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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마대제 1권(21화)
Chapter 7 기사단장들의 귀환(2)


아이즈 정보 길드.
대륙에 가장 널리 알려진 정보 길드이자, 가장 많은 정보를 지닌 곳.
많은 곳에 지부를 둔 아이즈 길드는 작게는 평민, 크게는 암살 길드에도 정보를 파는 곳이었다.
수많은 지부 중 베론 왕국의 루스펠드 후작령을 맡고 있는 지부장은 승인이 되지 않았을지라도 이미 영주나 다름이 없는 레이얀에게 받은 답서에 인상이 일그러졌다.
“이 어린놈이!”
넓은 종이에는 달랑 한 문장만이 적혀 있었다.
“내가 원하는 때에 가겠다? 이런 못 배워 먹은 녀석을 보았나!”
쾅!
너무나 어이가 없었고 알게 모르게 오르는 분노에 거칠게 종이를 책상에 내쳤다.
그것도 잠시 곧 감정을 추스른 그가 코웃음을 쳤다.
“하! 조금 강한 힘을 지녔다고 우리 길드를 우습게 보는군. 그래, 좋을 때 찾아오게 내버려 두마. 그 후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한 번 보자구.”
그 말과 함께 지부장 루게인은 하나의 전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레이얀이 아닌 바로 아이즈 길드 본부였다.

* * *

그렇게 자작가에 비해 작은 일이 있은 지 7일 후.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그동안 레이얀은 다이아 광산의 이득을 영주 성으로 향하게끔 했으며 서류 면으로 자작가를 완벽하게 정리하였다.
그리고 장로들이 고친 영지의 법안들을 ‘자신’의 식대로 바꾸어 놓았다.
아직 적용이 되지 않았지만 하나둘씩 레이얀이 정리해 나가고 있었다.
이제 영지에 드나드는 상인들에게 붙이는 세금이 문제였다.
하지만 그 부분도 곧 자신의 영지를 밟는 것이라는 결론 내리고 세금을 정했다.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하던 레이얀은 낮에 영지의 동쪽 문에서 감지한 기척들을 떠올렸다.
그들에게서 느껴진 기운으로 보아 기사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단정 짓는 이유는 영주 성에 있는 기사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과 너무나 유사한 기운을 체내에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야 한 가지밖에 없었다. 같은 마나 호흡법으로 마나를 모았으니 다를 리가 없는 것이다.
마나가 쌓인 위치며, 개척된 마나 로드들이 말이다. 그 말은 루스펠드 후작가의 기사란 말이다.
호흡법이 같다 하더라도 개인 실력 차가 있는 법이기에 그들이 보유한 마나 양은 저마다 달랐으며, 가장 못한 자가 록펠을 웃돌고 있었다.
그들은 총 5명으로 영주 성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별안간 후작가의 실력자들이 영주 성을 향하는 이유는 너무나 명백하였다.
그렇기에 그 점은 레이얀의 관심 밖이었다.
장로들을 제거하고 불만을 품은 주변 영지들을 정리한 소식이 지금쯤이면 영지 전역에 퍼졌을 것이다.
레이얀은 소문의 진상을 살피러 온 그들을 어떻게 확실한 충신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시작부터 자신에게 충성심을 가지고, 그것을 고하러 왔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성 내부의 몇몇 기사들 또한 자신을 존경하지 않았는데 성 밖의 기사들이라고 존경하고 있을 리 없었다.
그렇기에 충신으로 만들 계획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의 기사들은 베로크와 알페론 그리고 록펠만 보더라도 꽤나 쓸 만했기 때문이다. 록펠 이상의 실력자라면? 도를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죽일 이유가 없었다.
모든 일을 자신이 할 수는 있으나, 그럴 것이었다면 펠리스를 살려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것이 있다면 그것을 적절히 이용할 것이다.
그 점이 자신의 수고를 줄여 주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레이얀은 연무장에서 느껴지는 기척으로 관심을 돌렸다.
수하들이 자신의 수고를 줄여 준다면, 수하들이 해결할 범위를 늘릴 수도 있었다. 더욱 강하게 만든다면 자신이 직접 나설 일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는 말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레이얀이 몇 시간 만에 집무실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 * *

루스펠드 후작령에 있는 여관의 등급을 상중하로 나눈다면 중에 속하는 여관에 다섯 명의 기사가 들어섰다. 귀족과 동등한 기사가 머물기에는 터무니없는 싸구려 여관이었지만 루스펠드 후작가에서 후한 대접을 바라기란 어려웠기에 당연하다는 듯이 방을 잡았다.
그리고 여정 동안 쌓인 피로에 지쳐 식사를 거른 채 곧장 방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금발의 청년이 갑옷을 벗어 던졌다.
쿵!
여관 바닥 전체에 미세한 진동이 흘렀다.
“테스, 갑옷은 레이디를 다루듯이 해야 한다!”
“아아, 또 기사도 나부랭이는 좀 참아 달라고! 네놈의 기사도 때문에 이곳으로 오는 여정 동안 한시도 벗지 않았으면 됐잖아!”
불만을 참지 못하고 제라드를 향해 테스가 으르렁거렸다.
제라드 또한 테스처럼 금발이었으나, 테스와 달리 백금발에 가까웠다.
또다시 싸우려는 둘을 보며 4남 1녀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중년인이 끼어들었다.
왼쪽 눈에서 오른쪽 턱으로 가로지르는 기다란 흉상 때문에 무서운 인상을 가진 사내였다.
“둘 다 그쯤 하게.”
“저는 왜 따로 방을 잡아 주지 않은 거죠?”
뒤늦게 방에 들어선 여인이 나직한 목소리로 불만을 토했다.
“왜냐하면 그럴 만한 돈이 없기 때문이지, 시렌. 침대를 약간 떼고 그사이에 가구들을 둔다면 그럭저럭 괜찮을게다.”
“돈, 돈, 돈! 망할 놈의 영주 때문에! 이게 어떻게 기사야!”
“입조심해라, 테스.”
중년인이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테스는 멈출 기색이 없었다. 국경에서 후작령의 중심부로 오는 긴 여정 동안 너무 많이 참은 것이다.
한 번 터진 이상 쉽게 멈출 리 없었다.
“어떻게 자신을 지켜 주는 기사보다 하등 쓸모없는 평민들의 대접이 더 좋을 수 있지?”
“그것이야말로 참된 영주상이자 기사상이다!”
제라드가 끼어들었다. 그것이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붓는 결과를 낳았다.
“웃기지 마! 그렇다면 우리들은 이곳에 오지 말았어야지, 안 그래?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주군을 믿어야 하는 것이 기사도 아닌가?”
“…….”
“…….”
처음으로 제라드가 반박을 하지 못했다.
제라드를 보며 중년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얼마 전의 일을 회상하였다.
중년인을 포함한 이들은 모두 국경을 담당하는 기사단장급들로 레닐에게 충성을 맹세한 기사들이었다. 레닐이 살아 있던 시절에 그들의 생활은 그다지 풍요롭지 못했다.
백성이 우선이란 레닐의 사고방식에 피해를 보는 것은 기사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럭저럭 참고 지내었다.
그것이 옳다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닐이 죽고, 알게 모르게 정권을 일곱 장로들이 장악했을 때 그 생활은 너무나 편하였다.
오히려 그것이 힘들게 기사 시험을 합격한 대가라고 생각할 만큼.
그렇기에 애써, 주군의 아들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떨쳐 버리고 지내었다.
그대로 흘러가는 대로 둔다면 자신들을 포함하여 그것이 레이얀에게도 좋다고 믿어 왔다.
실제로는 장로들이 장악한 기사들과 부딪히는 게 싫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다른 기사들도 내버려 두는 일을 자신이 나설 필요는 없다고 여겨 왔다.
그렇게 편한 생활을 하던 어느 날 믿기지 않는 소식이 전해졌다.
황제의 승인은 떨어지지 않았지만, 확실히 영주나 다름이 없는 레이얀이 일곱 장로에게 반역자란 낙인을 찍고 사형과 종신형을 내렸다는 터무니없는 소식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들리는 소문과 소식들로는 레이얀이 그런 무력을 가질 능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이내 다른 소문이 들려왔다.
레이얀이 의문의 고수를 고용하여 장로들을 제거했다는 말이었다.
그 소문을 듣고 가장 크게 충격을 먹은 것은 제라드였다.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주, 주군의 자식이 가장 필요로 한 순간에…… 있어 주지 못했다. 나, 나는…… 대체…….”
당장 사죄와 더불어 충성을 맹세하러 가겠다는 제라드를 국경을 맡는 기사단장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자리를 비울 수는 없는 노릇이란 말로 간신히 말렸다.
그렇게 하여 같이 여정 길에 나서게 된 것이다.
지금 테스의 말은 제라드에게 상당히 민감한 문제였다.
한때 그도 그것이 옳다고 믿고 편안한 생활에 잠시 눈을 팔았었기 때문이다.
말문이 막힌 제라드를 보며 테스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죄지은 표정하지 말라고, 어린 영주도 우릴 못 믿었기에 고수를 고용한 거잖아!”
이들은 최근에 있었던 일을 들을 소식통이 없었다.
실제로 정보 길드를 찾을 여력도 없었고, 제라드가 성화를 부리는 통에 마을 한두 개는 건너뛰고 빠르게 이동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주 전에 일어난 자작가와의 전투 중에서, 의문의 고수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것이 레이얀임을 모르고 있었다.
“우, 우리가 먼저…….”
제라드의 말을 끊고 테스가 말했다.
“우린 지금 프리 나이트라고! 우리의 맹세에는 ‘주군’만이었지 ‘주군의 가족’이 아니었다고!”
“…….”
제라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난 네놈 여정에 따라나선 거야. 어린 영주 놈한테 맹세를 하려는 게 아니라! 일곱 장로 때와 마찬가지로 편한 생활을 제공해 줄 수 있는지를 확인하려고 말이야!”
“…….”
중년인과 다른 기사 한 명, 그리고 유일한 여성인 시렌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테스를 쳐다보았다.
그들 또한 테스와 비슷한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진짜 기사의 생활을 맛본 이상, 더 나은 곳으로 가고 싶은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대대로 이어져 오는 가문―수호기사가 아닌 이상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확인할 생각이지?”
제라드가 딱딱한 어조로 물었다.
“영주로서 자질이 있는지를 봐야겠지.”
“그거라면 이미 의문의 고수를…….”
“시끄러! 소문이 언제나 진실되진 않아! 그 때문에 확인하러 나선 것이고. 덤으로 충성을 맹세할지 말지 정하려는 거란 말이야!”
그 말을 끝으로 테스는 방을 나갔다.
테스가 나간 문을 빤히 보던 제라드가 고개를 슬쩍 돌렸다.
“칸 아저씨는 테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시죠?”
제라드의 질문을 받은 중년인이 침대에서 일어서더니 말했다.
“제라드, 기사라도 때로는 현실에 수긍할 줄 알아야 한다네. 그게 살아가는 방법이라네.”
지독하게 힘의 원리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불공평하게 살아온 칸이 한탄스럽게 말했다.
칸이 어설픈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팩 돌린 제라드가 다른 기사들에게 물었다.
“시렌, 헤르만 형은?”
“……제라드, 칸 아저씨 말이 맞는 것 같아.”
일행 중에 2번째로 나이가 많은 30대의 헤르만이 답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제라드가 방을 나섰다. 시렌의 답마저 헤르만과 같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방을 나서는 제라드를 아무도 잡을 생각하지 않았다.
제라드가 얼마나 기사도를 따르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여관을 완전히 나온 제라드는 철제 투구를 눌러쓰고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를 내며 영지의 중심으로 뛰어갔다.
자신이 지금껏 지켜 온 이상과 주관 그 모든 것이 부정당한 지금 직접 확인할 방법이라고는 영주와 만나는 것이었다.
어린 영주인 레이얀은 분명, 자신이 반해 버렸던 레닐과 같은 이상을 지녔을 것이다.
그것을 직접 듣고자 쉬지도 않고 곧장 영주 성으로 향한 것이다.
그렇게 대륙의 판도를 바꿀 인재들이 서서히 천재의 곁으로 모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