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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마스터 1(3화)
2. Another Life(2)


“아무리 동생이 왔다지만 너무 오바하는 거 아니냐?”
하지만 제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 안 했다가 걸리면 쪽박이야, 인마. 저 녀석이 총합 13단의 무술 고수야. 웬만한 무림 고수가 와도 찜 쪄 먹을 녀석이라고. 저 녀석은 여자가 아니야, 아니 여자가 뭐냐. 인간도 아니야. 저 녀석은 8년이 아니라 평생을 유학 생활을 했어야 했어.”
“어휴, 네놈의 과민반응은 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네 동생 녀석도 나이가 나이인 만큼 웬만한 것들은 다 알고 있을 거 아냐. 그런데도 네가 이런 것을 보는 짓거리를 대놓고 방해할 리가 없잖냐.”
“네가 뭘 몰라서 그래. 내 여동생 녀석은…… 에휴. 아니다.”
현성은 한심하단 표정으로 제헌을 쳐다보았고, 제헌은 발끈해서 뭐라고 재차 소리치려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침대로 갔다. 그러고는 침대 아래쪽에 손을 뻗어…… CD 하나를 집어 들었다.
“크흐흐흐……. 내가 정말 힘들게 구한 동영상이다.”
“호오라, 어떤 동영상인지 구경이나 한번 해 보자.”
음흉한 웃음을 짓는 둘.
CD에는 윤리와 사상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 윤리와 사상에 대한 동영상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들어 있는가?
뻔한 것이 아닌가.
“흐흐흐…….”
제헌은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 CD를 DVD 기계에 집어넣었다.
아니, 집어넣으려고 했다.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엄청난 굉음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쾅!
문이 굉음을 내면서 열렸다.
제헌이 들어오면서 잠근 것이 분명함에도!
거기다가…… 문에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재질이 분명…… 금속인데.
“억!”
“뭐야?!”
제헌과 현성은 기겁을 하면서 문 쪽을 쳐다보았다.
“야 이 오빠 새끼야, 초판부터 야동질이냐?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그곳에는 여자 한 명이 서 있었다.
오빠를 닮아서인지 키도 크고, 몸도 늘씬하고, 얼굴도 예쁜 여자가.
‘뭐 이딴 더러운 집안이 다 있어?!’
현성은 그 둘을 번갈아 보면서 속으로 욕했다.
오빠는 키 크고 잘생기고.
동생은 키 크고 예쁘고 늘씬하고.
이건…… 존재해선 안 되는 집안이다.
하지만 현성이 속으로 욕을 하든 말든 매우 사이좋은 남매는 몇 초간 노려보기도 하고, 으르렁거리기도 했다.
그리고…… 제헌이 자신감 가득 찬 얼굴로 동생에게 소리쳤다.
“증, 증거 있어?!”
그러자 동생은 피식 웃으면서 제헌에게 소리쳤다.
“증거? 있지! 네놈이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그 CD가 증거다!”
제헌은 동생의 말을 듣더니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소설 쓰고 있네. 이 개념 나간 여편네가! 이봐, 김민! 후달리면 뒤지시든가.”
“뭐? 후달려? 하하하하!”
제헌의 말에 그의 동생, 민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더니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웃음을 딱 그치곤 험상궂은 표정으로 제헌이 CD를 들고 있는 팔을 턱 붙잡더니 말했다.
“오냐. 네가 들고 있는 CD가 야동이라는 것에 내 손모가지랑 내 전 재산을 걸겠다. 넌 뭐 걸래?”
제헌은 민의 반응에 약간 당황하다가 자신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소리쳤다.
“나는 이 CD가 야동이 아니라 윤리와 사상에 관련된 동영상이라는 것에 내 손모가지랑 내 전 재산을 건다!”
제헌의 발언에 민은 피식 웃더니 그의 손에서 CD를 빼앗아서 DVD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벽걸이 TV의 전원을 켜고 리모컨으로 ‘재생’을 눌렀다.
[……안녕하십니까. 윤리와 사상의 김윤리입니다. 오늘은 전통 윤리를…….]
“어, 어라?”
하지만 자신의 예상과는 다르게 정말로 윤리와 사상에 대해서 나오자 민은 당황한 얼굴로 DVD로 달려가서 CD를 꺼내 들었다.
‘윤리와 사상.’
네임펜으로 잘 써져 있는 그 글자를 보고는 멋쩍은 얼굴로 어색한 웃음을 흘리면서 제헌에게 말했다.
“진……짜 윤리와 사상이네. 아하하…….”
그러나 제헌의 날카로운 눈빛은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그…… 내가 착각했나 봐. 하하하…….”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민.
하지만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으로 눈앞의 여동생을 쏘아보고 있는 제헌의 얼굴에 서린 분노는 절대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 친구랑 열심히 공부해. 그럼 이만!”
쾅!
결국 민은 GG 선언을 하고 도주를 택했다.
그리고…… 민이 나가자마자 음흉한 미소를 짓는 제헌.
“바보 같은 녀석…….”
제헌은 다시 TV를 켜고, DVD에 CD를 집어넣었다.
“빨리 감기를 하지 않는 한 이것의 진면모는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크흐흐흐…….”
엄청난 잔머리!
제헌은 동생에게 걸릴 것을 대비해서 앞부분 1시간 30분은 진짜 윤리와 사상 강의로 채워 넣고, 뒷부분은 진정한 내용물로 채워 놓은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야동을 숨기기 위해서 애쓰는 아이들이 본받을 자세가 아닌가!
1시간 30분을 희생해서라도 야동을 보겠다는 의지.
이 얼마나 숭고한가!
웬만한 사람이라면 절대 잡아낼 수 없는 계략.
물론…… 웬만한 사람이라면.
쾅!
다시 한 번 굉음을 내면서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민이 있었다.
“빨. 리. 감. 기?”
진정한 악마의 미소.
“S, Sorry…… Baby.”
제헌, Game Over.

***

“어휴, 너는 완전범죄는 못할 놈이구나.”
현성은 훌쩍훌쩍 울면서 얼굴에 삶은 계란을 굴리고 있는 제헌을 보면서 말했다.
‘쯧쯧…….’
현성은 속으로 혀를 차면서 제헌의 어리석음에 찬사를 보냈다.
CD가 걸릴 것을 알고 있던 녀석이 여동생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문에 귀를 대고 엿듣고 있을 가능성은 왜 계산에 넣지 않았단 말인가?
정말…… 불쌍한 놈이다.
“TV나 보자…….”
현성은 한숨을 내쉬면서 리모컨을 들고 TV 전원을 켰다.
[안녕하십니까. 환상세계 탐험기의 MC 김영환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환상세계 탐험기의 MC 이네아예요∼ 오늘도 재밌게 여행해 봐요!]
TV를 켜자마자 들리는 소리.
그 소리에 삶은 계란을 맞은 부분에 굴리고 있던 제헌이 동작을 딱 멈추고 TV를 쳐다보더니, 발광하듯이 소리쳤다.
“와우! 이네아 누님!”
상상을 초월하는 반응에 현성은 순간 깜짝 놀랐다가, 제헌에 대한 것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을 했다.
제헌은 가상현실 게임에 미쳐 있는 녀석이었다.
쉽게 표현하자면…… 게임 중독자.
3년 전에 나온 세계 최초 가상현실 게임 어나더 라이프(Another Life)에 미쳐서 살고 있으며, 지금 상당히 높은 레벨의 랭커라고 한다.
뭐 게임 돈을 현실 돈으로 바꿔서 용돈으로 사용한다느니 자기가 무슨 퀘스트를 했다느니, 자기가 게임 상에서 애인이 생겼다느니…….
그렇게 매일매일 학교에서 현성과 다른 애들한테 자랑을 하던 놈이었다.
그런 녀석이니만큼 저런 반응을 보일 법도 했다.
‘그래도 저건…… 좋아하는 수준이 아니라 발광하는 수준인데…….’
현성은 제헌을 보면서 약간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완벽한 빠돌이의 모습.
이네아가 나올 때마다 미친 듯이 발광하고, 이네아한테 김영환이 농담이라도 날리면 미칠 듯이 욕을 내뱉는다. 이네아가 방송용 애교를 날리기라도 하면 쓰러져서 죽을 것 같은 모습을 보인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내가 인터넷에 이네아 욕하는 글을 올렸더니 어떤 놈이 나한테 미친 듯이 욕했었는데…….’
현성은 발광하는 제헌을 보고는 며칠 전의 일이 떠올랐다.
어나더 라이프의 공식 홈페이지는 현성도 자주 가는 편이었다.
또 다른 현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완벽한 가상현실을 구현하고 있는 어나더 라이프 같은 경우에는 볼만한 것들이 상당히 많았다. 돈이 부족해서 게임 접속기는 살 수 없는 몸이었지만 그래도 구경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한참을 둘러보던 중, BEST 동영상 게시판에 ‘오늘자 환상 세계 여행기’라는 글이 올라왔고, 현성은 그 글에다가 ‘BEST 동영상 게시판에 자리만 차지하는 좀벌레 같은 동영상. 당장 지우지 않으면 삼대가 저주를 받을 것이고, 글쓴이는 지나가던 차의 방탄유리에 튕겨져 나온 총알이 안 좋은 곳에 맞아서 평생 교미를 할 수 없게 되리라.’라는 평을 올렸다.
그리고 그 직후, ‘Inea♡’라는 이상한 아이디를 쓰는 놈이 쪽지로 욕을 보냈다.
그 내용인즉 이랬다.

이 잉여새끼는 보아라.
감히 우리 이네아 누님을 욕하다니.
네놈 같은 무개념은 처음 본다.
당장 지워라.
그렇지 않으면 응징을 당할 것이다.

현성은 그 쪽지를 보고는 열 받아서 3~4시간 동안 ‘Inea♡’라는 놈과 키보드 배틀을 붙었다.
결국 현성이 승리했으나, 이상하게 찝찝한 기분이 남아 있는 키보드 배틀이었는데…….
현성은 지나가는 말투로 제헌에게 말했다.
“야, 근데 공식 홈페이지에서 너 아이디 뭐냐? 너한테 쪽지를 보내려고 했는데 니 아이디를 알아야 말이지.”
그러자 한참을 발광하던 제헌은 응? 하고 현성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내 아이디는 이네아 하트다. 아, 앞에 이네아는 영어고 뒤에 거는 도형. 스펠링은 I, N, E, A. 맨 앞만 대문자고 나머지는 소문자……인데. 너 표정이 왜 그러냐.”
생사대적이 바로 내 옆에 있었구나!
현성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제헌에게 말했다.
“아냐, 아무것도…….”
제헌은 별 싱거운 녀석 다 보겠다는 듯이 다시 TV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등에 악마의 그림자가 어리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이놈을 어떻게 요리해야 하나?’
현성은 TV에 집중하고 있는 제헌을 보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쪽지 테러?
스틸질?
음모?
모략?
이간질?
온갖 사악한 생각이 현성의 머릿속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중상모략, 음모, 협잡, 귀계, 이간질…….
온갖 나쁜 것들을 머릿속에 담고 있는 현성!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현성의 귀에, MC 김영환의 소리가 귀에 들렸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검은 까마귀 길드와 Tehra 길드의 길드전입니다!]
온갖 사악한 생각을 다 하던 현성은 그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은 까마귀 길드.
평소 BEST 동영상 게시판에 엄청나게 올라오는 길드.
비매너, 사기, 사냥터 독점 등…….
열 손가락으로는 도저히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비매너 짓을 하고 있는 길드였다.
그 길드의 이름을 들으니 저절로 고개가 돌아간 것이다.
TV에서는 검은 까마귀 길드의 길드복장인 검은색 바탕에 하얀 까마귀 문양의 옷들을 입은 사람들이 잔뜩 나왔다. 그들은 언덕 위에서 멋진 폼을 잡으면서 아래를 보고 있었다.
그들이 보고 있는 아래에는 초록색 바탕에 T라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는 옷들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그렇게 그 둘 사이에서는 얼마 동안 정적이 흐르고, 그 정적은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다.
[우리에게 이빨을 들이미는 더러운 저놈들을 산 채로 뜯어먹자!]
검은 까마귀 길드 측에서 누군가가 함성을 내지름과 함께 그 침묵은 깨졌고, 검은 까마귀 길드의 근접 공격을 하는 사람들은 전부 함성을 내지르면서 Tehra 길드를 향해 뛰어갔다. 뒤에서는 성직자들이 회복과 버프를, 마법사들은 Tehra 길드를 향해 가장 공격력이 높은 불 속성의 마법 폭격을 날리고 있었다.
[세크리파이스!]
[세크리파이스!]
[세크리파이스!]
그렇게 일방적으로 Tehra 길드가 밀리는 것 같은 그때, 검은 까마귀 길드의 성직자와 마법사가 몰려 있는 곳에 Tehra 길드의 성직자 몇 명이 가서 자살 테러를 했고, 그 자살 테러 때문에 대부분의 마법사와 성직자가 전멸하게 되자 전황은 다시 바뀌었다.
결국 마지막 남은 검은 까마귀 길드원 한 명까지 전부 죽여 버림으로써 Tehra 길드의 완승이 되었고, Tehra 길드원들은 승리의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 하고 산이 무너질 것만 같은 큰 함성.
그렇게 모두가 고조되어 있을 때 길드장으로 보이는 사람 한 명이 그들에게 소리쳤다.
[Tehra 길드 만세!]
길드원들은 길드장의 말을 듣고는 고조된 얼굴로 크게 소리쳤다.
[Tehra 길드 만세!]
그렇게 Tehra 길드의 완승으로 영상은 끝이 났다.
그리고…….
“저, 저, 저! 저 개새끼!”
현성은 영상을 보면서 미친 듯이 욕을 내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