었다. 심지어 지금처럼 제국 내의 귀족파들이 많은 상태에선 더욱 조심하여야 했다.
그렇기에 카트리언은 최대한 평상심을 유지하며 빠르게 안건을 처리하고 있었다.
허나 그의 마음은 벌써 마법 수정구가 있는, 지하 연구실에 가 있었다.
드디어 조금 전에 올라온 마지막 서류의 끝줄을 읽은 카트리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빠르게 책장으로 걸음을 옮긴 후, 그 곳에 꽂힌 수많은 똑같은 모습의 책들 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밀어 넣었다.
책장 벽에 막혀 더는 밀리지 않아야 할 책이 벽으로 쑥 들어가더니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낮은 찰칵 소리와 함께 책장 전체가 한 사람이 통과할 만큼 열렸다. 카트리언은 망설임 없이 걸음을 내딛어 돌계단을 내려갔다. 뒤에선 책장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연락이 왔군.’
행동을 분명히 조심하여야 했지만, 카트리언은 거침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자신이 자리를 비워 둔다 한들 수호기사가 먼저 방문을 두드리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기에 안심하고 자리를 비우는 것이다. 물론, 연락이 왔음을 알린 시종장에게 혹시 모를 방문을 막게끔 해 두기도 하였다.
케이안트 제국의 황제 카트리언은 상당히 치밀한 사람이었다.
특히, 누군가를 믿음에 있어 치밀함은 유달리 크게 작용했는데, 그 점은 고스란히 이번 계획에 동참한 인물들에게 반영되었다.
끝없을 것 같던 돌계단이 끝나자 이번엔 간간이 빛을 발하는 수정구가 천장에 붙어 있는 긴 복도가 나왔다. 카트리언은 복도에 발을 딛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속도를 올려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자신이 오기 전에 연락이 먼저 끊길 일은 없을 것이다. 그곳에서 연락을 건 자는 분명히 안전과 현재 상황, 변수를 고려하여 취한 연락일 것이었다. 갑작스런 연락인 만큼 자신의 늦음은 어쩔 수 없음을 잘 알 것이란 뜻이었다.
그럼에도 카트리언은 걸음걸이를 빨리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자의 연락이라는 점도 있지만 이 계획의 성공 여부에 황제파의 존망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복도 끝에는 문이 있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간 카트리언은 길쭉한 테이블만 놓인 익숙한 풍경을 뒤로한 채 한쪽 벽으로 걸어갔다. 그 벽의 중앙에는 마법 수정구가 박혀 있었는데 그것은 수정구에 나타난 이미지를 홀로그램처럼 투영시키는 마법 기구였다.
이미 그 홀로그램은 작동하고 있었고 수정구에서 뿜어진 빛에는 부복한 사람의 형상이 나타나 있었다.
그를 보자마자 카트리언이 본론을 꺼내 들었다. 예를 차릴 시간마저 없을 만큼 시간이 상당히 늦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복도에서의 조급함은 일말도 보이지 않는 단호한 얼굴로 걸음을 멈추고는 부복한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그래 어떻게 되었지, 게리오스?”
무뚝뚝한 표정이 반영된 것 같은 감정 없는 어조였다. 하지만 미약하나마 흥분이 서려져 있었다.
이미 대답을 알기 때문이었다. 허나, 서둘러서 좋을 것은 없기에 침착하게 게리오스의 답을 기다렸다.
“모든 것이 해결되었습니다.”
카트리언이 가장 기대하는 수하들 중 하나이며 이번 계획에서 가장 큰 실망을 안긴 수하, 게리오스가 답했다.
“그 말은 내일이라도 후작령들이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냐?”
“예.”
펠리스에게 보였던 거만한 형색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게리오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계획에 차질이 생긴 점, 가신의 목숨으로도 사죄 되지 않을 죄이지만 폐하의 넓은…….”
“됐으니 원하는 걸 말하거라.”
단박에 말을 끊었으나 게리오스는 익숙한 듯 얘기를 계속했다. 카트리언이 싫어하는 것이 패배와 아첨이기 때문이다.
“하여, 그 죄를 이번 임무에서 갚고 싶습니다.”
“…….”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그 말은 계속하라는 뜻이었다.
“계획에 차질이 생긴 만큼 우리 측 피해가 커서는 안 되는 바, 그렇기에 후작령의 기사들을 휘하에 둘 작정입니다.
“무슨 수로?”
“약소국에 지나지 않는 베론 왕국은 황당하게도 기사들의 충성심은 가히 강국에 버금가는 줄로 아옵니다.”
“그래, 그 때문에 우리와 국경을 마주한 채 오래 버틸 수 있었던 것이지.”
물론, 귀족파와 황제파로 갈리지만 않았더라면 그깟 충성심도 소용없었겠지만 카트리언은 말하지 않았다.
거만함이 어떤 대가로 돌아오는지 지금 내정 상태만 보더라도 잘 알기 때문이다.
“예, 그래서 그것을 이용할 작정입니다. 비록 영주가 모종의 세력을 거머쥐었다 한들…….”
“호오, 영주를 빌미로 잡겠다는 게냐? 너무 흔하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계획이군.”
감탄사를 내뱉었지만 아무런 감정이 배여 있지 않았다. 설명 중에 말이 끊겼지만 게리오스는 어떠한 감정도 내색하지 않고 계속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는 계획이나 어느 누구도 그런 일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위험부담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예, 알고 있습니다.”
“다이아몬드를 지키려다 레드 다이아몬드를 잃을지도 모른다.”
적절한 비유라서? 아니면 황당한 예시라서? 게리오스가 슬쩍 웃음을 지었다. 카트리언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게리오스의 계획에 동의했다는 전제하에 나타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카트리언이 게리오스를 아는 만큼 게리오스 또한 자신의 황제를 잘 알고 있었다.
“실패하면 대가는 알겠지?”
“예, 절대 실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너무나 자신만만한 태도.
분명 실현 가능한 계획이 있기에 말을 꺼낸 것일 테다. 하지만 카트리언은 그 계획을 묻지 않았다.
전장에서 검을 휘두르는 기사는 자신이 아니기에.
“그럼, 만삭이 지고 동이 트는 날에 그곳은 나의 영지겠군.”
“예? 아, 예.”
이제 초승달이 밤하늘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 말은 20일에 해당하는 기일을 더 준다는 뜻이었다. 이해를 하지 못한 게리오스를 향해 카트리언이 말을 이었다.
“기간이 늦추어지면서 계획에 변경이 있었다.”
“…….”
처음 들어 보는 기쁨에 겨운 황제의 음색에 게리오스가 고개를 들었다.
예를 어기는 행위이나 카트리언은 상관없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다른 후작령들을 맡은 몇몇이 베논 왕국의 수뇌부와 접촉할 수 있는 동선을 마련했다.”
“……!”
게리오스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자신은 맡은 영지에 급급하느라 다른 영지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들이 선수 쳤다는 분노도 잠시 금세 게리오스가 사색이 되어 고개를 조아렸다.
“아아, 그대가 사죄할 것이라고는 없다. 오히려 상을 내려야겠지.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시간을 끌어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니 말이다.”
말에 뼈가 있었으나 게리오스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하여 성벽을 부수고 들어가는 것이 아닌, 안에서 부수고 나올 수 있다는 것이지.”
“…….”
카트리언은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듯이 게리오스에게 설명을 계속했다.
본래 계획은 베논 왕국의 국경을 책임지는 모든 후작령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그 후 베논 왕국을 압박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허나, 후작령 내부를 장악하고 난 후 시간적 여유가 생긴 게리오스를 제외한 다른 수하들이 더욱더 왕궁 쪽으로 침투, 이내 후작령 너머에 백작령 심지어 삼대 공작가 중 한 공작가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였다.
이 모든 것이 베논 왕국의 내정 상태 또한 케이안트 제국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계획은 위험부담이 그다지 없었다.
몰래 숨어들어 차근차근 자리를 잡은 뒤에 후작 성을 기습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계획은 위험부담이 상당했다. 혹여, 귀족파라 할지라도 ‘왕국’을 사랑하여 배신할지도 모를 귀족파 공작도 위험 요소였으며 백작령들을 장악하면서 내버려 둘 뒤, 즉 후작 성의 병력들도 위험 요소였다.
그럼에도 이 계획을 진행하게 내버려 둔 이유는 베논 왕국을 점령하는 기간이 비약적으로 앞당겨지기 때문이다.
그 말은 지금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활보하고 있는 집 안의 개들을 내쳐 버릴 기간 또한 앞당겨 진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카트리언은 위험 요소를 감수한 채 다른 계획을 진행한 것이었다.
“…….”
설명을 다 들은 게리오스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모든 계획에 자신이 기여한 공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점을 읽은 카트리언이 말을 이었다.
“아직 내 신임을 잃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욱 높일 수 있는 계획을 방금 스스로 말하지 않았느냐.”
“……?”
명석한 두뇌와 대단한 마법 실력을 가졌으나, 존경하는 황제의 신뢰를 잃었다는 생각에 멎었던 두뇌가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이 흐르고, 카트리언의 말을 이해한 게리오스가 고개를 들었다.
카트리언은 설명해 줄 수도 있는 문제였으나 게리오스 스스로 길을 찾기를 바라였다. 그 작은 행동이 후에 게리오스를 더욱 크게 만들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카트리언의 무서움은 치밀함도 아닌 바로 이것이었다. 미래를 내다보고 행동하는 것. 물론 인간인 이상 미래를 내다볼 수는 없었다. 다만 철저한 계산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만들어 가는 것일 뿐이다.
치밀함은 그 행동으로 인해 자연스레 따라온 부산물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래, 네가 루스펠드 후작 성을 점령하고 다른 후작령들을 처리한다면 위험 요소를 하나 제거할 수 있겠지.”
“……!”
고개 숙인 게리오스의 두 눈이 무섭게 번뜩였다.
안전한 퇴로 확보와 더불어 왕실을 점령한 후에 필연적으로 생길 부딪힘을 자신이 제거한다면, 그 공은 공작을 회유한 것에 버금갈 것이다.
“절대 실수하지 않겠나이다.”
이미 돌아서 방을 나서는 카트리언을 향해 게리오스가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문이 닫히고, 홀로그램이 꺼지면서 비밀 공간에는 또다시 적막이 흘렀다.

* * *

펠리스가 이제 막 호거스에 도착하여 보고를 올릴 때.
윈스톤 자작의 성에 있던 레이얀은 어느새 루스펠드 후작가로 돌아와 있었다.
그것이 7일 전의 일이다.
즉, 펠리스가 자작가에서 호거스 여관을 향해 죽도록 이동한 7일 동안 레이얀은 이미 후작가 성에서 기거하고 있었단 말이었다.
성의 가신들 중에 놀라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으나, 감히 진위를 묻지를 못했다.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소식만으로 자신의 영주가 도망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물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 점이 아니라도, 웬만한 사람은 레이얀 앞에 멀쩡히 서서 사소한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고역일 것이다.
고수가 내뿜는 공간 장악을 넘어, 정신 장악이 어렴풋이 주위로 뿜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본연의 능력이 확실히 생겨나고 있었다. 하지만 전신의 신위를 펼치지는 못할 것이다. 인간의 육체가 아무리 변모하더라도 그 힘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신 장악이나 공간 장악이 은연중에 흘러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이는 영지 전체에 펼친 기감에서 생기는 부작용이었다.
영지 전체, 즉 영주 성이 속한 도시 전체를 감시하고자 활짝 열어 둔 기감 때문에 주변을 장악하는 기세가 흘러나오는 것이다.
넓은 도시 전체를 느낄 수 있는 기감을 지닌 만큼 이토록 빨리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능력을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자작가로 향할 때에는 많은 이들에게 그 모습을 보여야 할 필요가 있었지만, 그 필요가 사라진 이상 말로 이동할 이유가 없었기에 순식간에 돌아온 것이다.
레이얀은 집무실에서 앞으로 있을 상황들과 지금까지 행한 일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 중 하나인 마스터 알페론과 오러 나이트 베로크와의 대결을 떠올리고 있었다.
인간의 능력은 확실히 턱없이 약했다. 하지만 그들이 지닌 신념은 능력과는 전혀 비례 되지 않을 만큼 견고했다.
그 점에 레이얀은 짜증이 났다.
앞으로 그런 신념들로 인해 많은 마찰이 생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또한 예를 차리기도 전에 레이얀이 들어오라 명했다. 그러자 집무실에 들어선 집사가 곱게 접힌 서신을 레이얀에게 건네고 방을 나갔다.
느릿하게 종이를 펴서 읽은 레이얀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답장이 오지 않은 3곳 중 1곳에서 답장이 왔기 때문이다.
서신에는 아이즈 정보 길드에서 레이얀을 식사에 초대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기일이 적혀 있는 란을 보며 레이얀이 양피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곧 완성된 답장을 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