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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마스터 1(7화)
3. 시작(4)
5. 이 직업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이 직업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쓰레기입니다.
초급 기준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마법은 마법사보다 약하고, 근접 공격은 검사나 전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합니다. 버프는 거의 있으나 마나 한데다가 신성마법은 성직자보다 안 좋습니다. 거기다가 스텟 역시 고루고루 찍을 수밖에 없습니다. 즉, 한마디로 말해서 어느 것 하나 센 게 없는 잡캐라는 소리죠.
물론 장점은 있습니다.
복습이라는 스킬이 있습니다.
최대 5개의 중복되지 않는 스킬들을 미리 저장해 놓는, 마법사의 메모라이즈 같은 스킬입니다. 캐스팅이 긴 마법 같은 것을 여기에 미리 집어넣어 두면 나중에 시동어만으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물론 1회에 한해서요. 그 점에서는 확실히 쓸 만하기는 합니다만,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아까 위에서 말했듯이 탐구자가 스킬을 쓰려면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그런데 모든 문제가 제한 시간이 있습니다!
문제 하나당 최소 3초, 최대 60초입니다.
이건 탐구자로 전직시켜 주는 담당자가 저에게 한 말이니 틀림없을 겁니다.
초급으로 한다고 할지라도 고위급 마법이나 고위급 신성마법, 고레벨 근접 스킬을 쓸 때는 우주를 보게 될 것이라 장담합니다.
검은학살자나 흡혈거노가 싸우는 것을 보고 이 글을 검색한 것이라면, 저는 진지하게 당신에게 말합니다.
포기하세요.
그 사람들은 고급이에요.
진짜 천재가 아니면 고급은 할 수가 없어요.
그 인간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그 인간들이 얼마 동안 문제를 푼 건지 아십니까?
검은학살자 같은 경우에는 웬만한 문제는 암산으로 20초 안에 다 풉니다.
하지만 그래도 6서클 마법 쓰는 데에 2분이 걸려요.
흡혈거노 같은 경우에는 문제를 읽으면서 바로바로 풀어 나가던데, 그것을 초로 세면 약 10~20초입니다. 그런데도 5분 이상 걸렸어요.
나눗셈을 배우신 분이라면 계산해 보시죠.
120 나누기 20.
300 나누기 20.
그 짓을 하면서까지 게임을 하고 싶습니까?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검은학살자와 흡혈거노처럼 되고 싶어서 난 탐구자가 될 거야, 도전해 볼래! 라고 소리치며 전직하시는 분을 제가 어떻게 말리겠습니까.
그런데 그 전에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공대에서나 겨우겨우 배울 수 있는 공식들을 이용한 문제를 하나당 20초 안에 푸실 수 있으십니까?
아니, 그 전에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공식들을 이용한 문제를 하나당 20초 안에 푸실…… 수는 있겠군요.
어쨌든 웬만하면 추천하고 싶지 않은 직업입니다.
천재라서 문제가 없다구요?
시베리아 벌판에서 귤이나 까세요.」
현성은 글을 다 읽고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공부 못하면 하지도 못하는 직업이라니…….’
그동안의 온라인 게임에서도, 오프라인 게임에서도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엄청난 직업. 공부를 잘해야 게임을 잘할 수 있는 기묘한 직업! 마법 계열은 최소 수학 10-가,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 사용할 수 있었고, 신성마법 같은 경우에는 영어로 문장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어야 사용할 수가 있다. 직업전용버프랑 물리공격 같은 경우에는 속독술이라든가 글에 대한 이해도가 어느 정도 받쳐 주지 않으면 아예 쓸 수조차 없다.
공부 못하는 직업이 한다면 그냥 스킬 하나 쓰지 못한 채 무기만 휘두르면서 살아야 하는 직업.
글쓴이의 말대로 그냥 깜깜한 직업이 아닌가! 막장! 더 갈 곳이 없는 개념이 없는 직업!
‘쓰레기 맞네. 이딴 걸 왜 만들었어?’
현성은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가기를 두 번 누르고는 다시 BEST 동영상 게시판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휠을 쭉 내려가면서 볼만한 것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대규모 학살극」
「최고의 절경」
「일본과 한국의 대규모 전쟁」
「레나와 세나의 어나더라이프 먹거리 탐험! 13번째 이야기」
그러나 볼만한 것은 없었다.
현성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시스템 종료 버튼을 누른 다음 기지개를 쭉 펴며 일어나 소파에 누웠다.
‘잠 좀 자야지…….’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계속해서 자세를 바꿔도 잠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있기를 몇 십 분.
현성은 결국 자는 것을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빌어먹을…… 짜증나네…….”
현성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바깥을 쳐다보았다.
너무나도 맑은 하늘.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하늘.
땅에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볕.
바람도 거의 불지 않는, 겨울치고는 상당히 따뜻한 날씨.
아까와는 전혀 다른 날씨였다.
아까는 먹구름이 껴 있기라도 했는데, 지금은…… 너무나도 맑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더욱 비참했다.
‘나는 이런 날이 제일 싫어…….’
현성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과거를 떠올려 보았다.
어두움으로 가득 찬 과거.
밝은 날에 좋은 일이란 없었다.
오로지 비 오는 날만이 현성의 휴식처였으며, 비 내리는 소리만이 현성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진정한 부모님이었다.
맑은 날에는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너무나도 밝은 얼굴로…….
혜은과 부모님도 돌아다닌다.
너무나도 밝은 얼굴로…….
집에 남아 있는 한 사람.
그것은 항상…….
‘나는 이런 날, 항상 집에 남아 있었지……. 그리고 부모님과 혜은이는 재미있게 놀다 오고 말이지……. 그리고 혜은이는 나에게 놀러 갔다 온 곳을 마음껏 자랑하고…….’
부모님은 혜은이를 참 좋아했다.
뭐 어디 놀러 갈 곳이 있으면 혜은이를 꼭 데리고 갔고, 주말이 되면 무조건 외출해서 미술관, 박물관, 공원 같은 곳에 데려가서 견문을 넓히게 했다.
혜은은 그런 부모님을 참 좋아해서 부모님과 같이 있을 때는 항상 환한 웃음을 지었고, 부모님도 혜은이를 참 좋아해서 그녀에게는 항상 환한 웃음만을 보여 주었다. 혜은이가 무엇을 하든 간에 엄청 잘못된 일이 아닌 이상 아낌없이 칭찬을 했고, 칭찬과 함께 작은 선물들을 안겨 주었다.
혜은은 너무나도 큰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 왔다. 부모님의 넘치는 사랑. 이 세상의 모든 행복을 다 알면서 자라 왔고, 불행이라고는 부모님의 죽음 외에는 거의 겪지 않았다. 상당한 외모를 가지셨던 부모님의 피를 물려받아서 모델급의 예쁜 얼굴과 잘빠진 몸을 가지게 되었고, 거기다가 좋은 머리까지 물려받아서 공부도 너무나도 잘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보고 있었던 한 사람.
현성!
현성은 소외된 채 그들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부모님이 혜은이를 데리고 놀러 갈 때 집에 혼자 남아 있었다.
적막한 집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흔하다는 애완동물도 없었고, 잡벌레조차 없었다.
그는 죽음과도 같은 고요 속에서 방치된 채 자라 왔다.
부모님의 웃음을 본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무엇을 하든 간에 칭찬은 받지 못했다.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도 당연하다는 듯한 시선을 받았고, 상을 받아서 자랑을 해도 돌아오는 것은 칭찬이 아닌 그런 것을 가지고 왜 귀찮게 하냐면서 소리치는 모습.
그는 두 눈 속에 부모님의 악의(惡意)만을 담아 왔고, 행복이란 것은 일체 겪어 보지 못한 채 살아왔다. 오로지 불행과 고독만을 곱씹으면서 자라 온 아이.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에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해 성격에 결함이 생겼다. 결국 학교에서조차 왕따가 되었다. 집에서도 무시당하고, 학교에서도 무시당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세상.
악순환은 계속 원처럼 돌면서 깨지지 않았다.
오로지 가진 것은 불행뿐.
그는 그렇게 자라 왔다.
그렇게 자라 와서 점점 패배자가 되는 길을 걸어갔다.
승리자가 되는 길이 아닌, 패배자가 되는 길.
그리고 그 길은 부모가 닦아 준 길이었다.
현성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창밖을 쳐다보았다.
따스한 햇볕을 받고 있는 나무.
너무나도 따스한 햇볕을 받고 있었다.
다른 나무들에 비해 훨씬 커다란 몸체.
가지마다 앉아 있는 새들.
그리고…… 그 옆에 그늘에 가려진 나무.
햇빛은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옆에 있는 햇빛을 잘 받는 나무와는 너무나도 대조되는 작은 몸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나무에는 새들도 없었고, 심지어 벌레들조차 없었다.
현성은 그늘에 가려진 나무를 보면서 동질감을 느꼈다.
햇볕을 쬐고 있는 나무와 너무나 대조된 삶을 살고 있는 그늘에 가려진 나무.
그것에 동질감을 느끼는 이유는 혜은과 비교 당하면서 살아온 현성의 삶이 두 나무의 상황과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일까?
“에휴…….”
나무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현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무가 불쌍해서가 아니다.
짜증나는 현실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 한숨을 내쉰 것이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자신에게 등을 돌린 현실.
그리고 결코 지워지지 않는 과거의 상처들까지.
그다지 좋지 않은 것들만 계속해서 떠오르고 있었다.
“빌어먹을…….”
현성은 욕설을 내뱉고는 소파에 앉았다.
한숨을 내쉬어도 소용이 없다.
아무리 좌절을 해도 소용이 없다.
현실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무슨 짓을 하든, 현실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현성은 마음 한구석으로부터 밀려오는 현실의 무게를 느끼면서 중얼거렸다.
“에라이 빌어먹을 세상…….”
아주 작은 목소리.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현성의 모든 희망이 담겨 있었다.
분명히 욕이지만, 그 안에는…… 현성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현실.
현실에서 따라붙는 모든 것을 버리고 싶다.
과거의 망령, 현재의 망령, 미래의 망령까지…….
그저 절망과 좌절뿐인 모든 것에서 탈출하고 싶다.
현성의 소망은 그저 그것뿐.
제헌이랑 같이 있으면 좀 나으련만, 지독히도 무서운 외로움이 몸을 잠식하자 더더욱 검은 감정이 몸을 잠식해 가고…….
현성은 그 소망을 간절히, 너무나도 간절하게 빌면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약 10초간의 정적.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소원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 소원이 이루어질 리가 없지……. 이루어질 리가 없잖아…….’
현성은 피식 웃으면서 마음속으로 끝없이 중얼거렸다.
자신은 바보라고, 소원이 이루어질 리가 없는데 괜히 감상에 젖어서 쓸데없는 짓거리만 했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소원이 이루어질 리가 없다고.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눈을 뜨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역시, 현실은 바뀐 것이 없었다.
“하긴…… 현실이 나 같은 놈 소원 하나 때문에 바뀌면 그게 현실이냐. 꿈이지…….”
현성은 씁쓸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중얼거렸다.
삑―
자조 섞인 미소를 한참 동안 짓고 있다가, 리모컨을 집어 들고 TV를 켰다.
6번.
이상한 드라마.
7번.
리포터가 나와서 지역 소개하는 것.
9번.
동물의 왕국 재방송.
11번.
역시나 드라마.
“에휴…….”
현성은 한숨을 내쉬면서 44번을 틀었다.
Gamelife라는 이름을 가진 채널.
아까 제헌이 열광하던 MC 이네아가 나오던 프로그램이 하는 채널이다.
혹시 어나더 라이프와 관련이 있는 방송이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것으로 시간은 충분히 때울 수 있으리라.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또 모르지…….”
현성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쨍그랑!
어디선가 들리는 유리 깨지는 소리.
현성은 그 소리를 듣고 TV에 시선을 집중했다.
하얀색으로 반전이 되더니, 이윽고 화면이 까매졌다.
“응? 뭐야? TV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그것을 보고는 현성은 당황하면서 중얼거렸다.
약 10초 동안 TV를 보고 있어도 까만 화면에서 다른 화면으로 복귀될 기미가 보이지가 않는다.
현성은 ‘에휴’ 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TV를 한 대 때리려고 소파에서 일어섰다.