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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마스터 1(4화)
2. Another Life(3)
“억…….”
제헌 역시 영상을 보고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왠지 익숙한 얼굴.
현성에게도.
제헌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찾았다…….”
현성의 얼굴이 미소로 물들었다.
***
“뭐? 남는 캡슐 팔라고?”
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헌은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그동안 쓰고 있던 가상현실 게임 접속기를 400만 원짜리 구 보급형 모델에서 800만 원짜리 신 보급형 모델로 바꿨다.
그렇다면 바꾼 것은 어떻게 되는가?
그 답은 간단했다.
버리거나 다른 사람이 쓰거나.
결론은 하나가 남는다는 것이다.
현성은 그것을 떠올리고는 제헌에게 흥정을 걸었고, 제헌은 일그러진 얼굴로 현성에게 소리쳤다.
“야! 그거 내 동생이 사용하기로 한 건데……!”
제헌은 간신히 ‘팔면 난 죽을 거야.’라는 뒤의 말을 삼키고 현성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현성은 씨익 웃으면서 제헌의 두 어깨에 턱 하고 손을 올려놓더니 씨익 웃었다.
“Inea♡라는 아이디 가진 녀석이 나한테 시비를 걸었었더라고.”
흠칫!
“친구야. 내 아이디는 BlackStart였단다.”
흠칫!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냐? 나에게 공격이라도 하겠다고?”
“아니, 내가 그럴 리가 없잖냐. 나같이 착한 사람이…… 흐흐흐흐흐.”
제헌은 큰 키에 걸맞지 않게 떨면서 말을 했고, 현성은 그런 제헌을 보면서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아니,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고. 절대 뭐 협박은 아니고…….”
……딴청을 피우면서 말하고는, 지그시 제헌의 눈을 계속 쳐다보았다.
그렇게 있기를 1분.
제헌은 결국 포기하고 소리쳤다.
“오냐, 넘겨주마. 동생한테는 내가 잘 말하면 되겠지. 어차피 요즘 용돈도 궁했고. 한 300만 원이면 되냐?”
하지만 현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살인적인 캡슐의 가격.
최고 비싼 것은 1억이 넘었고, 최고로 싼 것도 400만 원이나 했다.
물론 현성에게는 부모님의 유산이 있기는 했지만 마음대로 써선 안 됐다.
현성은 중1때 즈음에 부모님을 잃었다.
그 후에는 동생하고 의지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세상은 어린 아이 두 명이서 살아가기는 너무 유혹이 많았다.
옷이든, 게임이든, 음식이든…….
하지만 현성은 그 유혹들을 뿌리치기 위해서 철저하게 돈을 관리해 왔다.
현성과 자신의 여동생이 최소한 30대까지, 즉 경제적인 능력이 생기기 전까지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계산했고, 그 계산 범위 내에서만 돈을 사용해 왔다.
생활비, 전기세, 세금, 수도세…….
세상에는 유희가 아니더라도 돈을 쓸 곳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
대학등록금!
분기마다 드는 돈이 2, 3백만 원이나 하는 대학등록금!
그것도 두 명의 몫!
즉 분기마다 4, 6백만 원이 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산을 마음대로 써서는 안 됐다.
부모님이 재벌 1세, 2세라서 엄청난 재산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돈은 한정되어 있었다. 한 명의 대학등록금이라고 해도 천만, 이천만 원이 들 텐데 두 명의 대학등록금이라면?
기둥뿌리 하나가 뽑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절대로 허튼 곳에 쓰면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허튼 곳에 돈을 쓰지 않고 살아온 현성의 개인돈은 237만 원.
두 명의 대학등록금으로 쓰일 돈과 향후 10년간 쓸 생활비를 제외하고 남는 돈을 반으로 나눈 돈이다.
나머지 반으로 나눈 돈은 혜은이 가졌고, 혜은은 그 돈을 가지고 이것저것 군것질을 하기도 하고 옷이라든가 장신구들을 조금씩 사면서 행복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현성은 입을 거 안 입고, 먹을 거 안 입고 그 돈을 꽉 쥔 채 놓지 않았다. 돈을 모아서 무엇 무엇을 할 것이다∼라는 계획조차 없으면서도 돈을 꽉 쥔 채 쓰지 않았다. 그렇게 지독한 구두쇠 정신을 발휘하며 모은 237만 원.
현성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은 오로지 237만 원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돈으로는 가상현실 게임 접속기 중 제일 싼 것조차 살 수 없었다. 163만 원이 더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성은 가상현실 게임 하는 것을 눈물을 머금으며 포기를 했고, 그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동영상들이라든가 큰 이슈들만을 보면서 만족해 왔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방금 떠오른 제헌의 말.
‘야! 나 새로운 캡슐 샀어!’
졸업식 때 그렇게 좋아라, 좋아라 외치던 그 말!
새로운 캡슐이 있다면, 쓰던 캡슐이 있다.
사람은 새것을 사 놓고 옛것을 쓸 만큼 검소한 생물이 아니다.
그 말인즉슨…… 남는 캡슐을 싸게 사면 되는 것.
그것이 성공만 한다면 월 10만 원의 이용료.
최소 400만 원의 가상현실 게임 접속기.
과거 돈이 없어서 포기했던 가상현실 게임.
하지만 이제는…… 할 수 있는 것이다.
‘분명…… 게임으로도 돈을 벌 수 있다고 했지?’
현성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씨익 웃었다.
온라인 게임들은 공공연하게 현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100:1, 10:1, 90:1 등 비율이 정해지지 않은 채로 게임머니를 팔고 아이템을 팔았다.
하지만 그것은 법적으로는 인정되지 않는 거래였다.
하지만 어나더 라이프는 달랐다.
화폐단위로 브론즈, 실버, 골드가 있었고, 100브론즈는 1실버, 100실버는 1골드와 똑같았다.
그리고…… 어나더 라이프 회사 측에서는 10골드를 한국 돈 1만 원과 동등하게 취급을 해 주었다.
즉, 1골드를 벌면 1천 원을 버는 것이요, 1실버를 벌면 10원을 버는 것이요, 1브론즈를 벌면 10분의 1원을 버는 것이었다.
법적으로 인정된 현거래!
즉, 게임으로도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레벨이 낮을 때 본전을 뽑는 것은 매우 힘들다.
하지만 레벨이 높아지면 꽤 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레벨이 꽤 높아지는 때가 석 달밖에 안 걸릴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300만 원을 제헌에게 주고 나면 현성의 개인 자금이 -63만 원이 된다. 즉, 대학등록금으로 분배해 두었던 돈에 손을 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개인 자금으로 게임을 하고 싶으면 더 깎아야 된다는 것.
“이 독한 새끼, 싼값으로 준다는데도 더 깎는 거냐?”
제헌은 그런 현성의 생각을 꿰뚫어 보고는 질린 얼굴로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현성.
제헌은 어이없는 얼굴로 현성을 쳐다보며 말했다.
“가상현실에 맨 처음 접속한 사람에게는 3개월 동안 무료인 거 모르냐?”
“엉?”
현성은 제헌의 말을 듣고는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에휴…….”
현성은 얼빠진 곳이 있었다.
사악한 짓을 할 때는 무서우리만큼 치밀한 주제에 이상하게 소소한 일 같은 것을 겪는 경우에는 애가 멍청하다.
“그러면 이렇게 하지. 일단 내가 이것을 150만 원에 너에게 넘기겠어. 단, 150만 원은 차후 지급으로 하지. 어때? 대신 무이자로 해 주지.”
“콜.”
결국 제헌은 한숨을 내쉬면서 대금 일부를 나중에 지급하는 것으로 조건을 수정했고, 현성은 만족한 듯이 웃으면서 승낙했다.
“3년이니까…… 아직 설치하는 그분들 쓸 수 있겠지…….”
제헌은 조용히 중얼거리고는 현성의 어깨를 탁탁 두드리면서 말했다.
“짧으면 1시간, 길면 4시간 후에 너네 집에 이거 설치하러 어나더 라이프 직원들이 찾아갈 거다.”
현성은 제헌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헌은 현성의 해맑은 미소를 보면서 궁금한 듯 물었다.
“야, 근데 너 그놈들 족치려고 게임하는 거냐?”
현성은 제헌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예전부터 하고 싶었거든.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놈들을 족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악마 새끼.”
3. 시작(1)
찰칵.
“다녀왔다―.”
달그락…… 달그락…….
“저기…… 혜은아? 왜 아무 말도 없니?”
현성은 숟가락을 분주하게 움직이는 여자, 자신의 여동생인 박혜은을 향해서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닥쳐.”
현성의 말에 혜은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조용히 밥을 먹다가, 짜증나는 듯 짧게 한마디를 하고는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현성은 그런 여동생의 반응에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무슨 여자애가 그런 말투를 쓰냐. 거기다가 오빠가 돌아왔는데도 아무 답도 안 하고…… 왜 그러니?”
쾅!
현성이 그렇게 말하자, 혜은은 짜증이 솟구치는지 식탁을 박차고 일어나 현성을 한번 째려보고는 가방을 챙겨 빠르게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에휴…… 저 녀석…….”
현성은 그런 혜은의 반응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방금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밖으로 나간 여자아이의 이름은 박혜은.
박현성의 동생이자, 그보다는 두 살 어린 18살, 고2 학생. 현재 과학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수재들만 모이는 그 학교에서도 3등급 안에 드는 수재! 거기다가 집안도 부유하고, 얼굴도 예쁘다. 거기다가 상냥하고, 항상 사람들에게 환한 미소를 보여 주기 때문에 인기도 많다.
‘저 녀석 대체 왜 저러는 건지…… 아무리 내가 수능을 못 봤다고 해도 원…….’
현성은 우울한 얼굴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수능 등급 35455342!
절대 in서울을 할 수 없는 점수.
대학을 가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직업을 얻을 의도가 아닌 사람에게는 재수 이외에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점수였다. 내신점수라도 좋았으면 수시를 썼으련만, 1, 2학년 평균 4.5, 3학년 평균 3.5. 이 등급으로는 수시는 무리였다.
자기 추천 전형이라는 것도 있기는 했으나, 현성에게는 출판이라든가 방송이라든가 하는 특별한 경험이 없으니 쓸 수도 없었으며, 자기 추천 전형 이외에는 뭐 농어촌이니 리더십이니…… 현성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들만 있었기 때문에 결국 눈물을 머금고 수능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수능에 실패했다.
“에휴…….”
현성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열심히 공부했다. 현 시대에서는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사람 취급을 하지 않기 때문에, 현성은 나름 열심히 공부했으나 결국 수능에 실패하고 집에 돌아오고 말았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자 수능에 실패한 현성을 반겨 주는 것은 위로와 격려라기보다는 동정심이 가득 담겨 있는 얼굴.
무슨…… 인생 실패자를 보는 듯한 얼굴.
그리고 그 이후로 혜은의 태도는 완전히 변했다. 그녀가 데리고 온 친구에게 현성이 인사라도 하려고 하면 재빨리 친구를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지를 않나…… 그로서는 대체 혜은이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보았던, 오타쿠라는 존재에 대한 가족의 반응과 완전 별다를 것이 없었다. 현성은 수능에 한 번 실패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동생에게서 뭔가…… 이상한 존재로 취급받는 것이다.
‘에휴…… 나를 실패자 취급하는 건가…….’
현성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현성의 부모님.
그들은 좋은 대학을 나와서 성공한,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아서 성공하신 분들이었다. 그 두 사람은 실패자는 노력하지 않은 쓰레기라고, 그런 놈들은 사람 취급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서 혜은을 교육시켰다.
소설 읽기를 좋아하고, 전설&민담 같은 것을 미친 듯이 보면서 환상을 쫓아다니던 현성은 이미 부모님에게 실패자로 인식되어 있었고, 그 때문인지 부모님의 관심은 전부 혜은에게로 돌아갔었다.
그 덕분에 현성은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님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한 채 동생에게 눌려서 살아왔다.
그리고 현성은 부모님의 태도에 대한 반발심으로 공부를 더더욱 멀리했고, 소설들만 미친 듯이 읽어 왔다.
소설에 열중하는 만큼 성적은 쭈욱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고, 현성의 중학교 때의 성적은 평균 30점까지 추락했었으며, 그것을 본 부모님은 현성을 실패자라고 완전히 낙인찍고는 혜은에게만 기대를 걸게 되었다. 그렇게 완전히 부모님의 눈 밖에 나 관심조차 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지옥 같은 나날이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