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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마스터 1(5화)
3. 시작(2)


그리고 현성이 중1이 되던 해, 부모님은 어이없게도 교통사고로 사망해 버리고 말았다.
부모님의 장례식장에서 혜은은 펑펑 울었다. 마치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세상이 멸망해 버린 것처럼.
동생과는 다르게 현성의 눈에서는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냥 어이가 없었다.
수많은 콤플렉스를 가지게 만든 원인.
아들을 완전히 꾹꾹 눌러서 실패자가 되는 길을 걷게 만들려고 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너무도 어이없게, 상상도 못한 방법으로 죽어 버린 것이다. 그들이 이루어 두었던 명예는 그들의 죽음으로써 사라져 버렸고, 그들이 사회에서 성공했다는 사실 역시 화장된 시체가 뿌려질 때 같이 훨훨 날아갔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재산만이 동생과 현성에게 도움이 되었을 뿐이다. 유산이라는 이름으로 남게 된 재산. 단지 부모라는 존재가 현성과 혜은에게 남긴 것은 재산뿐이었다.
혜은은 재산밖에 남기지 않은 부모의 죽음에 슬퍼했다.
하지만 현성은 재산을 남긴 부모에게 감사를 했다.
집도 남아 있었고, 돈도 남아 있었다. 적어도 현성과 혜은이 대학 졸업 때까지 생활해도 남을 돈이 있었다. 그렇기에 현성은 부모님의 죽음을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현성에게 부모님이란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지만, 혜은은 달랐다. 혜은은 현성과는 달리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기에 울고 또 울면서 부모님의 죽음을 슬퍼했다. 며칠 동안을 식음을 전폐했고, 결국 쓰러지기 직전의 상황까지 갔었다.
현성은 그런 혜은을 위로하면서 부모님은 네가 성공하는 것을 바란다고, 부모님은 네가 공부로써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고 다독이면서 동생의 슬픔을 덜어 주었다. 그 이후부터 여동생과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왔었다.
현성의 설득에 혜은은 엄청나게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성도 혜은의 모습에 자극 받아 조금씩 학교 수업에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부모님의 죽음 이후에 현성의 성적이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현성과 혜은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다음 중3 1학기 기말고사 이후부터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한 성적은 고 3말쯤 되자 3.5등급 정도 되었다. 물론…… 그 점수는 결코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없는 점수였지만 말이다.
결국 여동생은 실패를 한 현성을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면서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 취급은 날이 갈수록 심해질 것이며, 수능에서 연달아 재수를 하게 된다면 이 취급은 더더욱 심해질 것이다. 부담스럽다라는 평가가 싫어한다라는 감정으로 바뀌고, 그 감정이 다시 혐오감으로 바뀌게 될 것이며, 그렇게 서서히 혜은의 머릿속에 현성이라는 존재는 오빠에서 쓰레기로 평가가 될 것이다.
“빌어먹을…….”
현성은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웬만하면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부모라는 작자들의 악의(惡意)와 그 악의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살아온 혜은을 생각해 보면 거의 확실했다.
‘동생을 위로할 때 부모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니었어. 힘들어 할지라도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만들었어야 했어…….’
현성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과거, 혜은이 부모님에게 교육을 받으며 거의 매일매일 들어 왔던 말.
‘실패자는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야.’
‘실패자는 쓰레기들이지. 사람 취급할 필요도 없어. 세상은 우리 성공한 이들만 있으면 되는 거야.’
거의 주문과도 같은 그 말은 혜은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부모님의 죽음 이후 매일 밤을 울면서 지냈던 혜은에게 부모님이 네가 성공하기를 바란다고 말하면 안 됐었다. 다른 말들이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현성이 그때 말을 잘못했기 때문에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다 내 탓이지……. 다 내 탓이야…….’
절대 부모님을 들먹이면서 상처에서 벗어나도록 말하면 안 됐다.
그렇게 말하지만 않았으면 동생이 저런 태도를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후회는 해 봤자 소용이 없는 법.
현성은 푹푹 한숨을 쉬면서 식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김치통은 냉장고에 넣고 냄비는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고 약한 불로 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숟가락과 젓가락은 세제를 묻히고는 물로 쓱 닦고는 젓가락과 숟가락을 놓는 통에다가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그리고 컵 역시 세제를 묻히고는 세제가 완전히 사라지도록 물로 헹군 다음에 엎어 놓았다.
“후우…… 끝났나…….”
현성은 땀을 닦으면서 문자가 오지 않았나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 함을 열어 보았다. 하지만 온 메시지는 0개.
현성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중, 고등학교 때 친구 총 12명.
변치 않는 우정을 평생 간직하자고 맹세하면서 항상 같이 다녔던 사이였다. 다른 학교에 배정되었어도,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갔어도 영원히 친구라면서 우정을 나눈 사이였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서로 짠 듯이 연락을 뚝 끊어 버렸다. 전화를 해도 바쁘다고 하고, 문자를 하면 그냥 씹어 버린다.
12명 중 남은 친구는 단 한 명.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 녀석 단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놈의 정이란 게 뭔지, 친구들이 다 자신을 쌩깠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문자가 오지 않았나 기대를 하면서 메시지함을 확인하고, 실망하곤 했다.
제헌에게는 ‘피의 복수를 할 것이다’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친구였던 녀석들인데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은 당연한 일.
현성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중얼거렸다.
“뭐, 그럼 이제 어느 정도 아침 일은 끝났으니까 컴퓨터나 해 보실까.”
기분전환.
아까 술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친구들을 떠올리고, 지금 또 떠올리고…….
그리고 그때마다 더러운 기분에 휩싸이고…….
“기분전환이나 하자…….”
현성은 거실에 있는 컴퓨터 책상 앞에 앉고는 본체의 전원을 켰다.
그러자 3초 만에 32인치 LCD 모니터에 현성이 설정해 놓은 우주 배경의 바탕화면이 떠올랐다.
현성은 인터넷을 더블클릭하고, Alt+C를 눌러서 즐겨찾기 목록을 열었다. 그리고 한참을 휠로 쭉 내리고는 가장 아래쪽에 있는 것을 클릭했다.

「Another Life ~ 또 다른 하나의 삶.」

어나더 라이프(Another Life)!
최초의 가상현실 게임.
한국에서 3년 전에 개발되어 서비스를 시작한 게임으로 현재 모든 나라에 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전 세계 게임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방대한 스케일과 함께 현실과 같은 모습, 거기다가 엄청난 자유도까지…… 그야말로 엄청난 게임인 것이다.
거기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NPC가 사람과 거의 다를 바가 없다는 것. 최첨단 기술로 무슨 기계장치를 이용해서 사람 뇌를 대용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게임이지만 게임이 아닌, 또 다른 삶인 것이다.
현성은 홈페이지가 모니터에 뜨자 거침없이 마우스를 움직여서 BEST 동영상을 클릭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보이는 글 목록들!
현성은 모니터를 보는 순간 우울함이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너무나도 심한 감정기복.
우울했다가 한순간에 기쁨을 느끼는 뇌.
누군가 본다면 정신과에 가 보라고 진지하게 충고할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현성은 자신이 약간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한동안 수능 때문에 동영상을 확인해 보지 못했지!’
현성은 씁쓸함을 느꼈던 아까와는 다르게 즐거움을 느끼면서 동영상 목록들을 일일이 확인해 보았다.

「Dark Knight VS Holy Wizard」
「드래곤 산맥 원정대 Part1」
「아이돌 가수 룬의 프레이아 왕국 콘서트!」
「혈화(血花) 길드와 Deathcountdown 길드의 대규모 길드전」

현성은 휠을 쭉 내리면서 목록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눈에 띌 만한 특별한 것이 없었기에 현성은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다 만날 올라오는 것과 다를 게 없잖아. 위험한 곳 원정 가서 사냥하고 돌아오는 거 아니면 랭커들 싸움, 대규모 길드전. 그리고 가수가 콘서트 하는 거나 배우가 가상현실 게임 안에서 영화나 드라마 찍는 건 너무 많이 봐서 질릴 정도고…….’
그렇게 계속 휠을 내리던 현성은 순간 특이한 제목의 글을 발견하고는 휠을 움직이는 것을 딱 멈추었다.
너무나도 특이한 제목.
BEST 동영상 게시판에서 몇 달 동안 서식하면서 거의 비슷비슷한 것들만 보아 왔던 현성의 눈을 단번에 정화시킬 수 있을 것만 같은 글.

「공부로 사람 잡는 머더러들 출현」

‘공부로 사람을 잡는다……?’
현성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 글을 더블클릭했다. 그리고 클릭과 동시에 동영상을 전체화면 모드로 전환해 재생시켰다.
[이봐, 흡혈거노(吸血巨老). 너는 이제 죽을 거야. 뭐 죽기 직전에 할 말이라도 있나?]
허리까지 닿는 긴 흰 머리.
목까지 닿는 긴 흰 수염.
로브를 입고 있는 한 노인을 수십 명이 에워싸고 있었다.
그들은 승리를 확신하는 얼굴이었고, 노인은 그들을 쓱 훑어보면서 수염을 연신 쓰다듬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수염을 쓰다듬던 노인은 리더로 보이는 은색 갑주를 입은 남자에게 말했다.
[나 하나 잡는 데 이렇게 많은 사람을 동원하다니, 자네도 참 대단한 사람일세.]
노인은 곧바로 품속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책의 두께는 성인 남성의 엄지손가락 두 개를 이어 놓은 크기였고, 검은 가죽으로 된 표지에는 금색으로 ‘한영사전’이라고 적혀 있었다.
노인이 한영사전을 집어 들자 은색 갑주를 입은 남자는 흠칫 놀라면서 소리쳤다.
[공격! 공격해!]
하지만 노인은 한영사전을 펼치고는 이미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God, Rest my soul!]
노인이 그 주문을 외우자 노인의 주위로 하얀 빛이 감돌았고, 그것을 본 은색 갑주를 입은 남자는 아차 하는 표정으로 이를 갈면서 소리쳤다.
[저건 방어 주문이다! 절대 공격하지 마라! 저 버프가 끝나기 전에 공격하면 공격한 사람이 저주를 받는다! 모두 뒤로 물러나서 앞으로 있을 공격에 대비하라!]
은색 갑주를 입은 남자가 그렇게 소리치자 수십 명의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뒷걸음질을 쳐서 후퇴했다. 그리고 노인은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는 씨익 웃으면서 계속 주문을 외웠다.
[They are guilty of the crime. But God said ‘Condemn the offense and not its perpetrator’. Nobody is to blame for this. Forgive us our trespasses.]
그리고 그 주문과 함께 밝은 빛은 노인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져 나가면서 원형의 구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원형의 구체 안에 갇힌 수십 명의 사람들의 몸에서는 하얀색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그것을 본 수십 명의 사람들은 ‘상태창’을 외쳐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고, 이후 얼굴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범위 안에 있는 존재 피아 구분 없이 마나 지속적 회복, 생명력 지속적으로 감소, 모든 상태이상 데미지&효과 무효, 마법방어력 50%로 감소, 빛에 대한 저항력 200%로 증가…… 흡혈거노, 젠장할……!]
은색 갑주를 입은 남자는 빠드득 이를 갈면서 노인의 주변을 맴돌았다. 처음에 외웠던 버프의 효과가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행동인 것 같았다.
하지만 노인은 그런 남자의 행동에 씨익 웃더니 한영사전을 탁 덮고는 손으로 원을 그리면서 말했다.
[7서클 화염계 마법 프로미넌스(Prominence) 캐스팅 시작.]
그 말과 함께 노인의 앞에 반투명한 하얀색 창이 떠올랐다.
그것을 본 은색 갑주를 입은 남자는 노인의 버프의 효과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경악하면서 소리쳤다.
[지금 무조건 죽여야 한다! 지금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
그러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남자의 외침을 듣고는 각자의 무기를 들고 노인을 향해 뛰어왔다.
[x를 가정하고…….]
노인은 자신에게 사람들이 뛰어오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반투명한 하얀 창에 손가락으로 공식을 쓰면서 계산공식을 입으로 중얼거렸다.
[(a²×x×y)×log438000 = r. (16x²…….]
수십 명의 사람들이 주문을 저지하기 위하여 미친 듯이 노인을 때렸다.
하지만 노인은 아무 느낌이 없는 듯 계속해서 주문만을 외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